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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 필진의, 아니, 은수미의 청와대행을 격렬하게 환영한다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딴지일보 편집장 김창규(필명 죽지않는 돌고래, 약칭 죽돌)의 인터뷰집을 샀다. 지승호 선배와는 또 다른 맛의 인터뷰를 긁어내는 재능을 가진 걸 일찌기 아는 바 눈에 띈 김에 냉큼 카드를 긁었다. 그런데 그 책에 없는 인터뷰 하나가 가물가물 떠올라서 인터넷 검색을 했다. 인터뷰 대상 이름은 기억나지 않으나 무척 호감과 공감이 갔던 인터뷰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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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지일보 검색을 해서 김창규 인터뷰를 뒤지다보니 내 기억이 잘못되었음을 곧 알게 됐다. 인터뷰어조차 달랐다. 죽지않는 돌고래가 아니라 딴지일보 정치부장물뚝심송이었다. 당연히 인터뷰이도 알게 됐다. 은수미 의원이었다. 다시 읽어 보니 예전에 보았을 때의 느낌이 새록새록 죽순이 되어 돋는다.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법이고 지나온 길에 따라 상대방 코스를 판단하는 이치라 내가 느낀 호감과 공감 목록을 줄줄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응답하라 1988보다 한 단계 위 세대, '말죽거리 잔혹사' 세대에 해당하는 그녀의 인생 역정은 기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이다. 위장 민증 가지고 공장에 들어가고 거기서 별의 별 일을 겪고 감옥에 가고 세상 바닥을 쓸고 하는 운동권 후일담이야 거실 책꽂이 한 켠에 수북하다. 


비록 현장 투신 한 번도 못한 처지로 시덥잖은 부채의식은 있겠지만, 유별나게 감응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선이 갔던 것은 그녀의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지나치기 쉽고 까먹기 좋은 '가늘고 보잘것없는' 기억들 말이다. 

 
은수미 의원에 따르면 감옥에선 평생 커피를 안먹던 사람도 커피를 먹고 싶어하게 된다고 한다. 즉, '자유'의 문제는 기호마저 바꾼다는 것이겠다. 사회에선 거들떠보지도 않는 초코파이에 이등병들이 환장을 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인터뷰들은 여기에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데 은수미 의원은 기억 한 자락을 더 뽑는다. 

 

 

 

"어떤 오십대 아주머니 한 분이 평생 노래 한 번 안 해본 분인데 커피가 그렇게 마시고 싶다고 하시는 거에요. 그러다가 이십대 교도관이 어머니뻘 되는 이 아주머니에게 자기 앞에서 노래를 세 곡을 하면 커피를 한 잔 주겠다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교도관도 장난이었죠. 그냥 노래 세곡 하면 커피를 준다고 한 것뿐인데, 이 아주머니가 진짜 똑바로 서서 노래를 하시더라구요. 천주교 신자였는지 성가를 두 곡 정도 하시고 나서 동요를 부르시더군요. 나비야, 나비야 하는 노래를 하는 겁니다.

 

옆에서 보는 제가 정말로 눈물이 나더라구요. 교도관도 처음에는 장난으로 시작했다가 이게 너무 진지해지니까 놀란 거에요. 착한 교도관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가슴이 찡해진 것은 은수미 의원의 시선이었다, 고종석 기자 표현대로 "나라의 깃털 하나도 못건드릴 거면서 말의 인플레만 심했던" 사노맹 투사로서, 그것도 "격앙하기 쉬웠던" 20대로서 사실 이 장면에서는 '교도관에 대한 분노'가 앞서기 쉬웠을 것이다. 이 개새끼가 커피 하나 가지고 사람을 이렇게...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현장에 있었다면 괜시리 정의감에 불타올랐을지도 모른다. 50대 아주머니에게 "노래 세 곡 부르면 커피 한 잔 주지." 하는 20대 교도관이라니. 이런 싸가지! 너는 에미도 없냐. 이른바 '진보'라는 사람들이 참 쉽게 빠지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는 정의로움의 함정(내가 진보라는 말은 아님).


하지만 은수미 의원은 거기서 장난이었지만 너무 진지해지니까 놀라버리는 착한 교도관을 발견한다. 이해가 간다. 사실 별 악의도 없이 조롱의 의사도 없이 이미 줄 생각하고 있으면서 "노래 하나 하면 줄게요!" 는 일상에서도 많이 보는 장치지 않은가. 단, 20대 교도관의 경우 그 커피가 얼마나 절실한지, 평생 커피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람들이 왜 커피에 환장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이 문제였겠지. 


교도관은 어쩔 줄 몰라 했을 것이다. 노래를 그만하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떠나 버릴 수도 없고. 나비야 나비야 나올 때 와와 박수 치면서 커피 건네고 끝내고 싶은데 그 타이밍도 잘 모르겠고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본 듯이 말하냐 하면 그게 착한 사람들이 흔히 보이는 '인간적인 미안함'이 부르는 결정 장애의 전형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수미 의원은 그걸 본 것이리라. 결국 부처 눈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엔 돼지가 보이는 법이라는 사실은 무학 대사 이래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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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인터뷰는 별 신경 세우지 않고도 물 먹듯 읽을 수 있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열 몇 살 차이나는 대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할 때 김수행 교수가 강의실에서 그녀에게 내린 평가는 가슴 뭉클하다. "지금 나한테 답안지를 받아간 은수미라는 사람을 아는가? 자네들 선배였고, 아주 극렬한 운동권이었다가 감옥 갔다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 친구는 돌아와서 어떻게 이렇게 공부를 하는지, 정말 죽어라 공부를 했는지, 이번에 최고점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젊은 피'로 정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386에 대한 원천적 불신이, 적어도 내게는 있다. 특히 '의장님'이나 '총장님' 출신들이라면 두 페이지 접어서 본다. 실력은 없고 이름만 높은, 샥스핀 앞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를 줄은 알았는데 20년 동안 해 놓은 것이라곤 좀 의관정제하고 다초점 누진렌즈 구비해야 몇 줄 보일까 말까 한 사람들. 하지만 김수행 교수의 평가(강의실에서 한 것이니 증인도 많으리라) 는 최소한 이 은수미라는 386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적어도 의장 놀이하면서 가마 타고 등장해서 그 이름값으로 한세상 호령한 이들과는 좀 결이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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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당시 은수미 의원의 첫 연재물 마빡입니다)

 

한번에 보는 은수미칼럼(클릭)

 

 

 

 

 

 

산하

 

편집 : 딴지일보 인지니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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