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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위로 올린 피켓…“말보다는 행동이다”

한국불교 개혁의 마중물이 되고자 일상을 바친 이들이 있다. 오늘도 조계사 앞에서 피켓을 든다. 일군 성과가 자못 대단하다. 무관심과 냉소로 일관하던 조계사 신도, 불자, 일반 시민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7주째 이어온 촛불법회, 범불교도대회 또한 이들이 없었다면 요원했을 일이다. 하루하루 봉사로 개혁을 일구고 있는 불자들을 차례로 만나보았다. <편집자 주>

[릴레이 인터뷰 ①] 김병관
  • 김정현 기자
  • 승인 2017.09.18 07:27
  • 댓글 3

“사진기 들이대니까 어색해”

턱 밑 수염이 마스코트인 김병관(58) 씨가 “허허” 웃었다. 80여 일 가까이 조계사 앞 시위를 이어오며 기자를 만난 게 한두 번이 아닐 텐데, 사진기 앞에서면 여전히 멋쩍은 모양이다.

겉모습에서 풍기는 인상이 그렇듯 김 씨는 전형적인 ‘산 사람’이다. 산이 좋아 산 근처에 집을 마련한 것도 모자라 시간이 날 때면 지인들과 산을 찾는 그가 요즘은 산 대신 도심 한복판 사찰 앞 도로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12일 조계사 앞에서 그를 만났다.

조계사 앞에서 80여 일째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김병관 씨.

100일 기도의 마음으로

김 씨가 조계종 적폐청산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지난 7월. “명진스님 승적박탈 소식을 늦게 접했다”고 밝힌 그는 ‘100일 기도’의 마음으로 조계사를 찾았다.

“올해 초에 그렇게(제적) 되셨는데 난 늦게 알았어. 내가 전기도 안통하고 전화도 잘 안 터지는 산 속에 사니까 소식을 잘 모르잖아. 그러다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수원에서 명진스님 법회가 있다고 하더라고. 경기문화원에서 한다고 했다가 문 잠가서 노상에서 한 법회 있잖아. 명진스님 법문을 들은 건 그때가 처음인데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100일 정도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내려왔지.”

머리위로 올린 피켓…“행동으로 보여주겠다”

조계사 앞에 가만히 서서 피켓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 머리 위로 피켓을 들고 횡단보도를 오가며 적극 시위에 나섰다. 인사동 번화가를 가로지르며 적폐청산을 위한 관심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하면 오래 못한다”고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며 고집을 이어갔다. 수일 넘게 지속된 그의 적극성은 조계사 앞 집회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 처음에는 내부에서도 ‘저렇게 해서 하루 이틀 가겠나’ 싶었나봐. 내가 계속 머리위로 피켓을 들고 움직이니까 나중에는 허정스님하고 대안스님이 교대로 찾아와서 밥을 사주겠다고 해요.(웃음) 그렇게 마음이 모이면서 (조계사 앞 집회가) 더 활기를 띤 것 같아. 나 평소에는 허허실실이에요. 근데 이건 지금 투쟁이잖아. 원칙대로 제대로 하려고 하지. 처음에는 내가 유별나 보였는지 불편하게 생각한 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러다 사람들이 다시 붙어서 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우리의 활동이) 자리를 잡았지요.”

조계사 앞에 가만히 서서 피켓에 몸을 기대고 서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그는 성에 차지 않았다. 머리 위로 피켓을 올렸다.

명진스님과의 인연…그리고 도법스님

김병관 씨와 명진스님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명진스님이 봉은사에서 ‘한국불교 중흥과 봉은사 발전을 위한 1,000일 기도’를 할 때, 김 씨는 지리산과 북한산에서 케이블카 1,000일 반대운동을 펼쳤다. 명진스님이 이명박 정권에 의해 ‘좌파스님’으로 낙인찍혀 봉은사에서 쫓겨났다면, 김 씨는 이명박 정권의 케이블카 정책에 맞서 산꼭대기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봉은사에서 나온 명진스님은 희양산 봉암사를 비롯해 월악산 보광암 등 깊은 산중 절을 오가며 수행에 진력했고, 아버님의 병환으로 환경운동을 잠시 접은 김 씨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산을 오르며 심신을 달랬다.

“처음에는 명진스님을 잘 몰랐어요. ‘아 그런 스님이 있구나’ 정도였지. 그런데 스님이 산을 좋아하시더라고. 산 좋아하는 사람들과 인연 맺다가 우연히 만나게 됐어. 스님께 좋은 말씀 많이 들으면서 ‘나한테도 불심은 있구나’ 생각했어요.”

김 씨는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과도 인연이 있다. 과거 지리산에서 케이블카 반대 운동을 할 당시, ‘지리산 삼총사’라 불리던 수경ㆍ도법ㆍ연관스님 등이 “지리산 지킴이 역할을 자처해 주어 고맙다”며 찾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는 게 김 씨의 이야기다.

“그때도 도법스님은 ‘걷기’를 이야기했어요. 그때는 ‘만인걷기’였던 것으로 기억해. 나보고 단장을 한번 맡아보라고 제안하시더라고. 그때 그 제안을 수락했으면 지금 노상이 아니라 저기(조계종 청사) 안에 스님이랑 같이 있었을까? (웃음)”

도법스님과의 인연을 털어놓은 김 씨는 “여기서 시위 하면서 도법스님과 두 차례 정도 마주쳤다. 말씀 좀 나누자고 다가갔는데 못들은 채 지나가시더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힘든 투쟁…“나는 겨울에 더 강하다”

“지금 산에 들어가면 송이버섯하고 능이버섯이 천지야.” 

장기화된 활동에 “지친 것 또한 사실”이라고 밝힌 김 씨는 “산에 들어가 버섯이나 캐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라며 웃었다. “그럼 (시위 등의 활동을) 언제까지 하실 계획이냐”고 묻는 기자의 말에 장난기를 걷어낸 그는 “결국 책임감과 사명의 문제”라고 답했다. “사실 기간은 중요하지 않다”면서 “겨울활동이 진짜 내 전문”이라고 너스레 떠는 김 씨의 표정 뒤로 한국불교 개혁을 위한 강한의지를 엿본다.

“내가 또 겨울에 더 강하거든. 북한산에서 수년을 버텼잖아. 겨울에 이런 식으로 서있으면 발이 문제에요 발이. 이럴 때는 또 나만의 팁이 여럿 있지. 그게 뭐냐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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