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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배상금 총액 박정희>전두환>이승만 순

박정희 정권 국가폭력 등 배상이 절반 차지

[단독] MB 정부 국가배상 원인 분석① 이승만-박정희-전두환 합쳐 87%

12.10.31 09:11l최종 업데이트 12.10.31 09:42l
이병한(han)

 

 

ⓒ 봉주영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약 5년간 실제로 지급된 5천만 원 이상 국가배상금(총 2502억2493만 원) 중 절반에 가까운 48.9%(1222억9973만4000원)가 민청학련 사건 등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사건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전두환 정권 때 발생한 사건으로 지급된 국가배상금이 23.8%(595억2805만8000원)로 뒤를 이었으며, 이승만 정권 때가 14.2%(354억9831만7000원)로 3위였다. 이 세 정권을 합치면 무려 86.9%에 달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10월 초 전해철 민주통합당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2008년 이후 국가배상지급 현황' 자료를 토대로 <오마이뉴스>가 대법원 도서관에서 판결문을 열람하고, 인터넷 판결문 신청을 통해 받은 개별 판결문을 낱낱이 확인해본 결과 드러났다.

사건별로 살펴보면 민청학련 사건 국가배상 금액이 632억4950만 원으로 1위를 기록했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497억2296만6000원으로 2위를 기록했다. 두 사건 모두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났다. 이 두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금 합계만 1129억7246만6000원으로 전체의 45.1%에 달한다. 이승만 정권 때 들어섰던 주한미군 오산비행장의 전투기 소음 피해 국가배상(3위)과 오송회 사건과 아람회 사건 등 전두환 정권 시절의 각종 간첩 및 반국가단체 조작 사건(4~7위)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런 결과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자행됐던 국가폭력 및 인권유린 범죄 행위가 단지 그 당시뿐 아니라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후유증으로 남아 후대 국민에 부담을 지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5년간 집행된 5천만원 이상 국가배상 179건 판결문 확인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는 현 정부 들어(2008년 이후) 집행된 국가배상금 중 5천만 원 이상 현황 179건이다. 이는 같은 기간동안 집행된 전체 국가배상 금액의 약 96.4%, 건수의 약 10.5%에 달한다. 즉, 이번 분석에 포함되지 않은 국가배상은 건수는 많지만 금액은 매우 작은 소액 사건들이다.

179건을 원인사건이 일어난 정권별로 살펴보면, 박정희 정권이 총 26건(14.5%)에 1222억9973만4000원(48.9%)으로 나타냈다. 위에서 밝힌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재건위 사건 외에도 어로저지선을 월선했던 어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사건 등 각종 가혹행위를 통해 국보법과 반공법 위반 사범을 만들어냈던 사건이 대부분이다.

전두환 정권은 총 20건(11.2%)에 595억2805만8000원(23.8%)으로 배상금액 2위를 기록했다. 박 정권과 마찬가지로 전 정권 때의 국가배상도 오송회, 아람회, 1차 진도 간첩단 사건 등 간첩조작 사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때의 판결문에는 고문 경찰인 이근안씨의 이름도 등장한다.

총 21건(11.7%) 354억9831만7000원(14.2%)으로 배상금액 3위를 기록한 이승만 정권에서는 주로 주한미군 전투기 소음 피해 사건이다. 주한미군 소음 피해 사건의 경우,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소송이 제기되기 시작했지만, 주한미군 부대가 들어선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소음이 발생해왔다는 점에서 원인년도를 이승만 정권으로 분류했다. 이외에도 조봉암 사건이나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포함되어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권 20년 동안 일어난 사건으로 국가배상이 이루어진 경우는 총 112건으로 전체의 62.6%에 달했지만, 금액으로 보면 전체의 13.1%(328억9882만1000원)에 그쳤다. 원인사건이 노태우 정권인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김영삼 정권 이후부터는 국가의 조직적인 가혹행위로 인한 조작 및 은폐로 국가배상이 이루어진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영삼 정권 때 발생한 군대 선임병에 의한 구타 사망 사고에 대해 국가배상이 이루어진 이후 정권마다 꾸준히 군대 내 가혹행위 사건 배상이 이루어졌다. 김대중 정권 때는 주한미군기지 기름 유출에 따른 토지오염 사건과 감금 윤락녀의 화재 사망 사건에 대한 국가배상이 특징적이다.

노무현 정권 때 일어난 사건은 부동산 관련 소송이 제일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교도소 내 사건, 세무사 시험 문제지 인쇄 오류 사건, 과잉진압에 의한 시위 참가자 사망 사건, 북 귀순자의 신분 노출 등 매우 다양했다. 이명박 정권 역시 부동산 관련 사건이 많았고, 경찰관이 총기를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고 자살한 사건이나 경찰이 출동한 상태에서 살인 사건, 경찰수사관의 가혹행위 등 경찰 관련 사건이 눈에 띄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국가배상제도가 현실화되고 꾸준히 국가배상이 이루어졌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국가폭력 사건으로 인한 국가배상 규모는 이번 분석 결과보다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2003년 8월 법원은 일명 '수지 김 사건'(전두환 정권 구 안기부에 의한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해 국가 등이 4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는데, 이 금액은 2008년 이전 집행이 이루어져 이번 분석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후대에 부담을 지우는 국가폭력 범죄

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전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국가배상이 이루어진 것은 이명박 정부와는 전혀 무관하게 사법부가 개인의 인권에 대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라며 "그 이면에는 사법부가 과거 정권에 시달리고 저항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 배경"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법원의 판결이 아니라 법률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북파 공작원에 대한 배상금 규모도 몇 천억대"라면서 "지금까지는 시효문제로 인해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전쟁 시기 군경에 의한 민간인 학살도 법원이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건별 국가배상액 상위 30
(단위 : 천원)

순번 원인 사건 원인 사건 정부 배상액
1 민청학련 사건 박정희 정부 63,249,500
2 인혁당 재건위 사건 박정희 정부 49,722,966
3 주한미군 오산비행장 전투기 소음 피해 사건 이승만 정부 24,989,102
4 오송회 사건 전두환 정부 16,975,078
5 간첩 조작 사건 전두환 정부 14,587,787
6 아람회 사건 전두환 정부 8,734,383
7 1차 진도 간첩단 사건 전두환 정부 7,169,898
8 주한미군 군산비행장 전투기 소음 피해 사건 이승만 정부 7,071,236
9 공탁금 처리 부주의 노무현 정부 5,270,851
10 국보법·반공법 등 위반 조작 사건 박정희 정부 4,868,057
11 용산 주한미군기지 기름 유출로 녹사평역 주변 오염 사건 김대중 정부 4,500,771
12 간첩 조작 사건 전두환 정부 3,915,924
13 어로저지선 월선 사건 박정희 정부 2,569,191
14 부동산 관련 김영삼 정부 2,535,957
15 부동산 세금 관련 노무현 정부 2,417,500
16 계엄사령부에 의한 재산 강탈 사건 전두환 정부 2,315,123
17 간첩 조작 사건(이근안) 전두환 정부 1,885,685
18 간첩 조작 사건 전두환 정부 1,761,358
19 매향리사격장 소음 피해 사건 이승만 정부 1,749,075
20 부동산 등기 관련 노무현 정부 1,132,155
21 국보법·반공법 등 위반 조작 사건 전두환 정부 1,003,287
22 조봉암 사건 이승만 정부 810,000
23 부동산 등기 관련 이명박 정부 802,357
24 부동산 등기 관련 노무현 정부 688,421
25 교도소 혼거수용자에 의한 살인미수 사건 노무현 정부 681,938
26 간첩 조작 사건 전두환 정부 675,890
27 부동산 등기 관련 노무현 정부 664,578
28 국보법·반공법 등 위반 조작 사건 박정희 정부 642,386
29 군산 주한미군기지 주변 기름 오염 사건 노무현 정부 633,621
30 부동산 경매 관련 노무현 정부 588,220

[국가배상이란?] 매년 국가 상대 소송 1만건대

ⓒ 이은영

국가배상이란, 한 마디로 국가나 지방정부가 잘못했을 경우 피해 국민에게 배상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공무원·군인의 직무상 불법행위 ▲공공시설물의 설치·관리의 잘못 ▲주한미군의 불법행위나 미 군용차량 등에 의해 신체상, 재산상 손해를 입었을 때가 해당된다.

물론 그런 일이 되도록 없어야겠지만, 공무원도 사람인지라 오류가 없을 수 없다. 이럴 경우에는 당연히 시시비비를 가려 피해자에게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국가배상이 없다는 것은 국가가 완벽한 상태라기보다는 오히려 국가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데 매우 인색한 권위주의적 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민의 입장에서 국가배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은 전체 건수가 아니라 개별 사건의 성격이 더욱 중요하다. 무슨 일로 배상이 이루어졌느냐다. 이번 기획은 그 첫 시도이다.

과거 국가배상을 받기 위해서는 법무부 또는 국방부 산하 배상심의회에 신청을 했으나, 2001년 이후 여기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낼 수 있게 되면서 소송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법무부가 발표한 '국가소송통계'를 보면 국가가 원고 또는 피고인 국가소송 사건수는 2002년 7391건에서 2008년 1만1667건을 정점으로 지난해까지 꾸준히 매년 1만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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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경영기획실장, 100억대 회사돈 횡령 후 중국으로 도주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0/31 08:43
  • 수정일
    2012/10/31 08:4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경영악화에 거액 횡령사건…울고싶은 ‘TV조선’
 
TV조선 경영기획실장, 100억대 회사돈 횡령 후 중국으로 도주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0-31 00:29:17 | 최종:2012-10-31 00:48: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조선일보사의 종편 채널인 <TV조선> 경영부문의 고위간부가 100억 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후 중국으로 도주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언론계 안팎에 파문이 일고 있다. <TV조선>은 시청률 부진과 경영악화에 이어 이번에 거액횡령사건까지 터져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

30일자 <미디어스>의 보도에 따르면, <조선일보> 회계팀장 출신으로 최근까지 <TV조선> 경영기획실장으로 재직했던 이 아무개 씨는 <TV조선>이 개국한 이후 최근까지 회사 자금 100억 여 원을 몰래 빼내 선물옵션 등 주식투자를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TV조선> 사옥 전경

 

이같은 사실은 증권가 정보지 등을 통해서 처음 알려졌는데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다가 이날 <미디어스> 취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TV조선>측은 이 아무개 실장을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이 실장의 신원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미디어스>와의 통화에서 “이 실장이 회사돈으로 주식투자를 했고, 발각되자 중국으로 간 것은 맞다”며 “100억원에 이른다고 하는데 정확한 횡령 규모나 자세한 횡령 방법 등은 더 확인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아무개 씨는 <조선일보> 회계팀장을 지내다 지난 2011년 2월 <TV조선> 경영지원실장으로 임명됐는데 <TV조선> 개국 멤버로 개국 이전부터 <TV조선>의 회계를 총괄했던 인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의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회장의 돈을 그대로 빼돌린 사건으로 내부적 충격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고 <미디어스>는 전했다.

이날 <TV조선> 간부의 거액 횡령사건 소식이 알려진 이후 조선일보사의 상장사인 <디지틀조선>의 주가는 폭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작년 12월 1일 개국한 종편은 어느 회사 할 것 없이 모두 경영성과와 시청률 측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TV조선>의 경우 거액을 들여 야심작으로 ‘한반도’를 방영했으나 흥행이나 수입 측면에서 모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종편사들은 아직도 시청률이 ‘0%대’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일 기준 AGB닐슨의 자료(전국 유료방송가구)를 종합한 결과 종편 4사의 10월 시청률은 <채널A> 0.72%, <JTBC> 0.53%, <MBN> 0.89%, <TV조선> 0.48%을 기록했다.

게다가 종편사의 보수적인 정치색과 프로그램의 타깃층이 중장년층이어서 시청자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10월 시청률을 기준으로 20~49세 시청자의 시청률을 분석한 결과 <채널A> 0.18%, <JTBC> 0.15%, <MBN> 0.16%, <TV조선> 0.09%로 나타났다.

종편의 이같은 ‘노화’는 광고 유치에도 치명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24일자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주 시청자가 50대 이상인 종편에 관심을 가지는 광고주는 보험, 제약회사 등이 될 것”이라며 “10, 20대를 포섭하지 못한 종편이 자연스레 ‘그레이 채널’인 미국의 지상파 방송과 비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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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언론이 박근혜를 부르는 말 '독재자의 딸'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부르는 호칭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 박근혜 등의 호칭이 제일 많이 쓰였습니다. 사실 요새처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정해지기 전까지는 박근혜 의원이라 불리는 것이 맞는듯 하지만 국내언론은 대부분 그녀를 새누리당의 대표보다 더 높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불렀습니다.

가끔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은 박근혜 후보를 아직도 새누리당 대표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후보 중 가장 유리한 여당의 후보로, 보수우익의 고정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박근혜 후보를 해외 언론은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을까요?

 

 

▲ CNN 박근혜 후보 관련 기사, 출처:CNN 홈페이지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서 승리하고 대통령 후보로 당선되자, 해외 언론들은 일제히 그녀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해외언론이 일제히 그녀를 보도하면서 빠지지 않고 그녀에 관한 얘기를 했던 부분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여성이라는 점, 또 하나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 BBC 박근혜 후보 관련 기사, 출처:BBC 홈페이지

 

공영방송으로 유명한 BBC의 경우는 박근혜 후보의 여성이라는 점보다 박근혜 후보가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가 대한민국을 어떻게 통치하고, 어떻게 죽었는지 또한 상세히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가디언지 박근혜 후보 관련 기사, 출처:가디언 홈페이지

 


30년 전에 암살된 전 독재자의 딸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 모습은 해외언론에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외언론의 입장에서는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모습은 해외토픽감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언론은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으로 이미 그녀 정체성의 출발을 비민주주의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러나 한국언론은 박근혜 후보를 결코 '독재자의 딸'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 보수언론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녀가 가진 무기이자 장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생각이 장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녀가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합니다.

 

 

▲1998년4월2일 박근혜 후보가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에 당선되자 지지자들과 손을 들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박근혜 후보는 1998년 제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전에는 육영재단이나, 정수장학회,영남대학교 이사장직 등 박정희가 남긴 유산에 연루된 재단에 있다가 실질적인 정치의 길은 1998년에 시작한 것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어떻게 국회의원에 당선됐을까요?

 

 

▲박근혜 후보 국회의원 당선자 프로필 기사

 

1998년 박근혜 후보가 내세운 구호는 '박정희가 세운 경제, 박근혜가 지킨다'였습니다. 철저히 아버지 박정희를 앞세웠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대구 달성군민들은 앞다퉈 표를 몰아줬습니다. 대구 달성에서 박근혜 후보가 태어났다는 부분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아닌 박정희를 보고 그녀를 선택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대다수 신문들은 그녀를 가리켜 '박정희 향수에 힘입어','아직도 살아있는 박정희' 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후보 국회의원 당선 당시 기사, 출처:1998년 4월3일자 한겨레 기사

 


박근혜 후보가 당시 강조했던 선거 운동 중의 하나가 바로 철저한 지역감정이었습니다. 당시 정치상황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회의와 한나라당의 대결구도였는데, 박근혜 후보는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자마자 '이번 선거는 박근혜냐 엄삼탁이냐의 대결이 아니라 박정희냐 김대중이냐를 선택하는 선거'를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지역감정 전략은 먹혀들었고, 그녀는 선거가 끝난 뒤 제기된 지역감정론에 대해 끝까지 아버지 박정희의 유업과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의도였을 뿐이라는 변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6.2 제2기 지방선거 당시 기사, 출처:1998년 6월1일 경향신문

 


당선되자마자 한나라당 출신 지방선거 후보자들은 일제히 박근혜 의원에게 찬조연설을 부탁했는데, 이유는 단 한 가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고, 그것이 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결과를 그들은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을 보면 박근혜 후보가 당시 어떤 정치적 자질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박 의원의 연설은 아마추어 수준이다. 써준 원고를 줄줄 읽어가는 정도다. 그런데도 청중들은 자발적으로 박수를 치고 연설이 끝나면 박 의원 손을 잡으려 우르르 몰려든다. (중략) 박 의원 모습만 보고도 손수건을 꺼내는 중장년 부녀자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박 의원의 인기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 이외에는 달리 해석할 도리가 없다.'

써준 원고만 줄줄 읽어가는 수준의 그녀 (그런데 이런 써준 원고 읽기는 14년이 지나도 별 차이가 없는 듯)를 사람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단지 박정희에 대한 향수 이외에는 없었습니다.

 

 

 

▲퍼스트레이디시절 박근혜의 특별회견 관련 기사,출처:매일경제

 


박근혜 후보를 유신 시절과 별개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히 박정희 독재 시절 그 몫을 했던 인물입니다. 어머니의 사망 이후 각종 행사에 나가고 언론에 노출됨으로 불쌍하고 가련한 박정희 가족으로 포장된 이미지 정치를 보여줬습니다. 이로써 국민이 독재를 지적하고 비판하기보다 오히려 안타까워하는 모습으로 바꾼 장본인이 박근혜였습니다.

방송과 특별회견(퍼스트레이디 역할이지만 특별회견을 수십 차례 열었던 박근혜 )을 통해 언론에 자주 나왔던 그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얼굴마담 정도가 아닌 정치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나갔던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물질만능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부작용은 아예 처음부터 뿌리 뽑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 경제발전에 못지않게 정신개혁운동을 일으켜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정신적인 면에서도 선진화를 이룩해야 한다" (1976년 박근혜 TBC TV 특별회견)

박근혜 후보가 그토록 과거사의 문제에 얽혀있는 이유는 박정희뿐만 아니라 그녀 자체가 과거사에 연루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정치적 권력을 행사했던 장본인으로 그 권력을 바탕으로 이제 대통령 후보가 됐다는 점은 보면, 왜 그녀가 과거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지를 보여줍니다.

 

 

▲청와대에서 박정희와 함께 당시 권력자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박근혜

 


1998년 박근혜 후보는 속해있던 한나라당이 IMF를 몰고 온 주범에도 불구하고 이겼습니다. 그 이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단지 박정희라는 향수와 지역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해외언론이 박근혜 후보를 '독재자의 딸'로 표현하는 대목을 들고 나온 이유는, 아직도 박근혜=박정희로 인식하는 지지세력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분명 독재자였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독재자로 바라보는 시선에도 아직도 한국은 그를 대한민국을 살린 영웅으로 떠받들고 있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가진 힘이 그녀 스스로 있는지, 아니면 '독재자의 딸'로 아직도 독재자의 유산으로 살고 있는지, 대선을 앞두고 우리는 냉철하게 분석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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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사회운동의 흐름과 책임

 

조회수 73추천수 02012.10.29 11:04:00

 

 


 

 

특집

―――――
한국 장로교, 새로운 100년의 기로에 서서

한국 장로교 사회운동의 흐름과 책임

 

 

 

 

출처 : 기독교사상 9월호 http://clsk.org/gisang/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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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 총회 설립 100주년, 격동하는 한국 민족의 근대사 속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본격화 되는 1912년, 자주적 주권을 빼앗기고, 희망을 잃은 한국 민족에게 총회는 어떠한 꿈과 비전을 주었는가?


한국 기독교의 수용사적 입장에서 볼 때 장로교 총회 설립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일 병합으로 한국 민족이 모든 것을 잃었다 할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국 민족의 절대적 이상이 있다. 그것은 자주적이며 민주적인 통일국가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설립에는 이와 같은 절대적 민족 국가의 이상을 근현대 민족사에서 실현하려는 의지와 구상이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총과 칼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인 성서와 신앙의 자유를 통한 한국 민족의 계몽과 역사 변혁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선교사 입국 이전부터 성서를 중심하여 자생적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신앙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성서와 신앙은 기존사회의 대안적 가치이자 한국민족사의 변혁과 발전의 동력이었다. 따라서 한국 장로교회는 시대마다 주어진 민족의 역사적 과제들에 성서와 신앙으로 응답하며 시대의 변화와 사회적 발전에 기여해 왔다. 이 글은 한국 장로교 총회 100주년의 역사를 이와 같은 민족사의 관점에서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의 범주로 살펴보고, 그 사회적 공헌도와 한계점을 평가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1. 교육활동을 통한 근대화에의 기여

초기 한국 장로교의 복음 선교의 지향성이 개인전도와 영혼구원에 목표를 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민족이 처한 식민지 상황에서는 그것이 사회개혁적 지향성을 갖고 한국교회로 하여금 민족의식을 형성케 하였다. 복음은 들어간 곳의 민족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창조한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통해 한국 사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뜸과 동시에 봉건적 구습과 일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갈망하게 되었다. 성서는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기거나 양도할 수 없는 고유한 자신만의 존재 가치와 주권이 있다. 이것을 억압하거나 소외시키는 법과 제도, 문화와 관습은 모두 전근대적인 야만이다. 이것을 거부하고 성서의 진리에 근거하여 주체적 선택을 하는 것이 신앙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 한국 사회 안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남존여비(男尊女卑), 적서차별(嫡庶差別), 반상갈등(班常葛藤)의 봉건적 폐습을 타파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권국가인 조선을 일본이 무력으로 강점하여 식민지화 하는 것에 저항하며, 한국 민족에게 자율적이고 책임적인 주체 의식을 불어넣는 교육 활동으로 한국 사회의 근대화에 기여를 하였다.
 

한국 장로교회의 교육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교회내의 주일학교 활성화를 통한 미래 세대의 교육이다. 한국 장로교회는 1890년부터 성서교육을 중심한 사경반을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1912년 주일학교 실행 위원회를 결성하고, 『만국통일주일 공과』를 간행하였다. 주일학교 교육은 한국 장로교회의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일이다. 성서의 가치관과 신앙윤리로 특히, 봉건적 구습에 물들지 않고, 일본의 식민지 공교육에 세뇌되지 않은 청년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1913년 총회록의 보고에 의하면 장로교회 주일학교 수는 한국교회 전체 주일학교 수의 60퍼센트인 1,418교회이고, 학생 수는 79,323명으로 전체 학생 수의 67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 만큼 한국 장로교회는 근대화를 향한 한국 민족사의 흐름을 간파하고, 미래세대를 준비하는 일에 어느 교파보다 앞섰던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독교 학교 교육을 통한 근대적 세계관의 확산과 심화이다. 선교 초기부터 의료와 교육을 통한 학원 선교에 주력해온 한국 장로교회는 계속 늘어나는 학교들로 인해 복음선교와 근대적 가치 전파에 유리한 입지를 고수하였다. 그러나 1915년 교육과 종교를 분리하는 일본의 사립학교 <개정사립학교 규칙>의 시행은 장로교회 학교교육의 커다란 시련이었다. 장로교회에 속한 기독교 학교들은 많은 재정적 손실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성서의 권위와 신앙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과 희생으로 급기야 1919년 3·1운동의 동력으로 크게 작용한 기독교 지도력을 형성한 것이다. 1912년 총회 창립시와 3·1운동 이전인 1918년의 총회 예산표를 살펴보면 전도비 보다 교육에 투자한 학교용비가 3배에서 6배 이상으로 증액되었다. 3·1운동은 한국 장로교회가 숱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힘써 온 기독교 교육을 통한 근대적 민족의식의 심화 과정에서 얻은 결과이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자유, 민주, 인권, 정의의 정신은 성서의 핵심 개념이다. 이것은 한국 장로교회가 자주적인 민주적인 통일 국가를 현실에서 추구하며 궁극적으로 실현하겠다는 신앙적 역사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1912년 한국 장로교 총회의 주체적이고 자립적이며,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정신은 3·1운동에서 더욱 크게 결실을 맺었다. 그것은 장로교 안의 연합뿐만 아니라 교파를 넘어서 개신교들과의 연대와 일치를 이루어 내었고, 더 나아가 종교를 넘어서 천도교와 불교와의 연합을 이루어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확대한 것이다.


3·1운동 이후 기독교가 받은 피해상황을 보면 기소된 전체 피고인 6,417명 중 개신교인이 1,448명이다. 그 가운데 장로 교인이 절대다수인 1,115명이다. 물론 숫자적 통계치로 근대적 민족의식과 역사적 책임의식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는 조선적 봉건사회의 억압과 일제의 식민지배란 전 근대적인 시대모순 속에서 성서와 신앙교육을 통한 구습의 타파와 인권의식의 함양을 통해 계속해서 한국 민족의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통일 국가에 대한 이상과 결합하면서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의 동력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다.

 

2. 농촌 사업을 통한 산업화에의 기여

식민지 초기부터 시작한 일제의 토지 수탈은 1926년에 이르면 소작농의 비율이 자작농 52,426명에 비해 거의 두 배인 1,185,674명으로 늘어난다. 1915년과 비교하면 농민의 총 수가 4.7퍼센트 증가하는데 소작인의 비율이 25퍼센트나 급증한 것이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이란 정치적인 지배는 1920년대 이르러 토지 독점이란 경제권 지배로 전환하여 조선사회로 전락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일제의 노골화된 토지수탈 정책에 대한 한국 민중의 격렬한 저항은 여기저기서 강하게 일어났다. 그 중에 하나인 암태도소작쟁의(1923-1924)는 대표적인 것이었다. 이 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이룬 공산주의가 제국적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을 이유로 한국사회에 유입되며 사회의 일부 계층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가고 있었다. 따라서 무산계급의 폭력혁명을 지향하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한국교회는 일제의 자본주의 수탈구조를 지지하는 부르주아적 반동집단일 뿐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어떠한 사회운동의 노선과 방법을 택할 것인가? 조선 사회의 급선무는 일제의 식민지 수탈과 세계적인 공황에서 자립적인 경제 재건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첫 출발은 농촌사업을 통한 경제자립과 부흥이었다. 1928년 장로교회는 총회조직에 농촌부를 신설하고, 1933년에는 농촌부에 상설 사무국을 설치하여 농촌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농촌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첫째는 농민계몽 활동이다. 제 17회 장로교 총회(1928)는 <농민생활> 잡지를 간행하기로 결의 하였다. <농민생활>은 농민들에게 자립의 꿈과 복지사회의 이상을 불어넣어 주며 실제 농사 개량과 농기구 사용 등의 다양한 농사법 등을 소개하였다. 이 책은 매회 2만부나 발행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농촌 순회 지도를 통해 농민들에게 생활개선과 기술교육을 실시했다.


둘째로 농촌 지도자 양성과 시험 농장 운영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농촌 사업은 단순한 계몽의 차원에 그치지 않고, 1932년 제 32회 총회 결의에 따라 ‘고등 농사 학원’을 구상하였다. 이것은 직접 농사를 짓는 방법을 배우고 실습하며, 생산과 가공 그리고 유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배우는 시험 농장이었다. 이와 같은 한국 장로교회의 농촌운동은 한국 민족의 절실한 자립경제의 요구를 교회가 수용하고, 이에 책임적으로 대응한 것이다.


1930년대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직접적인 항일 무력투쟁을 하기 어려웠던 상황에서 농업의 근간인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은 오직 농민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농촌 경제를 향상하고 농촌생활을 변화시키는 길이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한편으로 농촌 경제를 향상시키기 위해 농업개량이나 유통 구조의 개선, 부업 장려 등을 활발히 전개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도덕적 각성을 강조한 것이다.

 

농촌진흥운동, 즉 경제운동이 아니다. 정신상 기초가 없는 경제 운동은 일일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고로 먼저 정신 운동 즉 종교운동으로 농촌운동의 첫 걸음을 삼지 아니하여서는 안 될 것이라고 본다. … 조선의 삼십만 기독교 신자들이여, 우리의 특권이 이에 있으며 농촌의 진흥, 조선사람의 활로(活路)가 오직 그리스도교에 있음인저.1)

 

한국교회의 농촌운동은 단순히 농사법의 개량이나 경제적 부흥만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생활의 조직과 정신의 갱생”까지를 포함한 사회 구조의 변혁운동이자 민족운동이었다. 즉, 농촌 사업은 일제 식민지하에 있는 농민들에게 자립적인 경제생활을 추구하는 인격적 긍지를 주며, 민족자본의 형성과 재화 창출이란 산업화 과정에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농촌 사업은 일본이 1937년 중일전쟁을 시점으로 한국을 침략전쟁의 병참기지로 삼아 사회의 기본재화를 모두 몰수하는 바람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한국 장로교의 농촌사업은 1949년에 한국 장로교회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기독교 연합 봉사회(Union Christian Service Center)를 통해 다시 한 번 시도되었다. 기독교 연합 봉사회는 일제 강점기 36년간 피폐화된 농촌을 어떻게 다시 재건하고, 부흥시킬까를 고민하며, 장로교가 구세군과 감리교와 연합하여 세운 에큐메니칼 기관이다. 일제 하 한국 장로교회가 1930년대에 추구하였던 자립 정신과 농촌사업을 계승하여 전시농장과 농민학원을 세우고, 농촌 개발과 진흥사업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특히, 선진 축산 기술의 도입과 협동조합 운동의 전국적 확산은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을 위한 산업화 시기로 돌입하는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3. 인권운동을 통한 민주화에의 기여

일제 강점기로부터 한국민족의 해방은 불행하게도 남북의 분단을 가져온, ‘미완의 해방’이었다. 자주적인 민주통일 국가의 꿈은 또 한 번 좌절되었다. 한국장로교는 1946년 6월 12일, 승동교회에서 모여 통일이 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총회를 유보하는 남부대회를 조직하였다. 제 2회 남부대회는 통일의 전망이 어둡게 되자 1942년 일제의 강압으로 해산되었던 31회 총회를 계승하는 33회 총회로 개최하였다. 따라서 통일 문제는 이후 한국 장로교의 사회 운동에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남북 분단은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을 발발하게 하였고, 더 나아가 한국 장로교의 숱한 분열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일본의 식민지배 하에서도 장로교 총회의 연합과 일치의 에큐메니칼 정신은 한국 민족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국가를 향한 해방 열망과 독립의 관심을 수렴하였는데, 남북 분단의 문제에서는 이것을 포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열과 대립을 가져왔다는 것이 매우 큰 역사적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한 것이다.(딤후 2:9) 어떠한 이념이나 정치체제에 가두거나 갇힐 수 없는 것이 장로교회가 믿는 성서의 절대성이다. 그리고 그 말씀 안에 참된 신앙의 자유가 있는 것이다. 그 자유는 거짓을 부정하고, 진리인 말씀에 순종하는 자유이다. 대립과 분열의 자유가 아닌 일치와 연합의 자유이다. 이 자유를 잃어버리면 현실정치 권력이나 이념 체제 아래 성서가 종속되고, 신앙의 생명력이 상실된다. 남북의 분단과 대립을 빌미로 이승만 정권 이후 제 5공화국에 이르기 까지 독재정권 아래서 한국 장로교회는 통일을 향한 민주화 운동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민주화 운동이 분단 이데올로기와 남북의 적대적 군사 대결을 거부하는 평화통일 운동이며 분단 구도를 악용하는 불의한 세력으로부터 박해받는 의로운 이들을 돕는 신앙고백적인 인권운동이기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회의 인권운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는 민주헌법 수호와 사회 정의를 위해 부정한 권력과 불의한 제도를 비판하고, 시민으로서의 당연히 가질 언론 자유와 결사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의 차원이다. 장로교 신학자 김재준은 1968년 박정희 정권의 6·8부정 선거에 대하여 “불의에 대한 투쟁도 신앙이다.”라는 글을 발표해 불의에 눈을 감고, 악을 방치하는 것은 불신앙이라고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앙인으로서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로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한국 장로교는 1965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선언’ 1969년 ‘3선개헌 반대선언’ 등 성명서를 내고, 시대마다 예리한 비판의 눈을 가지고, 독재권력구조와 체제에 저항하며 선교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확보하는 힘겨운 싸움을 하였다. 한국장로교는 분립된 교단에 따라 각기 명칭은 다르나 ‘교회와 사회문제연구위원회’ 또는 ‘교회와 사회 위원회’ 등을 조직하고, 총회적으로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문제들을 선교적 차원에서 대응해 나갔다. 이와 같은 일들은 한국 장로교회가 인권 운동을 통한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에의 기여인 것이다.


둘째는 부당한 국가 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고난 받는 이들을 위한 연대와 지원 활동이다. 한국사회의 도시화와 산업화가 본격화 되는 1960년대부터 한국 장로교회는 산업전도에 착수한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의 문제가 교회의 선교적 과제로 본격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은 1970년대이다. “노동 3권을 보장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턱없이 낮은 저임금에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노동 현장의 문제를 인권운동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지원하기 위해 총회 차원의 선교 신학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1960년대 ‘산업전도’를 ‘산업선교’의 차원으로 확장하며, 인력과 재정을 지원하고,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산업선교도 커다란 도전과 위기에 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산업선교가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반대하고, 노동자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용공주의(容共主義)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전적인 오해였다. 한국장로교의 산업선교에 대한 관심은 성서의 진리와 신앙의 자유에 근거한 노동자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었다. 오직 신앙 고백적이며 선교적 소명에 대한 책임적 선택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이 땅이 가난하고, 소외받고, 억압당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성을 보고, 그것을 지키려는 한국 장로교회의 선교적 노력은 지난 30년 한국사회의 험난한 민주화 여정의 뚜렷한 이정표 역할을 한 것이다.

 

 

맺음말

한국교회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던 1912년, 한국 장로교회는 커다란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총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지난 100년 숱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총회는 민족사회의 시대적 과제를 선교적 소명으로 받아들여 근대화와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성서의 가치와 신앙윤리를 가지고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100년 전 한국 민족의 절대 이상이었던 반봉건, 반외세의 자주적인 민주통일 국가의 실현은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의 국가적 위상은 GDP 2만불의 선진국으로 부상하였지만 한국사회는 아직도 봉건적 구습과 외세의 압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전근대적 상태로 추락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주체적 의식과 시대의 추이와 상황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역사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체의식과 역사의식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 답은 성서의 진리와 신앙의 자유에서 비롯하는 자율과 책임윤리에 있다.
 

한국 장로교회는 이미 지난 100년의 역사경험을 통해 한국 민족의 절대 이상인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 국가의 꿈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교육활동과 농촌사업, 그리고 인권운동을 통해 그 꿈을 이루는 근대적 가치, 산업화의 정신, 민주화의 이상을 제시하였다. 이제 총회 1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의 상황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어떠한 대안가치와 사회적 의제들을 제시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한국 장로교회가 한국 사회를 위해 선택할 대안가치는 생명과 생태, 평화와 공공성이다. OECD국가 중 빈부갈등이 가장 크고,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한국 사회는 분명 적신호가 켜져 있다. 또 개발이란 명목으로 인간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생태계와 환경의 파괴는 오늘 이상기후와 심각한 자연재해로 한국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100년간 한국 사회가 추구한 개발과 성장의 패러다임에 몰두한 결과이다. 이제 그 방향을 바꾸어 공존과 공생의 새로운 성서가치와 신앙에 근거한 생명과 평화, 그리고 공공성의 패러다임을 창출해 내야 한다. 이것은 그 동안 근대적 가치와 산업화의 정신, 또 민주화를 추구한 한국 장로교회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이다. 따라서 그 한계를 깨닫고 성서적 가치와 신앙의 자유 안에서 생명과 생태, 평화와 공공성을 향한 패러다임 전환에 먼저 나서고, 스스로 모델 공동체로 이것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 한국 장로교회가 과거로부터 전향하여 미래를 향해 스스로 개혁해야할 시대적 소명인 것이다.

 

연규홍 l 교수는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가을학기 미국 버클리의 GTU(Graduate Theological Union) 초빙교수로서 강의했으며, 현재 한신대학교 신학과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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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민주주의와 ‘친새언론’의 대결이다

 

박근혜 궁지몰리면 즉각 '수호천사' 등장..새누리당-친새언론 손발 맞췄나

민동기

‘친새 신문’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친새 신문’은 ‘친새누리당 신문’의 줄임말인데 보통 조선일보와 문화일보를 지칭합니다. ‘친새 신문’의 특징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면전환을 위해 선제적 대응을 불사한다는 점입니다.
‘NLL 파문’과 ‘참여정부 국가기록물 폐기논란’이 어떻게 점화되고 확산됐는지를 생각해 보면 ‘친새 신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가 금방 드러납니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이 정체상태를 보이고, 외부인사 영입문제 등으로 내부갈등이 심해졌을 때 ‘친새 신문’이 정문헌 의원의 ‘NLL파문’을 대서특필하며 정국 전환을 시도한 것이 단적인 예입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상황파악을 못하고 허둥지둥 하고 있을 때 ‘친새 신문’이 앞으로 나아갈 ‘공격지침’을 분명히 해준 거죠. 덕분에 새누리당은 ‘내분 갈등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 의해 ‘NLL파문’은 시작됐지만 이를 이슈화하고 여론화 시킨 건 ‘친새 신문’이었습니다.
새누리당 분란 ‘봉합이냐 갈림길이냐’에서 터진 NLL파문

사실 ‘NLL파문’이 터지기 전 정치권 최대이슈는 새누리당의 내분과 갈등이었습니다. 일부 언론은 ‘봉합이냐 갈림길이냐’라는 제목까지 뽑으면서 당 쇄신론을 두고 벌어진 새누리당 갈등의 심각성을 전하기도 했지요.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근거 없는 ‘NLL 의혹’을 제기한 게 10월8일(월)입니다. 정 의원의 발언은 10월9일(화)자 조선일보에 의해 대서특필 되는데 직전까지 주요 신문과 정치면이 어떤 이슈로 ‘도배’됐는지 아시나요. 10월8일(월)자 주요 신문의 보도내용을 정리 했는데 직접 한번 확인해 보시죠.

 

신문

제목

경향신문

최경환 사퇴했지만 “이한구도 퇴진해야” (1면)

“최경환 한명 겨냥해 사퇴론 제기한 것 아니다” 당내 불만 여전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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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내 거센 인적쇄신 요구받는 박 / 최측근 최경환 자르기 ‘강수’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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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실세’ 최경환 비서실장직 사퇴 (1면)

물러난 친박 왕실장 … 새누리 새판자기 촉매제 되나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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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후보 비서실장직 사퇴 / 김종인·안대희는 당무 보이콧 (1면)

김종인 “나와 이한구 중 선택하라” … 여 내분 오늘 고비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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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캠프 최경환 사퇴 … 당엔 이한구·서병수 퇴진론 거세 (3면)

한겨레

‘친박실세’ 최경환 비서실장 사퇴 (1면)

박근혜 “잘잘못 따지기 보다 화합” … 쇄신파 “안이한 사태인식” (6면)

박근혜 후보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 (사설)

한국일보

친박 핵심 최경환 비서실장 결국 사퇴 (6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어떤가요. 정문헌 의원의 ‘NLL 의혹’이 제기되기 전까지 주요 신문의 1면과 정치면은 ‘새누리당 내분과 혁신, 갈등’으로 채워졌습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박근혜 후보를 향해 “나와 이한구 중 선택하라”고 강수를 둘 만큼 내분상황이 고비를 맞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조선일보조차 1면에 기사를 배치하고 3면 전면을 할애해 보도할 만큼 당시 상황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런데 ‘NLL파문’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아니 정확히 말해 10월9일자 조선일보가 1면 등에서 주요뉴스로 보도하면서 새누리당 내분은 신문 지면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추어 버립니다. 대신 ‘NLL 파문’ ‘김정일’‘노무현 대통령’‘군 갈등’ ‘참여정부’와 같은 단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됩니다.
위기에 빠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위해 정문헌 의원이 총대를 맸고, ‘친새 신문’이 결합하면서 ‘2012년판 북풍 조성시도’가 시작된 겁니다.

[관련기사] 2012년판 북풍 시도하는 수구언론 ‘조중동문’

‘친새 언론’, ‘과거사 프레임’에서 박근혜를 구하라

문제는 그 시도가 예전처럼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해 조선일보의 영향력 아니 ‘조중동’의 영향력이 과거처럼 여론시장을 좌지우지할 만큼 막강하진 않다는 얘기입니다. 정문헌 ‘NLL 파문’만 해도 예전 같으면 대선이 끝날 때까지 정국이 요동치고도 남을 사안이었지만 지금은 ‘약발’이 며칠을 못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정문헌 의원의 ‘NLL 파문’은 너무 근거가 미약해 정 의원 주장을 조선일보가 부인해 버리는 ‘촌극’까지 연출됐습니다. 계속 가다간 역풍을 맞을 것 같으니까 서둘러 진화에 나선 거죠. 대신 조선·문화일보와 같은 ‘친새 언론’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여권 고위관계자’ ‘정부 고위관계자’를 등장시켜 ‘NLL 파문’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역시 영향력이 예전 같진 않습니다.

[관련기사] 반성없는 <조선><문화>, ‘NLL 발언’ 또다시 쟁점화 시도
어찌 됐든 한 가지 분명한 건,‘NLL 파문’으로 새누리당은 내분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영향력이 시들어지긴 했어도 ‘친새 신문’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부인할 순 없습니다.

‘친새 언론’의 지원사격으로 새누리당이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악재 중의 악재 ‘정수장학회 파문’이 터집니다. 한겨레가 10월12일자 인터넷판에서 ‘MBC 경영진과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이 밀실협상을 통해 MBC 민영화를 추진하려한다’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대선 국면이 다시 ‘정수장학회 정국’으로 급전환되기 시작한 거죠.

특히 ‘NLL파문’과 달리 ‘정수장학회 논란’은 근거가 확실한 데다 언론사의 합리적 문제제기라는 형태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파문 양상이 달랐습니다. 정수장학회와 박근혜 후보를 분리시켜서 생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선 국면에서 이 문제는 단숨에 핵심의제로 떠올랐습니다. MBC가 ‘도청 의혹’으로 물타기를 시도하려 했지만 사안 자체가 워낙 메가톤급이어서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진 못했습니다.

[관련기사] 정수장학회 vs ‘정문헌 NLL’ 언론보도 비교해보니
‘친새 언론’을 비롯해 거의 ‘친박 방송’ 수준의 뉴스를 내보내고 있는 MBC가 전력을 다해 ‘NLL 논란’을 확산시키는 등 ‘정수장학회 파문’ 진화에 나선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이들은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을 하기 전(10월21일)까지 정수장학회 파문을 끊임없이 축소했고, NLL 파문은 확대재생산 하는데 열을 올렸습니다.
문제는 10월21일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강탈을 부정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후 여론의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박 후보의 역사인식 부재가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이른바 ‘과거사 프레임’이 한층 더 공고해지는 양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혹을 떼어내도 시원찮을 판에 혹을 하나 더 붙인’ 셈입니다.

박근혜 후보의 기자회견이 어떤 역풍을 불러왔는지 10월22일(월) 신문 지면을 한번 보시죠. 물론 이 와중에도 ‘조중동문’(조선·중앙·동아·문화)은 정수장학회 파문을 축소하기 급급했지만 말이죠.

신문

제목

경향신문

박근혜 ‘정수장학회 강탈’ 부인 (1면)

박근혜, 비판 목소리를 ‘정치공세’ 치부…과거사 수렁 못 벗어나 (3면)

2-3-4면 비롯해 사설에서도 박근혜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비판

국민일보

“부일장학회, 부패혐의 김지태가 헌납”…강탈 부인 (3면)

여 “이럴 거면 회견 왜 했나” 한숨 (3면)

민심과 괴리된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해법 (사설)

서울신문

정수장학회, 정쟁 벗어나려면 환골탈퇴 해야 (사설)

1-3-4면에서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소식 보도

세계일보

“임기 전 사퇴 못한다” 최필립 벽에 부딪힌 정수장학회 (3면)

박 후보, ‘정수장학회’ 불길 커지길 원했나 (사설)

한겨레

인혁당 이어 또 판결 무지 … 박근혜, 정수장학회 해명 ‘역주행’

‘왜곡과 오만’으로 가득 찬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인식 (사설)

1-2면에서도 정수장학회 관련 뉴스 보도

한국일보

전향적 해법은 없이 … 박, 정치공세로 치부 ‘논란 되레 확산’ (5면)

박근혜 정수장학회 회견, 논란 불씨만 더 키웠다 (사설)

1면에서도 정수장학회 기자회견 배치

[관련기사] ‘정수장학회 파문’ 축소 급급 … 조중동 ‘박근혜 구하기’

한겨레가 10월22일자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정수장학회 문제와 관련해 많은 국민이 박 후보한테서 보고 싶어하는 것은 딱히 구체적인 해법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겸허한 자세,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지려는 노력, 사회적 갈등과 논란을 해소하려는 성실한 태도”를 보고 싶어 하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장에서 보여준 박근혜 후보 이미지는 오만으로 가득 찬 불통의 대선후보 그 자체였습니다. 위 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여론의 역풍은 거셀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이럴 거면 기자회견 왜 했나’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게 바로 ‘친새 언론’ 조선일보입니다. ‘정수장학회 역풍’ 차단을 위해 조선일보가 꺼낸 카드는 <盧 주재회의서 청와대 문건 목록 없애기로> 라는 기사. 정수장학회 역풍이 불기 시작한 바로 다음날인 10월23일자 1면을 장식한 이 기사는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당일(23일) 긴급회의를 소집하게 하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내도록 했습니다. 이해합니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이 문제가 ‘국면 전환 카드’로 쓰일 수 있다고 판단을 했겠지요.

하지만 불행히도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동업자인’ 동아·중앙일보마저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동아일보는 작게라도 언급을 했지만 중앙일보는 아예 조선일보 기사를 무시해(!) 버립니다. 예전 같으면 ‘조중동 연대’의 굳건함을 보여줬을 법도 한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조중동 연대’도 예전 같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번 대선은 ‘朴-文-安’이 아닌 양심적 민주사회와 파렴치한 ‘친새 언론’의 싸움
조선일보와 새누리당의 주장에 대해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대통령 기록물을 둘러싼 사실관계부터 그 기본 취지까지 모두를 왜곡했다고 비판합니다. 노무현재단이 성명을 통해 밝혔지만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앞뒤 발언을 다 빼버린” 명백한 왜곡보도입니다. 무엇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기록물 관리에 가장 공을 들인 대통령을 향해 ‘자료파기’ ‘사초파괴’ 운운하는 것 자체가 적반하장입니다. 지난 10월24일자 한겨레가 사설에서 이 같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일부를 인용합니다.

“5년 재임한 노 전 대통령이 825만여건의 기록물을 남긴 데 비해 그 이전 55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불과 33만여 건의 기록물을 남긴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대통령기록물 관리법을 제대로 정비한 이도 노 전 대통령이다. 새누리당이 노 전 대통령의 이런 뜻을 살피지는 못할망정 사초를 파괴한 대통령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선에 눈이 먼 무책임한 정치공세일 따름이다 .

새누리당이 정수장학회 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대통령 기록물 문제로 돌파하려 하는 모양이지만 자칫 제 발등을 찍을 수 있다. 퇴임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의 기록물은 지난 4년 동안 54만여건, 한해 평균 13만5000건으로 참여정부 시절 한해 평균 40만건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스스로는 기록물을 제대로 남기지도 않으면서 남의 것을 두고 트집 잡아 선거에 이용하려 드는 것은 정치 도의상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겨레는 “새누리당이 정수장학회 문제로 궁지에 몰리자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대통령 기록물 문제로 돌파하려” 한다고 지적했지만, 이 문장의 맨 앞에 ‘친새 언론과’라는 말이 들어가야 정확한 표현이 될 겁니다. ‘친새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새누리당의 기관지로 전락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박근혜-문재인-안철수 세 후보간 싸움이 아니라 양심과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와 낡은 수구이데올로기와 기득권 밥그릇을 지키려는 ‘친새 언론’간의 싸움이 될 지도 모릅니다. 새누리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옹호하고 지원사격에 나서는 게 바로 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친새 언론’을 끊임없이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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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조롱거리...외국인들 보기 부끄럽다

[접경지를 가다① 경기 파주] 파주시민들의 호소 "대북단체, 파주 오지마라"

12.10.29 19:40l최종 업데이트 12.10.29 19:40l
나영준(nsdream)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 금강산 관광 중단, 대북단체 '삐라' 살포와 북한의 조준타격 논란 등. 이명박 정부 내내 남북 관계는 차가웠고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북한과 맞닿아 있는 접경 지역은 곧바로 피해를 입었습니다. 대선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지금, <오마이뉴스>는 접경지를 찾아가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습니다. [편집자말]
파주시 오두산 통일 전망대에서 일본인 관광객이 지척에 보이는 북한 땅을 바라보고 있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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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하지 말라면 하지 말 것이지! 북한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인지 몰라서 그러나? 정말 이러다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만난 초로의 한 파주시민은 몹시 화가 나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던 파주는 평화로웠다. 10월 21~22일, 이틀동안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열린 '개성인삼축제'가 대박이 났고, '참게축제'를 맞아 60년 만에 임진나루가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등 가을잔치 속에서 여유와 웃음이 존재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고 말았다. 지난 22일 대북 단체에서 북한 쪽으로 전단지를 날려 보내겠고 하자, 이에 자극받은 북한이 임진각을 조준 타격하겠다고 경고한 것. 파주시로서는 여흥을 즐기다 찬물을 뒤집어 쓴 꼴이 됐다.

갑자기 주민 800여 명 대피하는 일도

지난 21일 육군 1군단과 파주시, 파주 경찰서는 대책 회의를 열어 민통선 대성동, 해마루촌, 통일촌 마을 주민 800여 명을 대피시키도록 결정했다. 22일에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임진각 건물에 합동상황실을 설치하고 병력 800여 명을 배치했다. 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관광객은 물론 취재진 출입까지 통제했다.

다행히 당일 오전 대북단체의 전달 살포를 원천 차단해 이후 출입통제가 풀렸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파주 시민들은 다시 한 번 분노를 느껴야 했다. 남북 간 긴장이라는 현실에 늘 파주시가 고초를 겪는다는 사실을 새삼 곱씹었다.

임진각에서 대북삐라 살포를 계획한 박상학 자유북한연합 대표가 22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전방 6킬로미터 지점 자유로에서 경찰에 제지당한 가운데, 차량위에 올라가 손으로 대북삐라를 뿌리고 있다.
ⓒ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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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 보호받으며 대북전단 또 살포 자유북한연합, 북한민족해방전선 등 탈북자단체 회원들이 2011년 4월 29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망배단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준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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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에 대해 민주통합당 윤후덕(파주 갑) 의원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파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크다고 밝혔다.
"파주는 평화로운 도시다. 어떤 이유에서든 남북 갈등의 조짐이 보이는 장소가 돼선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간 긴장 탓에 파주시는 늘 뼈아픈 불이익을 받고 있다. 이번 대북 전단 살포를 시도한 단체는 제발 파주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파주시 발전을 바라는 시민 모두의 간곡한 마음이다."

임진각 관련 소식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보도를 한다. 이 탓에 윤 의원은 "결국 파주시와 대한민국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며 "결국 (대북단체의 전단지 살포는) 남한에만 피해를 주는 '대남살포'"라고 주장했다.

"(대북단체의) 행동을 대부분 주민이 싫어한다. 보수·진보를 떠나서 내 동네에서 불상사가 벌어지길 바라는 분들이 있겠나. 좋지 않은 이미지로 파주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 파주시민이 아니더라도 그런 걸 반기는 국민은 없을 거다."

"전단지 살포 대북단체, 파주 안 왔으면..."

주민들의 견해도 대개 일치했다. 평소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보수라고 밝힌 주민 김성일(48)씨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만, 저 사람들만큼은 이해를 못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번 양보해 전단을 뿌리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하려면) 제발 이 곳 저 곳 떠들지 말고 하라. 왜 그리 야단법석을 떠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그들의 뒤에 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지난 20일 <파주 개성인삼 축제> 현장. 이인재 파주시장이 공무원들과 함께 '강남 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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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류로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많다. 임진각 평화누리도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실제 지난 개성인삼축제 때 많은 사람이 임진각 평화누리를 찾아 크게 북적였다. 내국인도 많았지만, 중국인과 일본인 등 외국인이 많았다. 파주시는 임진각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연 100만 명을 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 전단지 살포' 같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파주의 경기는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이 때문에 지역 이장단과 경제인들의 걱정이 크다. 당장 다음달로 다가온 지역 최대 잔치 '파주 장단콩 축제'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헤이리 식당가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아무개씨는 "남북 관계에 따라 손님 증가폭이 극과 극"이라며 "평소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때도 있는데, 조금만 불안한 소식이 들리면 발길이 뚝 끊어진다"고 전했다.

"그런 소식이 들리면 아래 지방에 사는 지인이나 친척에게 전화부터 온다. 돌려서 말하기는 하는데, 불안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한다. 씁쓸하다. 사실 파주가 얼마나 맑고 살기 좋은 곳인데…. 그러니 굳이 남북 간 긴장감 높이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 파주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손해 아닌가?"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모른다고?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파주시 임진나루 '참게 축제' 덕에 60여 년 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 나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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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월롱역 부근에서 만난 한 30대 직장인은 "파주 LCD단지 근무를 위해 서울에서 출퇴근 한다"며 "반 파주사람이 되다 보니 안보에 관해 여러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한 현실을 (북에) 알려야 한다"는 대북 단체의 주장에 의문을 나타냈다.

"정말 북한 주민들이 남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대북 단체의 의견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북한 안방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중국만 가도 북한 현지와 휴대전화로 자유롭게 통화한다. 북측 주민들이 바보인가. 그들의 의식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닐까?"

곁에 있던 직원은 대북단체의 전단 살포에는 큰 반감이 없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정 그렇게 해야 한다면 조용한 산골짜기에 가서 (전단지 애드벌룬) 올리면 될 것 아닌가. 임진각도 가봤지만 그렇게 많은 외국인들이 오는 관광지 한복판에서 난리 칠 필요가 있을까? 무엇보다 '평화누리' 아닌가. 평화의 이름이 들어간 곳에서 굳이 이념갈등을 조장할 필요가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파주 시민과 파주에 직장을 둔 대부분의 사람은 대북 전단지 살포나 기타 남북 긴장관계에 우려를 나타낸다. 물론 대북 단체의 행동을 지지한다고 밝힌 이도 소수 있었지만 '요란스런 행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파주에는 판문점, 임진각, 38선, 통일전망대 등이 있다. 그래서 파주를 안보나 보수의 상징 도시로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 분구 된 파주 갑에서는 민주통합당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고, 파주 을에서는 야권 단일 후보 진통에 따른 사표가 무더기로 쏟아지면서 새누리당이 힘겹게 승리했다. 또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민주통합당 이인재 시장이 당선되기도 했다.

"이념 떠나서 긴장감 높아지는 걸 누가 원하나..."

2011년 3월 10일 낮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임진강철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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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선택을 두고 교육업에 종사하는 최정배(41)씨는 "파주가 분단에서 평화의 도시로 나아가는 현상"이라고 평가했다. "더 이상 파주에서 반공이나 안보 등의 이슈가 먹혀들기 힘들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전단지를 배포하는 대북단체를 순수한 민간 단체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그 분들이나 혹은 그들을 지지하는 분들의 행동을 보면 아닌 것 같다. 굳이 북한을 자극하고 언론 플레이하고.... 의도가 옳더라도 방식이 잘못됐다. 진정 평화를 원하는 분들이라고 믿기 어렵다. 전쟁이 나면 모두가 끝이다. 파주는 평화를 원한다."

파주시 면적은 672.64 ㎢로 서울시와 경기 안양시를 합친 규모와 비슷하다. 파주시 장단면·군내면·탄현면·진서면·진동면이 북한 땅과 접해 있으며, 인구는 2012년 기준 39만8000여 명이다. 교하·금촌 택지개발지구와 운정신도시에 많은 인구가 유입됐다.

또한 2개 국가산업단지와 10개 지방산업단지에 LG디스플레이 등 400여 개 기업이 등록돼 있다.

파주시의 한 관계자는 "이념을 떠나서 남북 사이에 긴장감이 높아지는 건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을 유치하는 등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시 입장에서도 대북 문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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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아들 진술서, 알고보니 청와대 직원이 대필

[분석] 검찰 못 밝히고 특검은 밝힌 '내곡동 미스테리' 5가지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29 오후 7:01:49

 

특검이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을 수사할 수록 황당한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6월 발표된 검찰의 수사 결과가 엉터리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검이 진행되면서 새롭게 떠오른 의혹들을 정리해봤다.

MB 아들 "내 진술에 오류 있다"고?

이명박 대통령의 장남 시형 씨가 검찰 수사 당시 낸 서면 답변서는 사실 청와대 직원이 '대필'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형 씨가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후 "일부 오류가 있다"고 밝혔는데, 대필 답변서였기 때문에 시형 씨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문화일보>는 29일 시형 씨의 측근이 "시형 씨가 직접 (진술서를) 쓰지 않았다"며 "청와대 모 행정관에게 얘기했고, 그 행정관이 써서 검찰에 제출했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 측근은 "당시 문제의 행정관이 시형 씨에게 '대충 써서 검찰에 제출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해 시형 씨도 기억에 의존해서 진술했다"고 말했다.

시형 씨는 '대필' 진술서를 통해 지난해 5월 23일 대통령의 큰형이자 자신의 큰아버지인 이상은 다스 회장으로부터 현금 6억 원을 받아왔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시형 씨의 '현금 배달' 동선은 24일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형 씨도 이같은 '오류'를 인정했다. 결국 '대필'도 '부실 대필'이었던 것이다.

▲ 특검에 출석하는 이시형 씨 ⓒ프레시안(최형락)
검찰 '대필' 묵인했나, 몰랐나
결국 검찰은 최소한의 사실 관계를 확인도 하지 않은 셈이 됐다. 시형 씨의 진술서가 대필이었다는 사실을 묵인했거나, 최소한 모른 채 수사를 진행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황은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대통령 일가에 대한 부담 때문에 기소를 못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과 함께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더욱 키울 전망이다.

아무리 대통령의 가족이지만 '사인(私人)'인 시형 씨의 검찰 진술서를 청와대 직원이 써줬다는 사실 자체도 충격적이다. 이 대통령 일가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검찰과 청와대 모두 '대필' 관련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과 '배임 가담' 사이에 낀 시형 씨

시형 씨가 "내곡동 땅을 실소유하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취지의 진술에서 "내곡동 땅을 실소유하려는 의사가 많이 있었다"고 말을 바꾼 부분의 경우 '대필' 과정의 오류라고 치기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시형 씨는 당초 내곡동 땅 실소유 의사가 없었다고 밝힘으로 배임 혐의를 벗어났다. 그러나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가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실소유 의사가 있었다고 진술을 바꿨을 수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경우 시형 씨는 청와대 경호처의 배임에 가담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짙어지게 된다.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잦은 말바꾸기로 시형 씨의 진술에 대한 '신뢰'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MB 큰형, 차용증은 받았는데 이자는 안 받아?

오는 31일 특검에 소환될 것으로 보이는 이상은 다스 회장이 이날 "시형 씨가 차용증을 써 왔다"고 측근을 통해 밝힌 부분 역시 문제가 많다. 시형 씨가 돈을 빌리는 과정에서 정당한 이자를 지급할 의사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나, 실질적으로 이 회장에게 이자는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현금 6억 원의 성격과 관련해 각종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편법 증여를 하려고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부터, 왜 큰아버지가 조카에게 거액을 편법 증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의문이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돈의 출처와 관련해 이 회장은 "사업 하는 사람은 그만한 현금이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왜 거액의 현금을, 그것도 이 회장의 집에 직접 들러서 가져가게 했는지, 이 부분은 여전히 미스테리다.

5월 13일~25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지난해 5월에 진행된 계약 과정도 수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시형 씨 명의 계약서에는 지난해 5월 13일 계약한 것으로 나와있다. 그러나 청와대 경호처 계약서는 5월 25일 작성됐다. 매도인 유 씨의 서명 필체가 다른 것으로 봤을 때, 계약서는 같은날 작성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신빙성을 얻는다.

이후 시형 씨는 5월 20일 차용증을 들고 이상은 회장을 찾아 6억 원의 현금을 빌리겠다고 말을 한다. 당초 시형 씨는 23일 이 회장의 집을 찾아 현금을 수령했다고 주장했지만, 특검 수사 과정에서 24일인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청와대 경호처는 계약서를 작성했다. 공교롭게도 26일 서초구청은 내곡동 부지를 밭에서 대지로 형질 변경한다.

<국민일보>는 "특검팀이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문건에는 경호처가 같은 달 24일 매수인 측 중개업자에게 팩스로 보낸 서류에 20-17번지(528㎡)의 지분율을 시형 씨 53%, 경호처 47%로 기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며 "그러나 최종 계약서에는 시형씨 62.5%(330㎡), 경호처 37.5%(198㎡)로 돼 있다"고 보도했다.

즉 13일 계약서는 작성한 후 폐기됐고, 25일 청와대 측이 손해를 보게 된 계약서가 추가로 작성됐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13일과 25일 사이에 시형 씨는 급히 현금을 마련했다. 즉, 이 날짜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존재할 수도 있다.

서초구청이 계약 날짜에 맞춰 형질 변경을 승인한 부분도 추가 수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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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시간 연장'을 막기 위한 새누리당의 새빨간 거짓말


 

 

 


투표시간 연장을 놓고 여,야가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면서 18대 대선의 쟁점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측은 투표시간 연장에 찬성하고 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은 기존 투표시간을 고수하며, 투표시간 연장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 캠프 인사들이 내놓는 투표시간 연장 반대 이유를 보면 기가막힐 따름입니다. 그것은 임시 공휴일이지만 일 때문에 투표하지 못하는 한국의 노동 현실도 무시하고,투표를 위해 선진국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조차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일에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하고, 선진국의 투표시간이 한국의 12시간보다 많은 13시간에서 15시간까지 보장되어 있다는 점은 앞서 포스팅에서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정치] - '투표시간 연장'을 막기 위한 선관위의 새빨간 거짓말

오늘은 새누리당과 중앙선관위가 들고 나온 비용론의 허구와 대한민국보다 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선진국들의 현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투표시간 연장하면 비용이 100억?'

투표시간 연장 논란이 시작됐을 때 새누리당은 선관위의 비용론을 그대로 인용해서,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하면 100억 원의 재정이 소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선관위의 이런 주장은 예산 부풀리기를 통해 이득을 취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새누리당과 공조해 입을 맞추었는지 몰라도 너무나 터무니없는 작태에 불과합니다.

 

 

 


중앙선관위는 투표시간을 연장하면, 기존 투표관리비용에 추가로 83억 원이 소요된다고 자료를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선관위의 계산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단지 2시간 연장을 하는데 인원은 두 배로 늘어납니다. 어느 회사나 2시간 근무를 더한다고 해서 인원을 두 배로 늘려 2교대 근무를 시키지 않습니다. 2시간 연장근무에 대한 수당만 더 지급하면 되는데 인원을 두 배로 늘려서 계산했고,투표관리관의 시급을 갑자기 현행 15,000원에서 약25,000원으로 증가시켰습니다.

여기에 식대를 6시-13시 근무자가 2끼, 13시~20시 근무자가 2끼를 먹는다고 총 4끼로 계산했습니다. 오전 근무자가 아침과 점심을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오후 근무자가 오자마자 점심 먹고 일하다, 또 저녁을 먹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13시부터 근무자라면 대부분 점심은 먹고 저녁만 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현재 선관위의 투표 관리비용에는 근무자들의 3끼 식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1끼 식사를 더 줄 필요는 없습니다.

단 2시간 연장근무하는데 시급을 올려 2교대 근무자를 편성하고 식대까지도 추가 계산하니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 회사에서 저렇게 비용 계산해서 기안 올리면 아마 담당자는 해고당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선관위의 계산은 자신들 편의 내지는 이상한 논리로 계산됐습니다.

 


 

 


투표시간 2시간 연장에 따른 개표 비용을 보면 더 이상합니다. 선관위는 개표가 그만큼 늦어지기 때문에 2일 근무에 따른 비용이 든다고 하는데, 현재도 개표관리원과 개표참관인은 2일분 8만 원으로 이미 편성되어 있습니다.

선관위는 개표시간이 늦어지기 때문에 13,920명의 추가 개표 사무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개표시간이 8시 이후로 늦춰졌을 뿐이지, 개표한다고 시간이 더 늘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6시 출근 시간이 8시로 늦춰져 일한다고 사람을 더 써야 한다는 논리는 이상한 계산법입니다.

야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 야식 구입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2시간 늦게 출근한다고 굳이 야식을 2번 줄 이유가 있을까요? 개표는 안하고 야식만 먹나요?

투개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돈을 더 받으려고 이런 짓을 꾸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중앙선관위가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자신들의 계산법으로 투표시간 2시간 연장에 따른 비용을 늘려났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 투표시간 2시간 연장 비용은 36억, 선관위 대선 홍보비는 109억'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은 중앙선관위의 투표시간 연장에 따른 비용산출이 적합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국회 예산정책처에 투표시간 연장에 따른 비용 산출을 의뢰했습니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중앙선관위와 엄청난 차이를 보였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계산한 투표시간 2시간 연장에 따른 투표관리 비용은 약 23억 원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계산이 나온 가장 큰 이유는 2교대 근무가 아니라 두 시간을 연장근무를 했으니, 2시간 연장 근무에 따른 인건비를 추가 지급하는 것으로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식대는 이미 1일 3식이 편성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투표관리 비용을 실제로 계산해보면 선관위의 약 83억 원 예산이 실질 소요 비용 23억보다 60억 원이나 부풀려 나온 결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투표시간이 연장된다고 해도 개표비용은 모두 동일하게 13억 원이 추가로 소요될 뿐이었습니다. 투표시간이 늘어나는 것이지, 개표시간이 연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25%만 자정 이후 근무하는 개표사무원을 전원 자정 이후까지 근무하여 전원 2일치 수당 8만 원을 받는 것으로 계산했고, 개표관리위원과 개표참관인은 현재도 2일치 수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추가로 돈이 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하면 약 36억 (투표 23억+개표 13억) 3시간 연장하면 약 48억(투표 35억+개표 13억)이 소요될 것입니다.
 

 

 

 


선관위는 지난 총선에서 투표관련 홍보비에만 113억 원을 썼고, 18대 대선 홍보비로 109억 원을 책정했습니다. 투표시간 2시간 연장하는 비용 36억과 비교해보면, 선관위가 주장하는 비용론이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홍보비로 100억을 쓰지 않고 절감한다면 36억으로 투표시간을 늘리고, 투표율도 더 높일 수 있습니다. 간단한 계산조차 무시하는 새누리당과 중앙선관위의 모습은 투표권유가 아닌, 투표를 막겠다는 의도가 보일 뿐입니다.

' 사전투표제'라고 들어 본적은 있는가?

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은 '투표는 성의의 문제' 라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의도 여건이 허락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무시한, 아니 그렇게 일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나온 발언입니다. 또한 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은 시사IN 라이브에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대 주장을 펼쳤습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봐도, 투표일을 공휴일로 정해서 투표를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을 정도다. 투표율 제고를 위해 이보다 더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시도를 하는 나라는 없는 셈이다. 가까운 일본이나 독일, 프랑스 등을 포함한 유럽의 경우는 투표일을 따로 정하기보다는 아예 공휴일에 투표를 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평일에 하면서도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는다. 투표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10~15시간까지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무조건 투표시간을 늘린다는 게 마치 선진국형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다.(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


이정현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은 투표일을 공휴일로 정하고 있는 한국보다 더 파격적이고 적극적인 시도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일본에는 기일전투표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흡사 부재자투표와 같은 투표방식인데, 선거 고시일 다음날부터 투표일 전일까지 각 시·구·정·촌에 설치된 투표소에 가서 8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투표를 하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서 투표일에 바쁜 사람을 위해 미리 투표소를 만들어 놓고 편한 시간에 투표하는 '사전투표제' 방식입니다.

처음 이 제도가 도입된 2003년 중의원 선거에서 기일전투표인은 총 선거인의 10,93%에 불과했는데, 2010년 참의원 선거에는 총 선거인의 18%가 이런 '사전투표제'(기일전투표)를 이용했습니다. 투표일 전 투표자수가 전체의 20%에 가깝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전투표제가 얼마나 효과적이고 참여율이 높은 제도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사전투표제는 일본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캐나다.스위스.호주,스웨덴,러시아도 사전투표제를 도입해서 활용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은 짧게는 투표일 2일 전부터 길게는 2주전 부터 자신들이 원하는 장소에서 우편이나 직접 투표소를 방문해서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지금 우리가 하는 부재자투표 방식도 이런 사전투표제의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에도 부재자투표가 있습니다. 그러나 절차가 까다롭고 방식이 불편해서 선진국처럼 일정 기간 동안 아무런 사유제시의 요건 없이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를 도입하면, 선거일에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에게 편의를 제공함과 더불어 이들의 참정권을 보장해줄 수가 있습니다.

선진국도 몇 가지 절차가 불편한 점도 있지만, 각 나라별 '사전투표제'의 장점을 선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투표율을 높일 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부재자투표 신고인의 수는 낮지만, 부재자투표율은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선관위는 2009년 7월 6일 재보궐선거의 투표율 하락 현상을 막기 위해 재보선 사전투표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습니다.

정치전문가들은 사전투표제가 투표율제고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며, 유권자의 투표참여를 유도하는 측면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선진국은 낮은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데,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이정현 공보단장은 대한민국이 최고라는 허무맹랑한 얘기만 주장하고 있습니다.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지난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선거캠프 내 진심 카페에서 열린 투표시간연장국민행동 출범식에 참석, 대선 투표시간 연장을 위해 국회에 선거법 개정과 유권자들이 투표시간 연장운동에 참여해 줄 것을 독려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출처:오마이뉴스 유성호

 


국가는(입법,사법,행정)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런데 선거를 운영하는 주체인 중앙선관위는 비용 타령에 여당 후보의 캠프 공보단장은 대한민국이 최고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국민의 참정권을 오히려 막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밤새 개표를 지켜보는 사회적인 비용도 감안해야 "(중앙선관위)
"투표는 시간이 아니라 성의의 문제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 이정현 공보단장)
"투표일에 웬만한 노동자는 다 쉰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10분이면 되는데 투표 안 하는 건 납득이 안된다."(새누리당 박성효 의원)
"선거를 앞두고 룰을 바꾸면 혼란만 야기한다." (새누리당 이철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비정규직 노동자 840만 명 가운데 일 때문에 투표하지 못한 비율이 64.1%였다고 합니다. 투표참여 시간을 유급휴무나 휴업으로 인정받는 노동자는 22.7%에 불과합니다. 대한민국이 왜 투표시간을 연장하고, 사전투표제와 같은 선진국형 투표 개선방안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체육관에서 대의원 2,359명을 모아놓고 단독출마하여 2,357표를 획득해서 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이 됐습니다. 국민의 참정권을 막는 자들은 오로지 자신들끼리 자신들만의 정권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는 무엇이 두려워 투표시간 연장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국민은 꼭 알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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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고려대 교수 ‘성명서’ 외면한 까닭

 

언론이 고려대 교수 ‘성명서’ 외면한 까닭
 
[보도비평] 언론계의 ‘동업자 봐주기’인가, ‘광고’ 의식한 탓인가
 
정운현 기자 | 등록:2012-10-29 10:00:36 | 최종:2012-10-29 10:01:2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16일 고려대 평교수 140명이 서명한 '성명서'

지난 16일, 고려대 평교수 140명이 학교법인 고려중앙학원의 김재호 이사장과 김병철 고려대 총장을 비판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는 이날 저녁 고려대 내부 포털사이트에 전격 공개됐는데, 1000여 명의 고려대 교수 가운데 140명이 실명으로 서명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고려대 교수들이 실명으로 재단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이 대학 개교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유력 대학에서, 그것도 재단 이사장과 총장을 겨냥한 ‘거사’이니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언론들이 어떤 논조로, 얼마나 비중 있게 보도했는지가 궁금해 네이버에 해당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조중동, MBC-KBS 등 유력 매체들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신생 통신사인 <뉴스1>과 <한겨레> <한국경제>가 17일자에서 다룬 것이 전부였다. 대신 <교수신문>(22일자)과 <한국대학신문>(24일자), 그리고 <데일리메디>(25일자) 등 전문지 세 곳에서 이를 다뤘다. 보건의료 전문지인 <데일리메디>가 이 내용을 다룬 것은 ‘성명서’에서 제기된 의혹 중에 고대의료원과 직영 도매업체인 ‘수창양행’에 관한 문제도 포함돼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종합지인 <뉴스1>과 <한겨레>의 보도는 대단히 피상적이었다. 둘 다 변변한 해설이나 분석기사 없이 스트레이트로 간단히 처리했을 뿐이다. <한국경제>는 네 문단짜리 기사였다. 반면 전문지들은 달랐다. ‘전문지’여서 달랐을 수도 있고, 또 해당 업계로선 큰 뉴스여서 비중 있게 다뤘을 순 있다. 그러나 평소 내로라는 이른바 유력 신문, 방송사들이 이를 다루지 않은 데는 모르긴 해도 다른 사정이 있지 싶다. 그 가운데 한 이유는 대학은 ‘큰 광고주’다. 또 하나는 ‘동업자 봐주기’가 아닌가 싶다. 고려중앙학원의 김재호 이사장은 <동아일보> 사장이기도 하다.

그러면 고려대 평교수들이 이번에 ‘실명 성명서’를 낸 까닭은 무엇일까? ‘성명서’ 말미에서 서명교수들은 “지금 고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 사학에서 삼류 족벌 사학으로 전락할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이사장과 총장의 냉철한 현실 인식과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한다”고 밝힌 대목이 사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고려대 교수의회(의장 김인묵)는 지난 8일 법인의 비민주적인 운영, 재정손실, 비정상적인 회계처리 등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면서 “비합리적이고 투명성 없는 지금의 법인은 오히려 학교 발전의 장애물로 전락해버렸다”고 비판했다. 이번 ‘성명’은 그 후속타인 셈이다.

이번에 고려대 평교수 140인이 실명으로 낸 ‘성명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들은 대략 네 가지의 학내 문제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해결책 제시를 촉구하고 있다. 첫 번째는 김재호 이사장의 선임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물었다. 이들은 “김재호 이사장은 취임 이래 지금까지 우리 대학의 발전 방향과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는 “단지 그가 인촌 선생 가문의 장손이라는 이유로 이사장이 되었다면, 법인 이사들은 우리 대학을 그 가문의 상속 재산으로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김재호 이사장
김재호 이사장(동아일보 사장)은 인촌의 증손자로 인촌 김성수-일민 김상만-김병관에 이어 4대째 이사장직을 세습하고 있다. 금년 5월 김 이사장이 재단 이사장에 선출될 당시 대학 내에서조차 “김재호 이사가 아직 나이도 적은데다(48세) 뚜렷한 공로도 없지 않느냐”며 부적정인 의견이 개진된 바 있다. 게다가 김 이사장과 김병철 현 고대 총장과는 5촌간이다. 따라서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김 이사장이 사장으로 있는 <동아일보> 일가가 재단과 대학 전면에 나서면서 ‘고대-동아일보 사유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명 교수들은 “고대는 결코 어느 한 가문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민족의 대학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 되었기에, 인촌 선생의 후손이라고 해서 능력과 자질에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이사장직을 계승하는 관행은 용인되기 어렵다.”며 “김 이사장이 고대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청사진과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제시함으로써 명문 사학의 법인 이사장이 되기에 부족함 없는 경륜과 식견을 갖추고 있음을 스스로 입증할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재벌과 대형교회의 세습에 이어 사학도 이미 세습 체제가 된지 오래다.

두 번째는 법인의 불투명한 운영을 지적한 것. 서명 교수들은 “고대의료원에 의약품을 독점 납품했던 (주)수창양행과 관련된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며 “수창양행이 2011년 3월 이후로 김 이사장 가족 구성원들이 소유하는 족벌체제로 변경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인지, 그리고 이 업체의 수익금전액이 과거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밝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비록 수익금 일부가 대학발전기금 명목으로 법인에 전입되었더라도 의료원의 독점적인 납품권을 가진 업체의 지분 전부를 김 이사장 가족이 소유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라는 것.

이른바 ‘의료원 수익사업 건’은 김 이사장의 부친 고 김병관 이사장이 당시 김 씨 일가친척과 나눠 가졌던 (주)수창양행의 소유 지분 이전과 관련된 것으로, 지난해 3월 김 이사장 가족의 소유로 변경된 이후 수익금을 의료원에 재투자하지 않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서명 교수들은 이와 함께 최근 설립된 의료원 납품업체 (주)수창양행과 스마트엠매니지먼트(주)의 지배구조와 수익금 처리 내역, 안암 및 안산 장례식장의 식당·구로병원 주차장 업체·법인 관리 수탁업체 등의 운영현황 등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간 의료원 수익사업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투명하게 밝혀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명 교수들은 의료원 및 관련시설과 업체에서 나오는 수익은 전적으로 법인에 귀속돼 학교나 의료원을 위해 쓰여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거 의대 학장 선거에 나섰던 후보들은 “의료원 부대사업을 재단에서 의료원으로 가져오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으나 실현된 적은 없다. 고대의료원 측은 소위 ‘빅5’에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재정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데일리매드>는 고대의료원의 한 교수가 “부대사업을 제쳐두고서라도 의료 수익만이라도 재투자된다면 의료원이 지금보다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고려대병원(안암동) 입구

 

셋째는 총장 선출을 둘러싼 불공정 시비. 서명 교수들은 “우리는 법인이 그동안 총장 선출 과정에서 공명정대하게 처신해 왔는지 묻고 싶다.”고 말문을 열고는 “법인이 최종 선임한 총장이 재임기간 동안 고대를 세계의 명문 사학으로 발전시키기는커녕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마저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때 그를 총장으로 선임한 법인은 이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인이 총장 후보자들의 자질과 능력, 리더십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끝으로, 김병철 총장의 ‘발전기금 내역 공개’ 건. 서명 교수들은 김 총장이 공약했던 학교발전계획의 실현상태와 지금까지의 순수 모금액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김 총장이 남은 임기 동안 실천할 연차별 학교발전계획과 연도별 순수모금 목표액을 제시하고 퇴임 직전에는 공약사항의 실천 결과를 담은 ‘백서’ 발간도 요청했다. 특히 이들은 최근 김 총장이 교수들의 연구실적 평가기준을 대폭 강화한 것을 두고 총장으로서 교수들의 연구환경 개선을 위해 그간 뭘 했고 또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도 밝히라고 주장했다. (참고로 지난해 고려대는 순수 기부금 458억원을 모아 전국 1위를 했으며, 올해는 500억원을 예상하고 있다)

한편, 서명 교수들의 주장대로라면 고려대는 현재 적잖은 문젯점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사학 경영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주의 후손이 법인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그 일가친척은 대학 부속 의료원에 의약품을 독점 납품하는 회사의 지분을 전부 소유한 채 수익금도 챙기고 있다면 말이다. 땅 짚고 헤엄치기에다 요즘 사회적으로 말썽이 된 재벌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다름 아니다. 서명교수 들이 김 총장을 향해 “단과대학-학과의 자율권을 무시한 일방적인 교무행정을 시정하고 대학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유능한 인물을 기용하라”고 요구한 걸로 보면 김 총장의 독단성도 읽히는 대목이다.

물론 국내 대학(특히 사학) 가운데 이런 문젯점을 가진 대학이 고려대만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학 재단이 세습되고 있는 현실에서 후세 경영자들의 능력 검증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그러다보니 친인척이 대거 재단에 몸담으면서 온갖 비리의 온상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들은 사학비리가 꼭 ‘사건화’ 됐을 때 검찰발 기사로 다뤄온 것이 그간의 방식이었다. 유력 신문인 ‘조중동’ 3사 모두 서울시내 주요 대학의 재단과 이런저런 인연을 맺고 있으며, 특히 광고 건 등과도 맞물려 사태가 터져도 대개 ‘눈감고 아웅’ 하는 식이다. 건전한 사학 육성을 위해 언론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건 현재로선 과연 ‘기대난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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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간 그곳, 문재인은 왜 못 가나?"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2/10/29 08:25
  • 수정일
    2012/10/29 08:2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현장] 현대차 비정규직에 응답할 대선 후보는?

최하얀 기자,최형락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2-10-28 오후 12:48:17

 

높이 20미터, 위로는 15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송전탑.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 천의봉 씨가 이곳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 열흘이 넘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철탑을 움켜쥘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이들. 천 씨는 물기를 타고 흐른 전기가 흠뻑 젖은 자신의 몸을 통과해버릴 거란 위태로운 상상에 눈을 감곤 한다고 했다.

지난 26일, '현대차 1박 2일 포위의 날'에 참가한 이들은 그래서 연신 비 걱정을 했다. "오늘 진짜 비 온대요?"란 질문은 누구를 만나든 쏟아졌다. 해가 지면 저녁 바람이 불고 비가 올 거란 일기예보를 믿고 싶지 않은 마음. 이는 곧 "거 절연 옷 좀 입으라 하소"란 잔소리로 이어졌다.

최 씨와 천 씨는 지상에서 사람들이 올려보내 준 절연 옷을 입지 않는다고 했다. 감전 위험이 사라진 새를 틈타 경찰과 사측 용역이 자신들을 끌어내릴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는 물론 기우가 아니다. 이들이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난 17일, 사측은 용역 4명을 동원해 농성장 침탈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사측 관리자 한 명이 "최병승을 떨어뜨려 죽여라"라는 말을 했다고 현대차 지부 김대식 조합원은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적어도 '1박 2일 포위의 날'이 열린 이날 밤만큼은 침탈 위험이 없었다. 최 씨와 천 씨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1000여 명이 울산 현대차 공장으로 모여들었기 때문. "오랜만에 저 두 사람 문화생활 좀 하게 합시다"란 사회자의 말과 함께 송전탑 주변은 춤과 음악으로 채워졌다.
 

▲ 송전탑 위에서 집회 참가자들을 반기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병승, 천희봉 씨 ⓒ프레시안(최형락)

박현제 지부장 구속영장 기각, "대법 판결 안 따르는 현대차에 경고 사인 준 것"

오후 4시 40분께, 박현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 풀려났다는 소식이 집회장소로 전해졌다. 법원이 이날 있었던 영장실질심사에서 박 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 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지회장이 풀려났습니다"라고 소리치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앞서 지난 24일 박 지회장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잠복 중이던 사복 경찰에 의해 긴급 체포됐다. (☞ 관련 기사 보기)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와의 면담을 10분 남겨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비정규직 노조는 물론 정규직 노조도 이번 체포에 강하게 항의했다. 다른 곳도 아닌, 공장 안에서 노조 간부를 경찰이 체포한 것을 노조는 '도발'로 받아들였다.

게다가 이번 체포가 경찰의 자체 판단이 아닌, 사측의 독촉에 따른 일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에 따르면 문용문 지부장이 울산경찰청장에게 "경찰 자체 판단이냐"고 따져 묻자, 경찰청장은 "사측이 오전, 오후 두 번에 걸쳐 빨리 체포해가라고 독촉했다"고 실토했다.

이에 지부 울산공장 운영위원회는 25일 저녁 긴급회의를 소집, 울산공장 주간 조 잔업 거부를 결정했다. 비정규직 3지회(울산·전주·아산)는 26일 오전부터 일일 파업을 전개했다. 이들은 "김억조 현대차 부회장이 불과 약 열흘 전 국정감사에서 이른 시일 안에 교섭을 재개해 사내하청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 말이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며 "현대차는 국회마저도 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박 지회장은 풀려나자마자 최 씨와 천 씨가 있는 송전탑 주변으로 돌아왔다. 멀찍이서 걸어오는 그를 알아본 동료는 한걸음에 달려가 박 지회장을 더럭 끌어안았다. "행님!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동료의 말에 박 지회장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번 영장기각에 대해 박 지회장은 "많은 사람이 노력해준 결과"라며 "나 때문에 마음고생 하고 힘써 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번 법원 판결은 대법원의 '사내하청은 불법'이란 판결을 따르지 않고 있는 현대차를 향한 따끔한 경고"라고 풀이했다.

"사측의 3000명 신규채용 안은 '꼼수'"

대법원은 재작년 7월과 올해 2월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이며, 이에 따라 2년 이상 재직한 사람은 '정규직'이라고 판결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현대차 소유의 시설 및 부품을 사용하며, 현대차의 작업 지시서에 따라 일을 한다는 점, 또 공장 작업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 흐름 방식이라는 점이 근거가 됐다.

하지만 사측은 지난 8월, 2016년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3000명을 '신규'로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현대차에는 약 8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있다. 결국 이들 중 일부만 회사가 '감별'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공장 재배치를 통해 합법적인 사내하청으로 남기겠다는 계획이다. 노조는 당연히 반발했다.

더욱이 사측이 제시한 3000이란 숫자가 현대차에서 2016년까지 정년퇴직할 사람의 수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공분을 샀다. 노조에 따르면 현대차에서 2016년까지 정년퇴직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2845명이다. 결국, 현대차는 노사협의에 따라 당연히 신규 채용해야 할 자리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사내 하청을 채워 넣으려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관련 기사 보기)

ⓒ프레시안(최형락)

'찻잔 속 태풍' … 정규직 노조와 정치권 노력 더 뒷받침돼야

이처럼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국회를 조롱하며 재벌은 법 위에 있다는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태 해결을 위해서는 더더욱 정규직 노조와 정치권의 힘이 필요한 상황이다.

일단 정규직 노조는 25일 밤 잔업 거부로 한 발을 뗐다. 26일 '현대차 1박 2일 포위의 날'엔 이례적으로 문용문 정규직 노조위원장이 무대에 올라 '원하청 공동투쟁'을 주제로 연설하기도 했다. 송성훈 현대차 아산 비정규직 지회장이 이날 "오랜만에 정세가 좋다"라고 평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송전탑 위에 있는 최 씨는 금속노조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촉구했다. 최 씨는 이날 "2012년에는 수년에 걸친 현대차 사내하청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며 "비정규직들이 물론 앞장서겠지만,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뒤따라줘야 한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최형락)

반면 이날 집회 참석자 대다수는 정치권에는 별 기대를 드러내지 않았다. 무소속 안철수, 진보정의당 심상정,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선 후보가 송전탑을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공언했지만, 여전히 영 믿음이 안 간다는 눈치다.

김상학 현대로템 창원 지회장은 이날 "(대선후보들은) 선거철이라 온 거다. 별 뜻있겠나"라며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재벌중심 경제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기륭전자 분회장도 "대선 후보들에겐 큰 기대 없다. 그 사람들이 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국가 위에 있는 사회 구조 때문"이라고 전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25일 울산을 방문하고도 송전탑 농성장에는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지원이 절실한데도, 이런 노동자들의 마음을 민주당이 너무 못 따라가는 상황인 것.

오 씨는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을 두고 그래서 '찻잔 속 태풍'이라고 표현했다.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송전탑에 올라 위태롭게 시위하고, 현대차와 경찰은 자신들만의 셈법으로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는 긴박한 상황. 그러나 태풍은 울산에서만 휘몰아칠 뿐, 이를 넘어 바깥으로 전파되지는 못하고 있단 얘기다.

이에 노조는 25일 각 대선 후보들에게 '현대차 불법 파견에 대한 입장 요구 공개 질의서'를 전달했다. 그리고 오는 31일 후보들의 답변을 수합해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달 17일에는 다시 한 번 '1박 2일 현대차 포위의 날'을 울산 공장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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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 "국보법 우려, 폐지" 사형선고

 

 

 

국제사회 "국보법 우려, 폐지" 사형선고
 
유엔 정례인권검토 심의 결과 발표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2/10/29 [08:28] 최종편집: ⓒ 자주민보
 
 

▲ 국가보안법은 반민족, 반통일, 반민주, 반민중, 반인륜적법으로 국제사회로 부터 몰매를 맞고 있다. 본지 이창기 대표역시 국가보안법으로 2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 이정섭 기자
유엔 인권위가 수차례 폐지권고를 내렸던 국가보안법이 국제사회의 우려를 자아내며 폐지 권고 결정을 받았다.

법무부는 지난 25일 스위스 유엔 제네바 본부회의장에서 열린 한국에대한 제2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RP) 심의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총 67개국의 관심과 참여 속에 이루어진 이번 UPR 심의에서, 정부대표단(수석대표, 법무부차관 길태기) 인권에 관한 우려사항에 대하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가국들은 양성평등, 난민, 공적개발부조에 관해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참가국들은 한국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국가보안법, 사형제,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 일반적 차별금지법 부재 등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폐지 권고했다.

한국 정부는 12월 중 국가인권정책협의회(의장, 법무부장관)를 개최하여 이번 심의 결과를 논의하고 권고사항에 대한 수용 여부를 결정하여 UN 인권이사회에 통보할 계획이자만 이명박 정부하에서 폐지 권고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양심수 후원회 권오헌 명예회장은 “국가보안법 폐지권고는 UN은 물론 미국정부와 의회에서 조차 매해 폐지권고가 거론되는 문제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는 악법중의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정부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분단과 적화통일을 할 수 있다는 모호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통일을 가로막고,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유지하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즉각 폐지 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에 관해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정부와 국회 모두 폐지하고 대체복무제로 법제화 되는 단계에 이르렀으나 이명박 정부들어 폐기 되고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 상태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 하루빨리 대체복무제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사형제폐지를 위한 노력은 오래된 일로, 당연히 폐지되어야 한다. 재판을 거쳤다하더라도 판결은 사람이 하는 것으로 잘 못 된 판단 내릴 수 있다. 또한 인혁당 사건처럼 정치적으로 악용 될 수도 있다. 잘 못된 판결에 의해 사형이 집행 된다면 되 돌 릴 수 없다. 보복형 판결로는 이 아닌 사회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범죄 가 줄어 들 수 있다”며 사형제 폐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한편 이번 국제사회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는 최근 국방부가 국가보안법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국군의적으로 규정한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마녀사냥인지를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고 있고 있으며 국가보안법폐지가 당연함을 반증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국가별 정례인권검토는 유엔에 가입한 193개국의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권고하기 위해 유엔 인권이사회 설립 이후인 2008년 도입된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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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퇴선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진보정당들 '노동'으로 하나 돼야"

"민주노총 출범 이후 '지지후보' 없는 대선은 처음"

[인터뷰] '사퇴선언'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진보정당들 '노동'으로 하나 돼야"

12.10.28 21:16l최종 업데이트 12.10.28 21:16l
최지용(endofwinter)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이하게 됐다"며 "대선 선거방침을 정해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는 무리"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4·11총선에서 '진보정당 지지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집중투표'를 선거방침으로 결정한 바 있다. 이후 통합진보당 사태로 이 방침은 철회됐고 현재까지 같은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무리하게 선거방침을 정하기보다는 아주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려 한다"며 "노동자들이 투표권을 쟁취한 지 100년이 됐지만 현재 비정규직은 그때와 다를 게 없다,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대선방침"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최근 투표시간 연장을 통한 노동자들의 투표권 보호 캠페인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다.

최근 민주노총은 차기 지도부 선출에 직선제 시행을 놓고 몸살을 겪고 있다. 자난 2010년 규약 개정을 통해 직선제 시행을 결정한 만큼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측과 준비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로 유예해야 한다는 측이 맞서고 있다. 김 위원장은 규약을 준수하고 실제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직선제를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최근 대의원대회에서 직선제 유예안을 제출했으며, 규약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위원장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규약에 명시된 직선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예안을 대회에 제출했다"며 "그 이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규약을 준수해야 할 책임자로서 이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했다"며 사퇴 이유를 밝혔다. 그는 지난 2010년 1월 당선돼 2년 9개월 동안 민주노총을 이끌어왔다. 김 위원장의 사퇴는 오는 30일 예정된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공식화할 전망이다.

"대선 캠프 간 민주노총 인사들, 변화 만들어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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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은 지난 임기 동안의 소회를 털어 놓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 직후 위원장에 당선된 김 위원장은 오랫동안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의 진보정당'을 강조해왔다. 이를 위해 지난 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 통합논의 과정에서 국민통합당을 제외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선통합을 주장했지만 관철시키지 못했다.

또 총선 이후 불거진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부실부정선거 논란에서도 사태 수습을 위해 당혁신위원회의 혁신안 수용을 촉구했지만 이마저도 실패했다. 이와 관련해 김 위원장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민주노총은 불타는 절을 보고 있는 심정이었다, 우리의 진정성이 당에 전혀 접수되지 않았고 결국 백약이 무효였다는 절망만 남았다"며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두 번의 큰 정치적 역할에 실패했지만 김 위원장은 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와 복수노조, 노동법 개정 등 이명박 정권 들어 악화된 조건 속에서 조직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가 이전 정권과 차원이 다른 점은 우리를 전혀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는 "차기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내수를 살려야 하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투쟁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최근 민주노총 출신으로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캠프로 들어간 인사들과 관련해 "기본적으로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며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고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나로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판단을 존중하지만 갔으면 선거용이 아니라 각 후보 진영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며 "단순히 정치인으로 이미지 변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그냥 '이탈'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문 후보 캠프에는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영주 전 전교조 경남지부장, 이경훈 전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 이성립 전 권영길 의원 보좌관, 이상현 전 민주노동당 대변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안 후보 캠프에도 이용식·김태일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남궁현 전 민주노총 건설연맹 위원장, 곽태원 전 사무금융연맹 위원장, 김영길 전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 이수봉 전 민주노총 부총장, 김형근 전 서비스연맹 위원장 등이 들어갔다.

다음은 김영훈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최근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유가 무엇인가?
"민주노총이 직선제 관련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달 임시 대의원대회 무산 이후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결국 규약에 명시된 직선제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상황에서 직선제 유예안을 대회에 제출했고, 그 이유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규약을 준수해야 할 책임자로서 이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생각했다. 오히려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도 있지만, 책임논란이 일면 건강한 토론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민주노총 위원장 직선제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직선제를 통해 민주노총의 혁신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모순은 중앙에서 선거를 철저히 준비할수록 산하 조직들은 어려워졌다. 구체적으로 말해 선거의 기본이 되는 선거인명부 문제다. 누가 선거권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조합비 납부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부정선거 시비가 없어지는데, 일부 조직들은 조합비 내역을 올리기 어렵다. 대공장처럼 체계적인 곳은 모르지만 화물노동자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나 비정규직 조직들은 체계적으로 하기 쉽지 않다.

반대로 기준을 완화해서 선거를 치르면 기준이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발생한다. 직선제를 각 산별이나 산하조직에 맡겨버리면 부정이나 부실 논란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조직이나 조합원을 믿지 못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노총의 16개 가입연맹 중에 절반 정도 직선제를 실시하는데, 그 방식이 조금씩 다르다. 연맹직선제에서 용인되는 게 있는데 이것을 민주노총의 일방기준으로 맞추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현장투표, 모바일, ARS 등 그 방식을 각 조직별 특성에 맞춰야 한다.

어떻게 보면 직선제는 극단적인 다수결의 원칙이다. 잘못하면 승자독식에 따른 중앙패권강화로 나타날 수 있다. 직선제는 조합원의 참여라는 장점이 있지만, 다양성을 해치는 부작용도 있는 제도다."

"직선제, 중요하지만 과도한 의미부여 안 된다"

- 그렇다면 현재의 대의원 대회를 통한 간선제를 유지하자는 이야기인가? 현재까지 설명을 들어보면 직선제 유예안이 아니라 폐기안을 말하는 것 같다.
"현재의 민주노총 위원장 선출제도가 잘못된 형태로 고착돼 있어 이를 개선하기 위한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필요하다. 그래서 직선제 폐지안이 아니라 유예안을 냈다. 직선제는 이론적으로 더 따져봐야 할 게 있다. 직선제가 과연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인가? 직선제든 간선제든 직접민주주의와는 관계가 없다. 대의민주주의의 수단이고 절차일 뿐이다. 국가와 민주노총은 다르다. 민주노총은 어떻게 보면 연방국가처럼 다양한 조직의 결사체다.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도 충분히 가능하다.

지금 대안이 될 수 있는 건 각 연맹별로 광범위한 선거인단을 구성해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연맹별 특성을 고려할 수 있고 80만 전체 조합원의 참여도 보장된다. 다수결 방식으로 했을 때 발생하는 승자독식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차점자가 수석부위원장, 그 아래 차점자가 사무총장을 맡는 식의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민주노총 위원장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치방침을 제외하고 큰 차이가 없다. '국가와 자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공통의 책무가 있기 때문에 후보 사이에서 정책의제가 크게 갈리지 않는다. 그럴 경우 다수결 투표로 뽑는다면, 인물이나 정파, 진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소수자와 여성 등 다양한 구성의 지도부를 꾸리기 위해 고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 위원장의 그런 고민이 있다고 해도 2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미리 충분한 토론이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직선제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게 시기적으로 너무 늦은 것 아닌가? 통합진보당 비례후보 투표 논란에 영향을 받았을 것도 같다.
"절대적으로 반성하는 부분이다. 중앙집행위원회 차원에서 토론은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직선제에 대한 기대는 분명히 있다. 직선제는 단순히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아니라 아주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다. 이걸 전 조합원들과 전 조직적으로 소통하고 토론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물론 조금이라도 빨리 했으면 좋았겠지만, 올해 중반까지도 어쨌든 간에 직선제를 시행하는 방향으로 일을 추진해 와서 선회하기가 쉽지 않았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영향을 받은 것도 맞다."

- 통합진보당이 그랬던 것처럼 결국 민주노총의 직선제도 정파 간의 이해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일부 있다. 위원장에 당선될 때 건강한 정파조직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특정 정파의 소속은 아니지만 정파조직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으로 '저를 지지하지 않은 분들과 더 많이 이야기 하겠다'고 했다. '대중의 이해'와 '정파의 이해'가 부딪칠 때는 당연히 대중의 이해에 부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정파의 이해가 극심하게 드러난 게 통합진보당 사태라고 할 수 있다. 부정부실 선거 논란보다 그 후속조치에서 정파의 이해만 앞세우는 모습은 공당으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 민주노총의 직선제 논의에서도 직선제를 시행해본 지역본부에서는 정파를 뛰어넘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로 일부의 사람들은 직선제가 어렵다고 했다가 갑자기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마치 민주노총이 직선제를 못하면 보수언론에서 떠드는 '직선제도 못하는 조직'인 것처럼 말하며 지도부의 총사퇴를 요구하는 분들도 있다. 마치 직선제가 민주노총 혁신의 모든 것처럼 말하는 식이다. 중요한 사안이지만 직선제의 의미가 과도하게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다."

- 유예안이 대의원대회에 제출됐지만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존재한다. 30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통과가 가능한가?
"일단 대의원대회가 무산되면 안 된다. 직선제 유예안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결정이 나야 한다. 특정 정파에서 대회를 무산시키기 위한 전술을 쓰지 않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보수 언론의 비아냥거림을 우리가 스스로 인정해버리는 꼴이 된다. 민주노총의 저력을 믿고 마지막으로 대의원들에게 호소한다. 대의원대회를 성사하고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자."

이정희·심상정 후보에게 한마디... "모르겠다, 노코멘트다"

- 통합진보당이 결국 분당의 길을 갔다. 당의 기반이었던 민주노총이 상당히 압박을 가했음에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번 인터뷰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마지막 희망불씨를 살려 통합진보당을 재건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만 민주노총은 불타는 절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참담했던 건 우리의 진정성이 당내에 전혀 접수가 안됐다는 점이다.(김 위원장은 이 말을 하고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백약이 무효했다는 절망만 남았다."(관련기사 : <"진보당에 '노동' 사라지고 '정파'만 남았다">)

-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현재 진보를 지향한다는 정당이 4개(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신당, 노동중심당)나 된다. 노동중심의 단일한 진보정당을 주장했던 민주노총 위치에서 보면 참담한 상황 아닌가.
"나의 민주노총 위원장 출마 배경에는 지난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상황이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이 아주 중요했다. 역사적 책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돼 참담하다.

그럼에도 진보정당이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노동'뿐이다. '노동중심성'은 어느 진보정당이든 똑같이 이야기한다. 민주, 진보, 개혁 같은 단어는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노동' 없이 그것만으로 진보를 이야기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 창당 당시 일부 사람들이 '노동이란 단어로 통합당에 재 뿌리지 말라'고 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 진보정당의 분열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대선 정치방침은 어떻게 되는 건가?
"민주노총이 생기고 처음으로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없는 대선을 맞이하게 됐다. 정치방침은 변함없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다. 다만 대선을 맞아 선거방침을 정해야 하는데, 현 시점에서 무리해 정하기보다 아주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려고 한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 노동자들의 투표권 쟁취과정이라 볼 때, 100년이 지났지만 투표할 수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태는 다르지 않다. 1000만 명에 육박하는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들의 투표권을 보장하게 하는 것이 민주노총의 대선방침에 최대 투쟁과제다. 어떤 후보를 지지할 것인가 만큼 유권자, 특히 노동자에게 투표의 권리를 부여하는 것도 중요하다. 비정규직에게 투표권이 보장될 때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시작된다."

-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특정후보를 지원하는 방침은 없다는 말인가.
"지금 당장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선거방침은 중앙집행위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상황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다.

-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후보가 출마했다. 두 후보에게 한 마디 한다면.
"모르겠다. 노코멘트 하겠다."

"대선후보들 노동행보, 진정성 있으려면 현안부터 해결해야"

제122주년 세계 노동절인 5월 1일 오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세계노동절 기념대회 및 세상을 바꾸는 노동법개정 총파업 투쟁 출정식에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정리해고 해결과 비정규직 철폐, 노동법 전면 재개정 등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결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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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캠프에 민주노총 출신 인사들이 대거 영입됐다. 민주노총은 성명을 내고 '이탈'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비판한 바 있다. 위원장도 정치권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데.
"기본적으로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다. 그분들 입장에서는 정권교체가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진보정치가 희망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적으로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본다. 존중하지만 갔으면 일회용, 선거용이 되는 게 아니라 각 후보 진영의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단순히 정치인으로 이미지 변화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보기에 그냥 '이탈'했을 뿐이다. 나머지 의견은 논평과 일치한다."

- 문제를 일으켜 내부징계를 받은 인사까지 민주노총의 이름을 달고 캠프에 들어갔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 지적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진보정치를 재구성하고 통합시키지 못한 책임이 있는 나로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

- 현재 유력 대선후보들의 노동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를 포함해 모두가 비정규직 문제를 이야기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결국은 진정성 문제다. 다 표를 인식해서 말을 하지만 바로 실천에서 나타나야 한다. '내가 집권하면 어떻게 하겠다' 보다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쌍용차사태,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목소리에 집권여당이나 제1야당의 후보는 바로 실천해야 한다. 이 자리를 빌어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쌍용차 사태 국정조사 실시와 현대차 불법파견에 행정조치를 내릴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 '이명박 대통령보다 하루라도 더 일하는 위원장이 되겠다'고 했는데, 그건 못 지키게 된 것 같다. 소회를 밝혀달라.
"약속을 못 지키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나보다 MB가 먼저 임기를 마치게 할 각오로 하겠다는 의미였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사실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중요한 자리에 있게 된 것도 능력에 비해 과분했다. 조직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었다. 민주노총이라는 자신감, 자긍심을 강조하려고 했다. 민주노총 조끼를 입고 다니는 게 부끄럽지 않게 하고 싶었다. 인상에 남는 것은 산별연맹들과 뜻을 모으는 시간, 토론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던 점이다. 이런 기풍은 앞으로도 유지돼야 한다."

- 다른 정권과 그랬지만 이명박 정권의 노동탄압은 뭔가 특별했던 것 같다.
"어느 정부든 반노동 내지는 친기업적 성향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다른 정권과 차원을 달리하는 것은 우리를 상대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노동을 탄압할 뿐 아니라 완전히 무시했다.

그런 과정에서 총연맹의 기능 중에 하나인 정부를 상대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채필 현 고용노동부 장관도 한 번 본 적이 없다. 임태희 전 장관이 대통령실장으로 가면서 타임오프철회 단식농성장에 온 게 유일한 공식 접촉이다. 그러면서 민간인사찰, 노조파괴 공작 등 온갖 더러운 짓은 다 노동관료들이 앞장섰다. 그것만으로도 이 정권의 수준이 명확히 드러난다."

- 사퇴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정치로 진출하는가?
"당장 기존세력에 들어가 활동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정치영역을 넓혀가는 방법을 찾아볼 생각이다. 우선은 '꿈꾸는 기관사'(김 위원장의 온라인 닉네임)로 돌아갈 거다. 철도노조 현장으로 다시 복귀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지만 진보정치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일에 복무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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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연재> 곽동기의 통일경제 (9)
 
 
2012년 10월 29일 (월) 07:57:32 곽동기 dkkwak76@naver.com
 

곽동기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목차

1. 경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2. 세계자원전쟁, 남북협력으로 극복하자
3. 에너지 위기 돌파할 서해유전협력
4. 식량주권 시대, 이제는 통일농업이다
5. 민족 공동 번영의 토대를 마련할 SOC 경협
6. 통일의 열차 경의선
7. 대륙경제시대를 여는 남북물류 혁명

8. 한국경제 돌파구를 여는 개성공단
9.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10. 정체된 조선업, 남북협력으로 돌파
11. 재벌에 맞설 중소기업의 필살기

12. 눈앞에 펼쳐질 통일 관광대국
13. 새롭게 주목할 북한경제특구

14. 경제회생의 보검 6.15/10.4 선언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

나로우주센터가 세 번째 인공위성 발사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2009년 8월과 2010년 6월의 실패에 이은 세 번째 도전이다.

그러나 도전은 쉽지 않다. 10월 26일, 인공위성을 발사할 예정이었지만 발사를 5시간 앞두고 기체결함이 발견되어 발사대에서 다시 내려진 뒤 수리에 들어갔다. 러시아에서 들여온 1단 로켓의 고무링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나로호는 발사체 대부분을 차지하는 1단 로켓을 러시아에서 들여왔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공수해 온 1단 로켓과 국내제작한 2단 킥모터를 결합하는 공정을 거쳐야 한다.

러시아 기술진은 발사대와 연결된 1단 로켓에서 헬륨가스를 아무리 주입해도 적정압력(220기압)에 이르지 않자 문제 점검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 결과 고무 '실'(Seal) 부분에서 헬륨가스가 새고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육안으로 검정색 고무링이 터져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나로호는 오전 11시부터 발사대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시작해 오후 늦게 나로호를 1.8㎞ 떨어진 발사체 종합조립동(AC)으로 옮겨져 수리에 들어갔다. 아무리 빨라도 10월 31일에나 발사가 가능한 상황으로 되어버렸다. 나로호 3차 발사 성공 가능성이 확연히 줄어들고 말았다.

발사연기의 원인은 o-ring 파손

나로호 발사를 연기시킨 주범은 흔히 o-ring이라고 부르는 검은색 고무링이다. 일반적으로 가압 또는 진공장비는 장비의 이음매에서 가스가 누출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장비의 모든 이음매마다 고무링을 삽입해 틈새를 밀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 사용하는 동그란 고무링을 o-ring이라고 부른다.
 

   
▲ <그림 1>o-ring 나로호 발사준비 시 터져나간 고무링은 이와 같은 o-ring 이다.

물론 헬륨가스는 반응성이 없으므로 o-ring을 사용할 수 있지만 o-ring은 한마디로 말해 합성고무로 만든 링이다. 고무로 만든 링은 점화시 온도가 급상승하는 등 급격한 온도변화 시 내구성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장비의 밀봉시에는 o-ring이 아니라 구리 가스켓을 비롯한 금속 가스켓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금속을 부식시킬만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테프론 o-ring이나 화학처리된 o-ring을 사용하기도 한다.

o-ring을 사용하는 진공 또는 가압 장비에서 가스가 새어나오거나 유입되는 현상을 leakage, leak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통상적인 leak은 매우 미세하게 가스가 누출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나로호 발사처럼 220기압 정도의 압력까지 가압하는 장비에서 통용되는 leak은 대체로 가스 주입 후 수 시간은 지나야 확인될만큼의 작은 규모이다. 물론 불과 몇 분만 정상작동하면 되는 로켓의 특성상 반응성 없는 헬륨가스의 미세한 누출은 덮어두고 발사했을 개연성도 없지 않다.

이번 나로호의 사고는 일반적으로 통용하는 leak의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다는 데 있다. 아무리 헬륨가스를 주입해도 압력이 오르지 않는다는 러시아 기술진들의 말이나 육안으로 보아도 고무링이 터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을 볼 때 이 정도면 진공, 가압장비에서 흔히 말하는 단순한 leak이 아니라 한마디로 “피익”하는 소리를 내며 줄줄 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그야말로 대형사고이다.

헬륨가스를 주입하는 220기압이 대단히 높은 기압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일반적으로 시중에 통용되는 가스봄베도 대체로 400기압까지 가압할 수 있다. 조광래 항우연 나로호사업추진단장은 "사소한 문제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 얼마나 심각한지는 뜯어 봐야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나로호의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자

나로호 발사는 원래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2단으로 구성된 나로호의 추진체에 해당하는 1단 로켓은 길이 25.8m, 지름 2.9m, 무게만 130톤에 달한다. 발사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단계 부분이 러시아에서 조립된 러시아산이라 사실상 수입로켓이다.

   
▲ <그림 2> 나로호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자. 총길이 33m, 총중량 140톤인 나로호 가운데 국산부분은 위 사진에 나오는 고체연료방식의 킥모터와 인공위성 부분에 불과하다.

러시아가 관련기술 이전에 매우 소극적이라 한국정부가 애초에 내세웠던 우주발사체 관련기술 확보에도 상당한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박태학 발사체 사업단장은 2011년 10월 21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로호에서 보듯 이제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우주 발사체(로켓) 기술을 넘겨줄 나라는 없다"며 "우리 힘으로 만드는 길뿐"이라고 말했다. 단장이 직접 나로호 발사를 통한 러시아로부터의 기술이전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한국형 우주발사체 개발계획에도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이 여의치 않았는데 애초의 개발계획을 달성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정부는 차후 2021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맨 꼭대기에 1.5톤급 위성을 싣고 우주로 올라가는 ‘한국형발사체(KSLV-II)’를 제작해 발사하겠다는 계획이 있었다. 이 한국형발사체의 무게는 총 200톤이며, 엔진은 항우연이 독자 개발하는 1단 로켓용 75톤급 액체엔진이 쓰인다고 한다. KSLV-II는 1단에 75톤급 액체엔진 4기를 병렬로 묶어 총추력 300톤을 내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그런데 발사체 최상단에 적용될 7톤급 액체 추진체 로켓도 2015년에야 개발종료될 계획이며 75톤급 엔진을 개발하고 발사시험을 하는 것은 2019년까지로 계획되어 있다고 밝혔다. 정상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앞으로 3년은 지나야 겨우 7톤급 액체추진 로켓기술을 습득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6년 내인 2021년까지 75톤 엔진 4개를 장착해 도합 300톤 추력의 추진체를 개발해야 하는데 일정이 빠듯한 것이다. KAIST 권세진 교수는 10월 24일 문화일보 기고문에서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은 총 3단계 11년의 계획으로 추진되며 약 1조5000억 원의 개발비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권세진 교수는 “이러한 야심적인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지는 현재로선 불투명하다.”고 언급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권세진 교수는 현재 한국에는 로켓 엔진의 연소시험을 할 수 있는 시설도 없다고 꼬집고 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선 이러한 시설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기술이전에 실패한 상황에서 독자적인 로켓을 어떻게 개발할 것인가? 박태학 발사단장은 사실상 외국과의 기술협력과 재벌기업에 의존하는 방안밖에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 단장은 인터뷰에서 "세상에 100% 독자개발은 세상 어디에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작은 부품 하나 때문에 국내에 공장 만들면 망한다. 엔진이나 연소시험시설처럼 돈 줘도 주지 않는 것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고 하며 “한국형 발사체 프로젝트”도 사실상 외국의존방식임을 시인하였다. 러시아가 기술이전에 인색했으니 이제는 우크라이나 유즈노에(무궁화위성 발사체인 제니트와 아리랑5호 발사체인 드네프르 개발사)와 기술 도입을 위해 집중적인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 발사체 개발단장의 발언이었다.

남북협력으로 우주발사체 개발의 획기적 전환

국내 로켓 기술이 이렇게 막혀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모색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남북의 기술을 한데 모아 우주발사체 개발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북한은 평안북도 동창리에 로켓발사기지를 건설하였으며 은하 2호와 3호를 발사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은하 2호, 3호는 북한이 자력으로 개발한 로켓이다. 그들은 로켓연소실험을 비롯한 다양한 실험을 자체적인 설비를 갖추고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남북이 서로 두 개의 우주발사기지를 세워놓고 중복투자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2012년에 발사한 북한의 은하 3호도 궤도진입에는 실패해 추가적인 기술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액체추진 로켓을 발사는커녕 설계도 못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한 이상의 뛰어난 공동사업 대상은 사실상 없다고 볼 수 있다.

나로호 개발 사업비는 나로우주센터를 제외하면 모두 5025억원. 정부는 이 중 절반인 2억 달러(약 2500억 원)를 1단 로켓을 들여오기 위해 러시아 흐루니체프사에 지불했다. 지난 두 차례의 발사 시 불타 없어진 과학기술위성2호 개발비로 쓴 돈만 136억5000만 원이다.

무려 2500억원을 러시아에 송금하며 나로호를 수입했지만, 기술이전 효과는 미미하였다.

차라리 남북이 협력으로 로켓발사체를 공동 개발한다면 어떨까? 북한의 발사체 기술이라면 한국형 발사체는 2021년이 아니라 당장 2013년이면 가능할 수 있다. 한국의 앞선 인공위성 제작기술과 북한의 로켓기술이 만나면 한국은 바야흐로 순식간에 우주강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눈앞의 탄탄대로를 두고 구태여 러시아로, 우크라이나로 빙빙 돌며 수천억원의 혈세를 낭비하는 것은 현 정부가 한사코 대북대결정책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정권에서 남북간 우주개발협력이 실현된다면, 최소한 우리 인공위성을 북한이 발사해 준다면, 남북의 국력은 비상히 높아질 것이며 그야말로 세계 속의 강한 한반도 시대를 펼쳐갈 수 있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최근 나로호 발사 예정과 연기를 계기로 ‘11. 우주강국 통일코리아’를 ‘9. 나로호 극복방안은 남북공동 위성발사’와 순서를 바꿨음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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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의 비약, 69살 스웨덴인 사망률은 15살 수렵채취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2/10/28 07:21
  • 수정일
    2012/10/28 07: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조홍섭 2012. 10. 26
조회수 5320추천수 0
 

인류역사 8000세대 중 마지막 4세대 동안 사망률 100분의 1로

수렵채취인 사망률 현대인보다 침팬지 가까워…유전자 변화보다 환경변화 때문

 

Ian Beatty.jpg »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수렵채취인 산 족. 인류 역사 8000세대의 삶은 생물학적으로 이들과 비슷했지만 마지막 4세대 동안 극적으로 바뀌었다. 사진=이언 비티, 위키미디어 코먼스

 
인간은 동물이다. 백과사전에서 ‘인간’을 찾아보면, 인간의 위치는 분류 단계별로 동물계 척색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사람속에 포함되는 사람종이라고 나온다. 린네가 1758년 이 종에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을 붙였다.
 

인간은 매우 특이한 동물이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가 <인간 동물 문화>(이담, 2012)에서 정리한 내용을 보면, 두뇌가 크고 말과 불을 사용하는 것 말고도 여러 측면에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큰 차이를 보인다.
 

고래나 개미의 예에서 드러나듯이 일반적으로 몸이 큰 동물은 수가 적고 작은 동물은 많다. 사람은 몸이 큰데도 수가 아주 많다. 어릴 때부터 코끼리, 기린 등 큰 동물을 주로 익혀서 그런지 우리가 얼마나 큰 동물인지는 실감하지 못한다. 사실 지구에 있는 생물의 95%는 달걀보다 작다.
 

Human_castle.jpg » 지구상에 사는 성인 인간의 무게를 모두 합치면 3억t에 육박해 단일한 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사진=스페인 카탈로니아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인간 탑 쌓기 축제.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지구의 인간 성인 무게를 모두 합치면 2억8700만t에 이른다. 전체 무게로 쳐 지구에 사는 어떤 단일 종보다 무겁다. 중생대 공룡도 1000종 이상으로 이뤄져 단일 종으로는 인간에 필적하지 못한다.
 

인간은 유력한 무기인 입을 소통수단으로 바꾸면서 턱 근육이 약해져 무는 힘이 침팬지의 3분의 1, 고릴라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또 완전한 직립을 하면서 골반이 좁아져 여성은 극심한 산고를 겪고, 항문이 늘 심장보다 낮은 곳에 위치해 만성적으로 치질에 시달린다.
 

오래 달리기를 위한 적응 과정에서 다른 동물이 보기엔 우스꽝스럽게 털이 없어지고 땀샘이 발달했다. 또 성장기간이 길어 부모가 오래 돌봐야 하는 것도 약점이다.
 

김 교수는 인간이 이런 취약점을 극복하게 된 요인으로 큰 두뇌와 언어·소통능력, 사냥에 필수적인 오래 달리기, 불의 사용을 꼽았다. 여기에 더해 인간에겐 다른 어떤 동물도 따라오지 못할 생물학적 능력이 있다. 잘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것이다.
 

fig1.jpg » 수렵채취인과 비교한 최장수국 일본인의 사망확률을 10년 간격으로 비교한 그래프. 모든 연령대에서 사망률이 현저히 작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림=오스카 버거, PNAS

 

오스카어 부르거 독일 막스플랑크인구연구소 박사팀은 최근 선진국과 아프리카 부시먼 등 수렵채취인 그리고 침팬지의 사망률을 전 연령대에 걸쳐 비교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수렵채취인의 사망률 곡선은 현대인보다 오히려 침팬지에 가까웠던 것이다.
 

fig2-1.jpg » 영장류와 여러 부류 인간의 사망률 비교. 현대인이 수렵채취인보다 사망률이 높았던 것은 노예뿐이었다. 그림=오스카 버거, PNAS

 

수렵채취가 인간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한 삶의 형태임을 고려할 때, 인간의 최근 변모는 주목할 만하다. 사망 확률 면에서 일본의 72살 노인은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30살 수렵채취인과 같다. 수렵채취인은 이미 다른 영장류보다 수명이 긴 상태이다. 15살짜리 야생 침팬지와 63살짜리 수렵채취인의 연간 사망확률은 4.7%로 같다. 15살 수렵채취인의 사망확률 1.3%는 69살 스웨덴인의 것과 같다. 15살의 선진국 사람은 같은 나이 수렵채취인보다 사망률이 100분의 1에 그친다.
 

fig3.jpg » 일생 중 가장 사망률이 낮을 때의 사망률 변천. 침팬지나 수렵채취인이 일정한데 비해 선진국 사람들은 1900년께를 기점으로 급속하게 줄었다. 그림=오스카 버거, PNAS

 

기대여명으로 따져 본다면, 수렵채취인으로 태어나면 31년을 살 수 있고 스웨덴인은 1800년 32살에서 1900년 52살, 요즘엔 82살까지 산다. 인류 역사 전체인 8000세대 가운데 마지막 4세대 동안 종 차원의 비약을 한 것이다.

Woodlouse_탄자니아 이아지 호수_하드자 인_800px-Hadzabe_Hunters.jpg » 탄자니아 이아지 호수 부근에 사는 수렵채취인 아드자 인. 사진=우드라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부르거 박사는 이런 변화가 여러 나라에서 비슷하게 나타나고 동물실험 결과보다 커 유전적 변화보다는 공공보건, 위생, 영양, 교육, 주택 등 환경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동물은 이런 지속적인 환경 개선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인간만의 현상이라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Human mortality improvement in evolutionary context
Oskar Burger, Annette Baudisch, and James W. Vaupel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215627109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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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은 얽힌 원한 풀어 함께 살자는 것

굿은 얽힌 원한 풀어 함께 살자는 것

 
조성제 201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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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굿 사진 <한겨레> 자료

 

 

 

 

굿의 기원

 

무교는 우리 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요, 삶 그 자체였으며 오랜 세월 우리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민족 심성의 원형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굿은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굿은 인간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마을단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우리 민중들과 함께 하여왔다.

 

이렇게 민중들에게 굿을 통하여 무교가 담고 있는 근본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며 실천해 왔다. 그것이 바로 생생지생生生之生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우주의 모든 만물에는 모두가 생명이 있으며 각자 서로의 생명을 중요시하여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화합하여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말한다. 굿이란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영어에 좋다는 뜻인 굿(Good)이 있고 신을 말하는 갓(God)도 굿에서 나왔다.

 

각 지방마다 굿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굿이 추구하는 뜻과 목적은 한가지다. 굿은 우리 민족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 철학, 사상, 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정체성의 결정체다.

 

또한 굿은 현실에서 억압된 인간들의 마음을 해소해주고 화해동심和解同心과 해원상생解寃相生 즉, 살아오면서 생기게 되는 이웃 간의 반목을 풀어버리고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계기를 굿이라는 것을 통하여 제공하는 축제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심성이 담긴 굿을 우리 정신을 잃어버린 시대에 남의 시각으로 남의 정신으로 왜곡되게 바라본 학자들의 기록과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굿은 미신이라 폄하하며 싫어한다.

 

한웅천왕은 소도를 만들어 삼신께 제를 올리고 삼신을 조상으로 삼았다. 그 당시 제를 올릴 때 지금 굿의 원형인 춤을 추면서 삼신께 제를 올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상고시대의 소도는 바로 굿을 하든 장소라고 생각한다. 소도에서 굿을 하면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래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천문天門을 연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산문山門을 연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천문은 하늘의 문이고 산문은 소도의 문으로, 산의 문도 될 수가 있다. 또 지방에 따라서 골매기문이라고도 한다.

 

굿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굿의 기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제천의식들이 굿의 원형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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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산 도당굿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제2대 남해왕 조를 보면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이 말은 무당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남해왕은 시조의 묘를 세워 친누이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은 굿의 기원을 밝히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굿의 기원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남해왕보다 더 훨씬 위로 올라가서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가에 나오는 많은 어원들이 한인시대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세 분의 시대에 종교행사는 하늘을 살피고 교신을 하는 제천의식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주문(사설)을 낭독하고 큰 동작으로 몸짓을 하여 원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쇠꼬리 쥔 놈이 임자」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쇠꼬리를 쥔 사람이 임금이라는 말일 것이다. 즉 무당이 흰 쇠꼬리를 쥐고서 흔들면서 춤을 추었다고 볼 수가 있다. 또 이 말은 천제를 드릴 때 모우旄牛라는 흰 소를 잡았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양을 잡아 제를 올리는 번제의식이 우리의 천제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채 끝에 긴 천을 달아 그것을 쥐고서 춤을 춘다. 이러한 행위도 흰 쇠꼬리를 쥐고서 춤추던 그 때의 풍속이 아닌가 한다.

 

또 풍물패들이 상모 춤에서 전립의 꼭대기에 흰 깃털을 달고 상모를 돌리는 것도, 그 당시 무당이 손에 쥐고서 춤을 추던 것을 지금은 모자 위에 올려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철 따라 춘분마지, 하지마지, 추분마지, 동지마지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지금도 봄에는 꽃맞이, 여름에는 유두맞이, 가을에는 햇곡맞이 겨울에는 동지맞이 굿이라 한다.

 

그 당시 굿은 반드시 큰 산 바로 아래 봉우리에서 굿을 하였다 한다. 또 굿을 할 때에는 반드시 모旄를 꽂고 반드시 춤을 추었다. 이 모를 꽂는 풍속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로 떡시루에 서리화를 꽂는 것이다.

 

단군조선이나 <예>의 무천舞天은 바로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는 뜻이다. 또 영고迎鼓는 북을 치며 마지 한다는 의미로, 동맹東盟은 동쪽하늘에 뜨는 해와 달에게 피로써 맹세한다는 행위이므로, 이것들은 바로 동쪽에 제물을 차리고 북을 두드려 춤을 추면서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지금도 행하고 있는 일월마지 굿이다. 그러다 부루단군 시대에 와서 하늘만 위하는 굿이 아닌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과 팔가八加에서 단군왕검을 숭배하는 의식을 종족의 특징을 살려 만들어지면서 여러 형태의 굿거리가 생겨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 진 <무당내력>이라는 책을 보면 굿을 할 때는 칠성제석거리를 비롯한 모든 거리에서 반드시 단군을 먼저 청배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부루단군 시절에 와서부터 우리가 하는 형태의 굿거리가 생긴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굿을 할 때에는 반드시 공수를 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굿을 할 때 주는 공수는 영험하다고 하여 서로 받으려고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공수가 시작되었고 공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수는 한자로 공수貢壽와 공수供授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 보면, 신시의 음악을 공수라 한다고 하였다. 공수를 다른 말로는 두열頭列이라고도 하기도 하였다.

 

무리는 둘러서서 줄지어 합창으로써 삼신으로 하여금 크게 기쁘시게 하고, 나라가 번영하여 민심이 윤택해질 것을 빌었다고 하였다.

<백호통소의>란 책에서는 공수를 조리朝離라 했다. 조리란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고, 시是와 비非를 가리고, 틀어진 것을 바르게 잡는 다는 뜻이다.

 

또 <통전악지>란 책에서는 주리侏離라 하였고, <삼국사기>는 도솔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 공수貢壽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나 짐승을 제물로 올릴 때 사용하였던 음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누군가 제사를 지내면서 목숨을 바친다는 무서운 말이다.

 

두 번째 공수供授는 제사를 지내는 자가 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할 때 사용하였던 음악이 아닌가 한다. 두열頭列은 제사를 지낼 때 하늘에서 전하는 천부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우두머리들이 줄지어 서있다는 것이다.

 

즉,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열을 지어 서서 천부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공수라고 할 수 있다. 또 공수는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고 순리에 따라 족함을 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으니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는”부분에서는 지금 행해지는 공수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된다.

 

공수가 한자의 뜻대로 하늘에 무당의 목숨을 바쳐 그 집안이 즐겁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면 무당이 굿을 맡을 때는 신중하게 처신하여야 하고 또 목숨을 걸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라 하겠다.

 

지금 굿을 맡아 정성을 드리고 있는 많은 무당들이 허공수를 남발하고 있으니 그 무당들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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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제
53년 대구생. 공무원을 하던 중 굿판을 본뒤 모든 것을 던지고 무속 세계에 뛰어들었다. 2000년 <무속신문> 창간해 편집국장을 지냈다. 무천(舞天)문화연구소장으로서 무속의 근원을 우리 민족의 상고사 속에서 찾고 있다. 저서로 <무속에 살아있는 우리 상고사>, <상고사 속의 무속이야기><민족의 시각으로 바라본 동물의 상징성>, <신을 조롱하는 무당>, <무교이론ⅠⅡ>가 있다.
이메일 : muam777@naver.com
블로그 : http://blog.naver.com/muam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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