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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대사에 대한 우려: 그녀는 무엇을 하러 오는가

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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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국방

  • 입력 2026.07.25 15:00

  • 수정 2026.07.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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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어진 '미국은 시혜국, 한국은 수혜국' 인식

한국전쟁에 개입한 미국을 구세주로 인식

이민자인 자신의 성공은 미국의 위대함 증언

국내 극우 세력을 위한 대미 메신저 가능성

외교관답지 않은 반공, 반중, 반이재명 어젠다

한국에 대한 압력을 통해 MAGA 실현 가능성

사이공 함락 당시 대사관의 무감각 재연 우려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셸 박 스틸 주한미국대사의 지명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오마이TV 유튜브 화면 갈무리)

상원 인준을 통과한 미셸 박 스틸 주한 미국대사가 서울 부임을 앞두고 있다. 스틸 대사에 대한 평가는 단순하지 않다. 상원 인준 표결에서 39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대사 지명자에 대한 상원 내 반대표는, 지명자가 인준되어 부임하더라도 대사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럼에도 일부 상원의원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까지 그녀가 적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한국계 이민자 가정 출신 앤디 김 뉴저지주 출신 상원의원 등은 스틸 지명자가 "인종에 기반한 공격과 편견을 이용해온 우려스러운 이력을 가지고 있다"며 그럼으로써 미국인들을 "분열시키고 더욱 갈라놓았다"고 비난했다. 대사는 미국 정부의 정책을 집행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미국이 무엇이며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상징"한다며 스틸 지명자가 미국의 비전을 대표하는 인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가 "과거 행동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더불어 한국과 아시아에서 지도자답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과의 관계는 그녀의 "하찮은 정치로 훼손되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미셸 스틸 주한 미국대사 후보자가 5월20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열린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대사직은 행정부에 크게 공헌한 인사나 대통령의 정치적 후원자들에게 돌아가는 논공행상의 자리로 이용되기도 한다. 오랜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는 인사에게 국가에 대한 마지막 봉사의 기회로 여기는 명예직이기도 하다. 심각한 스캔들이 없으면 인준이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명예를 내포하고 있다고 해서 대사직의 중요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국무부 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에, 외교 행정의 틀 안에서 관료화되고, 공무원으로서 승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테크노크라트로 굳어진 외교 전문가 대신 세상을 폭넓게 경험한 인사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대사의 역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오늘과 같은 정보 혁명 시대에 대사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현장의 "팩트(fact)"를 넘어 느낌과 분위기, 행간과 이면을 읽어내 "필(feel)"을 본국에 전하는 책임이 있다. 해외로 파견된 미국 대사는 워싱턴의 눈과 귀, 입이자 동시에 심장이다. 동시에 주재국을 향해 파견국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원하고 추진하고자 하는지를 전하는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도 하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주일 미국 대사를 역임한 캐럴라인 케네디 대사(왼쪽)와 아베 신조 총리(오른쪽).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딸인 케네디 대사는 최초의 여성 주일 미국 대사였다. (State Department photo by William Ng/Public Domain)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 전 주일 미국 대사(2013-2017)가 대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이다. 임명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뜻은 명확했다. 세 개의 메시지가 정치나 외교 경험이 없는 케네디 대사의 임명에 담겼다. 첫째, 미국인이 우상화하는 케네디 대통령의 딸은 미국이 일본을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둘째, 케네디 가문은 자유주의를 상징한다. 일본이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우경화, 군사화의 매력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케네디 대사의 임기는 일본 우익 정치의 대명사 신조 아베의 임기와 겹쳤다.

셋째, 케네디 대사는 여성 활동가였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과 전문성이 높았다. 관료, 테크노크라트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미국의 국익은 철저히 지키겠지만 일본과의 관계는 유연할 수 있다는 힌트이기도 했다. 첫 여성 주일 미국대사 케네디는 전통적인 외교를 넘어 미국이 상징하는 가치를 선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캐롤라인 케네디의 조부 조지프 케네디는 최악의 대사 중 한 명으로 미 외교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1938년부터 40년까지 주영국 미국 대사를 지냈다. 히틀러의 침략, 팽창 야욕이 본격화되어 가는 시점에 런던에 있었다. 늘 그를 따라다니는 별칭은 "타협자(appeaser)"이다. 조지프 케네디는 독일의 영화와 영토 회복을 위해 히틀러가 품은 욕구를 일정 부분 수용하면 그를 통제해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주영 미국 대사(1938-1940)였던 조세프 케네디(가운데)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큰 위협으로 보지 않았다. 대사직이 가져온 유명세로 자신도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었고, 유럽을 여행하게 해서 첫째 아들 조세프 케네디 2세(왼쪽)와 둘째 아들 존 F. 케네디(오른쪽)를 대통령 재목으로 키우려 했다. (John F. Kennedy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또 나치의 반유대인 정책에 대한 비판과 경고를 미국을 유럽의 분쟁에 끌어들이려는 세계 유대인 사회의 음모로 취급했다. 대사로서 또 다른 결격 사유가 있었다. 케네디는 미국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주영 대사직이 가져다주는 유명세를 이용해 대통령이 되려는 꿈을 꾸었다. 요즘 표현으로, 이 엄중한 시기에 자기 정치를 한 것이다.

서울로 눈을 돌리면 대사 본연의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 없지 않다. 잘 알려진 대로 2008년에서 2011년까지 대사직을 수행한 캐슬린 스티븐스(Kathleen Stephens) 대사는 70년대 초 평화봉사단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한국을 위해 봉사했고, 한국을 배웠고, 한국을 사랑했던 대사로 꼽힌다. '심은경'이란 한글 이름을 갖고 있었던 스티븐스 대사는 친한을 넘어 애한(愛韓)의 수준이었다.

 

2008년 주한 미국 대사로 부임해 1970년대 초 원어민 영어 교사로 있었던 예산중학교를 다시 찾은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US State Department - US State Department - US Embassy in South Korea)

그녀의 친한 이미지와 행보는 2008년 발생한 광우병 파동이 자극적이며 장기적인 반미 감정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생각은 단순하고 표현은 직설적이며 외교적 제스처에 익숙하지 않은 '텍사스 카우보이' 조지 부시 대통령과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 세일스맨에 가까웠던 '샐러리맨의 신화' 이명박 대통령이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극복하고, 친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적절한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의 헤명 고아원을 방문한 미 8군 89전차대대 장병들이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고 있다. 미셸 스틸 대사는 지명 인준 청문회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시혜를 거듭 강조했다. (Imperial War Museum, London, UK)

스틸 대사는 어떤 유산을 남길까? 우호 관계라 해도 항시 긴장과 대립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외교 무대에서 그녀는 어떤 눈, 귀, 입, 심장이 되어 양국간의 상호 존중과 이해, 양국의 공동 이익을 추구할 수 있을까를 묻는 질문이다.

이제까지 그녀의 언행을 보면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스틸 대사는 '마가(MAGA: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구호에는 미국은 언제나 위대한 나라였다는 사고가 저변에 깔려 있다. 스틸 대사는 미국의 위대함을 그의 가족이 몸소 체험했고, 따라서 그 빚을 잊지 않을 것이고, 이 부채에 대한 감사를 대사직을 통해 표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이다.

상원 청문회에서 모두발언에 이 사고가 담겨 있다. 그녀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을 한국어로 전하며 발언을 시작했다.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그렇듯, 우리 가족의 이야기도 고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한국전쟁 중 북한을 탈출하셨습니다. 그리고 남한에서 가정을 이루셨는데, 그곳은 3만 6천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덕분에 안전하고 자유로운 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린 두 딸과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을 찾은 스틸 주한 미국대사의 과거 모습. (michellesteelca 인스타그램)

한국전 미군 전사자의 수를 언급한 이유는 명확하다. 미국은 시혜, 한국은 수혜의 관계임을 강조했다. 다른 표현으로 구세주론이다. 미국의 희생이 없었으면 자유로운 대한민국도 없고, 따라서 지금의 그녀의 가족도, 그녀 자신도 없는 것이 된다.

일본을 거쳐 미국에 이주해 캘리포니아 출신 하원의원으로 성공한 그녀는 자신 같은 세 언어를 구사하는 이민자가 대사로 지명받을 수 있는 나라라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흔히 가방 하나에 인생 전부를 담고 미국에 온 이민자의 성공 사례를 전할 때 쓰는 어법인데, 스틸 대사는 흔한 말로 눈물 젖은 빵을 노동으로 손마디가 휘어진 손으로 먹으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특수층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틀리지 않지만, 그녀가 말하고 싶어 하는 이민자의 "무일푼에서 부자가 되었다(Rags to Riches)" 스토리는 트럼프 같은 MAGA주의자들이 감동하는 서사이다.

 

2023년 미셸 박 스틸 당시 연방 하원의원(오른쪽)이 한복을 입고 백악관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의 은혜로 자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스틸 대사는 대사로서의 사명을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정한 것 같다. 그녀에게 대한민국은 '라이언 일병'과도 같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라이언 일병과 같이 강하고 압도적인 적과 싸우고 있다. 적은 세 방향에서 공격해 오고 있다. 첫째가 북한이다. 둘째가 좌파 세력, 셋째가 친중 세력이다. 더 구체적으로 스틸 대사는 73년 된 한반도의 휴전 구도를 유지하면서 남북 대립을 미국의 이익과 동일시한다. 시어머니가 아들과 며느리 사이의 갈등 관계를 통해 아들을 계속 품에 두려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스틸 대사는 한미 군사 동맹을 양국 관계의 중심축으로 여긴다. 이 사고는 북한에 대한 고립 정책 일변도와 유사시 중국에 대한 한미일 개입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녀는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 정책이 북한과 중국에 대한 타협과 양보이며, 따라서 이들의 침략성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다. (연합뉴스)

스틸 대사의 부임이 우려가 되는 원인은 파견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그녀의 가슴에는 미국 정부를 대표해 상대해야 할 현 한국 정부에 대한 부정성이 가득하다. 특히 이재명 정부를 중국에 "쎼쎼"하기 바쁜 친중으로 간주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한국의 친중 구도를 깨는 데 가장 확실한 정책 카드가 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미일이 연합으로 저지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한국을 중국의 불구대천지수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이다.

스틸 대사가 파견국의 정치 현안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사실이 놀랍고 동시에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대사는 파견국 정치 현안에 대해 관여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미 '윤 어게인' 세력의 희망으로 부상해 있다. 극우 유튜버로 부상한 전한길 전 한국사 강사는 스틸 대사를 "철저한 보수의 우군"으로 묘사했고, 한 시사 평론가는 "이재명 정권이 정말 까다로운 주한 미국대사를 광화문 한복판에 두게 된다"며 "아마 두고두고 이재명 정권 끝날 때까지 골치가 대단히 아플 것"으로 내다봤다. 이 발언은 악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스틸 대사의 부임은 내정 간섭의 요소와 한국 사회에 대한 갈라치기를 내포하고 있다.

 

전한길 씨와 민경욱 전 의원이 한 유튜브 방송에서 미셸 박 스틸 주한미국대사(당시는 내정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우익 보수 인사들은 스틸 대사를 진보, 좌파 세력을 위협할 '항공모함'에 비유하기도 한다. (전한길뉴스 화면 갈무리)

스틸 대사는 미국의 이익을 확장하고 지키기 위해 서울에 온다. 그녀의 사명인 것은 맞다. 하지만, 미국의 위대함은 트럼프식 미국 일방주의로 이룰 수 없다. 미국이 좋다면 한국에도 좋다는 등식은 외교관의 사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이익은 워싱턴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해서, 또 현지 상황을 자신의 편견으로 재단해 보고함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2025년 발생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해럴드 로저스 당시 쿠팡 임시대표(오른쪽). 현재는 미국 쿠팡사 최고행정책임자이다. 쿠팡 측은 유출된 데이터는 민감도가 중대하지 않아 미국법상 공시 의무나 신고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다. 스틸 대사는 이 사건의 본질을 미국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틸 대사는 지난 5월 인사 청문회에서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본질은 소비자의 피해가 아니라 미국 기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차별 정책이란 사고를 드러냈다. 이같은 차별은 진보주의 성향인 현 정부의 반미의식이 낳은 결과라는 인식이다.

이런 풀이가 가능하다. 교통사고가 났고, 한국 정부는 사고를 낸 자동차의 기계적 결함을 발견하고 미국에 본사를 둔 자동차 제조사에 책임을 물었다. 제조사는 사고 피해가 경미했다며, 한국 정부의 대응 조치는 피해 정도에 상응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의 과징금 부과는 문제가 된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미국 기업에 대한 반미 감정의 표출이라며 문제를 삼고 의회 로비에 들어갔다.

대국의 기업이 소국의 반미감정으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는데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비난이 표를 잠식할 것을 우려한 미 상원의원들은 사고가 난 나라로 갈 차기 대사 지명자에게 이 나라의 버릇을 고칠 수 있냐고 물었다. 스틸 대사 지명자는 "평등한 대우(equal treatment)"란 민감한 표현을 써서 한국 정부가 차별 정책을 못 쓰게 하겠다는 언질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평등한 대우"는 미국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치이다. 헌법상 불평등한 대우는 범죄이다. 스틸 지명자는 미 정치권이 듣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했다.

 

1975년 4월. 공산군이 진격하자 헬리콥터로 사이공을 탈출하려는 위험한 행렬. 베트남 패망은 미국은 틀릴 수도, 질 수 없다는 환상의 결과였다. (Wikimedia Commons)

스틸 대사는 베트남 전쟁의 비극을 복기해야 한다. 워싱턴의 관점에서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질 이유가 없었다. 첫째, 미국은 전쟁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미국은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주변 국가들은 도미노가 쓰러지듯 연차적으로 공산화되거나 공산 세력과 타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비상식적 전략 사고는 미국을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해야 하는 구세주로 인식토록 했다. 미국의 행동은 늘 선의에 기초하며, 따라서 시간이 걸리고 희생이 따라도 정의는 이루어진다는 신앙에 가까운 확신이 있었다. 베트남이 성전화된 것인데, 성전이 그렇듯, 하늘이 지켜주는데 패할 이유가 없었다.

 

주 사이공 미국 대사관은 미국이 압도적 군사력으로 아무리 태우고, 부수고, 또 죽여도 베트남에서는 이길 수 없는 전쟁임을 워싱턴에 알리는 데 실패했다. (Department of Defense, Department of the Navy, U.S. Marine Corps/National Archives, Washington, D.C.)

이 비극 속에 주사이공 미국 대사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를 따져야 한다. 이들은 대통령을 위시한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가 듣고 싶은 말을 전했다. 베트남 전쟁의 현실은 숫자로 보고된 공산군의 피해 정도로 가늠될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투하한 폭탄의 세 배가 넘는 가공할 맹폭과 한때 50만에 달했던 군대가 벌이는 지상전에도 공산 세력이 약화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남베트남 국민들은 미국을 구세주로 보지 않으며, 남베트남 정부는 구제 불능으로 부패한 사실은 확실한 "팩트"였다.

 

1975년 4월 29일 미국이 베트남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 남베트남 민간인들이 대피 헬리콥터에 접근하려 사이공 주재 미국 대사관의 약 4.3미터 높이의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있다. (AP 통신/자료사진., National Museum of Diplomatic Histsory)

이를 본국에 전달해 베트남 전쟁은 물자의 압도적 우위와 민간인 피해를 입더라도 게릴라들의 은신처와 보급처를 파괴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빗나간 자신감, 또 베트남을 포기할 때 뒤따를 도미노 현상 같은 비현실적 정책 사고에서 워싱턴의 정책입안자들을 깨워야 했다.

하지만 사이공의 미국 대사관은 미군 지휘 본부의 영향력 뒤에서 정확한 상황 분석보다는 "터널의 끝이 점점 더 가까이 보인다"는 사탕발림의 보고를 통해 진실과 현실의 괴리를 넓혀갔다. 결국 이 '신뢰격차(Credibility Gap)'가 린든 B. 존슨과 리처드 닉슨 정부를 무너뜨린다. 당초 정당성이 약한 전쟁에 진실성마저 사라진 결과였다.

 

함락하는 사이공을 빠져나온 그레험 마틴 마지막 주(駐)사이공 미국 대사가 우울하고 지친 표정으로 취재진에 둘러싸여 있다. 사이공의 미국대사들은 정확한 상황분석보다는 백악관이 듣고 싶은 소식만 전했다고 할 수 있다. (State Department Stories 유튜브 화면 캡처)

미국의 베트남 전쟁 패인은 베트남인들의 '마음과 정신(Heart and Mind)'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에 이론이 없다. 정의감, 군사력, 달러는 북베트남은 물론 남베트남인이 민족 해방 투쟁을 포기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윌리엄 풀브라이트 상원의원의 지적대로 이 세 개 요소는 미국에게 "힘의 교만(Arrogance of Power)"을 안겨주었고, 베트남, 미국, 주변국들을 비극에 빠뜨렸다. 미셸 박 스틸 대사는 한국인의 마음과 정신에 가까이 갈 수 있나? 그녀가 지금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이길주 뉴욕통신원 kiljy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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