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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궤도 수정을 요청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7/09/11 11:30
  • 수정일
    2017/09/11 11: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민웅의 인문정신] 얻은 것은 없고 잃은 것만 있다면?
2017.09.11 09:15:12

 

 

 

전선(戰線)을 추가 확대한 오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위기 해법이 수렁에 빠졌다. 북의 핵무장 대응에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배치를 결정했으나 그것이 핵무장을 저지하거나 평화로 가는 길을 확대할 수 있을까? 물론, 행동반경이 극도로 제약된 조건 속에서 깊은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드 배치는 전쟁에 대한 억지력 강화도 아니고 평화를 기대하게 하는 방식도 아님은 분명하다. 둘 중에 하나라도 된다면 혹 모르겠다. 하지만 잃은 것만 있고 얻은 것이 없다면 그것은 조속히 궤도 수정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국내적으로는 지지기반에 균열이 생기고 소성리 현장의 분노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이에 더하여 상호 파멸적인 전술핵 도입과 핵무장까지 거론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의 무기 구매 부담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중국의 반격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일본은 한-일관계의 역사적 사안에 대한 논란에서 빠져나와 미국을 대리하여 한-일 협력이라는 틀 아래 한반도 위기 관리자로 행세하려는 움직임이다. 러시아는 대북 압박 정책의 동반자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의 외교적 체면이 깎이고 말았다. 이 가운데에서 문재인 정부가 원했던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사드 배치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남쪽이 미국의 대 중국 미사일 시스템에 편입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사드 개발이 미국의 미사일 시스템의 핵심요소라는 것은 공식적인 사실이며 이로써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는 미국과 중국 간 대치전선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북한의 핵무장 체제 억지나 해체 내지 대응효과에도 가치가 없고 한반도 위기의 평화적 해결에도 기여하지 못하는 사드 체제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은 기존의 대북 전선에 남쪽 지역의 전선이 추가되어 2중 전선이 형성되고 만 것이다.  
 
전선의 추가와 확대가 뜻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평화보다는 전쟁의 가능성이 보다 높아진 것이 사드배치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드배치 결정은 위기의 평화적 해법을 위한 영토를 축소시켜버린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토록 우려가 깊은 것이다. 사드배치와 함께 수조원대의 이른바 첨단무기 구입이 예정되어 있다는 점은 이를 말해준다. 이와 같은 미국의 무기시장 확대는 이 지역의 군사적 긴장유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구조적 요인이 된다. 평화는 미국의 군산복합체에게 적이다. 평화로 가는 길에 장애요인이 더욱 두터워지게 되는 것이다.  
 
압박받은 당사자는 북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아닌가? 
 
결국 정작 사방에서 압박을 받게 된 것은 북이 아니라 우리다. 미국으로부터 가해지는 사드 배치와 무기구입 압박, 중국의 경제 압박, 북한의 핵무장 압박, 대북 대응을 내세운 일본의 고압적 자세와 군사대국화 가속, 북을 통과하는 러시아와의 북방경제협력체제 난망이라는 사태는 그야말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이는 대북 전략에서 핵심적 판단이 되어야 할 북한의 논법과 태세에 대한 이해가 분명치 않고, 국제협력체제 구성에서 요구되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정세의 본질과 우리의 해법이 주도할 수 있는 지점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이다. 관점과 예측에 오류가 있으면, 즉각 수정하는 것이 답이다. 
 
북에 대한 국제적 제재와 군사적 압박은 통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그러한 방식은 도리어 북의 위기의식을 높여 핵무장의 정당방위적 절실성을 확신하는 쪽으로 몰아갔다. 지난 시기의 과정이 이를 입증해준다. 비핵화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핵무장의 문이 열린 것은 그 사이에 평화적 해법에 기대를 걸어도 통하지 않았던 상황이 존재한 결과다. 미국에게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화를 계속 요구했던 것은 북이었고, 이를 거부하고 군사적 소멸 대상으로 북을 대했던 것은 미국이라는 사실은 북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그 반대가 아니었다. 
 
가령 2000년 클린턴 정부 당시 북의 2인자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잇따른 올브라이트의 방북, 그리고 북미 공동선언은 그간의 꾸준한 대화노력으로 북한과 미국 사이의 수교 직전의 상황을 뜻했다. 하지만 이는 이후 들어선 부시정부에 의해 좌절된다. 수교논의의 대상이었던 북은 그간 미국과 진지하게 서로 오갔던 이야기와는 달리, 졸지에 미국에 의해 박멸되어야 할 악의 축이 되고 만다. 그 충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을 것이다. 
 
북의 의도와 관련해 던져야 할 질문 
 
이런 식으로 적대적 군사정책 앞에 놓인 국가가 평화적 대화의 가능성이 봉쇄되어 있다고 여긴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압박에 굴복을 하거나, 이에 끝까지 저항하면서 자기 방식으로 생존의 길을 확보하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미국은 전자를 원했고, 북은 후자를 택했다. 북한의 핵무장이 가진 본질은 여기에 있다. 당연히 이는 핵무장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것과는 별도의 분석이다. 이때 현실적으로 필요한 질문은 북이 미국과 적대적 관계를 끝까지 불사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수교를 통한 관계 정상화가 최종 목적인가 하는 것이다.  
 
북의 행태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판단요소가 있다. 체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고,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막강한 자위력이 부재할 경우 미국이 적으로 지목했을 때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이라크의 후세인과 리비아의 가다피가 이미 잘 보여준 역사적 사례가 있다. 미국은 이렇게 끝날래, 아니면 말 들을래?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저렇게 되지 않으려면 자기 방어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그런 점을 고려하자면, 점령정책과 함께 정권교체(regime change)와 참수작전(decapitation operation)까지 준비되어 있는 미국의 전략지침이 수시로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결정적 비중을 가진 자기방어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핵무장 해체를 일방적으로 요구한다고 해서 상대가 이를 받아들일까? 더군다나 북한과 미국의 수교를 좌절시킨 아들 부시 이후 미국의 핵 태세(nuclear posture)의 기본전략은 "핵 선제공격(nuclear pre-emptive strategy)"이며 참수작전은 상대방 지휘부에 대한 핵공격과 지도부 제거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은 어떤 선택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체제의 생존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그 어떤 체제도 예외 없이 절대적인 요구다. 상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체제보장과 자신이 주도권을 그마나 놓치지 않고 잡고 있는 방식 가운데 어느 쪽이 지속가능하고 유리한 방식인지는 자명하다. 우리의 대북정책과 한반도 해법의 출발점은 이와 같은 북의 인식과 관점, 태세를 이해하는 작업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제 아무리 강력한 압박과 제재라고 할지라도 체제의 생존을 내어주는 방식은 항복하기 이전에는 결코 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호 위협요소의 동시소멸과 평화보장의 구조 확보  
 
해법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무장은 남쪽의 군사력 강화에 대한 대응이 아니다. 미국의 대북 정책에 대한 대응이다. 핵과 미사일 실험의 실제적 방향이 미국을 향한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당연히 핵무장과 이에 기초한 전략은 해체되어야 한다. 결국 상호 위협이 될 조건을 함께 소멸시키면서 평화와 수교를 위한 대화로 가는 길을 여는 것 외에는 없다. 이에 주저하거나 이를 가로막으려는 행위는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는 책동에 말려들거나 그 책동 자체일 수밖에 없다. 북의 편인가, 남의 편인가, 아니면 미국이나 중국 편인가 하는 논란은 위기의 본질에 다가서는 노력을 가로막을 뿐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는 남과 북 우리 민족 전체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대규모 한·미 연합훈련을 동시에 중단하는 쌍중단 (雙中斷)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체제 협상을 병행 추진하는 것을 뜻하는 쌍궤병행(雙軌竝行)은 중국의 시진핑만의 제안이 아니다. 최종 목적지는 북한과 미국의 수교다. 동북  아시아의 적대구조는 이로써 사라진다. 문재인 정부로서도 충분히 주도할 수 있는 대안이다. 상대에게만 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다. 게다가 대화는 조건이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조건을 만들기 위한 돌파형 대화도 있는 법이다. 
 
상대가 위협하면 이쪽도 위협수단을 추가로 갖추어 폭력의 상승과정(escalation of violence)을 밀고 나가면 긴장이 최고도에 달한 어느 지점에서 멈추고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벼랑 끝 치킨 게임은 우발적 요소가 가세할 경우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어리석은 선택이다.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위험요소를 하나하나 관리하면서 상호 합의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적대적 관계를 정상화하는 절차에 가장 필요한 방식이다. 
 
평화협정과 북한-미국 수교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은 우리에게 절체절명의 평화정책이다. 이런 목표와 의지가 분명할 때 남북대화도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 평화협정 논의 시 북이 제기할 미군철수 문제는 과거에도 이미 남북이 나눈 구상대로 미국의 지위와 역할 변경을 통해 풀어갈 여지가 충분한 사안이다.  
 
문재인 정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 그런 차원에서 촛불시민혁명의 성과 위에 서 있는 정부로서 이번 선택의 불가피성을 고뇌스럽게 토로한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지지자들이 비판을 자제하고 그 고충을 이해하는 가운데 방향 전환을 기대하고 있는 까닭도 문재인 정부를 통한 역사의 전환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정책 변화를 위한 제언 
 
세 가지 제언을 한다. 
 
첫째, 이번 결정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설명의 의무가 부족했다. 따라서 깊은 논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공개하면서 할 수 없는 사안이겠으나 민족의 운명이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시민사회 각계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듣고 정책의 역량으로 바꾸어낼 수 있는 장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그에 더하여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이들의 견해를 듣는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 역대 통일부 장관들의 전문가적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상황이 이전과는 달라졌기에 과거의 논리와 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일도 역사적 과정 위에 있다. 단절된 경험과 인식은 위태롭다. 아마추어리즘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와 한반도 문제의 해법에 관련된 본질적 원리는 한국 전쟁 이후 달라진 바가 없다. 남쪽이 함께 하는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미국 관계의 정상화가 그 초점이다. 남북 대화를 직접 담당해온 역대 통일원 장관들의 경험과 고견은 오늘의 정세를 풀어 가는데 긴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셋째, 북이 핵무장하고 있는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는 기조를 바꾸어야 한다.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대화가 절실한 국면이다. 대화의 의의는 여기에 있다. 이를 부정하는 순간, 군사적 대응의 길만 열린다. 그러다가 대화로 돌아오기에는 매우 먼 길에 가 있을 수 있다.  대화 제의를 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멈추거나 지레 포기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특사, 밀사, 비밀협상 등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고 많다. 민족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 주변 강대국들과의 외교와 설득은 이런 토대 위에 있을 때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고래 싸움에 괜하게 휘말리지 말고, 더욱 강력한 물리적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끌려가지 말며 인내와 지혜로 차분하게 대응할 일이다. 우선, 사드 4기는 현장에 옮겼으니 더 이상의 조처는 그걸로 멈추고 사드 배치의 구체적 절차는 동작 중지해야 옳다. 명분과 논리는 간단하다. 한반도 평화 구상에 대한 새로운 기조 마련을 한 이후에 배치 여부를 확정하는 순서를 밝겠다고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임시배치라고 했으니 이런 결정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사드 배치는 감당할 수 없는 갖가지 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잘못된 궤도 수정은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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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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