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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연못 밑 붕어는 술에 기대어 생존한다

조홍섭 2017. 08. 17
조회수 1707 추천수 0
 

산소 없어도 4~5달 버텨, 치명적인 젖산 대신 알코올 생성 대사 작동

술 빚는 효모 비슷한 효소, 붕어의 혈중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5%

 

03100750_R_0.jpg»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붕어의 비밀이 또 하나 발견됐다. 무산소에서 살아남는 능력이다.한강물환경연구소

 

연못이 꽁꽁 얼고 위에 눈이 쌓이면 연못 바닥까지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조류가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서 물속의 산소는 고갈된다. 붕어나 가까운 친척인 금붕어는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그 비결은 뭘까.

 

척추동물은 산소가 없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죽는다. 뇌 등 핵심 장기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산소 상태에서 붕어와 금붕어는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문제는 분해 산물로 생기는 젖산은 독성이 커 몸에 축적되면 생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1980년 금붕어를 이용한 실험에서 금붕어가 젖산 대신 알코올을 만듦으로써 이런 위험을 회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rain_17365_12019_ed.jpg»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담수어인 붕어. 강인한 생명력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조홍섭 기자

 

노르웨이와 영국 연구자들은 붕어가 무산소 상태에서 술 빚는 효모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효소를 만들어 생존할 수 있으며, 그 기원은 800만년 전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중복’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11일 치에 실렸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클 베렌브링크 영국 리버풀대 진화생리학자는 “북유럽 서식지에서 붕어는 얼음에 덮인 연못의 산소가 없는 물속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아남는다”며 “이때 붕어의 혈중알코올농도는 100㎖당 50㎎(0.05%에 해당)이 넘는데, 사람이라면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 수준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붕어는 대사 산물인 알코올을 아가미를 통해 배출한다. 연구자들은 “붕어가 무산소 상태에서 4∼5달을 생존하지만 죽는 건 산소부족이 아니라 간에 축적된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03347998_R_0.jpg» 어느 개울의 붕어는 크기와 모양이 모조리 비슷한 경우가 많다. 새 서식지를 개척한 암컷이 처녀생식으로 자신의 복제품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김봉규 기자

 

이런 대사가 가능한 이유는 붕어가 ‘피루베이트 디카르복실라아제’라는 새로운 효소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붕어의 조상은 우연히 유전자 중복을 일으켰고, 여기서 확보한 여벌의 유전자가 무산소 상태 때 알코올 대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주 저자인 캐서린 페이거니스 박사는 “이번 연구는 그때까지 생물이 살기 힘든 환경에 적응해 생물이 진화하는 데 유전자 중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준다”며 “붕어는 알코올 생산 능력 덕분에 혹독한 환경에 살아남은 유일한 물고기가 됐고, 그럼으로써 경쟁과 포식자를 회피할 수 있었다”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 연구에 대해 이완옥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박사는 "겨울철 붕어가 저수지 깊은 곳에서 집단으로 월동하는데 이런 비밀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며 “다른 어류 종에서도 이런 능력이 있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붕어는 이런 무산소 환경 생존능력 말고도 외딴 곳에 진출해 짝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처녀생식과 성 전환으로 번식을 이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관련 기사: 붕어와 톱상어, 처녀생식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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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thrine E. Fagernes et al, Extreme anoxia tolerance in crucian carp and goldfish through neofunctionalization of duplicated genes creating a new ethanolproducing

pyruvate decarboxylase pathway, Scientific Reports 7: 7884, DOI:10.1038/s41598-017-07385-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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