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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종 뒤 부스러기 줍는 방송사들 “자괴감 들고 괴로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11/09 11:13
  • 수정일
    2016/11/09 11:13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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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느 신문 베껴쓰나’… 기자들 반발 폭발, MBC는 보도국장 퇴진 요청도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6년 11월 09일 수요일


 

KBS‧MBC‧YTN 등 주요 방송사들이 지난달 특별취재팀까지 꾸리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60‧구속)씨 국정농단 이슈를 따라가고 있지만 내부 구성원들은 여전히 소극적인 보도 행태를 비판한다.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최순실 게이트’에 쏠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사태에 침묵했던 보도책임자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KBS, 미 대선으로 관심 돌리나

언론노조 KBS본부(이하 KBS본부) 등에 따르면, KBS는 미국 대선 출구조사가 발표되는 9일 ‘6시간 연속 뉴스특보’를 내보낼 계획이다. 이와 비교하면, KBS의 최순실 게이트 편성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KBS는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6일까지 6차례에 걸쳐 215분간 뉴스 특보를 내보냈다.

 

▲ 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지난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에서 ‘최순실 보도 참사와 인사제도 개악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KBS 보도책임자 사퇴와 청문회 개최를 촉구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또 편성이 확정된 최순실 관련 프로그램은 지난 2일 방영된 ‘추적60분’ “‘최순실의 국정농단, 대한민국을 삼키다” 편, 지난 4일 특별 편성된 “특집토론 최순실 난국,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8일 방영된 ‘시사기획 창’ “최순실, 국정을 흔들다” 등에 불과하다.

 

KBS본부는 지난 7일 성명을 내어 “최순실 게이트로 ‘대통령 하야’ 요구가 빗발치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편성은 ‘미 대선 뉴스로 국민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며 “이 정도 수준의 편성으로는 최순실 보도 참사에서 조금도 헤어날 수 없다. 오히려 면피 수준의 뒷북 방송, 변죽만 울리는 방송이라는 비난만이 더해질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8일 KBS 편집회의에서 간부들은 “미국 대선은 4년마다 이와 같은 편성으로 중요하게 취재해왔고 올해도 이에 준해서 편성을 하고 특보를 준비하고 있는 것”, “특보가 편성된 시간대에 최순실 게이트 등 다른 뉴스도 충실하게 다뤄진다”고 밝혔다. 

반면, KBS본부는 “4년 전인 2012년 오바마 재선 당시와 비교해도 세 배 가까이 많은 분량”이라며 “KBS가 지난 2012년 미 대선 당시 내보낸 뉴스특보는 정오 특집 정규 뉴스(60분)를 제외하면 130분이 전부였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보도책임자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은폐와 늑장으로 최순실 보도 참사를 불러온 김인영 보도본부장과 정지환 통합뉴스룸 국장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KBS본부 성명)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 국장은 지난 2일 “솔직히 한 달 열흘 전 그 당시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이런 관계였다고 상상조차 못했다”, “최씨 게이트는 태블릿PC가 공개됨으로써 비로소 구체성을 띠기 시작한 것. 그래서 그날 뉴스라인부터 즉각 받았고 즉각 전면 취재 체제로 돌입. 그 결과 서서히 성과를 내고 있다”고 밝혔다. 

김인영 보도본부장은 지난달 31일 노사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최순실 낙종’에 책임지고 사퇴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지만 KBS 측은 사퇴 논란에 대해 “보도본부 수장으로서 책임을 가장 크게 느끼며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MBC 보도국장, 어디부터 취재할지 몰라

MBC의 경우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침묵을 뚫고 나온 한 기자의 날카로운 글이 사내를 발칵 뒤집었다. 

MBC 보도국 사회1부 데스크인 김주만 기자(차장)는 지난 7일 “뉴스 개선은 보도국장의 퇴진으로 시작해야 합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통해 “(최기화) 보도국장조차 어디부터 취재할지를 몰라 남의 뉴스를 지켜봤다 받으라고 지시를 하고, (오정환) 부국장은 ‘오늘은 어느 신문을 베껴 써야하냐’고 묻는 현실이 이게 과연 MBC가 맞느냐는 의문이 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 조능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이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MBC 경영센터 1층 로비에서 최순실씨 관련 MBC 보도를 비판하는 피케팅을 하다 사측 안전관리 요원들에게 저지당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또 김 기자는 파업 이후 채용된 경력기자들을 겨냥해 “여러분(경력기자들)이 스스로 제대로 된 기사를 써서 자기가 쫓겨난 기자들을 대체하는 구사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며 “간부들의 생각에 맞춰 기사를 왜곡하는 사이비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그냥 ‘김재철 키즈’처럼 ‘안광한 키즈’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가를 뒤흔든 사안에 침묵했던 보도 책임자들을 비판하면서 경력기자들의 각성을 촉구한 김 기자의 글은 MBC 안팎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한 기자는 “경력기자들은 ‘정권이 바뀌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김 기자의) 게시 글에 경력기자들이 술렁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 글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기자들도 있지만, 노조 가입 등을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는 얘기다. 

이 기자는 “사측 입장에서는 경력기자 입장이 지금과 달리 바뀌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을 것”이라며 “혹시 김 기자에게 징계를 내렸다가 되레 기폭제가 되진 않을까 불안해하는 (사측의)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일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이 사내 게시판에 “김장겸 보도본부장은 MBC 뉴스를 자신의 입신을 위해 더 이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김 본부장을 ‘MBC 뉴스를 이용해 사(私)를 취하려는 자’라고 분명하게 명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등 최순실 사태 이후 기자들이 징계를 각오하고 간부들을 실명 비판하면서 위축됐던 목소리가 응집되고 있다.

 

▲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이 지난 5일 서울 대규모 집회에 참석해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YTN 간부들, 취재 의지에 찬물

 

YTN에서도 노조를 중심으로 소극적 보도에 반발하고 있다. 

언론노조 YTN지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이하 YTN공추위)에 따르면 최순실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지난 5일, 오전 6시 뉴스부터 오후 3시 뉴스까지 YTN에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가 헤드라인 탑으로 보도된 경우는 없었다. 

YTN 공추위는 “광화문에서 대한문까지 촛불이 거리를 뒤덮었는데 보도국 책임자들은 경찰 발표 참석인원 4만 명을 꼭 제목에 넣어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이후 참가자 숫자는 결국 제목에서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보도 책임자들은 최순실 의혹을 표현할 때 ‘국정농단’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도록 지시했다”며 “급기야 최순실씨가 검찰에 소환될 때도 자막에는 아무런 수식어를 붙이지 못했다.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는 최씨가 구속된 다음날인 지난 4일에야 ‘해금’됐다”고 주장했다. 

전국 곳곳에서 발발한 대규모 집회에 대한 종합적인 취재계획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YTN공추위는 “세월호 참사 이튿날 내려진 대통령의 체육 개혁 지시, 최씨의 입국 뒤 증거인멸 의혹 등 지난 사원총회 이후 여러 부서에서 의미 있는 보도를 내놨다”며 “보도 책임자들의 여전한 눈치보기는 현장 기자들의 취재 의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우리 보도는 정권이나 특정 정치세력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3155#csidx3db62691d3669ccb463d4ae14db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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