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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언론이냐?’…적폐가 되어버린 언론

[기고] ‘이게 언론이냐?’…적폐가 되어버린 언론
  • 진흙속의연꽃
  • 승인 2017.08.20 00:39
  • 댓글 1
 
 

침묵은 똥이다

흔히 “침묵은 금이다”라 합니다. 말이 많으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다는 뜻입니다. 쓸데 없는 잡담을 하다 보면 남말 하기 쉽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일까 연예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직장에서는 상사가 대화의 안주가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대개 험담이 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귀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럴 것이라면 차라리 상대방을 칭찬하는 것이 낫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이왕이면 좋은 이야기 해 주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침묵은 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을 때 하는 말입니다. 쓸데없는 말, 험담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묵언수행을 하지 않는 한 잘못 된 것은 잘못 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침묵합니다. 이유는 무관심과 두려움, 기득권 때문이라 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합니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 가도 내일이 아니면 관심 두지 않습니다. 하물며 조직이나 단체, 공동체가 잘 못 되어 가고 있어도 침묵합니다. 이는 무관심이 아니라 차라리 ‘무능’에 가깝습니다. 아무 것도 할 것도 없고 아무 할 일 없는 ‘게으른 자’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무관심입니다.

또 두려워서 말을 못합니다. 불이익 받을 것을 염려해서 입니다. 작은 이익이라도 걸려 있으면 할 말을 못합니다. 더구나 지위와 직위가 있는 자라면 더욱 움추려 들 것입니다. 이른바 ‘조직침묵’입니다. 말을 해 보아야 들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을 함으로 인하여 불이익이 예상 된다면 그 순간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됩니다. 이런 현상을 한국불교에서 봅니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이 아닙니다. 노란 빛깔이라 해서 모두 금이 아닙니다. 조직이나 단체에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자의 침묵은 똥입니다. 그러나 명상주제를 가지고 명상하는 자의 침묵은 거룩한 침묵입니다. 이럴 때 침묵은 금입니다. 묵언수행을 하지 않는 한 “이건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8.17 목요촛불법회 식전공연. 사진=진흙속의연꽃.

CEO의 경쟁력이 조직의 경쟁력

한국불교가 위태롭습니다. 불자수가 3백만 명이나 빠져 나간 반면, 기독교 신자수는 불자수의 거의 두 배에 달합니다. 기독교가 득세하고 불교는 위축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리더’에 있다고 봅니다. 불행하게도 한국불교에는 리더가 없습니다. 조폭과 같은 보스형 리더는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리더는 부재합니다. 자승종권 8년이 그렇습니다.

최고경영자의 자질과 역량에 따라 회사의 흥망성쇠가 좌우 됩니다. 아무리 자본이 많고 기술력이 뛰어나고 마케팅 능력이 있다고 해도 능력 없는 자가 CEO로 앉아 있다면 도산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최고경영자의 경쟁력이 조직의 경쟁력입니다. 누군가 회사를 고른다면 다른 것 보다 CEO의 자질과 역량을 보고 골라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 정권은 작년 촛불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국민들이 끌어 내린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가 망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나라가 망하는 길로 간다며 가만히 있지 않은 것입니다. 국민들은 무능한 대통령을 끌어내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믿고 맡길 수 있는 대통령을 새로 뽑았습니다.

조직과 단체는 리더에 달려 있습니다. 회사에서 최고경영자의 자질이 회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 능력이 국운을 좌우합니다. 이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불교는 능력 있는 리더를 갖지 못했습니다.

불자 3백만 감소는 리더의 문제라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환경요인도 있었겠지만, ‘부적격자’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자리에 앉아 있었던 영향이 큽니다. 그것도 8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에 불교인들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8.17 촛불법회에서 삼귀의 하는 불자들. 사진=진흙속의연꽃.

매주 목요일 저녁

매주 목요일 촛불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네 번째 촛불이 8월 17일 보신각 광장에서 켜졌습니다. 요즘은 양초촛불이 아니라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촛불입니다. 매주 목요일 밤은 불자들의 축제날입니다. 불자들이 엄청 나게 많이 왔습니다. 천명이 넘은 것 같습니다. 교계신문에서는 약 천이백명 가량이라 합니다. 보신각 앞 광장이 꽉 들어 찰 정도이었습니다. 최근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근래 처음 있는 일입니다.

촛불법회 현장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6시 반에 열리는데 사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로 자발적 봉사자들입니다. 먼저 와서 자리부터 깝니다. 비닐로 된 자리입니다. 그런데 매주 촛불이 열리다 보니 자발적 참여자들은 자리를 가지고 옵니다. 야외에서 사용되는 매트를 가져 오는 것입니다.

8.17 촛불법회에 나타난 일인용 방석매트 판매자. 사진=진흙속의연꽃.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트장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매트 한 장에 천원합니다. 작은 등산용 매트입니다. 지난 3차 촛불 때는 백장 팔았다고 합니다. 매트를 파는 분에 따르면 기독교 집회에서는 사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불교집회에서는 많이 사주는 편이라 합니다.

이게 언론이냐

처음 촛불법회가 열렸을 때는 오백명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칠백명, 세 번째는 천명, 네 번째는 천이백명 가량 되었습니다. 가면 갈수록 증가 추세에 있습니다. 매번 촛불에 참가하고 있는 입장에서 놀라운 일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전혀 상상을 못했습니다. 마치 작년 촛불의 열기를 연상케 합니다. 하지만 조계종 기관지 불교신문과 여당지 평가를 받는 법보신문은 이를 폄하하려 나선 듯 합니다.

총무원장이 사장이나 다름없는 불교신문 보도에는 왜곡이 많습니다. 법회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본질은 제쳐둔 채 주변 이야기만 보도합니다. 왜 촛불을 들게 되었는지, 촛불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보도했던 부정적인 이야기를 재탕, 삼탕하는 식입니다. ‘이게 언론이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8.17 촛불법회에 참석한 스님들과 불자들. 사진=진흙속의연꽃.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들 합니다. 어느 조직이나 단체는 리더의 수준을 넘을 수 없습니다. 리더의 수준이 곧 조직이나 단체의 수준이라 보면 틀림없습니다.

불교신문의 경우 자승 총무원장이 발행인입니다. 최근 자승원장이 새로운 사장을 임명했습니다만, 그 또한 자승 원장의 의중이 그대로 실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신문에서 자승원장의 수준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불교신문은 언론이라기보다는 언론기능을 갖고 있는 하나의 이익단체 같습니다.

팔정도에 '정어'가 있습니다. 정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욕지거리를 하지 않고, 꾸며대는 말을 하지 않는다.”(S45.8)입니다. 저는 불교신문과 법보신문이 ‘정어’의 가르침을 어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고 당당히 이야기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교가 좋아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불교보다 더 좋은 가르침이 있다면 당장 그곳으로 옮길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부처님 가르침처럼 훌륭한 가르침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불교를 믿는 이유입니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나옵니다. 부처님 가르침이 훌륭하기 때문에 부처님 같은 제자가 많이 출현합니다. 부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조직이나 단체의 리더가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구성원들 역시 그 모습을 닮아 갈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을 불교신문, 법보신문에서 발견합니다.

8.17 촛불법회에서 촛불을 밝힌 불교인들. 사진=진흙속의연꽃.

천명 단위로 불어나자

갈수록 촛불이 커져 가고 있습니다. 은인자중하던 스님들과 불자들이 하나 둘 광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무관심과 두려움과 기득권으로 침묵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한국불교가 망해 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이라 봅니다.

이제 촛불은 광장이 꽉 찰 정도로 커졌습니다. 회가 거듭될수록 규모는 커지고 있습니다. 이와 비례하여 불교신문과 법보신문의 기사를 보면 왜곡의 강도가 더해 갑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처음 모임을 가졌을 때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천명 단위로 불어나자 위기를 느낀 것 같습니다.

매번 촛불은 감동을 줍니다. ‘난세에 영웅난다’는 말이 있듯이 단상에 오른 사람들의 연설을 들어 보면 확실히 ‘불교인재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갑니다. 이는 현장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공허한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현실의 삶에 부딪친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 했을 때 공감했습니다. 특히 용주사 비대위의 지난 2년 간 활동은 눈물겨웠습니다. 불교신문과 법보신문은 이런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실어야 할 것입니다.

8.17 촛불법회에서 연설하는 용주사비대위 불자들. 사진=진흙속의연꽃.

“적폐청산” “자승퇴진”

촛불법회의 하이라이트는 촛불행진입니다. 이번 8.17 목요촛불의 경우 행진코스는 예전과 달리 종로구청길입니다. 보신각광장을 출발하여 종로구청길로 해서 조계사길 북단, 그리고 조계사길을 따라 원래 있던 위치까지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8.17 촛불법회 촛불행진코스. 사진=진흙속의연꽃.

불자들의 긴 촛불행렬이 이어졌습니다. 목요일 저녁 8시부터 시작된 행진은 약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불자들은 “적폐청산” “자승퇴진”을 외쳤습니다. 오늘날 한국불교가 망가진 원인을 리더십 문제로 본 것입니다. 오로지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반승반속의 무리들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8.17 촛불법회에서 촛불행진하는 불자들. 사진=진흙속의연꽃.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늘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갑니다. 부처님 원음인 빠알리니까야 어디를 열어 보아도 주옥 같은 말씀입니다. 그 중 상윳따니까야 ‘꽃의 경(S22.95)’이 있습니다. 경에서 부처님은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S22.95) 라 했습니다.

세상의 누구와도 싸우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이 싸움을 걸어 올 뿐입니다. 그것은 바른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름 아닌 진리를 설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자들이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오늘날 반승반속의 무리들입니다. 또 반승반승의 무리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들입니다.

입이 있어도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침묵은 똥입니다. 묵언수행을 하지 않는 한, 명상주제를 들고 있지 않는 한 할 말은 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세상에서 현자들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것은 나도 그것을 ‘아니다’라고 한다.” (S22.95) 라 했습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침묵한다면 똥입니다. 똥 같은 침묵은 게으르고 무능하고 무관심한 자들에 해당됩니다. 침묵하는 자들은 두려운 자들입니다. 자신의 작은 이익이 침해 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쥐꼬리 만한 이익이나 지위를 유지하고자 침묵하는 것입니다.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8.17 촛불법회 참가불자들. 사진=진흙속의연꽃.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보살들

시대는 실천하는 자를 요청합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지행합일의 행자입니다. 교학과 교리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닌 늘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반승반속의 무리들에 의해 불교가 쇠망하는 것을 더 이상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가르침을 따르는 자라면 당연히 할 말을 해야 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매주 목요일 촛불을 드는 불자들이야말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보살들입니다. 그런데 보살은 세상에 살아도 세상에 물들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다할 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청련화, 홍련화, 백련화가
물속에서 생겨나
물속에서 자라
물위로 솟아올라
물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여래는
세상에서 성장했으나
세상을 극복하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고 지낸다.” (S2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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