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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에 정면대결- 광주코뮌과 아고라의 공통점

쿠데타에 항거하는 광주코뮌과 아고라의 공통점
개표부정을 부정하는 논리의 위선

(서프라이즈 / 시다의검 / 2013-02-10)

 

1.다시 5월의 정신을 돌아보며

5.18 광주! 마지막 까지 도청을 사수하던 사람들! 죽을 것을 알면서 그 자리를 지킨, 아니 떠나지 못한 그 심정은 무엇이었을까?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의리? 살아남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누구도 그 어느 누구도 도청을 지키자고 강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학생 어린 동생들을 떠밀다시피 도청 밖으로 밀어내고 구식 칼빈 소총 한 자루에 지친 몸을 기대며 저 멀리 어둠 속을 바라본다. 계엄군의 함성과 박자를 맞춘 군홧발 소리, 헬기에서 뿌려지는 삐라들이 눈발처럼 날리고 투항하라는 선무방송이 귀를 찢어대는 그 긴장된 여명의 시간! 우리의 형제이자 벗이었던 수백의 윤상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저 반역의 무리들에게 순순히 이 나라를 넘길 순 없다. 내 부모와 형제들의 목숨을 앗아간 저 악귀들에게 나의 비겁한 뒷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순 없다. 비록 저놈들의 총탄에 내 육신이 갈기갈기 찢어진들 내 영혼은 핏발선 저항을 하리라. 죽어서도 이 순간을 지켜봐야한다. 내 죽음이 역사의 증거가 되리라. 산들 그것이 산 것이겠는가? 어쩌면 오래전부터 내 죽을 자리는 여기로 예정되었나보다. 광주에서 태어났거나, 우연히도 지난 10여일의 사건에 참여했거나, 우리는 모두 광주코뮌의 동지들이다. 동지들 안녕히, 저승에서 다시 만나자! 그들은 그렇게 오로지 자신만의 실존적 결단으로 도청을 사수하다 죽어갔다. 이렇게 5.16 쿠데타를 계승한 1980년 전두환의 5.17 쿠데타는 수천 광주시민의 목숨을 짓밟고서야 완료될 수 있었다.


2. 517 쿠데타와 51.6 개표 쿠데타의 비교

 

5.17쿠데타 그 후로 30여년, 2013년 2월 초 우리는 아주 다른 것 같지만 본질상 동일한 51.6개표 쿠데타의 전개과정을 목도하고 있다. 계엄군의 총검이 선관위와 방송국의 조작된 개표 프로그램으로 그 외양이 바뀌었을 뿐 다른 모든 양태가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박정희 사후 드러난 전두환의 권력욕과 이명박그네의 권력재창출의지가 너무도 닮았다. 강도의 폭력이냐 사기꾼의 사술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주권재민의 민주적 절차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앵무새처럼 전두환과 박그네의 집권의 정당성을 떠들어댄다는 점도 같다. 구국의 결단으로 쿠데타를 미화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 5.17을 김대중에 책임을 씌우려는 어용세력이나 18대 대선 실패책임을 문재인과 친노(?)에 전가하려는 적반하장의 세력이 모두 기득권 쿠데타 세력의 동조자라는 점 또한 동일하다.

또한 지식인과 시민운동 세력이 침묵하는 점도 유사하다. 그 이유는 좀 다른 점이 있다. 전두환의 쿠데타에 침묵한 이유는 정말 말 그대로의 두려움이었다. 총칼을 휘두르는 학살정권의 폭력에 대한 원초적 두려움이었다. 그에 반해 이번 51.8개표 쿠데타에 대한 침묵은 비겁함이다. 부정선거를 인정할 때 필연적으로 요구받는 당위적 대응으로써의 부정에 대한 부정을 위한 투쟁의 의무에 대한 회피심리가 작동하는 거다.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는 저항운동에 정면으로 마주할 자신이 없는 거다. 그래서 내놓는 말이 “많은 오류와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선거결과를 뒤집을 만한 정도의 부정선거는 불가능함으로 받아드리고 내일을 기약하자”는 멋들어진(?) 항변이다.


3-1.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위선적 논리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유일한 근거는 개표과정에서 다수 참여자를 다 속일 수 없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과 핑계에 불과한 위선적 논리이다. 이미 드러난 증언과 증거 자료로 판단해보면 개표장의 대다수 참관인들은 그저 구경꾼에 불과했고 선관위 직원들은 전자개표기의 수동적 보조도구로 기능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대다수가 허수아비였다고 볼 수 있다.(이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관계자들을 겪어본 내 경험과 일치한다.) 그런데 골 때리는 것은 이렇게 허술하게 집계된 선관위의 개표결과 수치와 방송국이 실제 방송한 수치가 불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그 어떤 방송사도 개표현장에 집계요원을 보내지 않았고-아고라 마포나루님의 조사에 따르면 출구조사 여부도 대부분 확인되지 않는다.- 선관위가 보내준 자료를 그대로 송출했다는 데 말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제3의 서버에서 미리 준비된 프로그램에 따라 산출된 수치가 방송사로 송출되었다고 추론하는 게 너무도 상식적인 것이 아닌가? 그렇게 가정할 때 이번 선거 개표과정의 모든 의문이 깔끔히 풀리지 않겠는가? 오캄의 면도날의 이론에 따르더라도 그렇다. (즉 이는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이 논리적이라는 이론이다.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행성궤도의 예측에서 보다 단순하다. 고로 지동설이 옳다.) 이번 대선의 개표과정의 숱한 의문점들(51.6%, 로지스틱 함수 꼴, 막판 전국적인 문재인 득표율의 미세상승조정, 기초 자치구와 광역 시도의 득표 그래프의 쌍둥이 닮은 꼴, 선관위와 방송국의 수치 불일치 그 외 등등)은 단순한 한 가지 가설 즉 외부개표조작 프로그램의 존재 이 하나로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반면 물뚝심송등 일부 부정선거를 부정하는 착한(?) 사람의 주장은 이 모든 걸 우연이나 실수, 착오로 설명해야한다는 난제를 해결할 수 없다.


3-2.

 

그러나 실천적인 면에서 물뚝심송류의 부정선거 불가능설은 유리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실천적 고민을 대폭 줄여준다는 점이다. 개표과정의 오류는 없었다. 그러므로 전자개표기 사용에 반대할 이유도 수개표 투쟁을 할 필요도 없다. 또한 로지스틱함수도 방송국이 시각적 효과로 멋지게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서 나온 것이므로 의심할 필요가 없다. 다른 문제점도 뭐 그럴 수도 있는 우연일 뿐이다. 이 모든 게 박그네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문재인 열성 지지자들의 주관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저 릴렉스! 사태를 냉정히 보고 현실을 받아들이자.

좋다. 참 그렇게 믿고 싶다. 그리고 부럽다. 그렇게 세상 편히 살 수가 있어서 그 강심장이 존경스럽다. 아고라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귀성길에 나눠줄 전단지를 만들어 돌리는 그 사람들이 편집증에 사로잡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건가?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물뚝심송의 글을 읽고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러면 속이 편해질 거 같거든. 그냥 안철수나 씹던지, 노인네와 저소득층에 저주만 보내면 되거든. 그리고 앞으로 5년간 무관심하게 살면 되지 뭐, 저 인간들 망하는 거 보면서, 고소해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말야! 그게 잘 안되더라고. 합리적인 의심을 이미 품고 있는데 물뚝심송의 아무 문제없어! 라는 주장이 내게는 내가 고딩 때 떠나버린 야소교의 주여! 믿습니다. 라는 주술로 밖에는 안보이더라고 그리고 아고라와 서프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자꾸 5.18 당시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광주시민처럼 느껴지더라고.. 30여년전 그 분들은 승리를 확신하지 못했지. 아니 오히려 도청을 떠나지 않고 사수하려다간 끝내 목숨을 잃게 되리란 걸 절감했었지. 시간이 갈수록 고립감을 느끼고 동지들이 하나씩 둘씩 자리를 뜰 때 심리적 동요도 있었을 거야. 지금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아고라의 시민들도 정도는 다르지만 비슷한 심경일꺼야. 30여년전 도청의 시민들이 총칼에 굴하지 않고 절대 전두환의 집권을 용납하지 않았듯이 지금 아고라에 모인 시민들도 개표부정으로 당선이 진행 중인 박그네의 정통성을 절대 인정할 수 없는 거야.


4.이 투쟁이 어떻게 될지 속단할 순 없다.

 

30여년전 광주에서 항쟁에 나선 시민들은 다른 도시의 지원과 봉기를 기대했었다. 그리고 심지어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전두환을 몰아내고 광주시민을 지지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와 믿음은 무참히 깨졌다. 당시의 학생 운동권은 대대적인 탄압과 검거에 몸을 숨기고 침묵했다. 미국은 오히려 전두환을 지지했다.

현재 이 부정선거 투쟁도 4.19로의 도약이냐 좌절이냐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그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싸움은 현재 물리력이 아닌 담론을 둘러싼 싸움이라는 것이다. 사실을 규명하고 널리 알려서 진실로 규정하는 성격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모여서 트윗으로, 전파로 전 세계 인터넷 망을 타고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투쟁을 원천봉쇄할 방법이 저들에겐 없다. 아고라에 서프에 침입해 오는 국정원 십알단의 무리들을 보면서 우리는 오히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우리를 고립시키려 국민세금까지 동원하는 저들의 작태에서 우리는 결코 고립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우리의 싸움은 박그네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과정에서 수구 기득권 전체를 박그네와 싸잡아 부정할 수 있는 싸움이다. 단기간에 뚜렷한 성과가 없을 지라도 부정선거를 해야만 하는 취약한 저들의 집권기반을 그 토대에서 무너뜨릴 수 있는 싸움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야권전체를 새롭게 재편할 수 있는 싸움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아직은 구별이 안 되게 혼재되어있으나 우리의 이 투쟁에 대한 지지의 저변이 커지는 결과로 새롭고 튼튼한 대안세력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 주체는 이 싸움을 주도해나가는 민주시민이 될 것이다. 민주당 따위가 우리를 능욕하고 무시하는 현재의 상황을 조만간 그대로 그들이 느끼게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저 부정선거 주범들과 손잡은 배신의 무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4.19 미완의 혁명에 숨지신 민주 열사 분들과, 전남도청에서 마지막 밤을 살라가며 역사의 제단에 민주주의의 제물로 화하신 선배 동지들에게 우리가 오늘 화답할 차례다. 김구와 장준하, 김대중과 노무현의 길을 따라 ‘사람 사는 세상’의 대장정을 시작할 때다.

# 예고했던 글의 첫 번째 글입니다. 나머지 주제들은 자칫 주관적 감상으로 흐를 수 있어서 좀 더 취재하고 숙고한 후 쓸 계획입니다.

 

시다의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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