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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간 걸려 달려간 팽목항 "보고 싶다", "미안하다"

 

[현장] 사고해역 찾은 세월호 유가족 "진상규명 이제 시작"

16.04.23 21:08l최종 업데이트 16.04.23 21:08l
글·사진: 선대식(sundai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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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사고해역을 찾은 해양 경비정 위에서 오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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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사고해역에서 세월호 인양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 대형 바지선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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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님, 권재근님, 혁규야, 고창석 선생님, 양승진 선생님, 영인아, 현철아, 은화야, 다윤아, 빨리 보고 싶습니다."

23일 오후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 위에서 실종자 9명의 이름이 하나씩 불려졌다. 해경 경비정 두 대에 나눠 타고 사고해역을 찾은 유가족들의 외침이었다. "반드시 돌아오실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라고 외쳤다. 이어 유가족들은 먼저 떠난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국화를 바다에 던졌다.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보고 싶다", "사랑한다", "미안하다"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경비정은 30분간 이곳에 머무른 후 세월호 인양작업을 준비하는 대형 바지선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정부는 세월호를 오는 7월까지 인양할 예정이다. 4·16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인 장훈씨(고 장준영군 아버지)는 마이크를 잡고 "많이 울고 제대로 싸우자, 그래야 엄마아빠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방문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이뤄졌다. 유가족들은 당초 참사 2주기 이튿날인 지난 17일 사고해역을 방문하려 했지만, 기상상황 때문에 이날로 미뤘다. 유가족들이 대거 사고해역을 찾은 것은 1주기 때 이후 1년만이다. 사고해역 인근 동거차도에서는 유가족들이 돌아가면서 인양작업을 감시하고 있다. 

"실종자들,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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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김정해씨가 국화를 사고해역에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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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서 사고해역까지는 먼 길이었다. 유가족 42명은 오전 6시 10분께 안산에 있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 앞에서 버스를 탔다. 진도에 도착해 세월호 기억의 숲에 들른 뒤, 팽목항에 닿았다. 유가족들은 팽목항에서 100톤과 60톤짜리 해양 경비정에 몸을 실었다. 가끔 너울성 파도가 쳤지만, 바다는 대체로 잔잔했다. 

유가족들은 경비정 위에서 말을 잃고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봤다. 대형 바지선이 보이는 사고해역에 가까워지자, 유가족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경비정이 1시간 동안 32km 내달려 사고해역에 닿은 것은 오후 3시였다. 

경비정 위에서 안주현군의 어머니 김정해씨가 유가족들을 대표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눈물 때문에 종종 말을 잇지 못했다. 

"예쁜 꽃이 된 아이들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갈 곳을 잃어 바다가 되었다. 바다는 어서 아이들을 돌려주고 싶어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의 무게에 눌려 나오지 못하고 있다. 배안에서의 외침이 침묵이 되는 사회에 아이들이 다시 온 힘을 모아 소리쳐 보지만 대한민국은 귀 기울여 주지 않는다.

배 안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9명의 실종자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주길 기다리고 있다. 내 아이, 아이들의 선생님, 아이의 엄마 아빠였을 그들이 어둠 속에 있다. 따뜻한 손길에 힘을 내어 나오라고, 좀 더 손을 내밀며 나오라고 하지만, 어두컴컴한 곳에 돈의 무게에 내려앉아 빛을 받지 못하고 주저앉아있다. 이곳에 진실의 빛으로 길을 알려 주어 나오라 목놓아 외치고 외쳐본다.

이 아이들의 꿈은 배와 함께 가라앉고, 아이들이 꿈을 키우며 소중하게 다루던 물건들은 진실과 함께 사라지려 한다. 소중하고 예쁜 아이들의 꿈을 짓밟고 내 아이의 손길이 닿은 물건들도 사라져가려 하고, 그 예쁜 아이 물건이라도 부모의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서라도 아이를 품에 안고 싶다. 진실마저 짓밟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김씨는 "부모들은 아이들과 같이 함께함을 느끼며, 오로지 아이들만을 생각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갈 것이다, 인양은 진실의 발걸음에 한걸음 더 간 것이며 실종자에 대한 나라의 예의인 것"이라면서 "세월호를 꼭 온전하게 인양하여 미수습자 9명이 가족품으로 돌아올수 있기를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이어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손에 쥔 국화를 바다에 던졌다. 허재강군의 어머니 양옥자씨는 한동안 흐느꼈다. 양씨는 "이곳에 오면 사고에 대한 기억 때문에 힘들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다"면서 "재강이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라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9시간의 여정 끝에 사고해역에 도착했지만, 이곳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곧 유가족을 실은 경비정은 뱃머리를 팽목항으로 돌렸다. 

"진상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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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김정해씨가 팽목항 인근 세월호 기억의 숲에서 아들인 안주현군을 상징하는 은행나무를 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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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길, 장훈씨는 기자에게 "진상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오는 6월까지만 진상규명 활동에 나선다. 특조위 설립 근거인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 특별법)에 따르면, 진상규명을 위한 특조위의 활동기한은 최대 1년 6개월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특조위가 구성됐다면서 6월까지만 예산을 배정해놓았다. 

장훈씨는 "제대로 된 조사도 못했는데 6월에 특조위 활동을 끝내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참사의 직접적인 증거인 세월호를 인양해 조사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장씨는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유가족들을 도운 박주민 변호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진상규명에 소극적인 집권여당은 과반의석을 달성하지 못했다"면서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유가족들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상이 하루 빨리 규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야당들은 여소야대인 20대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해 특조위 활동 기한을 연장하겠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장씨는 "지금까지 정부의 행태를 보면, 호락호락 진상규명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민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진상규명에 가까워질 것이다, 진상규명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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