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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태백산 도솔암

위기의 태백산 도솔암

조현 2013. 01. 10
조회수 200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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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암

남아있는 마지막 은둔 참선 도량
산림청 도로개설 계획에 존립 위기
천연기념물 많아 환경파괴 우려도

경북 봉화군 소천면 소선리 홍제사 도솔암과 백련암이 산림청의 임도 개설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불교계와 환경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태백산 줄기 비룡산 홍제골 해발 900m에 있는 외딴 암자 도솔암은 선승들로부터 금강산 마하연, 오대산 적멸보궁과 함께 참선과 기도를 함께할 수 있는 3대 도량으로 꼽히는 곳이다. 원효 대사와 사명 대사가 수행했던 도량이기도 하다.

 

산림청이 산불 예방과 숲 가꾸기 등의 명목으로 임도를 개설하면서 불교의 은둔 수행처 대부분이 수행환경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가운데 도솔암과 백련암은 여전히 인적이 찾아들기 어려운 최후의 수행처로 꼽히고 있는 곳이다.

 

홍제골엔 산림청이 2017년까지 도로를 개설한다는 계획에 따라 지난해 3km 산길이 난 데 이어 올해도 공사가 재개될 예정이다.

 

3년째 도솔암에서 홀로 수행중인 자원 스님은 “임도가 예정대로 개설되면 2014년쯤엔 백련암에서 200m, 도솔암에서 500m까지 길이 나 수행 환경 훼손이 불가피하다”며 “이곳은 인적이 없어 천연기념물 산양과 수달이 살고, 최근 사향노루 목격자까지 있는 곳이어서 수행 환경과 천연기념물을 함께 보호하기 위해서 임도를 개설해서는 안 될 곳”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역은 환경단체에서도 주목하는 곳이다. 서기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지난해 6월 도솔암 지역에 산림청 관계자들과 함께 현장 답사를 해 보호 차원에서 도솔암 위쪽 임도 개설은 중단하기로 합의한 지역이다. 경북 문경 봉암사 일대를 국가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한 것처럼 이 일대도 적극적인 보호책이 필요한 곳”이라고 말했다.

 

조계종 총무원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최후의 은둔 수도처 도솔암과 백련암의 수행환경 유지를 위해 산림청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영환 남부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사무소 소장은 “개설중인 임도는 도솔암과는 멀리 떨어져 있고 임도는 지역사회의 발전과도 맞물린 문제기 때문에 지역민들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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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즉각 수검표 나서라” 목소리 높아

 

“민주당, 즉각 수검표 나서라” 목소리 높아
 
시민모임 결성해 본격 압박 나서...국내외 각계 인사 동참 이어져
 
인병문
 
 
18대 대선 개표부정 의혹과 관련해 패배의 당사자인 민주당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상에서 벌이는 수개표 청원 서명운동과 촛불집회, 해외 유권자들의 성명전 등 다양한 형태의 진상규명 촉구 활동이 벌어지고 가운데, 실질적 열쇠를 쥐고 있는 민주당을 강하게 압박하는 형국이다.

개표부정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가장 활발하게 조명하고 있는 <서프라이즈>는 ‘민주통합당에 고함’이라는 알림창을 통해 “민주통합당은 재검표를 요구하는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라며 “민주통합당은 재검표를 요구하라.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라고 촉구하고 있다. <서프라이즈>에는 개표 부정에 대한 의혹 제기와 제보들이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18대대선부정선거진상규명시민모임은 영등포 민주당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밤에는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는 선거 패배뿐만 아니라 독재를 부활시킨 역사의 죄인으로까지 전락하려 하는가”라며 “즉각 수검표와 당선무효 선언을 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당선무효소송 제기 ▲선거시스템 조작에 의한 부정선거 진상규명 착수 ▲전자개표기 사용 금지와 투표소별 수개표 도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문희상 비대위원장에게도 첫 번째 조치로 출구조사조작, 개표방송조작, 개표조작의 3대 선거조작에 대한 진상규명과 수개표를 요구하고 있다.

신앙의 양심으로 수개표를 요구하는 목회자도 있다. 김병균 목사(기독교인권센터 이사, 전 광주전남 기독교협의회장)는 “민주통합당은 최소한 부정선거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민의수렴 차원에서라도, 즉각 ‘당선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수검표를 실시하라”며 “이것은 엄중한 국민의 명령”이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내에선 김정길 전 의원과 정청래 의원이 나섰다. 김 전 의원은 6일 트윗을 통해 “부정개표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이 증대되고 있다.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며 “민주당과 박근혜 당선자는 새로운 정부출범에 앞서 국민의혹을 깨끗이 해소하고 새정부의 부담을 든다는 차원에서 국민들의 재검표 요구를 수용하길 정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9일 트윗을 통해 대선 재검표 국회 청원의 소개의원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대선 재검표를 국회 행안위에 청원하려면 소개의원이 있어야 하는데 시민 청원단이 저보고 하라시길래 군말 없이 제가 맡기로 했다”고 전했다. 시민청원은 다음 주 초에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문경환 <동북아의 문> 대표는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대의보다 부정선거가 아닐 경우 닥칠 역풍에 더 몸을 사리는 듯하다”며 “이런 자세로 박근혜 정권 5년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문 대표는 통합진보당에게도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민주당이 못 하면 진보당이 나서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미동포 강모 씨는 <사람일보> 등에 보낸 격문을 통해 민주당의 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강모 씨는 “현실을 회피하며 시간을 끄는 것은 바로 민중의 뜻을 배반하고 진실과 정의를 배반하고 민족의 장래를 배반하는 일”이라며 “민주당에 실망한 민중이 애원하다 지쳐서 그대들의 등에 비수를 꽂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하며 수개표 실시를 촉구했다.

사회단체인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개표부정보다는 선거부정에 진력하는 상황이다. 이 단체는 9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통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단체는 “경찰조사에서 밝혀진 국정원 여직원의 의도적 여론조작 개입 흔적 수사 결과만으로도 대통령 탄핵사유가 될 정도의 심각한 사건”이라며 “국정원의 대선개입, 부정선거 사건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과 비견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 일부 언론은 국정원 관계자 말을 인용해 심리단 소속 직원 70여명 정도가 대선에 개입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문재인 후보 대변인을 역임했던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부정선거시민모임과 면담에서 당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당에서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행보가 주목된다.


<인병문 기자>

 
 
 
 
 
기사입력: 2013/01/10 [10:03] 최종편집: ⓒ 사람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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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기준은 박정희 명예 회복…역사 전쟁 벌일 것"

"박근혜 기준은 박정희 명예 회복…역사 전쟁 벌일 것"

[새해 연속 인터뷰 ②]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

김덕련 기자,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10 오전 9:22:26

 

2013년 새해가 밝았다. 이명박 정권이 막을 내리고 박근혜 정권이 닻을 올릴 날이 머지않았다.

박근혜 당선인은 18대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 '박근혜 당선은 이명박근혜 정권의
연장'이라는 비판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며 선을 그은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일까' 하는 세간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남긴
과제를 박근혜 정권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풀어갈 것인지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다. <프레시안>은 언론, 역사, 노동의 세 주제를 중심으로 이 사안을 짚어보고자 한다. 말의 길을 열고, 과거사의 진실을 규명해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에게 살길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권 역시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이명박 정권과 같은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새해 연속 인터뷰
① MB에게 맞선 언론인 5인 "박근혜, 또 부역자 보내면…"


대통령 딸의 대통령 당선.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2012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박근혜 후보 당선 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걱정스런 목소리가 나오는 대목 중 하나가 과거사 문제다. 박 당선인의 과거사 인식은 대선 과정에서도 여러 차례 논란이 됐다. 이 점은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문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은 역사에 남긴 발자취의 강렬함만큼이나 찬반 여론이 확연히 갈리는 인물이다. 박 당선인이 청와대의 주인으로 정해지기 전에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논란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 문제와 맞물리면서 과거사 진실 규명 및 정리 작업이 박근혜 정부 출범 후 더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사 진실 규명 및 정리 작업은 이명박 정부 들어 이미 퇴행한 상태다.

과거사 정리 작업에 관한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까? 2012년 마지막 날, 안병욱(65) 가톨릭대 교수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안 교수를 찾아간 건 오랫동안 한국사를 탐구한 학자일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손꼽히는 과거사 문제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2000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을 맡으면서 과거사 정리 작업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 때는 '국가정보원 과거 사건 진실 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에서 일했다.

국정원 과거사위에서 다뤘던 사건 중 하나가 대선에서 논란이 된 정수장학회 문제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는 5.16 쿠데타 세력이 고 김지태 씨에게서 부일장학회를 사실상 강탈했다고 발표했다.

그 후 안 교수는 노무현 정부 말기(2007년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을 맡으며 과거사 정리 작업과 맺은 인연을 이어갔다.

안 교수는 <프레시안>과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더 과거사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며 "역사 전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 당선인이 "과거사 문제도 '박정희 명예 회복'이라는 기준에서 다룰 것"이라는 것이 그 근거다.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는 박 당선인의 바람과 달리, 안 교수는 "박정희를 팔아서 먹고살려는 의식이 많은 사람에게 존재하는 한 박정희는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박정희 시대에 대한 오도된 환상"과 "박정희가 없었으면 한국 현대사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처럼 과도하게 전제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이다.

또한 안 교수는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일할 때를 돌아보며 "이명박 정부는 역사에 관해선 백치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어느 것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것, 그 차이가 과거사 정리"라고 규정하고,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인터뷰는 가톨릭대의 안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안병욱 전 진실화해위원장.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정부, 역사에 관해선 백치 수준이었다"

프레시안 :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대선이 마무리됐다. 어떻게 봤나?

안병욱 : 1967년부터 선거에 참여했고 전에도 충격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엔 좀 다르다. 12월 19일 이후 뉴스를 보지 않고 있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다. 집단공황 상태에 빠진 것 같다.

1987년과 비교해보자. 그때도 선거 결과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그때는 핑계라도 댈 수 있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갈라선 게 결정적이었구나' 하는. 그런데 이번에는, 난 지금까지도 (야권이 패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집단적 공황 상태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누가 특별히 '뉴스 보지 말자' 이야기한 것도 아닌데 적잖은 국민이 뉴스에서 눈을 돌려버리고 공황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과거 우리 역사에서는 어땠나 하는 것을 돌아보고 있다.

프레시안 :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한국에서 진행된 과거사 정리 작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안병욱 : 세계적으로 과거사 정리 작업이 부각된 건 1980-1990년대인 것 같다. 그 전에 비슷한 예가 없던 건 아니지만, 인류사적인 새로운 트렌드가 된 건 그 시기다. 인종차별로 악명 높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만델라가 집권한 후, 과거의 인종차별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부각됐다. 또한 쿠데타로 집권해 학살 등을 자행한 중남미 국가들의 군사 정권들이 뒤집어지면서, 군사 정권 시기의 인권 침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됐다. 그러면서 과거 청산 문제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인류사 전환기의 새로운 역사적 과제로 제기됐다.

20세기 후반에 이뤄진 역사적 전환에는 과거사에 대한 정리와 청산이 필요했다. 프랑스 혁명 때는 지배층을 단두대에 보내 처리했다. 만약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프랑스 혁명 같은 방식의 역사 전환을 하려 했다면 어떻게 됐겠나. 아프리카 몇몇 나라에서 수십 년간 벌어진 내전 형태를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일각에는 '과거 문제를 왜 들추나? 통합화해로 나아가야지, 과거를 헤집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극단적인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건 인류사의 전환에 대한 인식 없이 나오는 즉자적인 반대나 비판 논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보수 언론들이 대개 그렇다.

한국은 높은 수준의 과거사 정리를 경험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의 과거사 정리는 대개 특정한 단일 범주 내에서 이뤄졌다(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인종 차별, 중남미 국가들은 군사 독재 극복 등). 그런데 한국은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게 좀 다르다. 식민지 잔재 청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독재 정권의 인권 침해 등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부분이 지난 10여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과거 청산 과제로 제기됐다. 그것들을 손대서 (진실 규명을) 추진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했는가'와는 다른 이야기다.

"과거사 진실 규명 무산시키려 한 이명박 정부"

프레시안 :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해 만들어진 기구 중 하나가 진실화해위였다. 이명박 정부 때 진실화해위원장으로 일했는데, 역사 문제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안병욱 : 2007년 12월 1일 진실화해위원장을 맡았다. 그리고 그달 치러진 대선에서, 과거사 정리 작업을 집요하게 반대해온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그 다음해 정권이 바뀌자마자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한 모든 것을 부인하는 정치를 했다.

과거사 정책도 그중 하나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사 관련 위원회 14개를 통폐합해 과거사 정책을 일괄 무산시키려 했다. 그 위원회들 때문에 국력이 낭비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과거사 관련 작업들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중단될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촛불 집회에 휩쓸리면서 이를 처리할 시기를 놓쳤다. 그 덕분에 위원회들이 애초에 법으로 제정된 기간 동안은 존속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법으로 제정된 최소한의 임무들은 마무리했다. 어느 정도 역할을 했는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문을 열었다', '시작이 반이다' 정도의 평가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진실화해위의 경우, 법을 만들 때부터 한나라당 때문에 이미 '누더기법'이었다. 법을 제안했던 기준에 비춰보면 굉장히 소극적인 법이었다. 예상된 과제를 처리할 수 있을 만한 법이 아니었다. 또한 한국전쟁 시기에 벌어진 비극의 실체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법이었다. 그 실체는 (훗날) 조사 과정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진실화해위는 해야 할 일의 규모 등에 대해 어느 정도 로드맵이 있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는 달랐다. 진실화해위의 작업에서는 애초에 과거사로 정리하고자 했던 요지가 지극히 소략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이 문제를 덮었다고 안도했을 것이다.

고립무원 상태에서 위원회를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제기된 부분을 행정적으로 잘 마무리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할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가 기관에 여러 가지 권고(과거사연구재단 설립, 한국전쟁 당시 학살 사건 배상 및 보상 특별법 등)를 했지만 어느 기관도 귀담아듣지 않았다. 과거사 정리 작업을 백지화하려던 정부였기에, 권고 사항을 귀담아듣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진실화해위원장에서 물러난 후 아쉬움이 많았을 것 같다. 후임자인 뉴라이트 출신 이영조 진실화해위원장은 5.18을 "민중 반란", 4.3을 "공산주의자가 이끈 폭동"으로 폄훼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프레시안(최형락)

안병욱 :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해주고, 거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잘못을 시인하고, 그러면 피해자들이 그 사람을 용서해주고 마음으로부터 화해하는 게 과거사 정리의 본령이다. 그런데 (내가 퇴임한 후) 진실화해위에서 그분들을 위로해주기보다는 때에 따라 분노를 야기하는 일들이 있었다. 상당히 아쉽다.

더욱이 후임 위원장은 "위원회의 결정은 100퍼센트 진실이나 정의라기보다는 그 결정이 내려질 당시 위원들 다수의 판단일 뿐", "투표에 의한 진실, 다수결에 의한 진실일 뿐"이라며 진실화해위 결정의 신뢰성을 스스로 훼손했다.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내가 위원장일 때는 대개 15명 위원의 만장일치를 이끌어냈고, 경우에 따라 표결도 했지만 별다른 이론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또한 (이영조 위원장의) 발언들이 훗날 사법부에서 관련 사건 재심을 할 때 검찰 측 근거로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프레시안 : 사법부의 법적 판단에서 요구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물적 증거를 과거사 정리 작업에서 요구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안병욱 : 프리실라 헤이너(<국가 폭력과 세계의 진실위원회> 저자)의 다음 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뭐가 진실인지 우린 다 안다. 과거사 청산은 그렇게 다 아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어느 것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 진실을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것, 그 차이가 과거사 정리다. 우리는 국정원, 보안사, 검찰, 사법부가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는지 안다. 위원회는 그렇게 (경험적으로) 다 아는 사실을 공적으로 조사·발표·공인하고, 사법부는 재심을 통해 그걸 다시 인정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4.3과 관련해 제주도민과 희생자 유족에게 사과한 것처럼 (정치권력이) 국가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 이것이 과거사 정리의 핵심이다.

그런 측면에서 사법부와 과거사위원회는 다르다. 사법부는 형사재판에서 심증이 가더라도 명확한 증거가 없으면 처벌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에 사법부식으로 접근한다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피해자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명확한 문서 기록은 없는 경우가 많지 않나. 사법부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증거에 입각해 처리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합리적인 수준에서 판단하라고 있는 것이 과거사위원회다. 또한 항시적 기구인 사법부와 달리 과거사위원회는 한시적으로 운영한다는 점도 다르다.


"박근혜의 과거사 기준은 박정희 명예 회복"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과거사 진실 규명은 필요한 작업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인혁당, 정수장학회 등의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다른 한편 박정희 정권 때 일어난 부마항쟁 관련자 및 긴급조치 피해자 명예 회복에 관한 법안들을 대통합 법안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과거사 문제는 어떠할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안병욱 :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이 세 사람이 과거사 문제를 대한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 작업을 국가 정책으로 적극 추진했다. 어느 정부보다 적극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예전부터 과거사 문제에 남다른 관심이 있어서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때가 비로소 우리가 과거사 문제의 뚜껑을 열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사 문제에 관해 아무런 의식이 없는 멍청한 정부였다. 역사에 관해선 백치 수준이었다. 졸부 근성밖에 없었다. 이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에 특별히 이해관계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과거사 정리 작업을 노무현 정부 때 했으니 그걸 뒤집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을 통폐합하려 했는데 못했다. 그 후 (드러내놓고) 특별히 과거사 위원회를 못살게 굴기보다는 우리가 요청하는 사항들을 아무것도 들어주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박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과 반대편에 서 있다. "박근혜가 정치를 하는 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다"라는 말이 새누리당에서 나오지 않았나. 그게 박 당선인의 핵심 키워드다. 과거사 문제도 '박정희 명예 회복'이라는 기준에서 다룰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더 과거사와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다른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으로 밀고 당기는 역사 전쟁, 투쟁이 전개될 것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도 그 범주 내에서 똑같이 다뤄질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고 볼 수 있을까? 건국절 논란, 역사 교과서 수정 압박 등의 문제가 계속 발생하지 않았나.

안병욱 : 분명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사 관련 성과를 제거하고 자기들 입맛에 맞게 재편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역사 교과서에 대한 터무니없는 이념 공세도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예컨대 5.18에 대해서도,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인 소수의 폭동'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도 나타났다. 역사의 진실을 뒤바꾸려는 범죄다.

(하지만) 건국절 논란 같은 것들을 보면, 그건 이 대통령의 의지라기보다는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뉴라이트들의 이념 공세에 MB가 별다른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편승한 측면이 있다. 이른바 보수 세력의 뿌리를 튼튼히 한다는 측면이 강하게 작용한 일이었다. (이와 달리) 인혁당 사건, 정수장학회 등은 박정희와 직접 연결된 사안이다. 뉴라이트들로선 그런 부분까지 변명해줄 필요가 없다. 그런 과거의 명확한 인권 침해까지 감싸려 하면 자기들의 입지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박 당선인은 박정희와 직결된 문제 하나하나에서 다를 것이다. 인혁당에 대해서도 두 개의 대법원 판결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선거 초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기자회견 내용을 엄밀히 따지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반성이나 사과가 전혀 아니다. 박근혜 당시 후보의 말은 유권자를 상대로 한 면피성 발언일 뿐, 진정성이 드러난 부분은 없다. 앞으로 과거사 문제에서 혹시 박 당선인이 양보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박정희 시절에 대한 명분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지는 최소한일 뿐 우리가 말하는 과거사 정리의 뜻에서 출발하는 내용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예컨대,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 "김지태 씨는 부정부패로 지탄받던 사람으로, 처벌받지 않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것에서, 박 당선인의 뜻이 어디 있는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프레시안 : 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 "이제 아버지를 놓아드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시쳇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그만 걸고넘어지란 이야기다. 어떻게 보는가.

안병욱 : 삼국시대든 고려시대든 조선시대든 훗날 역사를 놓아준다는 것은 개념상으로 존재할 수가 없다. 가능하지 않다. 다만 박정희 시대에 대해 감성적 접근에서 역사적 접근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그런데 왜 아직도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는 우리가 감성적 접근에 상당히 구애받을 수밖에 없느냐 하면,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아직 이뤄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박정희 시대에 대한 오도된 환상이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해방 이후 마치 박정희가 없었으면 한국 현대사가 존재하지 못했을 것처럼 과도하게 전제하는 것이다. 박정희를 팔아서 먹고살려는 의식이 많은 사람에게 존재하는 한 박정희는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연합뉴스


"박정희 팔아서 먹고살려는 의식 있는 한 논쟁 대상 될 수밖에 없다"

프레시안 : 박 당선인은 대선 때 노무현 정부에 대해 '민생과 상관없는 이념에 빠져 나라를 두 쪽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국가보안법, 사학법, 과거사 진실 규명 논란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들렸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호불호와 별개로, 당시 개혁 과제로 꼽혔던 사안들이다. 그와 같은 발언을 어떻게 보는가.

안병욱 : 사학법이 논란이 됐을 때 박 당선인은 문자 그대로 자신의 모든 걸 던져 사학 재단들의 입장을 관철시켰다. 사학 재단들은 기득권 세력의 대표적 표상 아닌가. 이런 박 당선인이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할까? 개인적으로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박 당선인의 보수적·수구적 행태가 드러날 것이라고 본다.

국가보안법 부분도 문제다. 박 당선인을 비롯한 그쪽 세력은 거의 대부분 국가보안법을 왜 바꿔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1950년대식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기 못했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이미 21세기에서도 10년 넘게 지난 지금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붙들고 있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세계화 시대에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것인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19세기에 조선의 많은 지식인들이 위정척사론적인 사고 속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대응하려 했던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행태다.

프레시안 : 과거사 정리 작업의 기반은 역사에 대한 사회 전반의 올바른 인식이다. 그런데 '5.18도, 6월항쟁도 잘 모르는 20대가 늘어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로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안병욱 : 주위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5·18도, 유신도 모른다'고 하는데 난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대개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친구들인데, 5.18이나 유신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역사책에서 봤을 뿐인 이들에게 그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과 똑같은 감성을 가지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1970-1980년대에 일부 젊은이가 역사의식을 갖추고 유신 반대 운동, 전두환 반대 운동을 했던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소중한 유산이다. 그렇지만 그건 비상한 사태에서 나타난 특수한 측면이다. '지금 학생들은 그때보다 못하다'는 식으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다만 '왜 6월항쟁이나 광주항쟁이나 유신 체제를 오랫동안 당장의 현실로서 이야기하는가', 문제는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과거의 틀 속에서 한국 사회를 계속 끌고 가려고 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3.1운동이나 갑오농민전쟁 같은 것들은 이미 그 자체로 역사 속에서 단락을 지어 나아갈 수가 있는데, 박정희-박근혜 문제는 그렇지 않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의 90% 이상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 때문 아닌가. 한국 정치는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의 지형에서 약간의 변화만 있을 뿐 50년 넘게 그 틀이 바뀌지 않고 있다. 조선 사회가 성리학적 구조 속에서 500년을 지속하며 야기했던 문제들의 변형을 보는 것 같다.

아울러 왜 요즘 일부 학생들이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해 올바르지 않은 주장을 하는 것인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상당 부분은 보수 언론의 왜곡된 보도 형태 때문이라고 본다. (끝)

 
 
 

 

/김덕련 기자,남빛나라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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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연금법 변천사, 기가 막히네요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1/10 12:16
  • 수정일
    2013/01/10 12:1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회의원 연금법 변천사, 기가 막히네요

91년 20만 원에서 6배 오르고, 연령은 65세로 낮아지고...언론과 국민의 역할 필요

13.01.10 11:16l최종 업데이트 13.01.10 11:16l

 

 

지난주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국회의원 연금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새해 예산안에 연금법 관련 예산 128억 2600만 원이 포함되었으나 여야가 힘을 합쳐 신속히 처리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주말 동안 유명 조직폭력배 두목 사망과 전 프로야구 선수의 자살 소식이 연이어 터지자 연금법에 대한 관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2월 임시국회 첫 날인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여야 의원들이 민생법안을 포함해 본회의에 계류 중인 37개 법안을 처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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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라면 1월 임시국회는 오는 15~20일 사이 개회될 것으로 보인다. 단연 국민들의 관심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연금법을 비롯한 문제들에 어떤 식으로 칼을 대느냐는 점이다. 이미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국회 정치쇄신특위를 만들면 주요 과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이번 예산안 처리는 연금법 폐지와는 다른 문제라며 이미 이 문제는 당에서 입법하여 국회 상임위에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들과 달리 연금법 문제가 쉽게 처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 언론이 지적했듯 여야 의원 상당수가 '외교' 명목으로 출국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실제 새해를 시작한 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임시국회 일정은 아직도 여야가 합의 중이다. 처리해야 할 문제는 연금법을 비롯해 부동산 취득세 감면, 쌍용차 국정조사 등 가득히 쌓여있다. 일은 많은데 정작 느긋한 국회의원들을 두고 skya라는 네티즌은 국회도 '출석 미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연금법 변천사 보면 기가 막혀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주 연금법 예산안 통과 소식에 "예산안이 올라오기 전 논란이 되는 헌정회법을 개정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며 "실제 연금법안이 통과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의 말처럼 연금법안 자체가 통과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국회의원 연금법은 20년 넘게 시행 중인 법안이라는 점이다. 정확히 말해 지금 국회의원 연금법이라 불리는 법안은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으로 1991년부터 시행됐으며 헌정회는 전직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된 국가 원로 단체이다.

그리고 작년 기준 이 헌정회 소속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들에게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월 120만 원씩이 지급됐다. 주목할 것은 이 법안의 변천사이다. 2010년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자료에 따르면, 1988년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지원받기 시작해 1991년 '대한민국 헌정회 육성법'이 생기고 난 뒤인 1995년까지 20만 원이었던 월 지급액이 현재 6배(120만 원)까지 뛰어올랐다. 반면 연령은 1996년 처음 70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낮아졌다. 또 2007년에는 헌정회 자체 규정 개정으로 '국회의원 재직기간 1년 미만'인 자가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는 항목을 삭제했다. 이로써, 단 하루만 국회의원 타이틀을 달아도 헌정회 소속으로 65세 이상이 되면 120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010년 헌정회육성법 개정법률안 제안경위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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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가관인 것은 최근 연금법을 폐지해야 한다며 목소리 높이던 자들 상당수가 3년 전 연금법의 개정에 동참했다는 점이다. 2010년 2월 연금법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191명 의원 중 187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됐다. 반대한 2표는 당시 이용경(창조한국당), 조승수(진보신당) 의원뿐이었다.

이때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민주노동당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찬성표를 던져놓고 3년이 지난 지금 늘어놓는 변명이 예산안만 통과됐을 뿐이라는 소리다. 당시 국민들이 더욱 분노한 것은 조용히 법안이 통과되고 정작 사실은 6개월이나 지난 8월이 되서야 이슈화 됐다는 점이다.

범죄자도 연금 받을 수 있는 사회

2010년 개정안은 겉으로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상은 놀랍다. 이 개정안으로 기존에 '금고이상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자'는 연금을 받을 수 없었던 규정이 '집행이 종료되거나 면제'되면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의원 재직 중 각종 비리로 구속이 됐어도 집행이 끝난 헌정회 소속 65세 이상 전 국회의원이라면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명단은 의외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03년 기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구속된 A의원, 2007년 골프장 인허가 로비 혐의로 구속된 B의원도 현재 헌정회 홈페이지에 회원으로 검색되고 있는 65세 이상 연금대상자다. 실제 이들이 연금을 받고 있는지 유무 확인을 위해 국회와 헌정회 측에 전화 확인 요청을 하였으나 '개인정보법' 관련으로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뿐이었다.

얼마 전 주요위원들의 해외출국으로 논란이 됐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한 조사관은 "매년 실제 연금 수령을 받는 전 의원들의 명단을 확인하느냐"는 질문에 "결산 과정에서 필요하면 볼 수도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들이 연금을 받고 있다고 해도 2010년 개정을 통해 문제될 것은 없다.

아쉬운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나가는 연금이지만 실제 국민들은 문제되는 전직 의원들이 연금을 받고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조차 없다는 점이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측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과거 정보공개요청을 했으나 똑같이 개인정보법 문제로 개인명단이 아닌 전체 수령인원만 보고 받을 수 있었다. 100억 원이 넘는 예산만 던져주고 헌정회에서 잘 쓰고 있는지 누구 하나 감시할 방법이 없으니 의원 시절보다 더 특권을 누리는 셈이다.

연금법 문제 과연 이번에는?

국민들의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은 가득하다. 하지만 그 중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한 의원들과 의원직 이후 생활형편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따라서 연금을 주는 것 자체를 절대 반대하기보다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연금 법안이 되길 바란다.

한 국회 관계자는 "연금법 개정은 여야가 합의를 했기 때문에 이뤄질 것이다"며 "특권을 없애기 위해 19대 국회의원부터는 연금을 받지 않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하지만 이 말대로라도 모순은 많다. 국민들의 요구는 불합리한 기존 제도에 손을 대야 한다는 것이지, 현 의원부터는 안 받겠다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항은 국회 단독결정이 아닌 국민 여론과 사회 단체나 학자들의 의견들을 종합해서 반영하는 것은 무리일까? 무조건 적인 폐지가 아니더라도 재직 중 일정 금액을 연금으로 내거나 받는 금액을 기타 연금과 형평성있게 맞춘다면 국민들도 쇄신의 노력에 박수를 칠 것이다.

3년간 언론과 국민은 무엇을 했나?

2010년 8월 뒤늦게 연금법 통과 사실이 알려지면서 각 언론들은 기사를 썼고 블로그나 카페 등을 통해 국민들은 분노의 글을 남겼다. 하지만 한 달도 안돼 이에 대한 문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나 다시 이슈가 되고 있다.

본분을 망각한 국회의원들을 탓하기 전 사회 감시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언론 그리고 '냄비'처럼 금방 데워졌다 식는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가 있다. 2010년 그때 그대로 이번에도 흘러간다면 특권을 지키기 위한 여야의 담합은 계속 될 것이다. 이후 이 법안에 대한 관심은 '또' 금방 묻히며 권력자는 기존과 똑같이 국민을 대할 것이다.

국민들은 깨달아야 한다. 권력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일시적인 촛불집회나 집단시위가 아니라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투표로 연결되는 행동이라는 점을. 3년 전 언론과 국민들이 끈기있게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은 이들에게 연금법에 대한 모순과 문제를 알렸다면 지금까지 법안은 계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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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를 안겨준 '블로그'를 성공하자 차버린 '윤창중'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실제로 그 안에서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든 창구가 윤창중 대변인으로 단일화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윤창중 대변인의 입도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인수위가 가동된 첫날 윤 대변인의 브리핑은 딱 3분뿐이었습니다.

이랬던 윤 대변인의 브리핑이 갑자기 20분으로 늘어납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박근혜 당선인의 말을 적은 발언록을 그대로 낭독한 것입니다.

윤창중은 박근혜 당선인의 입이 확실히 맞다는 생각이 드는 대목입니다. 박근혜 당선인이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말은 하지 않는 그녀만의 어법이 그대로 윤창중의 입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김용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인수위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출처:사진공동취재단,동아일보,

 


박근혜 당선인은 인수위를 출범시키자마자 보안을 특히 강조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인수위원들은 철저히 입을 다물고 있으며, 그들을 향한 기자들을 피하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인수위원 대부분은 아예 휴대전화를 소지하지 않고 출근하거나 비서에게 휴대전화를 맡기고, 출근과 동시에 인수위 건물로 도망치듯 숨어버리고 있습니다.

인수위원들이 기자들을 피하면서 점심시간이나 퇴근 시간에는 인수위원을 쫓는 기자와 쫓기는 인수위원 사이의 실랑이까지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 인수위원은 기자를 피해 사이드 브레이크도 안 풀고 차를 출발하는 촌극까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를 위한 도구 '막말 윤창중'

그렇다면 도대체 왜 박근혜 당선인은 철저하게 인수위원의 발언을 윤창중 대변인의 입으로만 통일시켰을까요? 그 해답은 박근혜 당선인을 지지했던 김지하의 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 김현정 >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제 인수위 인선하고 헌법재판소장 인사를 했는데, 어떻게 첫 단추는 잘 끼고 있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 김지하 > 내가 보기엔 잘하고 있는 거예요. 그전에 우선 윤창중이라는 사람을 그 시끄러운 대변인으로 앉힌 게 한 게 잘한 거예요.
◇ 김현정 >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그 인사가 제일 문제다, 이런 얘기 나오는데.
◆ 김지하 > (웃음) 그건 야당 얘기고.
◇ 김현정 > 그런데 그 수준이 좀 막말 수준이어서요.
◆ 김지하 > 막말 수준이 나와야지 박근혜(당선인)가 막말하겠소?


그렇습니다. 정답은 막말은 윤창중이 하고 박근혜 당선인은 뒤에서 숨어 그를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변인을 이용해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것이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막말'이기 때문에 어이가 없으며, 앞으로 있을 정권이 걱정되는 이유입니다.

네티즌이 게시판에 글을 쓰는 방식이나 블로거가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수준을 논하는 시대에 관계 법령에 따라 국가 업무를 담당하는 대통령 당선인의 대외 공표 및 홍보 등의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대변인의 수준을 어찌 두고 볼 수가 있겠습니까?

막말이 무기인 그가 국가에서 법으로 정한 조직에 속해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막말' 하나로 출세한 정치인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 언론 왜곡의 대가, 나에게 덤비지 마라'

윤창중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영양가(기사로 쓸 만한 가치가)가 있는지 없는지 대변인이 판단한다"며 기자들의 반복적인 질문에 짜증을 내며 훈계를 했습니다. 이런 그가 자주 써먹는 말이 30년 정치부 기자 운운하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을 아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30년 정치부 기자와 논설위원, 논설실장을 하면서 피부로 느낀 게 (언론이) 국가 요직에 대한 인선 때마다 엄청난 오보를 해서 결과적으로 언론의 신뢰가 상실되는 것을 아주 통감한 사람…(취재원과) 언론과의 신뢰가 형성돼야 그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언론관…”(프레시안 2013년 1월 7일)

윤창중 대변인의 말을 들으면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기자를 훈계하는 이유가 자신이 했던 과거를 돌이켜서 반성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는 그렇게 이용했으나 '너희는 감히 나에게는 하지 말라'는 뜻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에서 나온 뒤에도 권력의 단맛을 향유하려는 교묘한 속셈.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 마을에 지금 노무현은 퇴임 후에 돌아가 살 성(城)을 쌓고 있다. 찢어지게 가난했다는 일개 촌을 자신의 성터로 상전벽해시키고 있다. 마치 전두환이 퇴임을 앞두고 경기도 성남에 고래등 같은 일해재단을 세웠던 것처럼. ‘물러난 뒤에라도 제발 조용히 살아줬으면’하는. 이렇게 눈 감아주고 싶은 사이 ‘노무현 캐슬’이 올라가고 있다” <문화일보 ‘노무현 캐슬’ 칼럼 중(2008년 1월 31일 게재)>

윤창중은 2008년 문화일보에 '노무현 캐슬'이라는 칼럼을 쓰면서 봉하마을을 캐슬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왕이 퇴임하고 난 이후에 시골 영지로 내려가 성을 쌓고 권력의 단맛을 누리려는 교묘한 속셈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봉하마을 농촌체험 프로그램 연근캐기 행사 참여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밭에 나와 꺼져가는 모닥불을 바라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출처:노무현재단

 


요새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하고 있는 농촌체험 행사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난 뒤 지금까지도 자기 생각이 옳다고 어찌 그리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이 박근혜 당선인의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들고 나온 '월간 박정희'의 필진이었던 조갑제는 윤창중이 사실이 아닌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진짜 그럴까요?

2007년 9월 윤창중은 문화일보 칼럼에서 "정치인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가져야 한다"며 대선에 출마하자 마자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신정치 청산을 선언한데 따라 권노갑,한화갑,설훈등 가신들이 집단 기자회견을 열어 "DJ가 집권해도 청와대나 정부요직에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중에 새빨간 거짓말로 입증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동교동 가신 중에 남궁진 전 의원만 문화부 장관을 맡았지, 권노갑,한화갑,김옥두,설훈 등은 장관이나 청와대 고위직을 맡은 적이 없습니다. (박지원은 엄밀히 따지면 동교동 가신 출신은 아닙니다.)

' 출세를 안겨준 블로그를 성공하자 차버린 윤창중'

그의 막말과 거짓말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대선을 앞둔 작년 4월부터 운영하던 '윤창중 칼럼세상' 블로그에 올라왔던 글 대부분이 막말과 왜곡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회의고 뭐고 한다지만 지역작전에 불과한 것! 다 부질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들의 행태를 지켜봐야 한다. 왜? 이들은 원래 '쓰레기 인간'들이니까." - 2012년 5월 14일 <대국민 사기극, 야권연대의 종말> ]
"노무현이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환생해 못다 이룬 한을 풀어달라고 대신 스피치를 써준 것 같다." - 2012년 6월 18일 <서대문 형무소 앞에서 환생한 노무현>
"정말 가증스러운 안철수와 '안빨'들이다. 대한민국을 졸로 보는 이런 기만극도 조만간 거대한 종말을 고하고야 말 것이다." - 2012년 9월 4일 <안철수의 딱지>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이 운영하던 블로그

 


윤창중 대변인은 과거 10년간 문화일보에 시론 203개와 개인 블로그에 165개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중에서 개인 블로그에 올린 글 165개개 중에서 적대적인 성향의 칼럼의 75.3%가 야권을 향해 2012년에 쓴 글들입니다. 2012년 윤창중에게 대선은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블로그를 통해 '막말'무기를 흔들었고, 그것에 성공해서 대변인까지 임명됐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은 대변인으로 임명되면서 그간 자신이 썼던 글이 문제가 되자, 운영했던 블로그를 폐쇄했습니다. 사실 전업블로거 입장에서 윤 대변인의 블로그 폐쇄를 보면서 그에게 블로그란 출세의 도구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부족한 글이지만 '아이엠피터'라는 블로거는 그간 썼던 글이 수준이 낮건 오류가 있든 없든 블로그를 폐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글에는 당시의 시대를 바라 본 저만의 생각이 담겨져 있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지금의 '아이엠피터'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블로거는 윤창중을 가리켜 '곡학아세'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곡학아세는 '배운 것을 왜곡해서 시세나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것'을 말합니다.

 

 

▲취재진에 둘러싸인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출처:오마이뉴스

 


블로거에게 블로그 폐쇄는 자신의 사상이나 가치관, 그리고 자신이 행동했던 모든 것을 숨기거나 포기하거나 아니면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에게 블로그는 당선인의 수석대변인으로 오르는 기회의 도구였을 뿐이겠지만, 블로거 입장에서 보면 그 무엇이 두렵기에 블로그를 폐쇄하고 언제까지 충성할지에 대한 의문을 들게 하기도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신의 변신을 거듭했던 윤창중 대변인은 '막말'에서 이제는 언론을 훈계하면서 뉴스의 가치를 대변인이 판단해서 알려주겠다는 '언론 통제'의 새로운 무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마치 유신 시절 방위병이 변심한 애인 집에 불 지른 사건을 보도한 것은 '민군관계 이간질'에 해당하고, '달동네 연탄값이 비싸다'라는 기사는 하층민을 선동했다는 혐의여서 기자가 구타당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국민의 판단까지 좌지우지하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섬뜩하기까지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막말'이라는 무기를 블로그를 통해 사용했던 그를 대변인에 앉혀 놓은 박근혜 당선인이 앞으로 5년간은 저 같은 일개 블로거에게도 윤창중과 같은 '표현의 자유'를 허락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 블로그의 어느 글에서도 '쓰레기','저주받아야 마땅한'과 같은 원색적인 막말은 없습니다. 윤창중 대변인은 그보다 더한 말을 하고도 막강 권력 중심부에 있는데 설마 저 같은 일개 블로거에게는 손을 대지 않으리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봅니다.

그리고 '아이엠피터'는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블로그를 절대 버리지 않을 것이며, 그 글에 관한 어떠한 책임을 묻는다면 기꺼이 질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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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선거의혹 동영상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3/01/09 12:22
  • 수정일
    2013/01/09 12:2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부정선거의혹 동영상
(서프라이즈 / 인천시민 / 2013-01-08)


이번 대선 때 혹시나 싶어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짓을 좀 했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 투표소에서 마감하는 걸 확인한 후 개표소까지 차량으로 따라가며 투표함이 잘 이송되는지를 확인했었습니다.

그 후 개표소(연학체육관)에 관람인 등록을 하고 개표소로 이송되어 들어오는 투표함들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제의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고, 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했습니다.

도화동개표동영상~봉인안한봉투개표소에서봉인!!

http://bigmail.mail.daum.net/Mail-bin/bigfile_down?uid=.Jc5uIdlmMa5FLTRYgFSThHW1zKS2I7g

제가 촬영한 동영상에서는 '잔여투표용지' 봉투가 봉인처리되어 있지만 이 봉투 역시도 개표소에 도착해서 제가 촬영하기 직전 봉인처리한 것입니다.

그 후의 상황은 동영상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동영상을 보시면 투표소 참관인 두 분이 계십니다.그런데 이 분들은 촬영하기 몇 분 전에 오셨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자면, 문제의 서류를 소지하고 있던 해당 투표소(도화2, 3동 4투표구)의 선관위직원(투표관리관)은 개표소에 도착한 뒤 적어도 몇 십분 정도는 혼자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동영상 속의 서류가 투표함과 함께 맨 마지막으로 접수가 되었는데, 제가 개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대략 6시20분쯤이었고 문제의 동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한 시각은 7시 03분쯤부터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동영상을 근거로 해당 개표소에 파견되어 있던 민주당 참관인들을 만나 개표소의 개표위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표소를 총괄하던 위원장은 "A4 용지에 이의제기서를 써서 제출하라"는 말 뿐이었습니다.

이의제기를 하다가 문득 문제의 서류와 함께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투표함'에 대한 개표만이라도 우선 막아야겠다는 생각에 그 투표함을 민주당 참관인들과 찾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개표소 안으로 맨 마지막에 들어왔던 그 투표함은 이미 개봉이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항의를 하는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그보다 앞서 들어왔던 투표함들이 많이 남아있었는데도 말입니다.

참고로 수개표와 관련해서 전자개표기를 통과해 나온 투표용지(100매 한 묶음)를 1~2초 사이에 휙 스치듯 훑어보고 말았다는 얘기들이 나오는데, 제가 동영상을 찍었던 연학체육관 개표소에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재검을 했었습니다.

사실상 수개표 또는 수검표를 하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는 얘깁니다.

아무튼 문제는 민주당입니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민주당을 폭파시켜버리고 싶은 마음 뿐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번에 발표된 대선결과가 의심스러운 과정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서 도출된 결과물임을 알 수 있는데, 그리고 그런 정황증거들 뿐만 아니라 물증들까지도 있는데, 그렇다면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이의제기를 해야 하는 당사자가 민주당인데 오히려 선거패배를 앞장서 기정사실화 하면서 이 같은 합리적인 이의제기에 대해서 조차 남 얘기 하듯 하고 있으니 정말 복장이 터질 지경입니다.

어쨌든 이번 일은 끝까지 싸워서 진실을 밝혀내야 합니다.상황에 따라서는 다시 길거리로 나가 돌을 던지며 싸우더라도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야만 합니다.어쩌면 곧 제2의 4.19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영상을 촬영한 뒤 나름 의심해본 내용입니다.

하나. 선관위직원은 실수라고 했지만 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이다.다른 것도 아닌 투표서류에 대한 봉인조치를 선관위직원(해당 투표소의 관리관)이 깜빡하고 안 했다?이걸 믿으라고??

하나. 만약 어떤식으로든지 부정선거를 획책했다면, 모든 선관위직원들에 대한 포섭 내지 매수는 불가능함으로 전략적으로 필요한 지역을 관할하는 직원들에 대한 포섭 내지 매수를 진행했을 것이다.평소 선거결과가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 쪽으로 나왔던 지역이 전략지역으로 분류되었을 공산이 크다고 봄.왜냐하면 부정표를 넣어 박근혜 후보가 다득표를 하더라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테니까.만약 그렇다면 선관위의 상부층에서 포섭 내지 매수된 직원을 일부러 전략지역에 배치했을 수도 있음.

하나. 만약 동영상 속의 해당 선관위직원이 포섭 내지 매수를 당한 직원이라면, 그래서 50표가 되었던 100표가 되었던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면, 그 해당 표 수 만큼 선거인명부에 대리서명을 할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그렇다면 선거인명부에 투표를 했다고 서명이 되어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실여부만 확인하면 부정선거여부를 알 수 있다.표는 어떻게 아귀를 맞추더라도 대리서명을 했다면 그 유권자들 모두를 사후에 포섭내지 매수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나. 만약 선관위직원이 선거부정을 저질렀다면, 스스로도 선거부정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그런 일을 저지른다고 하는 심리적인 압박감에, 또 주위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몰래 그 같은 부정을 저릴러야 했기에 불안정한 심리상태에 따른 결과로 깔끔한 상황정리를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그래서 심지어는 개표소에서 봉인작업까지도 진행했을 수 있다.

하나. 해당 투표함에 대한 개표를 서두른 이유도 이 같은 흔적(여러장의 투표용지가 한꺼번에 뭉쳐서 나오는 상황)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아닐까??

하나. 만약 이런 일이 정말 벌어졌다면, 해당 투표구의 선거인명부를 확보해 전수조사를 하면 선거부정을 밝혀낼 수 있다.여기서 정말 투표를 하지 않았는데 한 것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이 확인된다면 이는 조직적인 부정선거라고 규정할 수 있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의심스러운 투표구의 선거인명부를 확보해 같은 방법으로 확인작업을 하면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였음을 밝힐 수 있다.

 

인천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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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보수화'로 졌다? 하나마나한 분석!"

[박동천 칼럼] 朴 찍은 1577만 명 중 文 찍을 사람 누구냐?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9 오전 8:19:31

 

1.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이 패배한 후, 왜 졌는지를 나름대로 설명하려는 말들이 무성하다. 50대가 보수화되었다는 둥, 친노 세력이 앞장을 서서 졌다는 둥, 안철수로 단일화되지 못해서라는 둥, 민주당의 좌클릭 때문이라는 둥, 얼핏 보면 모두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진실의 과녁을 정곡으로 찌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사태의 진상에 관해서 과녁을 찌르기보다는 그 주변에서 대충 변죽 울리기로 만족하는 한편,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고자 하는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안철수로 단일화했어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

2. 먼저, 안철수였다면 이겼으리라는 주장부터 따져보자. 안철수가 야권 연대 후보로 나섰다면 이겼을지 모른다는 말은 현재 시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재인이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철수였다면 이겼다"는 말은 헛소리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패인을 굳이 꼽아야 한다면, 도박꾼들의 관심이 상황을 지배했다는 데 있다. 안철수와 문재인 중에 누가 단일화 경쟁에서 승자로 떠오르느냐를 가지고 내기를 거는 방식으로 보도와 평론과 지지와 응원이 이뤄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가'에만 몰두하느라 '어떻게'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 결과 협상이 깨졌고 안철수가 일방적으로 사퇴한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누가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했다. '감동을 주는' 단일화, '아름다운' 단일화,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 따위가 가능하려면, 쌍방이 어떻게든 단일화의 규칙에 합의하고, 그 규칙에 따라 두 세력을 하나로 합하는 역량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왜? '어떻게'보다 '누가'를 중시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막판에 안철수의 '가상대결' 요구를 과감하게 받아버렸어야 했다 (안철수의 요구가 일방적이었지만 그랬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먼저 안철수가 단일화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섰어야만 했다. 출마 의사를 밝힌 시기도 훨씬 앞당겨야 했고, 출마 의사를 밝힌 이후에는 바로 단일화 규칙을 위한 협상에 나섰어야만 했다.

이제 와서 가정법으로 말하기는 아주 쉬운 일이다. 무슨 일이든 결과가 나타난 다음에는 무책임한 말들이 무제한적으로 횡행한다. 이제 와서 "안철수였다면 이겼다"고 말한다는 것은 지금까지도 '어떻게'의 중요성은 보지 못하고 '누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증거다. "안철수였다면 이겼다"를 말하기 전에, 안철수가 왜 단일 후보로 되지 못했는지, 뭘 어떻게 했어야 감동적인 방식으로 단일 후보가 될 수 있었는지를 물어야 책임 있는 담론이 가능해진다.

"2010년 좌클릭은 성공, 2012년 좌클릭은 실패?"

3. 민주당이 좌클릭을 해서 중도 표를 잃었다는 말도 유행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좌클릭했다고 할 때, '좌클릭'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가? 좌클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체제, 복지 강화 등을 주장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일까? 아니면 이런 것 말고 어떤 '좌클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일까?

진보세력과의 연합이 오히려 중도층의 이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일반적으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왕당파를 상대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일반명제들 가운데 어떤 것이 현재의 맥락에 적실한지를 가리려면, 연합의 이익과 손해를 맥락적으로 따져서 저울질해야 한다.

한국에서 '청적(靑赤) 연대'는 2010년 지방선거,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명백한 성과를 보여줬다. 그래서 그때는 '좌클릭'이 문제라는 소리는 나오지 못했다. 2012년 4월 총선, 그리고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결과가 기대치에 못 미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좌클릭'이 문제였다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4월 총선과 12월 대선에서 이기리라는 '기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주관적인 낙관 말고 도대체 어떤 정세 분석에서 그런 '기대'가 나왔는가? 그런 '기대'가 도대체 어떻게, 누구 맘대로, '예상'으로 둔갑했을까? 낙관은 원래 근거가 없는 것이고, 근거 없는 낙관은 자유다. 단, 낙관이 실현되지 않았을 때 책임은 낙관에게 물어야지 엉뚱한 곳에서 분풀이 대상을 찾으면 마녀사냥이 된다. 그리고 이런 버릇을 못 고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좌우지간, 이번 선거에서 '좌클릭' 때문에 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왜 청적 연대가 성공했는지 답해야 한다.

결함은 좌클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호함에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캠프는 중도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 생각 자체는 옳다) 매몰되어, 분명한 결기를 보여야 할 곳에서까지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NLL과 관련해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밝히자고 오히려 민주당이 주장했어야 하는 것이다. 정상회담 녹취록을 공개하면 국익에 위배된다는 걱정은 일차적으로 새누리당과 원세훈과 이명박의 몫이었다. 이걸 뒤집어 생각한 오류 때문에, 마치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녹취록 공개에 반대하는 듯한 이미지만 뒤집어쓰고 말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자료사진) ⓒ뉴시스


"'종북' 프레임에 정면으로 돌직구 날려야"

'종북', '좌익', '빨갱이' 프레임 때문에 소위 '중도'라는 사람들이 민주당에 표를 주기 꺼려한다는 데까지는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프레임에 걸리지 않을까? '좌클릭'을 하지 않으면 될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먼저 왜 박근혜의 '좌클릭'은 득표에 도움이 되었는지부터 자문해 봐야 한다. 박근혜의 '좌클릭'은 국민대통합의 행보가 되는데 왜 민주당의 '좌클릭'은 소위 '중도층의 안보불안감'을 증폭하는 것인지를 캐물어야 한다.

이와 같은 이중 기준이 프레임의 본질이다. 이 프레임을 그대로 두는 한, 민주당 및 한국의 개혁세력은 절대로 '종북', '좌익', '빨갱이'라는 낙인을 지울 수 없다. 즉, 조갑제에게 '종북'이라고 낙인이 찍히기만 하면 움찔 놀라 지지를 거두는 유권자에게 어떤 다른, 보다 부드럽고 감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 표를 구걸하기 보다는, 조갑제가 찍은 '종북'의 낙인에 구애받지 않을 유권자들을 찾아내서 그들의 합리적인 자부심에 호소해야 한다. 이제 와서, 선거에서 지고 나서, '좌클릭 때문에' 중도표를 잃었다는 진단은 정확히 매카시즘에 인식론적으로 굴복했다는 표시에 불과하다.

비현실적인 정책,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정도로 과격한 변화를 추구한 면이 있었다면, 그런 면들은 사후에라도 가려내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민주당이 내 건 정책 중에 비현실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은 2011년 말에 터져 나왔던 '한미 FTA 당장 폐기론'을 깔끔하게 해소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재협상을 주장한 일 정도다. 이 건에 관해 나는 "문제가 나타나면 그때 가서 생각한다"고 한 안철수의 입장이 맞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어서 선거에서 졌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무례하게', '공격적으로' 박근혜를 몰아붙인 이정희의 퍼포먼스 때문에 문재인이 졌다는 소리도 헛소리다. 문재인이 이길 선거였다는 근거 없는 전제를 깔고 생각하니까, 어디선가 이유를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온갖 추측이 난무하게 된다. 이정희의 공격성이 박근혜의 가련한 이미지에 보탬을 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순전히 사후적으로 그리고 이론적으로 조성된 가능성이다. 실제로 이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었다고 말하려면, 이정희의 공격성 때문에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 곧 이정희의 공격성이 없었더라면 문재인을 찍었을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특성을 가지는 유권자들일지 대충이나마 추려낼 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부류에 속한 사람들이 108만 표 가운데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확인할 방법을 이론적인 가능성 수준에서나마 동시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뒷받침이 없는 상태에서 이정희의 공격성 때문에 문재인이 표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데나 찔러 보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빠져나가는 뺑소니 어법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좌클릭을 해서 진 것이라기보다는, 좌클릭을 하기는 한 것인지에서부터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까닭에 마지막 2% 정도의 유권자를 잡지 못해 진 것이다. 중도층을 잡으려고, '종북' 프레임에 정면으로 돌직구를 날리기보다 '종북'이 아니라고 변명하기 위해, 모호함에 의존하다가 정작 그 때문에 중도층의 불안감을 불식하지 못한 것이다. 수많은 정책들을 내놓았지만 급조한 의제들이다 보니 잠재적 지지층이 될 수도 있었던 유권자 가운데 안정을 희구하면서 망설이고 주저하는 마지막 2%에게 침투하지 못해서 진 것이다. 간략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구호의 형태로 정책을 요약해서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문재인과 개혁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내지 못해서 진 것이다. 선거법 상으로 문재인과 같은 신인에게 시간이 절대로 부족했는데, 캠프 안에서도 민주당 안에서도 이러한 환경적 요인을 간취하고 대책을 수립할 만한 전략적 안목이 없어서 진 것이다.

4. 친노니 비노니를 따지는 짓은 단순한 책임전가 및 내분 이상의 의미가 없다. 누군가 패배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면, '친노' 따위의 모호한 화법을 사용할 일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누가 왜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꼬집어 말해야 한다. 모호한 화법에 의존하는 한, '친노 책임론'은 민주당의 내분을 부추길 뿐인 프레임에 자발적으로 투신하는 꼴에 불과하다. 이 얘기를 나는 여러 달 전에 쓴 적이 있다 (관련기사 ☞ "담합과 동맹 사이에서").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박근혜 지지자를 찾아라"

5. 마지막으로, 50대의 보수화 때문에 문재인이 졌을까? 108만 표의 차이는 50대 말고도 숱한 설명이 가능하다. 충청도와 강원도 표, 경남부산 표, 그리고 경기도 표 가운데 하나만 문재인 쪽으로 바뀌었어도 문재인이 이겼으리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50대의 보수화에서 원인을 찾는다는 것은 4지 선다형 문제에서 연필 굴리기로 답을 찍는 태도와 흡사하다.

경기도나 경남 등 지역으로 분류하든, 연령으로 분류하든, 특정 부류의 유권자들이 보수화해서 문재인이 졌다는 말은 동어반복일 뿐이다.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그들이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찍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수화되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단순히 "박근혜를 찍었다"는 문구를 "보수화"로 바꾼 데 불과하다.

경기도든 경남이든 부산이든 강원도든, 50대든 60대든 40대든, 남성이든 여성이든, 학력이 어떻든 소득이 어떻든, 108만 표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어떤 하나의 변수가 결정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가와 논객과 전략가들은 4지선다형 정답찍기식 시험에 길들여진 한국인답게 '하나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 하지만 1577만 표와 1469만 표 사이의 차이를 '하나의' 인구통계학적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기적에 가깝도록 예외적인 사태일 것이다.

"왜 졌을까?"를 묻는 사람들은 문재인이 뭘 잘못했기 때문에 졌다는 전제를 깔고서 시작한다. "이겨야 할 선거였다"는 규범적 진술과 "질 리가 없는 선거였다"는 사실적 진술을 지속적으로 혼동한다. 이렇게 혼란스럽게 들뜬 눈으로 마녀사냥에 나선다. 그리하여 박근혜를 찍은 1577만 표 가운데 아무데서나 임의로 108만 표를 골라, 그 표 때문에 문재인이 졌다고 우겨댄다.

문재인이 이길 수도 있었던 선거였는데 졌다고 말하려면 승패를 가른 108만 표 가운데 적어도 55만 표는 원래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어떤 상황적인 요인 때문에 박근혜로 선택을 바꿨다는 진술을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로 선택을 바꾼 사람들'의 집합은 일단 매우 추상적인 집합이다. 이들이 인구통계학적으로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단,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세대에 이들이 몰려 있으리라는 추정을 전제로 삼고 시작해서는 진상에 접근할 가능성이 근본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은 1577만 명이지만 이 가운데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을까? 1577만 명이 누구였는지도 사실은 샅샅이 찾기는 불가능한데, 그 중에서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도대체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에 답하려면 그 전에 방법론적 성찰을 하나 거쳐 가야 한다. 산술적으로 도식화한다면 1577만 명 가운데 문재인 쪽에 가장 가까운 순서로 최소한 55만 명을 추려낸다는 말이 되는 데, 애당초 '문재인 쪽에 가장 가까운 순서'라는 것을 도무지 어떤 척도로 잴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을 자문하면서 찬찬히 생각해보면, 1577만 명 가운데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확률이 가장 높았던 순서로 최소 55만 명을 추려낸다는 일은 곧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잠재적 지지층으로 잡아서 설득하고 호소해야 할지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과업과 분리될 수 없는 일임을 알 수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민주당을 포함한 민주진보개혁 세력은 이와 같은 전략적 선택을 위해 지혜를 모았어야 했는데 이를 해내지 못했다. 앞으로 당장 4월에 재ㆍ보선이 있고, 2014년 지방선거, 2016년 국회의원 선거, 2017년 대통령 선거 등등, 줄줄이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부동층 가운데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제를 가지고 호소해야 할지 기본적인 전략의 원칙을 고안해내야 한다. 아울러, 부동층 즉, 산토끼를 잡기 위해서 고정 지지층 즉, 집토끼를 소외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 민주통합당이 18대 대통령 선거 패배로 충격에 빠진 가운데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246호실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한 의원들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시스


"민주당, 집권해서 변화 추동해낼 역량 있나?"

이렇게 생각해 보면 다음 두 가지는 분명해진다.

첫째, '종북' 프레임에 빠져 있는 유권자보다는 그런 프레임과 상관없이 자기 나름의 분별력을 갖춘 사람들을 과녁으로 삼아야 한다.

둘째, '친노' 프레임 역시 마찬가지다. 친노가 싫어서 박근혜를 찍은 사람이라면 애당초 노무현의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을 찍을 확률이 낮았다고 봐야 한다. 아울러 노무현이 싫어서 박근혜를 찍을 정도라면 애당초 한국 사회에서 민주진보개혁의 필요를 별로 못 느끼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분명해지면 아울러 마지막 세 번째 요점도 분명해진다.

셋째, 이번 선거를 주도한 실질적인 의제는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그리고 복지사회건설을 통한 성장동력 확충이었다. 이 의제들의 파괴력은 4월 총선 때부터 박근혜가 표절해가지 않으면 안 되었을 정도였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의제들을 민주진보개혁 진영에서 부르짖고 박근혜는 단지 제목만 표절함으로써 내용을 희석시켰는데 왜 박근혜가 당선되었느냐는 대목이다.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는데 박근혜를 선택한 사람들'은 바로 이 부근에 위치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한반도 평화, 복지를 통한 성장 등의 의제에 주목하고, 이런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박근혜보다 문재인의 진정성이 높다는 사실도 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왜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를 찍을까?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뜻하는 대로 개혁을 성취할 힘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핵심적인 원인이고, 이것을 고치는 것이 곧 한국 사회의 민주화, 정상화, 공정화에 해당한다.

당장 국회 과반수가 새누리당인데다가, 언론, 관료제, 검찰, 학계, 그리고 자본 등, 구조적 권력이 일방적으로 문재인에게 불리하다. 노무현 정권 때 실제로 목격했듯이, 민주진보개혁 진영이라는 것은 합심해서 뭉쳐도 기득권에 대항하기가 버거운데,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서로 높여보려고 정신없이 물어뜯고 싸웠다. 민주니 진보니 개혁이니 떠들지만 결국 각자 사춘기 수준의 자기현시욕일 뿐이고, 그 때문에 기득권 구조의 타파는 고사하고 도리어 기득권의 강력한 장벽 앞에서 무너질 뿐이다. 이 구조를 고칠 힘이 민주당에게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이 무슨 그럴듯한 정책을 내놓아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직결되지 못하는 것이다.

요컨대, 민주당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를 말로 떠들어댈 줄은 아는지 몰라도, 사회를 민주진보개혁적으로 바꿀 역량이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이것은 민주당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고, 소위 '원로 그룹'을 포함한 시민운동가 그룹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그래도 48%의 유권자는 문재인을 지지했다. 집권해서 변화를 추동해낼 역량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일단 기회를 줘볼 가치는 있다고 본 사람들이다.

그러나 1577만 명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박근혜가 불쌍해서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박정희가 위대하다고 생각해서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박근혜로 대표되는 기득권에 자기가 속하기 때문에 표를 준 사람도 있고, 문재인이 대통령 되면 안보가 불안할까봐 표를 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문재인을 찍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1577만 명 가운데 이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민주진보개혁 진영에 표를 줄 확률이 별로 높지 않다.

경제민주화, 평화, 복지에 찬성하지만, 문재인은 기득권을 누를 힘이 없기 때문에 그 일을 해내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가 물타기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박근혜는 공약을 지킨답시고 흉내라도 내는 척을 할 테고, 이에 대해 기득권이 대놓고 저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의 정책에 진정성이 있지만, 어차피 기득권의 저항 (그리고 민주진보진영 과격파의 불만) 때문에 박근혜가 시늉내는 정도의 성과도 없이 정치판이 싸움판으로 전락할 바에야 차라리 박근혜를 찍은 사람들에 주목해야 한다.

민주와 진보와 개혁을 입에 담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런 사람들을 주목하고 이런 사람들의 의견과 정서를 존중해야 한다.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이들이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정치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 전에는 민주당 그리고 안철수까지 망라하더라도 범진보세력이 집권할 가망은 별로 없다. 패인 분석이라는 미명 아래 책임전가와 권력투쟁과 마녀사냥에 몰두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책임전가와 권력투쟁과 마녀사냥이라는 사실조차도 감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집권이 박정희와 전두환과 이건희를 숭배하는 폭력적 속물들의 집권에 비해서 왜 나은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선호할 이유를 심어줘야 하는 것이다.

 
 
 

 

/박동천 전북대학교 교수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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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대선패배는 패러다임 변화 주도 못한 탓

뒤집어 엎어 '안철수 신당', 그게 잘 될까

[게릴라칼럼] 야권의 대선패배는 패러다임 변화 주도 못한 탓

13.01.08 20:01l최종 업데이트 13.01.08 20:01l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2년 대선을 규정짓는 가장 중요한 열쇳말 가운데 하나는 '안철수 현상'이다. 안철수 현상이 없었더라면 이번 대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을 것이다. 나는 이번 대선 결과를 분석할 때에도 안철수 현상이 가장 중요한 열쇳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 대선 결과를 논하기에 앞서 우선 안철수 현상이 무엇이었나를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관련기사 : 문재인, 이 말 한마디 왜 못했나)

이번 대선의 키워드 '안철수 현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 9월 19일 "저에게 주어진 시대의 숙제를 감당하려고 한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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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안철수 현상의 본질은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욕구이다. (관련기사: '군복' 걸친 박근혜-문재인, 안철수 못 이긴다 우리는 안철수를 선택해도 되는 것일까 )

뭔가 바뀌어야 한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은 선거 때마다 나온 말이었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는 생각의 틀과 사물을 보는 관점을 완전히 뒤엎는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일상화된 '변화'라는 말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철수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진보진영이 이번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생각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로서의 안철수 현상은 "나는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니다"라는 안철수의 발언에 농축돼 있다. 세상은 이미 낡은 보수·진보의 대립구도로 설명되지 않는다. 시대를 선도하고자 했다면 이 대립구도부터 깨뜨려야 했다.

상황을 단순화시켜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전통적인 보수의 패러다임은 안보와 성장이 주축이다. 전통적인 진보의 패러다임에서는 민주화와 분배가 안보와 성장에 각각 맞서는 대립항을 형성하고 있다. 안보는 민주화를 억누르는 데에 효과적인 핑계였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감행한 것도, 유신을 단행한 것도 명목상으로는 안보가 문제였다. 전두환이 광주를 도륙할 때도 '폭도'나 '불순좌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핑계를 내세웠다.

이런 폭압적인 독재에 맞설 때 안보와 민주는 서로가 상호배제적이어서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내몰린다. 성장과 분배도 비슷하다. 민주화와 87년 체제, 그리고 그 체제가 남긴 패러다임에서는 상호배제와 양자택일이 미덕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우리는 그로부터 상당히 멀어졌다. 만족스러울 만큼 과거청산이 이루어졌는가와는 무관하게 우리는 이미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진보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과거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새 시대를 맞이할 준비도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미래가 항상 우리를 기다려줄 만큼 친절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과거와는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형식적이나마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 우리에게는 더 이상 안보와 민주화가 상호배제적으로 대립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안보와 민주화, 둘 다 하면 그게 제일 좋은 것 아닌가? 성장과 분배, 그거 둘 다 할 수 있으면 가장 좋은 것 아닌가?

NLL논란과 김대중의 '햇볕정책'

1997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은 좋은 벤치마킹의 사례이다. 평생 '빨갱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았던 김대중이 남북화해정책인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가 햇볕정책을 제1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절대 용서치 않겠다는 것이었다. 김대중은 이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무력도발 응징은 물론 햇볕정책을 위한 논리적 전제조건인 측면도 있으나, 그와 함께 "김대중이 당선되면 북한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항간의 소문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실제로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사람이야 얼마 없었겠지만 수십 년 동안 빨간색 딱지가 붙은 김대중에 대한 이유모를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상당수였음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김대중의 이 전제조건은 말로 끝나지 않고 전략무기 도입과 해공군력 강화로도 이어졌다. 대양해군 건설을 위해 이지스함 도입을 결정한 것도 이때였다. 공중요격으로부터 함대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은 이지스함은 최근 북한이 로켓을 발사할 때마다 그 항로를 추적하는 등 평시에도 대공방어 관련 임무에 절대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대중을 계승한 노무현은 '군국주의자'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전략무기 도입과 자주국방에 관심이 높았다.

이번 대선에서 NLL관련 논란이 증폭될 때마다 나는 김대중의 햇볕정책이 떠올랐다. 왜 문재인 쪽에서는 안보문제에 대해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왜 미리 안보문제에 대해서 보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정책과 공약을 마련하지 못했을까? 예를 들어 NLL을 확고히 사수하겠다는 말만 할 게 아니라(한국의 현실에서는 그 말이라는 것도 사실 지겹도록 반복해서 말해야만 약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과의 재래무기 군축협상을 통해 북한의 서해안 해안포나 수도권을 위협하는 서부전선의 장사정포를 절반 이하로 줄이겠다든지 하는 보다 적극적인 안보솔루션이 필요했다. 이런 노력은 노무현-김정일의 10.4 선언에 담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현실화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은 진보라고 해서 안보문제를 회피할 수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더 이상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가안보의 개념은 단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안보개념을 정립하고 그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보수든 진보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꼭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지난 10월 12일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사실이라면 제가 책임 지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도 평택 해군 2함대를 방문한 문 후보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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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의 오류나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잠시 무릅쓰고 말하자면, 내 주변에는 "빨갱이한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박근혜에게 투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선거공학적으로 따져 보자면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이 NLL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영리한 선택이었다. 물론 나는 이것이 잘못된 사실에 근거한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의 투표 현실에서는 이것을 단지 정치공세로만 치부해버릴 수가 없다.

이와 반대로 이번 대선에 나선 박근혜의 '변신'은 화려했다. 안보와 민주가 대립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자신에게 부족한 '민주'를 메우기 위해 경제민주화라도 들고 나온 노력은 가상한 면이 있다. 물론 박근혜의 경제민주화에는 허구적인 요소가 많지만, 적어도 박근혜가 '민주화'에 맞선다는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선거공학적으로 말하자면 '물타기'에 성공한 것이다. 부지불식중이었겠지만, 역설적이게도 박근혜 캠프가 오히려 안철수 현상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다.

이런 역설은 성장·분배의 대립구도에서도 재현된다. 박근혜의 복지정책 역시 허구적인 면이 많다. 가령 그의 반값등록금은 실상 국가장학금제에 불과해서, 결국 나랏돈으로 대학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3차 TV 토론 뒤에는 심장은 아파도 간은 아프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박근혜의 의료정책에는 허점도 많다. 하지만 이것은 디테일일 뿐이다. 진짜 그의 본심이 무엇이든 간에, 외형상 박근혜는 복지, 즉 분배에 맞서지 않았다. 만약 박근혜가 복지는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는 입장을 취했더라면 이번 선거의 양상은 크게 달랐을 것이다.

문재인에게 쓸 만한 성장담론, 두 개나 있었지만...

성장과 복지를 모두 하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국민은 없다. 중도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박근혜의 이런 모습이 선택의 고민을 덜어줬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문재인에게서는 성장의 담론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문재인에게는 아주 쓸만한 성장담론이 두 개나 있었다. 하나는 김대중이 제시했던 지식기반경제이고 또 하나는 안철수라는 인물 자체이다. 물론 지식기반경제라는 것이 실체도 모호하고 벤처열풍의 거품이 거셌던 것도 사실이지만, 저임금 싸구려 상품만 만들던 경제에서 탈피해 고급인력 중심의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전환하자는 아이디어는 지금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IT 산업의 인프라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구축된 것도 어쨌든 DJ의 유산이었고, 사회 민주화로 인해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확대돼 본격적인 한류열풍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고, 그 동력으로 소득 2만 달러를 찍었던 것도 노무현 시절이었다.

게다가 그 잘나가던 IT신화의 산 증인인 안철수가 바로 옆에 있지 않은가. 안철수 현상을 다룬 여러 기사에서 이미 밝혔지만, 안철수는 '사악하지 않은 성장'의 아이콘이다. 그 이전까지는 성장을 위해 민주나 도덕성 사회정의 등을 포기해야만 했지만(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MB였다.) 안철수의 성공은 그 모두가 양립가능함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바로 포괄적 패러다임으로서의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다. 문재인 캠프는 왜 이런 훌륭한 유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을까? 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것까지는 아니었더라도 김대중-노무현-안철수의 의미 있는 시도와 성과를 잘 받아 안는 것만으로도 정통부와 과기부를 없앤 현 정부(그리고 그에 적극 동조했던 박근혜)와 뚜렷한 차별점을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아쉬움은 윤여준의 찬조연설까지 이어진다. 물론 윤여준이라는 인물이 문재인 찬조연설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그 윤여준이었기 때문에 기대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윤여준은 찬조연설 15분 내내 사람 좋은 문재인 만나서 2시간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만 했다. 윤여준 정도 되는 분이면 중도보수층이 문재인에게 투표하기 꺼리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본인이 연설 초반부에 잠깐 언급했듯이 안보에 대한 불안감(그리고 성장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런데도 그 불안감을 해소할만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문재인 후보나 캠프 차원에서 치밀하고 조직적인 계획이 없었던 마당에 지나친 요구를 할 수는 없으나, 다른 누구도 아닌 천하의 윤여준이 아닌가. 적어도 그가 DJ-노무현 정부의 국가안보 그리고 위기상황(구제역 파동 같은)을 관리하는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만 해 주었더라도 막판까지 고민하는 중간층에게는 어필하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안철수 현상의 진원지였던 안철수 본인도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새로운 '현상'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한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존재 자체가 착한 성장의 징표였고 본인 입으로 보수와 진보의 낡은 대립구도를 깨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또 어떻게 그것을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런 답을 내놓지 못했다. 본인을 통해 터져 나온 새로운 시대로의 요구, 단순한 변화가 아닌 사고와 관점과 규범의 틀인 패러다임 자체를 완전히 뒤엎으라는 요구가 어쩌면 안철수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웠는지도 모른다.

패러다임 변화 수용한 건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12월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 난향동의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상배(61)씨 집을 찾아 도시락을 전달한 뒤 복지 정책 공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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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대선의 최대의 역설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오히려 박근혜 캠프가 가장 충실하게 구현했다는 점이다. 원래부터 의도했던 결과인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적어도 복지사회라는 시대적 흐름을 자기 방식으로 적극 수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박근혜는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뒤 후보수락연설에서 "저는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 중심으로 바꾸겠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안보·민주화, 성장·분배라는 낡은 이분법적 대립구도 속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민주화'와 '분배'를 '경제민주화'와 '맞춤형 복지'로 커버한 것이다. (이런 커버가 가능했던 것은 보수일색의 언론과 공정하지 못한 국가기관들의 도움 때문이긴 하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물론 이것이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포괄적 패러다임의 고민 속에서 자기완결성을 갖춘 형태로 진정성을 담아 제시된 것은 아니라고 보이지만, 최소한으로 평가하더라도 선거에서 야권후보의 차별화를 '물타기'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재인에게 필요했던 것은 박근혜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것 못지않게 안보와 성장에서 '역 물타기'라도 감행하는 용기나 임기응변이 아니었을까 싶다. 문재인이나 야권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2012년의 시점에서 어느 정도 자기완결성을 갖춘 포괄적 패러다임을 생산한다는 것은 힘에 부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모든 것이 풍족하게 갖춰진 조건 속에서 정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없으면 없는대로, 그 상황 속에서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최선의 결과를 내는 것이 또한 정치가 아닌가. 안철수 현상이 던지는 시대적 과제, 즉 패러다임의 변화를 좀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단초들이라도 하나씩 주워 담았더라면 똑같이 선거에서 패배했더라도 우리에게 남겨진 유산이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민주당이든 혹은 다른 새로운 진보정당이든 언제라도 권력을 잡고 국정을 운영하려면 안보·민주화 혹은 성장·분배처럼 지금까지 인식의 대립축으로 각인된 요소들을 모두 해체하고 재구성해서 새롭게 포괄하는 수권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벌써부터 정치권 안팎에서는 야권발 정계개편이나 안철수 신당 같은 소문들이 무성하다. 선거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겠다는 욕심만으로 또 이렇게 구태의연한 이합집산만 되풀이한다면 5년 뒤에도 그렇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급할수록 둘러가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지금 야권에게 필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변화에 적응하고 나아가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 필요한 콘텐츠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지난 5년 내내 야권은 한 목소리로 박근혜를 '수첩공주'라고 비아냥거렸지만, 결과적으로는 야권 자신의 변화에 대한 인식수준이 박근혜만도 못한 것으로 드러나 버렸다. 무엇을 시작하든, 먼저 이것부터 반성하자. 박근혜 5년을 어떻게든 살아내려면 그 정도의 반성하는 용기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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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광기 어린 '빨갱이'타령과 박노해의 '노동자'


 

 

 


1970년대 '오적필화 사건'과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김지하가 있었습니다. 한일 회담 반대 시위로 투옥됐다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으며 유신 시절 존경받는 시인으로 살아왔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변했습니다.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박정희의 딸을 지지하는 선언을 하기도 하고 야권 인사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문재인은)반대'가 아니라 '형편없다.'
(안철수는)글쎄, 처음에는 내가 기대를 했었지. 어떤 사람인가. 모르니까 만난 적도 없고, 그런데 보름 지나서 가만히 보니까 정치발언이라는 것은, 정치발언은 숨기고 자시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대로 한마디, 한마디가 다 정치야. 그러면 뭐가 나와야 될 거 아니요? 매일 떠드는데. 가만 보니까 '깡통'이야. (CBS 김현정의 뉴스쇼)



김지하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든 누군가를 형편없다고 막말을 하든 그것은 별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보수화가 된 것은 스스로 선택한 그만의 삶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했던 발언에서 자꾸 저의 머릿속을 쿵쾅하고 때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빨갱이'라는 단어입니다.

 

◇ 김현정 > 아니, 그렇게 지원을 했기 때문에 점점 더 통일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서요.
◆ 김지하 > 어디가 가까워져요?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


김현정 앵커가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터져 나온 ' 이 방송 빨갱이 방송이요?'라는 김지하의 물음을 보면서 이 사람늙은 나이에 정말 이상하게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유년시절 가졌던 상처를 이런 식으로 노년에 끄집어내는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 김지하의 '빨갱이'에서 서청이 느껴진다'

김지하에게 '빨갱이'는 평생 그의 트라우마처럼 감추어진 비밀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의 아버지 김맹모는 일본에서 공산주의 이념에 심취했던 인물로 인민군 점령하에서는 목표시 당 간부로 활약하다가 국군이 들어오자 영암 월출산의 빨치산으로 입산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빨갱이였기에 그 또한 빨갱이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당했고, 그는 이것을 감추기 위해 “육십 생애 안에 깊이깊이 감추어진 비밀주문”처럼 간직하고 살았습니다.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저 저 XX 빨갱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숱한 생목숨이 죽창에 찔려 죽어야만 했고, 구덩이에 파묻혀야 했습니다.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대한민국 국군과 반공극우단체들이 전국각지에서 보도연맹원을 학살한 사건으로 그 피해자 중에는 다수의 양민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가 빨갱이였으면 그 자식도 빨갱이라는 논리 속에 수만 명의 좌익 가족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단순히 고무신 한 켤레, 쌀 한 말 받고 보도연맹 가입서류에 이름 석자 올렸다고 끌려가 총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이런 우리 현대사의 아픔 속에서 김지하는 '빨갱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험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흰머리를 날리는 나이에 자신의 입으로 '빨갱이 방송이냐', '깡통 빨갱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합니다.

김지하가 누구를 지지하건 그 사람이 누군가를 평가하건 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빨갱이'라는 단어는 엄청난 위력과 공포를 지니고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강력한 무기임에 틀림이 없기에 그의 '빨갱이' 타령은 늙은이의 개인적 발언이라고 보기에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1946년 이북출신 청년회로 결성된 서북청년단과 2012년의 반공단체.

 


북한에서 월남한 청년 중에는 북한에서 지주와 재산가들의 자식으로 토지몰수와 친일 행적을 피해 넘어왔기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뺏은 좌익을 북한 정권과 동일시하여 철저하게 복수를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경찰과 국군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서북청년단(서청)이었고, 이들은 빨갱이라면 무조건 재산 강탈과 겁간, 폭행을 일삼았습니다.

이렇게 무자비한 광기의 흐름이 지금도 이어진 세상에서 '빨갱이'는 단순히 사상의 단어가 아닌 복수와 증오의 표상이 되었기에 우리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화를 꿈꾸던 사람들에게 빛과 같던 시인의 입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나옴을 어찌 경악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 김현정 > 아니, 그런데 윤창중 대변인은 정치인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지지하는 48%는 국가전복세력이다,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다. 이런 말까지 해서 말입니다.
◆ 김지하 > 공산화 세력을 좇아가니까 공산화 세력이 된 거지. 아니요?

 



과연 문재인을 지지했던 48%가 국가전복세력이고 공산화 세력을 쫓아가는 사람이었을까요?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에 박근혜를 지지하지 않으면 '빨갱이'가 되는 것인가요?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이엠피터'는 그의 얼굴에서 문득 서청과 같은 독기와 복수를 보고 말았습니다.

'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 박노해'

김지하의 1970년대가 지나고 1980년대 '얼굴 없는 시인'이라고 불렸던 박노해라는 시인이 등장합니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의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으로 선린상고 야간을 나오고 섬유,화학,금속,정비,운수 등 다양한 직종에서 일했던 박노해는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박노해는 무려 7년 동안 그의 얼굴조차 몰랐던 안기부에 의해 1991년 체포됐고,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수괴'라는 제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시국공안사범으로는 6공들어 처음 사형이 구형됐던 박노해.출처:한겨레

 


박노해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교도소에서 출소한 이후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낡은 흑백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전시하거나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나눔문화'를 전개하면서 '적은 소유로 기품있게 살아가는 삶의 비전'을 제시하는 운동을 전개하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노해를 변절자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그는 진짜 골수 '사회주의자'라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가 주장했던 사회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NL이고 PD고 그런 사상을 잘 모르는 저에게는 그가 감옥에서 나온 뒤 했던 말이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

'(사회주의를 포기했나?) 현실체제,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노동,평등,사회복지,인간중시 등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는 의미가 있다' (1999년 경향신문 인터뷰 중에서)

사회주의를 말하는 어떤 텍스트와 사상의 구절 속에 노동,평등,사회복지,인간중시가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버릴 수 없던 노동,평등,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지금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이 땅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억압받고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철탑위에서 농성중인 해고노동자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숨진 22명의 노동자 추모식.출처:오마이뉴스

 


박노해가 1984년 펴낸 '노동자의 새벽'이라는 시집에는 이런 시가 나옵니다.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지금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읽노라면 1984년과 2013년 무엇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아직도 힘들고 어렵습니다.

박노해가 버린 사회주의 사상이 무엇인지, 그가 주장했던 사회주의 체제가 무엇인지 별로 관심도 없거니와 그가 꿈꾸었던 낡은 체제는 지금에서는 그다지 필요성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가 느꼈던 노동의 아픔과 힘듦은 아직도 구구절절 느껴집니다. 이것이 오늘 포스팅을 쓰는 이유입니다.

 


 

 


박근혜 당선 이후 블로그에는 '종북좌파','빨갱이','간첩'이라는 댓글이 하루에도 수십 개씩 달립니다. 그런데 어쩌죠, 저는 아직도 NL과 PD의 차이도 잘 이해가 안 가고, 막스이론이 뭔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제를 바꾸는 노력을 그저 '진보'라고 부르고 무조건 '빨갱이, 종북타령'으로 일관하는 사람의 답답함을 '보수'라고 부를 뿐입니다.

왜 대한민국은 수십 년이 지나도 '빨갱이'이라 부르며 상대방을 바라볼까요? 그냥 그런 이분법적인 빨갱이라는 단어 말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요구를 그대로 인정해주면 안 될까요?

김지하는 자신의 '지하'라는 필명을 버리고 본명 김영일, 호는 노겸을 쓰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노겸이라는 뜻은 '발에는 근로의 신을 신고,머리에는 겸손의 모자를 쓰며, 부지런히 일해 공로를 세운 다음 겸손으로 일관하는 자태'를 의미합니다. 그가 유신 시절 민주화운동을 위해 고초를 받은 것은 사실이고 공로이겠지만, 과연 말년에도 겸손으로 살아가는지는 의문입니다.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는 것이 과연 '빨갱이'가 하는 짓일까요? 어떻게 문재인을 지지하며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꿈꾼 것이 공산화 세력으로 둔갑할 수 있나요?

이제 사상의 시대는 지났다고 봅니다. 우리는 사상으로 국민을 재단하기보다 인간 스스로의 행복을 원하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에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빨갱이'이를 외쳐대며, 산업화를 성공한 박정희를 찬양하면서도 임금조차 받지 못해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고 사상이 낡아지고 체제가 변해도 2013년 지금도 박해받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이 꿈꾸던 '햇새벽'이 아직 오지 않았음을 알기에 여전히 우리는 타는 목마름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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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구글대표단방북을 왜 두려워하나?

 

 

 

오바마, 구글대표단방북을 왜 두려워하나?
 
<분석과전망>대북적대의 종식이 불러올 충격파를 줄이기 위한것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3/01/08 [21:07] 최종편집: ⓒ 자주민보
 
 

1. 케리 국무장관과 헤이글 국방장관이 만들어낼 안보라인의 결정적 의미

오바마 미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국방장관에 척 헤이글(67)을 지명함으로써 오바마2기의 대북정책기조는 사실상, 대화 쪽으로 확정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헤이글은 대북유화파로 분류되는 정치인이다. 과거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해 날선 공격을 아끼지 않았던 데에서 그것은 대표적으로 확인된다. 그는 부시의 대북고립정책에 대해서 줄곧 반대를 했었으며 특히 이라크전쟁을 비롯하여 아프카니스탄전쟁 등까지도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대북제재는 물론 이란제재에 대해서도 찬성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유대인들의 대미영향력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을 하는 등 반 이스라엘태도까지 갖고 있다.
공화당 소속으로서는 이례적이라할 만도 했다. 1996년 처음 상원에 진출한 이래 줄곧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해왔던 헤이글은 2008년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었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실력 있고 비중 있는 정치인이다.

오바마 대북정책의 전환은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특히 지난 해 말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 존 케리 상원의원이 국무장관에 지명되면서부터 대북정책 전환의 기류는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케리 국무장관지명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 경력이 있는 거물급 정치인으로서 오바마가 집권 1기 내내 대북적대정책을 고수하고 있을 때 북미양자회담 개최를 주장할 정도로 대북유화파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대화 쪽으로 그 기조를 바꾸게 된 것은 자신의 대북적대정책인 ‘전략적 인내’가 아무런 성과를 내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적 평가에 기초한 것으로서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구체적으로 대북적대관계를 완화하는 방향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2.그런데 왜, 미국은 구글회사대표단 방북에 난리인가?

분석가들에게, 오바마가 대북정책을 대북적대관계 완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그에 대해 정치.경제적으로 가장 발 빠르게 반응하고 있는 현상들은 크게 주목 받을 수밖에 없다. 그 현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과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이다.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를 단장으로 하는 9명의 미국 구글회사 대표단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7일 방북했다. 슈미트 회장은 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으며 리처드슨 전 주지사의 고문인 한국계 미국인 토니 남궁씨, 구글의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의 재러드 코헌 소장 등도 동행했다. 방북기간은 3박4일이다. 방북에 앞서, 리처드슨 전 지사 측은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방북이 개인적, 인도적 목적이라고 밝혔다.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은 돌출적인 행동으로 평가받을 만한 행보는 결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자세히 보지 않아도, 전환이 분명하게 예고되고 있는 오바마2기의 대북대화책과 상당히 부합하는 측면이 많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글회사 대표단 방북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심각하고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차례에 걸쳐서이다. 미 국무부는 먼저, 방북 시점을 문제 삼았다. 지난해 말 북이 광명성3호를 발사한 이후 미국이 동맹국들과 대북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국무부는 이어 방북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사기를 올려주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 등을 문제 삼았다. 이에 따라 국무부는 “그들은 미국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강조하여 표명하는 등 우려와 반발을 많이 갖고 있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냈다.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에 대해 미국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을 두고 분석가들은 미국 내의 대북강경세력들의 반발을 의식한 행보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지만 이는 아무래도 옹색해 보인다. 이번 구글대표단의 방북은 일정이 마무리되고 미행정부에 그 내용들이 확인되고 나면 그 정치적 성과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드러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이전에 있어왔던 고위급인사의 방북과는 달리 봐야할 부분이 적지 않다.

결정적으로는 정세적 측면에서 그렇다. 이전에 있었던 미고위급인사의 방북은 대결국면이 지속되는 가운데 대결의 출구전략으로 그것도 일회적으로 모색되었던 것이거나 그 방식 역시도 돌출적인 측면이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러했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방북은 대북화해정책으로 전환이 확고해지고 있는 조건에서 그에 부합하는 행보인 것이 분명한 것이다. 오히려 문제는 구글회사대표단의 방북에 대해 한사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미국정부의 입장과 태도가 더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일부 분석가들이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에 대한 미정부의 부정적인 태도를 주요하게 분석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유이다.


3. 현 시기 북미대결전의 상태를 정확히 읽어야 북미대결전의 향방이 보인다.

현 시기 북미대결전의 현주소 그리고 그 향방을 제대로 가늠하는데서 주요하게 보아야할 정세지점이 약 네가지라는 것은 특별하게 강조될 필요가 있다. 모두 다 지난 해에 있었던 사건들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8월 25일 동부전선 시찰길에서 진행한 8.25 경축연설을 필두로 해서 4월 15일에 있었던 열병식과 12월 12일 광명성 3호 발사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7월 말에 있었던 북미싱가포르회동이다.

<나는 이미 서남전선의 최전방부대들에 나가 적들의 무분별한 추태를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예리하게 살피며, 만약 적들이 신성한 우리의 영토와 영해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즉시적인 섬멸적 반타격을 안기고 전군이 산악같이 일떠서 조국통일대업을 성취하기 위한 전면적 반공격전에로 이행할 데 대한 명령을 전군에 하달하였으며 이를 위한 작전계획을 검토하고 최종 수표하였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해 8월 25일에 했던, ‘선군혁명 시작 52주년’을 기념하는 연설에 담겨있는 핵심내용이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이 연설에서 <도발에는 즉시적인 대응타격으로, 침략전쟁에는 정의의 조국통일대전으로! 이것이 우리의 원칙적 입장이며 확고한 의지>라고 밝혔다.

정세분석가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2012년 8.25연설을 조선인민군 총사령관으로서 미국을 향해 ‘조국통일대전’ 준비완료를 선포한 연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조국통일대전’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한 ‘판가리 결전’ 그리고 “우리의 참을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문장을 구사한 것 등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2012.8.25연설에 대해 많은 정세분석가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북미대결전의 종식경로에 전쟁이라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2012.8.25연설이 전쟁방식을 통한 북미대결전의 종식경로를 확인해준 것이라고 한다면 그에 대해 실물적으로 뒷받침을 해준 것이 4월 15일 열병식에 등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그리고 그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입증해보인 12월 12일 광명성3호 발사였다. 북이 지난해 헌법에 핵보유국이라고 명시를 한 조건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능력까지 확실하게 보여준 현실은 군사적 압박을 중심으로 해왔던 미국의 대북붕괴정책의 파탄을 의미해준다.

이어 김정은 제1위원장은 북미대결전의 종식경로에는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나선다. 19년만에 부활시킨 올해 육성신년연설을 통해서이다.

<혁명무력은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경축 열병식을 통하여 사상과 신념이 투철하고 그 어떤 강적도 타승할 수 있는 우리 식의 현대적 무장장비를 갖춘 백두산혁명강군의 무진막강한 위력을 시위하였으며 적들의 끊임없는 전쟁도발책동과 반공화국모략소동을 걸음마다 단호히 짓부시고 조국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였습니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올해 육성신년사를 통해 내리고 있는 지난해 열병식에 대한 규정이다. 북미대결전에서 북이 앞세우고 있는 군사무력에 대한 강조이다.

<장군님의 유훈을 빛나게 관철하고 주체조선의 우주과학기술과 종합적 국력을 힘 있게 과시하였습니다. 100% 우리의 힘과 기술,지혜로 과학기술위성 제작과 발사에 성공한 것은 태양민족의 존엄과 영예를 최상의 경지에 올려 세운 대경사이며 천만군민에게 필승의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조선은 결심하면 한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준 특대사변이였습니다.>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언급하고 있는 이것은 인공위성발사에 대한 규정으로서 군사적 측면과 더불어 경제강국과 결부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육성신년사를 통해 군사강국 그리고 경제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강조한 것은 북미대결전을 평화적인 방식으로 종식시키는 데에서 군사력과 경제력을 주요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미.대남관계와 관련된 신년사의 내용들은 전반 기조에서도 확인되듯이 대화기조를 중심으로 잡아놓고 있는 것이다.

북미대결전이 대화기조로 잡혀나가게 되면 당장에라도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지난해 7월말에 있었던 북미싱가포르회동이다. 전쟁억지력으로서의 군사력과 생활력으로서의 경제력을 앞세워 북미대결전을 대화방식으로 종식시켜나가게 될 때, 그때 해결해야할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이 될지에 대해서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 북미싱가포르회동인 것이다. 그 회동에서 북은 비핵화 조건으로 평화협정체결,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4.시끄럽거나 복잡해도 돌이킬 수 없는 대화국면으로 진입하게 될 듯

이 네가지 정세지점을 중심에 틀어쥔 다음 가장 단순하게 접근을 해도 분명하게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정세가 미국에게 대화냐 대결이냐를 선택의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강제하고 압박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좀 더 세밀하게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의외의 상황이 준비되거나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론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정세가 대화냐 대결이냐에서 벗어나 이미 대화국면에 진입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염두해두고 전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자면 대북적대관계를 단순히 완화하려는 미국과 적대관계를 완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종식시키려는 북과의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다.

미 정부가 두 고위급인사의 방북에 대해 우려하는 것이 대화국면을 조성하고 적대관계의 완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자칫 그것이 적대관계를 아예 청산하려는 북의 거침없는 대화공세에 말려들 것에 대한 우려의 표현일 수도 있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항상 팽팽하게 대립을 치는 적대국을 필요로 하는 제국주의국가에 있어서 60년 이상을 치열하게 대립해왔던 적국과의 적대관계의 급격한 청산은 제국주의에게는 자칫 정치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조성할 수도 있는 측면이 있다. 더구나 경제위기에 내몰려있는 정세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를 두고 통일학 연구소 한호석 소장은 최근의 기고문에서 ‘미국판 급변사태’라는 재미 있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위기가 최소한의 가능성이라도 갖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미국으로서는 충분히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로 된다. 이른바 연착륙전략을 미국은 고민해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미 고위급인사의 방북에 대한 미 정부의 우려는 결코 단순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그에 따라 흥미롭다고 말하고 말 그런 성격의 문제 또한 아닌 것으로 볼 수있다. 대북적대관계청산이 불러올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연착륙전략으로 볼 수 있는 측면을 다분히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론이 이후 정세발전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하는 것 때문에 근거가 약할 수는 얼마든지 있다. 그로부터 과도한 분석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과도할 수 있는 그 측면은 그러나 이 추론을 완전하게 부정하는 데로까지는 나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회사 대표단의 방북을 둘러싸고 감지되고 있는, 사소할 듯이 보이는 약간의 쟁점들은 대화를 부정하는 성질의 것이 결코 아니며 다만 대화국면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 하는 범주의 문제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남북관계 북미관계를 연구해왔던 수많은 대북전문가들은 북의 최근에 보이고 있는 많은 모습들에서 북에 대해 반세기 이상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며 군사적으로 압살하려했던 미국의 대북대결정책이 이제 더 이상 존재이유를 갖기 힘들게 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북미대결전이 대화냐 대결이냐에서 벗어나 바야흐로 대화의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대화의 국면에 있게 되는 곡절과 복잡함 그리고 시끄러움은 여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세기를 훨씬 뛰어넘는 장구한 세월의 결전이었고 그 치열성으로 치면 역사적 전례가 없을 정도인 것이 북미대결전이다. 북미대결전을 한없이 단순화시켜내서는 북미적대관계를 ‘단숨에’ 종식시켜내려는 북과 이에 맞서 적대관계를 서서히 완화시키려는 미국의 대립대결은 기본적으로 격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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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

"한국에 정의는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 버려야
국정원 직원 앞에 '자베르 경감'은 없었다"

[신년인터뷰]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 표창원 경찰대 전 교수①

13.01.07 18:04l최종 업데이트 13.01.07 21:04l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에는 정의가 없다'는 패배주의는 안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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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들은 특정한 국면에서 상징적인 인물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명박 정부 4년차에서는 반MB(이명박) 대안매체인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3인방이 선택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멘붕'(심리적 붕괴상태)에 빠진 이들이 '뜻밖의 인물'을 선택했다. 국내 경찰학 박사 1호이자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로 활약해온 표창원 경찰대 교수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흐름에 속한 대중들이 표 교수를 선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가 범죄학을 전공했고, 그동안 현안에는 대체로 보수적인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보수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그런 표 교수가 지난해 12월 16일 자신의 블로그 '표창원의 범죄와 세상 이야기'에 올린 글('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요구하고 경고합니다')에서 "진정한 보수라면 친북 좌빨 주장은 집어치우라"라고 요구하면서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를 무한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보수'라고 주장해 큰 공감을 얻었다. 게다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가치가 '정의'다. 현재 '한국에서 정의는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전국 강연 투어까지 준비하고 있다. 그에게는 '평화'와 '신사'도 보수가 가져야 할 핵심가치다.

여기에 이르면 표 교수가 진보주의자인지 보수주의자인지 헛갈린다.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분배, 풍성한 자유와 건강한 평화'를 진보의 가치로 보는 관점을 따른다면 그는 분명 '진보주의자'에 가깝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보수주의자'라는 타이틀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이는 분단체제 등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이념이 뒤틀리고 왜곡된 한국사회의 희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표창원 열풍'은 정의와 공정, 평화 등을 내세우면 '종북 좌빨'이라고 딱지붙여버리는 한국사회의 천박성을 향한 고발의 성격이 짙다. 단순히 대선패배의 힐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그의 커밍아웃은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표 교수와의 신년인터뷰는 지난 3일 <오마이뉴스> 서교동 사옥에서 오후 3시부터 2시간여 동안 이루어졌다. 인터뷰는 영화 <레미제라블>, 한국 보수와 정의, 대선 결과와 박근혜 당선인의 과제 등을 주제로 진행됐다. 그는 주로 한국 보수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까발렸지만 "'한국에는 정의가 없다'는 패배주의는 안된다"며 진보진영을 향해서도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정의는 대단히 천천히 오기도 하지만 반드시 온다"며 낙관론을 폈다.

"직업의 특성상 자베르 경감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 연말·연초는 바쁘게 보냈죠?
"정신없었다. 다들 저보고 살이 쫙 빠졌다, 다이어트 한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한번 신종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일을 저질러라, 그리고 모든 에너지를 고민과 갈등으로 태우듯 지방을 다 태워 버려라, 그러면 일주일 내에 전혀 건강에 지장 없이 1kg 가까운 감량 효과를 볼 것이다."

- 그럼 지금보다 살이 좀 쪘다는 얘기인가?
"지금보다 좀 살이 쪘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주 괜찮은 것 같다."

- '집단 힐링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 영화 <레미제라블> 단체 관람을 제안했는데.
"제가 원래 <레미제라블>을 많이 좋아했다. 영국 유학 때부터 자주 봤다. 참 감동적이었다. 한국어 초연을 얼마 전에 우리 동네(용인)에서 했다. 그래서 가서 또 보고. 지난 10월 브레트 토베이라는 미국 프로파일러를 초청해 1주일 같이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했던 적이 있다. 일주일 내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친구가 <레미제라블>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저한테 해줬다. 그래서 '아, 진짜냐, 나 아주 좋아하는데, 누가 나오느냐?'고 물었더니 '휴 잭맨과 앤 해서웨이가 나온다'고 했다. 제가 '그 사람들이 노래할 줄 아나?' 물었더니 '다 잘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주고받았는데 이번 대선에 저도 모르게 이렇게 예상치 않는 일에 말려 들어가고, 그런데 마침 <레미제라블>이 개봉했다. 그런 상태에서 저도 좀 치유가 필요했고, 또 워낙 보고 싶었던 영화고, 다른 분들에도 프랑스 시민혁명의 실패, 좌파의 실패를 보면 가슴 속의 응어리도 많이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것도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같이 한 자리에서 보면 훨씬 더 재미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극장이란 게 묘하다. 동행한 사람 외에 다 타인들이고 낯선 사람들이다. 그래서 감정 교류를 하고 싶어도 못한다. 괜히 저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가 학창 시절에 영화 단체 관람을 많이 했다. 그때는 주로 반공 영화이긴 하지만, 그게 참 재미가 있었다. 같은 친구끼리 같이 가서 막 탄성도 지르고 웃기도 하고. 그 느낌을 되살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집단 힐링이란 이야기를 꺼내면서 우리도 개봉하기 전에 온라인으로 영화를 예매하자고 했다."

- 영국 유학 때도 두 번이나 원작 뮤지컬을 봤는데, 그때는 느낌이 어땠나?
"뮤지컬을 봐서 알겠지만 일단 장발장 개인에게 방점이 가 있다. 그리고 코제트와의 연결, 마리우스 같은 혁명군은 양념적 요소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로 그쪽에 많이 감정 이입이 된다. 저는 직업적 특성상 자베르 경감에 많이 동일시된다. 그가 가진 고뇌, 그가 아주 냉정하고 지나칠 정도로 법과 원칙에 집착하는 것에 공감하고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 시민혁명 부분은 제가 지내왔던 80년대 대한민국의 격동기와 맞물려 어느 정도의 공감은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 부분이 (공감이나 감정이입의) 주는 아니었다."

<레미제라블>에서 자베르 경감이 자살한 이유

- 영화에서 자베르 경감은 아주 철두철미한 법치주의자, 형벌주의자, 보수주의자로 그려진다. 그런 자베르 경감을 어떻게 평가하나?
"일단 우리나라 처지에서만 본다면 (자베르 경감은) 교과서다. 이번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도 그렇지만 앞서 디도스 사건 등 '권력형'만 들어가면 경찰이나 검찰이 갑자기 무력해진다. 용산 철거민이나 쌍용차 등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한 사건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추상같다. 하지만 자베르는 안 그럴 거다. 자기가 모시는 상관인 시장이 (장발장으로) 의심받는 상황이었다. 그때 자베르는 전혀 눈치 보지 않았고, 이 사람이 장발장으로 의심된다는 수사보고서를 상부에 올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잡히자 자베르가 시장에게 가서 사과한다. 상대방이 전혀 모른 상태에서 장발장으로 의심된다는 보고서를 올린 것인데도 바로 사과했다. 그런 자베르는 상대가 누구든, 그것이 상관이든 권력자든 '법을 어겼다', '범죄자다'고 한다면 사냥개처럼 무조건 수사한다. 그런 법 집행자에게서 휴머니즘을 찾고, 정치적 타당성을 찾고, 시대정신을 헤아려 이쪽 편을 들어라, 이렇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 법 집행자는 공평하면 된다.

여든 야든 나쁜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은 수사하고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노동자와 사용자도 마찬가지다. 경영주와 노동자 중에 누가 파울 플레이를 더 많이 했느냐를 찾아서 엄정하게 처벌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들은 서로 협약으로 풀고, 정치로 풀면 되지, 법 집행자에게 정치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자베르는 교과서다."

- 자베르 경감은 결국 자살한다. 이것은 더 이상 법 집행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취할 수밖에 없는 극한의 선택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아의 붕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자베르는 철저하고 원칙적으로 오로지 법과 진실을 정의라고 봤다. 그 위에 있는 메타(은유)적인 얘기나 광범위한 정의 부분은 모른다. 이것이 어떤 정치적 타당성이나 역사성을 가졌는지는 모른다는 거다. 자베르는 눈앞에 있는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 범죄를 저질렀느냐 안 저질렀느냐, 이것만 보는 것을 정의로 알고 살아 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혁명군에게 잡혔다가 장발장에게 도움을 받는다.

자베르는 '나는 정의롭다, 나는 정의를 수행한다, 다른 것은 묻지 마라, 법을 어겼느냐 안 어겼느냐가 내 모든 기준이고 잣대, 정체성이고 가치'라고 살아왔다. 그런데 '너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을 사람이야, 너는 영원히 범죄자야'라고 규정했던 장발장이 아무런 이익도 없이, 이해도 없이 자기를 풀어줬다. 자베르를 풀어주면 자기한테 불리할텐데도 풀어줬다. 그것은 악의 모습이 아니다. 자베르는 거기서 첫 번째로 흔들렸다. 이제까지 자신이 규정했던 '법을 어긴 자', '범죄자'는 악인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잡아서 어떤 무거운 형벌을 내려도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었고, 연민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이 장발장이라는 존재가 그런 자신의 모든 신념을 뒤집어 버리고 흐트러뜨린 거다. 범죄자도 인간이고, 범죄자도 자신보다 더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것이 자베르의 신념을 확 흔들어 버린 첫 번째 사건이다.

그 다음에 또 다시 장발장을 잡을 기회가 생겼다. 지하 하수구에서 마리우스를 업고 나오는 장발장을 보고 체포할 수 있었지만, 장발장이 호소했다. '이 청년을 바로 의사에게 보여야 하니 잠깐 나에게 시간을 달라, 그리고 내가 있는 주소를 말할테니 그리로 와 달라'고. 자베르는 거기서 얼어붙어 버렸다. 자신의 본래 모습이었다면 돌아볼 필요도 없이 수갑채워 끌고 가는 거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왜? 자기가 빚을 졌으니까. 자기가 저 사람 때문에 목숨을 건졌으니까. 자신의 신념과 가치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느끼는 기본 양심이 있다. 첫번째 자존감의 붕괴는 일단 고민거리로 남겨둘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행한 것(장발장을 바로 체포하지 않은 것)은 자기 스스로 적극적으로 원칙을 깬 거다. 범죄자를 놔 줬으니까.

자기가 스스로, 그것도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이익, 개인적인 보은으로 말이다. 그것은 부패다. 자기가 가장 싫어하고 나쁘다고 보는, 법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 원칙을 어기는 범죄자의 모습을 자기가 따라하게 된 것을 발견한 거다. 그러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자기 존재의 의의를 찾을 수 없게 된 거다.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거다."

"현장에 계속 있었다면 '자베르적 정의'를 추구했을 것"
 

"저는 <레미제라블>의 자베르 경감보다 좀 인간적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다만 원칙주의자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직 정의를 구하겠다는 부분만큼은 닮고 싶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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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자베르 경감과 자신을 비교하면 좀 어떤가?
"저는 자베르보다는 좀 인간적이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저라면 배고픈 조카를 위해서 빵을 훔쳤다는 장발장의 사정, 그리고 그 이후에도 버려져 있을 조카들 때문에 도주한 점, 이런 점들을 충분히 감안했을 거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 그런 부분들까지 넣어 버리면 스테레오 타입(인물의 전형성)이 형성되지 않으니까 그것은 뺀 것이다. 다만 원칙주의자로서 어떤 압력에도 굴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오직 정의를 구하겠다는 부분만큼은 저도 닮고 싶다."

- 자베르 경감은 법이나 형벌에 정의가 있다고 확신하는 인물인데, 표 교수도 그렇게 생각하나?
"그렇지는 않다. 저는 자베르보단 공부를 좀더 많이 했기 때문에(웃음). 아마 현장에만 있었다면 제가 추구하는 모습은 자베르적인 모습이었을 거다. 현장에서의 정의는 결국 피해자가 있고, 법이 어겨지고 있고, 질서가 무너지고 있고, 그것은 모두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들을 하나라도 더 잡고 처벌하기 위해 내가 존재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제가 현장에만 계속 있었다면 그런 자베르적 정의가 제 정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는 다행스럽게도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공부하면서 '처벌이 꼭 정의일까'라는 다른 쪽 의견을 듣고 대안을 탐구했다. 회복적 정의라는 개념이 있는데, 그런 차원에서 폭넓게 보면 꼭 처벌만이 정의는 아니다. 그렇게 폭넓고 철학적인 인식이 더해진 것이 지금 제가 갖추고 있는 정의이고, 현장적 정의는 자베르적 정의일 것 같다."

- 다른 뮤지컬도 있는데 유독 영화 <레미제라블>이 한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일단은 <레미제라블>이 다루고 있는 시민혁명이라는 상황이 19세기다. 20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긴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과 동일하다 할 수 있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총칼로 일어서는 혁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선거혁명을 해야 하는 때다. 모두 일어나서 투표율을 높이고, 색깔론이나 이념논쟁의 틀을 깨고, 독재의 잔재나 권력형 비리의 상황들을 타개할 수 있다고 많이 고무되고 동기가 부여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치 영화 <레미제라블>에서처럼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의 국민들이 혁명군의 학생들처럼 패배했다. 그런 상황이 유사한 감정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거기에 카타르시스를 느낀 거다. 비록 영화도 현실처럼 실패와 패배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자체가 또 다른 희망으로 작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역사에서도 그런 전투에서는 패배했지만 전쟁에서는 승리했고, 결국 공화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레미제라블>이라는 빅토르 위고의 원제 자체가 '불쌍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지금 쌍용차나 한진중 등 다양한 노동계 현안들이 있고, 99%와 1%의 양극화 얘기도 많이 나오고 있다. 본인을 서민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영화처럼 참혹한 상황은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는 참혹한 서민들의 모습을 자신의 처지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실직의 위험, 취직하기 어려운 젊은 층, 높은 등록금, 자녀 양육과 교육의 높은 부담, 아무리 노력해도 진입장벽 때문에 계층이동을 못 하는 상황을 영화와 동일시한다. 누군가 그런 상황을 다루어주고, 이야기해주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지 않나 싶다."

"혁명기에 혁명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 그런데 당시 프랑스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대선 패배라는 결과 때문에 과잉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나?
"분명히 과잉돼 있다. 다만 그게 (대선 패배와) 시기적으로 맞물리다 보니까 영화 배급사 쪽은 완전히 노난 거다(웃음.) 사실은 저도 한국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한국 영화의 발전을 돕고 싶고, 대형 할리우드 영화들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한국 영화를 돕고 싶은 마음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레미제라블>밖에 없다고 봤다. 어쩔 수 없다. 그게 과장되었지만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으로는) 유일하다.

물론 <26년>이나 <남영동 1985>도 있지만 그 영화들은 아주 직설적이다. 반면 영화 <레미제라블>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포장돼 있다. 장엄한 서사도 있고, 사랑도 들어가고. 그런 영화가 사람들 마음을 뻥 뚫어주기 때문에 그런 효과를 인정해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 혁명기에 혁명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랑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 혁명기에 혁명을 하는 것과 사랑을 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 같나?
"저는 마리우스와 비슷했을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저도 보통사람의 정서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이 없는 혁명은 아주 잔혹하고, 좀 무섭다. 다만 사랑이라는 개인 감정 때문에 중대한 사회적 부분들을 포기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값싼 감상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마리우스가 가진 고뇌가 그런 것이 아닌가. 자기에게 솔직하고 싶다, 본능에 솔직하고 싶다, 이런 거다.

정말 눈이 번쩍 뜨이는 사랑의 대상을 찾았는데 이성을 발휘해서 이념과 혁명과 투쟁, 이것 때문에 나는 저런 값싼 감상주의에는 매몰되지 않아, 이랬다면 솔직하지 않다는 거다.그런 점에서 마리우스는 참 좋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어제는 혁명 전사였다가 오늘은 돈황이 됐구나' 하고 놀려대지만 그들조차도 (사랑을 하는) 그를 압박하지는 않는다. '너는 그러면 안 돼, 잘못됐어' 하고 압박하거나 밖으로 내쫓지 않고, 마리우스의 선택을 존중해줬다. 결국은 그것이 순수하다는 것 아니겠나."

-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쓴 조세희 선생이 언젠가 "우리는 혁명이 필요할 때 혁명을 제대로 겪지 못했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가 제대로 된 혁명을 겪지 못한 점이 지금의 역사인식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필요한 지적이다. 하지만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예를 들어 동학혁명이 성공해서 일제에 복속되기 전에 우리가 새로운 형태의 민중국가를 수립했더라면 어땠을까, 가정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안 됐다. 그러면 누구의 잘못인가? 동학혁명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고, 그들이 그 잘못을 사과해야 하는가? 그건 아니라고 본다. 역사는 역사에 맡겨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조세희 선생의 얘기는) 그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독립혁명 와중에 계파와 이념별로 찢기고 결국은 우리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독립을 불러 오지 못했다, 한국 전쟁도 마찬가지였고, 민주화도 6·29 선언까지는 이끌어 냈지만 이후 민주정부를 직접 수립하지는 못했다, 그런 주장인 것 같다. 4·19 때도 쫓아내기는 했지만 그 이후까지를 담보해내지 못했다, 결국은 또다시 정치가들과 야심가들과 독재자들의 잔치만 만들어준 것 아니냐, 그런 지적인 것 같다. 충분히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노력들이 허사였다거나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의 의미가 희석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역사로 그대로 봐야 하지 않을까?"

"국정원 댓글 달기 의혹 사건에 무력한 경찰 보고 채무의식 벗어나"

- '보수주의자로서 고백하고 경고하고 요구합니다' 라는 글을 보면서 표 교수가 이런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범죄학을 하는 사람은 대체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다. 왜 그런 글을 쓴 것인가?
"쓰고 싶으니까 썼다(웃음). 그 글이 그대로의 제 마음이었다. 제가 사직서를 던지는 그 시점, 그 때의 선택에 모든 것들이 들어 있다. 그 전까지는 어떤 의무감, 채무의식으로 살아왔다. 국민 세금으로 대학 4년을 공짜로 다녔고, 경찰간부라는 혜택도 누렸고, 유학도 다녀왔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그런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받은 혜택에 보상해야 한다는 대단히 엄중한 채무의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채무의식이 어떻게 발현되었느냐?

지금의 제 커밍아웃이나 글들도 (채무의식의 발현에) 해당될 수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 당시에는 좀더 좁게 봤다. 국가와 정부, 경찰이 저의 고용주이고, 저는 그들에게 채무를 지고 있었다. 그래서 난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요한 현안과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저는 경찰이나 정부, 국가를 위한 방패막이나 전도사로 나섰다. 하지만 늘 한쪽에서는 이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그 이면에는 개인적으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도 꽤 있었다. 자유나 권리나 민주, 이런 부분들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상황 자체가 한쪽에서는 인권과 자유라는 것을 가지고 경찰과 정부를 공격하고, 정부와 경찰은 법 집행이라는 것, 국가의 안녕과 질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방어해야 하는 처지였다. 저는 정부와 경찰에 고용돼 있고 (정부 등에) 채무를 진 한 사람으로서 (정부 등을) 도와줘야 했다. 이런 것들이 계속 이어져왔다. 그런데 이번에 그동안 해왔던 모든 제 행동과 언행들에 쌓였던 부담감과 채무의식이 폭발한 것 같다. 이 부분이 국민적 선택,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아주 중요하고, 이건 정말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부터 나는 아무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제는 내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정말 자유롭게 그야말로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말하고 싶다, 이것이 사직서를 던지게 된 당시의 생각이고 심리상태였다. 그 이후의 글쓰기는 그 전과는 다르다. 정말 내가 옳다고 느끼는 것, 정말 어떤 이론과 증거와 사실에 바탕을 두고 판단해봤을 때 무엇이 바르고 무엇이 틀렸느냐는 거다."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 직원 김아무개씨의 오피스텔 앞에서 경찰관이 벨을 누르며 문을 열어 협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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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무의식을 벗어던지게 된 계기가 인터넷 댓글 달기 의혹을 받던 국정원 직원의 오피스텔 앞에 경찰간부가 무력하게 서 있던 장면인가?
"그렇다. 그 사진 한 장이었다. 그 전에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선언합니다'라는 글도 올렸다. 새누리당 측에서 저에게 국민안전 공약을 만드는 위원으로 와 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저는 정치에 몸담고 싶지 않았고, 한 쪽 편에 서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 혹시 다른쪽에서도 요청이 올 수 있을 거 같아서 아예 '나는 엄정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싶고 한 쪽 정치 세력에서 이런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고, 다른 요청에도 그럴 것이다, 혹시라도 인력풀을 만들려고 한다면 나는 빼달라'고 했다.

대선에서도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그 사진 한 장이 절 건드렸다. 그 사진 한 장이 보여주는 모습이 아주 애처롭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남녀를 떠나서 경찰서의 수사과장인데 그 얇디얇은 오피스텔 문 앞에서 마치 구걸하듯이 '문 좀 열어 주세요' 하는 것은 경찰의 모습이, 자베르 경감의 모습이 아니다. 상대방이 약자면 그 약자를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는 강자다. 강자 앞에 그런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경찰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거기에서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채무의식이 확 터져 버렸다. 그래 나도 이제 이 사건을 좀 얘기해야겠다, 아무도 이야기할 것 같지 않고, 다들 두려워하고 불편해하니까, 나밖에 더 있어, 하지만 내가 이런 채무의식으로 무장된 경찰대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그런 얘기를 못해. 그래서 사직하게 된 거다."

"현장에 자베르 경감이 있었다면 오피스텔 박차고 들어갔을 것"

- 결국 그 때 자베르 경감은 없었다는 말인가.
"없었다. 있었다면 부수고 들어갔다. '장발장 나와' 하고. 과거 경찰은 수배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있다고 의심되면 과감하게 박차고 들어갔다. 박종철군은 수배자도 아니고 아무런 혐의도 없었다. 단지 수배자인 선배를 숨겨주지 않았느냐는 것만 가지고 데려다가 고문해서 죽였다. 그런데 그 오피스텔 문 하나 부수면 그게 얼마나 손상이 갈까? 그게 무서워서... 인권 얘기는 난센스라고 생각하고."

- 당시 현장에 저도 있었는데, 국정원 직원이긴 하지만 여성이어서 공권력 행사의 강도가 낮아진 것 같다.
"그게 컸다. 그러니까 그 힘으로 대선 때까지 버틴 거다."

- 새누리당의 방어 논리도 그것이었다.
"저는 그런 논리를 깨려고 계속해서 '약자가 아니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가진 신분을 봐야 한다, 그 뒤에 있는 기관을 봐야 한다'고 얘기한 건데, 결국 안됐다."

- 스스로 "보수주의자이고 반공주의자다"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 그런가?
"저는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헌법, 현 체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적 경제기반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보수 아닌가? 그러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서 벗어나는 관행과 행태가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고쳐야 하고,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것도 고쳐나가는 것이 보수라고 본다. 그런데 흔히들 자신이 보수라고 하는 자들의 행태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자신들을 보수라고 하면서 보수의 핵심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탄압하고, 개인의 인권을 유린해왔다가 국가권력에 속한 사람에게는 이중잣대를 들이댔다. 이것은 보수의 모습이 아니다.

지금의 보수는 봉건주의를 타파할 당시에는 진보였다. 그 진보는 봉건주의의 반칙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거였다. 그 3성역이라고 불렸던 왕권, 성직자, 귀족의 유착에 의해서 진실이 덮여지고, 정의가 땅에 묻히고, 불의가 행해지는 것은 나쁘다고 해서 일어선 게 계몽주의이고 자유주의다. 그리고 그것이 현 보수의 가치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자기들이 옛날 절대왕정 때처럼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다. 그게 무슨 보수냐? 그래서 공정 경쟁해라, 과거의 앙시앙 레짐(구체제)을 반대하고 나왔다면 당신들을 앙시앙 레짐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진보가 나타나도 그들에게 당당하라는 거다. '우리는 구체제가 아니다, 아직은 우리도 신체제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공정경쟁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우릴 비난해? 왜 우릴 욕해? 넌 좌빨이야. 입 닫아'라고 한다. 이거는 보수로서의 당당함이 아니다. 그래서 제가 자꾸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거다."

> [표창원 인터뷰②] "정의 위해 나서면 지지 않는다는 것 보여주고 싶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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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MB 정부, 철도 민영화 다음 단계 강행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1/08 07:56
  • 수정일
    2013/01/08 07:5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국토부 관계자 "관제권 환수 위한 시행령 개정 착수"

박세열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01-07 오후 7:29:49

 

대선이 끝나자마자 정부가 '철도 민영화 속도전'에 돌입한 것으로 7일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후 지난해 12월 31일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하위 법령 제정' 방안에 사인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 방안에 '시행령 개정 사안'으로 "철도 관제권을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부터 환수해 한국철도시설공단에 위탁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 대변인실은 "우리가 확인해줄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토해양부 철도정책과 관계자는 이날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관제권 환수를 위한 시행령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고 확인했다.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번 주중에 시행령 개정 관련 공문이 내려가고, 이명박 정부 임기가 끝나는 2월 이전에 국무회의를 열어 관제권 환수 방안을 의결한 후 3월부터 관제권 환수 절차에 돌입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철도 관제권 환수는 'KTX 민영화'를 포함해 '철도 민영화'의 물꼬를 트는 '관문'에 해당한다.

앞서 <경향신문>은 지난해 12월 13일 "국토부는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이길 경우 KTX 민영화를 위한 민간사업자 공모에 곧바로 착수하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코레일 외의 제2철도공사를 설립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가 나온 다음날 박근혜 당시 후보 측 인사들이 "이런 식의 민영화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는 것은,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철도 민영화의 '첫 단추'로 불리는 철도 관제권 환수를 밀어붙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정책 결정과 관련된 새 정부 후임자들이 국토부 등에 들어오기 전, 전임자들이 관제권 환수 시행령 개정을 밀어붙여 새 정부가 들어와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려는 것 같다"는 관측이 국토부 내에 파다하다는 말도 나온다.

ⓒ뉴시스


철도 민영화 4단계 착착 추진 중

철도 관제권 환수에 앞서 선로 배분권은 1월 1일자로 철도공사에서 시설공단으로 이미 넘어갔다. 민간 회사가 철도 운송 사업에 진입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는 조치다. 그에 더해, 배차 등을 결정할 수 있는 철도 관제권까지 시설공단에 넘어간다면 국토해양부는 명실상부 민간 철도 사업자의 진입 환경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철도 관계자들은 철도 민영화를 크게 4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철도 선로 배분권 환수다. 이는 지난해 9월 27일 관보에 게재되면서, 이미 어느 정도 예상됐던 사항이다. 두 번째는 민영화의 본격적인 '첫 단계'로 꼽히는 철도 관제권 환수다. 국토해양부가 추진하는 대로 시행령이 개정되면, 선로 배분 문제와 함께 운송 시간 및 차량 배차에 관한 권한을 국토해양부가 시설공단을 통해 장악할 수 있다.

세 번째, 정부가 철도공사에 출자해 건설된 철도 역사, 차량 기지 등 철도 운영 재산을 국토부가 다시 가져오는 것이다. 철도 자산 처리 작업은 국토해양부가 주도할 수 있지만,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난해 기획재정부는 국토부의 방침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철도 관제권이 시설공단으로 넘어가면, 철도 운영 자산 국고 환수 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네 번째 단계가 사업자 선정이다. 이미 지난해 대우건설, 동부그룹 등이 '민영 KTX' 사업자 입찰에 참여하려 했다. 대우건설은 당시 여론이 악화되자 사업 참여를 포기했다. 이와 달리 나머지 6~7개 건설업체들은 현재 눈치만 보고 있다는 게 철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관제권 환수가 이뤄지면 민간 기업의 'KTX 사업자' 입찰 참여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수가 있다. 철도 관제권 환수, 민간 사업자 공모 등은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별도 입법 절차 없이 가능하지만, 현행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은 철도의 유지 보수를 철도공사가 맡도록 하고 있다. 만약 법 개정 없이 철도 민영화가 이뤄지면, 민간 사업자가 철도 유지 보수를 철도공사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즉 유지 보수권을 환수하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철도산업발전기본법을 개정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철도 관계자는 "철도 시설 유지권과 관련해 국회가 법을 개정하면, 한국은 완벽하게 영국식 민영화의 길로 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영국에서는 민영화 이후 10년간 철도 요금이 50%나 인상됐다"며 "2013년이 시작되자마자 오른 요금 때문에 영국 전역에서 반발이 일고 있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철도 산업 세분화, 한국 철도 같은 협소한 시장에선 비효율 초래"

엄태호 연세대 교수와 주효진 꽃동네대학교 교수는 이날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행정학회 기획 세미나'에서 공동 발제한 '철도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철도 구조 변화에 대한 논의 : 정책전문가 인식 조사를 중심으로'를 통해 "현 정부에서는 2015년 개통 예정인 수서발 KTX에 대한 민영화를 추진 중이며, 철도 역사 및 관제권 환수 등 철도 산업의 세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철도 산업의 세분화는 우리나라의 경우 철도와 같은 협소한 시장은 분할할수록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높은 수익이 보장된 KTX 노선의 민영화는 대기업의 KTX 사업 참여가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고 수서발과 서울·용산발 노선은 주된 고객층이 서로 달라 경쟁 효과는 없고 지역 독점만 유발할 수 있다는 등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민간에 대한 요금 규제가 곤란하여 '제2의 9호선 사태'와 같은 사건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며, 철도 운행의 '뇌'에 해당하는 관제권 분리 시 심각한 안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고 주장했다.

철도 민영화를 강행하면, '9호선 사태'나 '영국 사례'처럼 요금이 대폭 인상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제권 환수 여건조차 갖추지 않은 시설공단이 무리하게 관제권을 환수할 경우 여러 가지 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철도 관제권과 관련해 이들은 이종열 인천대 교수의 글을 인용해 "일본과 중국처럼 수송 밀도가 높은 국가는 운영자가 관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안전과 직결된 '수송밀도'가 높은 수준이므로 운영자(철도공사)가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분리할 경우 중앙 관제와 로컬(지방) 관제 간에 운행 정보 교환 및 의사소통 저해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발제를 통해 "현재보다 철도의 공공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상하통합체제와 같은 철도 산업 구조의 재편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당시 '트렌드'로 인식됐던 EU의 철도 상하 분리(운영과 시설의 분리) 방안을 받아들여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을 분리시켰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철도공사의 권한을 약화시켜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것보다는 운영과 시설의 새로운 통합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권용수 건국대 교수는 이날 토론에서 "철도 경쟁력 강화 방안은 필요하다. '무조건 민영화'라기보다는 여러 민간 사업자들의 참여 통로를 열어두는 것은 철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철도 민영화 후폭풍에 시달리는 영국

2013년이 되자마자 영국이 '철도 민영화'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월 2일자 <가디언> 온라인판에는 '10년간 요금이 50퍼센트 오른 후 철도는 많은 이들에게 사치가 됐다'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이 기사에 따르면 달콤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 후 고향으로 돌아간 영국인들은 4.3%의 정기 승차권 운임료 상승과 3.9%의 전체 운임료 상승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난 10년 동안 영국 철도의 정기 승차권 운임은 50%나 인상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영국 전역의 주요 역에서는 철도 요금 인상과 관련된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영국 전역에서 철도 운임은 빠르게 인상되고 있다. 운임 인상 속도는 구간별로 차이 난다. 이를테면 세븐오크스~런던 구간의 연간 운임은 1660파운드(약 283만 원)에서 3112파운드(약 530만 원)로 90%나 인상됐다.

영국 <트레블뉴스>가 인용한 TUC(영국노동조합회의, Trade Union Congress)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세계 경제 공황 이후 영국 철도의 운임은 평균 임금 상승률보다 3배나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영국의 4인 가족이 맨체스터나 뉴캐슬 등에서 런던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주간 평균 임금인 481파운드(약 82만 원) 이상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TUC 총장이자 '액션포레일'(철도를 위한 행동, Action for Rail) 의장인 프랜시스 오 그라디는 "실질임금은 낮아지고 가계의 소비 지출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많은 시민들이 철도 요금 인상 소식을 듣고 실망감이 컸을 것이며, 인상된 철도 요금으로 인해 힘겨운 한 해를 보낼 것이고, 인상된 요금에 반해 서비스 여건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역무원과 매표소의 수는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디언> 온라인판의 또 다른 기사는 영국 언론인 닐 클락의 말을 인용했다.

"문제는 재국유화가 아닌 민영화 제도이다. 영국 철도의 민영화로 인해 영국 시민들이 고통 받고 있다. 이들은 다른 유럽 시민들에 비해 정기 승차권에 10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하지만 은행, 회계법인, 버진 트레인스(Virgin Trains)를 운영해 수십 억의 국민 세금을 빨아들인 리처드 브랜슨 같은 자본가에게는 큰 횡재로 다가왔다."

 

▲ 민영화 후 요금이 폭등한 탓에, 철도를 타는 것이 많은 이에게 사치스런 일이 됐다고 보도한 <가디언> 1월 2일자.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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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국정원-김씨 믿을 수 없어, 국정조사 필요하다

경찰-국정원-김씨 믿을 수 없어, 국정조사 필요하다
(블로그'사람과세상사이' / 오주르디 / 2013-01-07)
 

지난 12월 16일 밤 11시. 대선 후보 방송토론이 끝난 직후다. 수서경찰서는 문재인 후보에게 비방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여직원 김씨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다. 경찰은 ‘김씨가 비방 댓글을 올린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포털 검색 ‘구글링’조차 안 하고 발표한 엉터리 수사결과

다음날 수서경찰서에서 공개 브리핑이 있었다. 경찰은 빗발치는 질문에 즉답을 피하며 어정쩡한 태도를 취했다. 김씨의 노트북에서 40개의 아이디와 닉네임을 찾아냈다고 말하면서도 이 아이디에 대해 조사를 했느냐는 질문에 “영장을 발부 받아 강제 수사를 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둘러댔다. 이러니 초동수사조차 하지 않은 채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일 수밖에.

TK출신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의 지시에 의해 이뤄진 수사결과 발표였다. 발표 직후 특정 후보의 입장을 배려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랐고, 김 청장 스스로도 이 지적이 맞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결과를 보고 받고 긴급하다고 판단해 발표를 결심했다. 의혹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터넷 포털에서 ‘구글링 검색’만 해도 상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김 청장은 초동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사건에 ‘결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가 보고 받았다는 ‘결과’는 여당 후보 입장에 유리한 것이었다.

▲초동수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사결과 발표라니....

TK청장이 TK후보 어깨 가볍게 해주려 했나?

“의혹이 난무해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김 청장의 발언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그가 여당 후보 편에 서서 상황을 보려 했다는 게 또렷해진다. 일단 ‘국정원 개입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못 박아 궁지에 몰린 TK 여당 후보의 어깨가 한층 가볍게 해줄 요량이었나?

수세에 몰렸던 여당 후보를 도와줬다는 비난이 일어도 김 청장은 변명조차 하기 힘들게 됐다. 중간발표를 뒤집고 남을만한 물증이 나왔기 때문이다. 경찰이 중간수사발표 사흘 뒤인 지난 12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김씨의 하드디스크에서 나온 아이디 20개를 ‘구글링’한 결과 김씨가 16개 아이디로 진보성향의 누리집 ‘오늘의 유머’에 접속해 찬반 의견을 표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단 이틀이면 김씨가 대선에 개입했다는 증거와 정황을 확보할 수 있는데도 경찰은 왜 ‘구글링 검색’조차 하지 않은 채 부랴부랴 알맹이 없는 수사결과 발표를 내놓았을까? 수사결과 브리핑 당시 이광석 수서경찰서장, 장병덕 서울시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 등은 ‘구글링’을 왜 하지 않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황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과 박근혜 당선인

하루 4000건 글 검색한 김씨 의혹투성이

김씨에 대한 의혹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정원 상부의 지시로 그가 진보성향 누리집을 전담해 야당 후보에게 불리하도록 여론 개입을 해온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김씨를 둘러싼 의혹들이다.

▲국정원으로부터 노트북을 지급 받고, 진보성향의 누리집에 가입해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는 민주당 대선 경선, 박근혜 후보의 전태일 동상 방문 등 정치적 논쟁이 활발했을 때였다.

▲8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74일간 김씨가 검색한 페이지뷰는 31만여장이 넘는다. 하루 4000건 이상 글을 살펴봤다는 얘기다. 한 건 당 몇 초 동안 눈길을 주고 지나간다 해도 하루 꼬박 10시간 이상 검색을 해야 한다.

▲아이디를 발급받는데 실명인증이 필요 없고 외국계 포털이라 국내 수사 관할권이 없는 누리집을 골라 활동했다.

▲3명 이상 회원이 ‘반대’를 클릭하면 추천이 많더라도 게시글이 초기화면에 노출되지 않는 누리집의 특성을 미리 알고 ‘반대’를 눌러 여론을 조작했다.

경찰발표ㆍ국정원 해명ㆍ김씨 주장, 믿을 수 없어

김씨의 ‘활동’이 논란이 되자 국정원 측은 ‘김씨의 활동은 고유 업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이 아예 조직적으로 여론 조작에 관여해 온 건 아닐까?

반면 김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줄곧 “공직선거법이나 국정원법에 위반되는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혐의가 일부 드러났는데도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하는 배경이 뭘까?

경찰도 의문투성이다. 엉터리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사건을 덮으려 했던 경찰 아닌가. 국정원과 여당 후보의 입장을 살뜰히 배려하려 했던 경찰이 이제 와서 드러난 사실을 그대로 밝힐 수 있을까?

국민 알권리 행사해야, 국회 국정조사 필요하다

국민들은 경찰의 발표도, 국정원의 해명도, 김씨의 주장도 믿을 수 없다. 경찰에 대한 믿음은 김용판 청장이 날려버렸고, 국정원은 납득이 갈만한 해명 한줄 내놓지 않았다. 김씨는 자신의 ‘수상한 행동’이 드러났는데도 계속 오리발이다.

국민에게 알권리가 있다. 국회가 나서 국민 대신 ‘알권리’를 행사해 주길 바란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국정조사’를 조속히 열어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밝혀 줘야 한다. 국회의 본분을 다하라는 얘기다.

 

오주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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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다

 

'평양'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다
<인터뷰> 책 '평양의 여름휴가' 작가 유미리
 
 
2013년 01월 07일 (월) 18:57:45 조정훈 기자 whoony@tongilnews.com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좋은 느낌으로 와닿는 아름다운 국명, 내게는 환상의 조국이다."

60여년 넘게 자리잡은 분단이데올로기 그리고 레드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한 이런 표현은 불편하다. 붓은 총칼을 이긴다고 하지만, 자칫하면 붓은 총칼보다 더 무서운 혼동의 흉기가 된다.

'가족시네마'로 국내에 유명인으로 알려진 작가 유미리 씨가 평양 기행기를 썼다. 작가의 작품에 대해 독자의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미리 작가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층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유미리 씨가 평양 기행기를 썼다더라"라고 하면 인상을 찌푸리고 "왜?"라고 반응한다.

책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도서출판 6.15)를 쓴 작가 유미리 씨(45)를 지난 6일 오후 서울 중심가 한 찻집에서 <통일뉴스>가 만났다.

 

   
▲ 책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의 작가 유미리 씨는 "나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의 최소단위이다. 그러나 국가, 역사와 관계없지 않다. 가족사를 파헤치면 국가,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면서 책을 쓴 이유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지난해 10월 한국에서 출간된 '내가 본 북조선, 평양의 여름휴가'는 유미리 씨의 세 차례에 걸친 방북기다. 재일 교포로 한국 국적인 그는 평소 평양에 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지인들을 통해 2008년 10월부터 2010년 4월, 8월, 한번에 10일 정도 방북했다.

유미리 씨는 "나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가족은 공동체의 최소 단위이다. 그러나 국가, 역사와 관계없지 않다. 가족사를 파헤치면 국가, 역사와 맞닥뜨리게 된다"며 평양을 방문하고 책까지 낸 이유를 밝혔다.

유미리 씨의 외조부와 어머니는 경남 밀양 출신이다. 외조부는 해방공간에서 약산 김원봉과 인연이 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 뒤 한국전쟁 당시 탈옥,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의 동생은 손기정 선수의 동료 마라톤 선수로, 역시 우익계에 의해 끌려가 행방불명됐다.

일본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정신적 이방인'으로 살아온 재일교포 유미리 씨는 자신의 가족사와 만나면서 북한땅을 밟아야겠다는 생각을 놓치 않았다.

그는 "일본에서 살기 때문에 일본 보도밖에 접하지 못한다. 일본 매스컴에서는 북에 대해서 납치문제, 미사일, 핵문제를 주로 다룬다"며 "제한된 정보는 눈 앞 콘크리트 벽처럼 느끼게 했다. 벽이 있으면 적의를 갖고 보니까 나라라는 덩어리는 보이지만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알 수가 없다"고 방북 목적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북에 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 서 있는 장소를 바꾸면 보이는 것도 다르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알려주고 싶었다"며 "전면적으로 (북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니다. 서 있는 장소를 바꿨을 뿐"이라고 말했다.

 

   
▲유미리 작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그런 이유에서 일까. 책 '평양의 여름휴가'에는 아들 유장양 군과 동행한 방북 내용이 더 많다. 어른들의 시각이 아닌 '아이가 바라본 북한'이 어쩌면 유미리 씨가 바라본 북한일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는 "어린이라면 어른에 비해 선입견이 적다. 있는 그대로 접하는 것"이라며 "역사를 어린이에게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가 중요하다. 남북분단 상황을 두고 일본에서 북을 보도하는 것이고 연평도 등 사건의 배경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장소에 서서 보지 않으면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미리 씨는 책에서 거듭 '환상의 조국',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등 북한에 더 마음을 두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남한을 여러 번 방문한 그에게 분단선 이남의 땅은 어색한 공간에 불과할까.

유 씨는 "처음 서울에 온 것은 20대 초반이었다. 외조부와 어머니가 살았던 조국의 풍경은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며 "평양, 개성, 백두산 주변을 돌아보면서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살았다는 풍경을 알게됐다. 향수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은 일로만 왔다. 서울에서 아는 것은 찻집 뿐"이라며 "평양에서는 일이 아닌 느긋한 시간을 가졌다. 그래서 더욱 향수를 느낀 것같다"고 말했다.

그런 그이지만, '평양의 여름휴가' 뒷 부분에 "방북기를 단행본으로 출판하면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백한 것처럼, 분단 조국의 냉엄한 현실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방북하고 돌아온 뒤 재일 한국영사관에 불려가 방북목적, 만난 사람 등을 취조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말을 몰라서 그냥 백지로 냈다"고 고백했다.

유미리 씨의 조국을 향한 마음의 뿌리 내리기는 계속 이어진다. 그는 내년 4월 경 평양을 다시 방문할 계획을 갖고 있다.

"스무살에 소설 쓸 때는 재일교포라는 설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개인사를 더듬어가니까 역사를 알게됐다. 어머니는 밀양 출신이고 아버지는 산청출신으로 지리산 부근이다. 지리산은 장소 자체가 역사의 소용돌이였다. 그렇기에 가족의 의미를 찾는 것은 역사를 더듬어 가는 것이다"

재일교포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책 '평양의 여름휴가'도 유미리식 방북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조금만 톱아보면 책 '평양의 여름휴가'가 주는 의미를 알 수 있다.

유미리 작가에 대한 불호가 강한, 분단현실에서 마음대로 북한 땅을 밟아 볼 수 없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북한 땅 이곳저곳을 밟는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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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처드슨. 슈미트 평양도착 왜?

 

 

 

빌리처드슨. 슈미트 평양도착 왜?
 
미국 오바마 정부 특사로 방북 한듯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3/01/07 [21: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빅토리아 눌런드 미국무부 대변인이 리처드슨과 슈미트의 방문은 미국대표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인정하는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한명도 없다. <사진 출처 구글> © 이정섭 기자


미국의 뉴 멕시코주 전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 구글회장이 7일 평양순안 공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편성 체널인 뉴스 와이는 7시 50분경 ‘오늘의 북한’ 방송 중 전 빌 리처드슨 전 주지사와 에릭 슈미트의 평양 입국 영상이 입수 됐다며 이를 공개했다.

뉴스와이가 방영한 화면에는 리처드슨과 슈미트 그리고 방문 대표단 9명이 순항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으며,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기자와 대담을 하는 모습도 방영됐다.

한편 미국의 국무부 대변인 빅토리아 눌런드는 지난 3일(현지시각) 정례 브리핑을 통해 리처드슨과 슈미트의 방북 사실을 확인하는 가운데 “리처드슨과 슈미트 회장의 방문은 순전히 개인 자격으로 방북하는 것이며 시기도 적절치 않다.”며 “그들은 미국정부의 어떤 메시지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또한 “북에 억류 중(간첩혐의)인 한국계 미국인 배준호(미국명 케네스 배)씨 협상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외교 체널을 가동하고 있다”며 인도주의적 입장이라는 리처드슨과 슈미트의 방북 관련 입장도 부정했다.

그러나 눌런드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 국제정세전문가들의 입장이다.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전통적으로 미국은 조.미 관계에 있어 공개 보다는 비공개 입장을 취해 왔으며, 공개적이라 할지라도 발표한 내용 이외에 이면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또한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이 시기상 미국에게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9명의 대표단을 꾸리고 비자를 발급한 사실도 발언과 모순이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정부는 리처드슨과 슈미트가 지난해 10월 방북하려 던 것을 연기시켰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준호씨 석방 문제에 대해서도 미국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배씨의 석방 문제가 의제가 되고 있음을 언론에 밝힌바 있다.

최근 조선이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며 대미 압박에 나서고 있는 것은 정전 60돐을 맞는 2013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영향력 있는 미국 인사들이 조선을 방문하는 것이어서 미국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특사로 파견되는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국제정세전문가들의 예측은 자료에 의해서도 뒷 받침되고 있다.

* 빌 리처드슨(Bill Richardson)은 미국의 하원의원, 유엔대사, 에너지부 장관을 거친 후 2003년 뉴멕시코주 주지사 당선 돼 재직했다.

하원의원으로 재직하면서 외교 관계에서 명성을 쌓아 여러 국제 분쟁 지역을 방문했으며, 1996년에는 이라크를 방문하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만나기도 하였다.

*빌 리처드슨은 특히 미국 특사단으로 조선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 조.미 사이의 대화창구 역할을 하였고, 협상을 통해 조선에 억류된 미국인들을 구출하는 데 기여 한바 있다.

* 구글은 1998년 스탠퍼드대학교 박사과정에 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처음 만들었다. 1999년 6월 공동출자 지원을 받아 검색 서비스를 시작한 뒤, 2004년 8월 19일 나스닥에 상장하였다.


2008년 현재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으로, PDF, 포스트스크립트, 마이크로소프트 문서에 대한 검색도 가능하다. 웹 문서 검색 외에 구글 이미지 검색, 구글 뉴스 , 구글 웹 디렉터리, 구글 비디오 등의 주요 검색 서비스가 있다.

*검색 외에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위성사진과 지도를 통해 전세계의 지리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 맵과 구글 어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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