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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간 산 집이 잿더미” “갓난아이만 안고 뛰쳐나와”

[주말 대형 산불]“58년간 산 집이 잿더미” “갓난아이만 안고 뛰쳐나와”

최승현·백경열 기자 cshdmz@kyunghyang.com

 

ㆍ화마에 타버린 삶터…시커멓게 타버린 이재민 삶

7일 전날 발생한 산불로 잿더미가 된 강원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의 한 집터에서 잔불을 정리하는 모습을 주민이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다. 김영민 기자

7일 전날 발생한 산불로 잿더미가 된 강원 강릉시 성산면 관음리의 한 집터에서 잔불을 정리하는 모습을 주민이 망연자실한 채 바라보고 있다. 김영민 기자

삶의 터전이 화마로 완전히 녹아내렸다. 삽시간에 덮친 불길에 겨우 목숨만 건진 주민들은 하룻밤 사이에 시커멓게 불에 탄 폐허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7일 오후 잔불 정리작업이 진행 중인 강원 강릉시 성산면과 홍제동 사임당로 일대 모습은 처참했다. 

■ “남은 건 입고 있는 게 전부야” 

“가재도구가 뭐야, 남은 건 입고 있는 게 전부야” “전쟁터가 따로 없어…”라는 주민들의 탄식이 쏟아졌다. 길가에 주저앉아 있던 이 마을 주민 최종필씨(76)는 “58년을 산 집이 잿더미가 됐다. 이 집에서 살아온 나와 가족들의 흔적이 하루아침에 모두 타버린 게 너무 가슴 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성산면 성산초등학교 과학실 등에 대피한 주민들은 전날 밤 면 전체 주민 2500여명에게 긴급 대피령이 내려졌던 긴박한 상황을 떠올리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박정균 할머니(88·성산면)는 “산 중턱에서 날아온 불씨가 집으로 옮겨붙어 어제저녁 가재도구도 챙기지 못한 채 딸과 함께 몸만 빠져나왔다”며 온몸을 떨었다. 

 

이날 강릉 지역의 한 맘카페에는 ‘관음리 화재로 집이 다 타버렸어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생후 24일 된 아들과 함께 겨우 몸만 빠져나왔다는 그는 “구호물품에서 생리대를 꺼내 수유 패드 대신 가슴에 대고 아기와 잠들려는데 자꾸 막막한 생각만 든다”며 “혹시 안 쓰시는 아이 옷이나 용품 등이 있다면 도움 주실 수 있느냐”고 도움을 청했다. 주유소를 운영하는 정은미씨(42)는 “주유소 뒷산에서 불길이 치솟아 한때 유류저장소 등이 위험에 처할 뻔했다”며 “자체 호스를 이용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던 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가 번진 불길을 겨우 잡았다”고 말했다.

불은 강릉교도소 근처까지 번져 교도소 측은 한때 재소자 이감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강릉 산불은 7일 새벽까지 강풍을 타고 급속히 확산되면서 성산면과 홍제동 등 민가 30채와 산림 50㏊를 태우고 오후 6시쯤 진화됐다가 오후 9시25분쯤 최초 발화지점에서 불이 다시 나 소방당국이 진화작업에 나섰다. 

[주말 대형 산불]“58년간 산 집이 잿더미” “갓난아이만 안고 뛰쳐나와”

■ “밤엔 못 꺼” 삼척 헬기 철수 

강원 삼척시 도계읍에서 난 산불도 강풍을 타고 번져 7일 오후까지 빈집 2채와 100여㏊가 소실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산불 확산 지역이 고산지대인 데다 이날 오후 다시 바람이 강하게 불면서 불길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삼척 도계읍 늑구1리 22가구 주민 30여명은 안전한 인근 주택으로 대피했다. 삼척시 관계자는 “7일 기상청 자료에는 도계지역 순간 최대 풍속이 초속 8m로 기록됐지만, 진화 현장에서 느낀 체감 풍속은 초속 14m가 넘었다”고 말했다. 초속 14m는 바람을 거슬러 걷기 힘들 정도의 센 바람이다. 

더구나 산불이 난 지역과 담수지 거리가 먼 점도 진화작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헬기가 산불 현장으로부터 12㎞ 떨어진 삼척 광동댐에서 물을 퍼와야 하기 때문에 한 번 뿌리는 데 드는 시간이 20여분이나 된다. 이런 이유 등으로 산림당국과 강원도, 삼척시는 이날 일몰 후 헬기를 철수시키고 야간 산불 진화 태세에 돌입했다. 삼척은 계속 바람이 거세 밤사이 피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소방당국은 주민들이 대피한 민가에 소방차와 진화 인력을 집중 투입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로 했다. 산림당국은 8일 일출과 동시에 진화 헬기 15대와 2000여명의 진화 인력을 총동원해 진화에 나서기로 했다. 

경북 상주에서는 산불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6일 상주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에 빠르게 확산되면서 13㏊가량의 삼림을 태운 뒤 20시간 만에 큰 불길이 잡혔다.

이 불로 상주 매호리 매호바위 정상(해발 250m) 부근에서 조난당했던 등산객 김모씨(60)가 숨지고, 일행 장모씨(65)와 김모씨(57) 등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상주소방서 관계자는 “숨진 김씨는 불길을 피하려다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졌고 이후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과거 함께 일했던 직장 동료 사이로 이날 친목 도모를 위해 산행을 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7일 오후 7시10분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배치된 경북 성주군 초전면 성주골프장에서 340m 떨어진 달마산에서도 불이 나 공무원·군인 등 100여명이 진화작업에 나섰다.


불이 난 달마산 정상(해발 680m) 부근은 최근 사진기자들이 사드 발사대 등을 촬영한 곳이다. 이곳은 군사구역이 아니지만 성주골프장을 내려다볼 수 있어 군인들이 배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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