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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팔아 돈 모아 가난을 연구하고 색칠한 찰스 부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9/10 07:57
  • 수정일
    2026/09/10 07: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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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통계 만들고 노령연금법 주춧돌 깔아

"런던노동자 4분의 1 극빈" 조사결과 더 심각

17권짜리 대작 「런던 시민의 삶과 노동」 남겨

금색 부유층~검은색 극빈층 일곱 빛깔로 색칠

런던 가가호호 방문 조사 도운 비어트리스 웹

그의 지적 흥미 채운 것이 영국 사회학의 씨앗

라운트리 '빈곤선'과 맞물려 구조적이란 결론

이념보다 사실, 예상이 틀렸을 때 인정한 태도

19세기 빅토리아 시대 대영제국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였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더러운 빈민가를 품은 도시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두 얼굴을 하나의 지도에 담아버린 괴짜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찰스 부스(Charles Booth, 1840~1916)다. 직업은 사업가, 취미는 통계, 인생 후반부 사업은 가난을 낱낱이 까발리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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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는 원래 배 장사꾼이었다. 리버풀에서 태어나 형 앨프리드와 증기선 회사를 차려 꽤 많은 돈을 벌었다. 사업 수완이 좋았으니 이대로 살았으면 평범한 부자로 죽었을 텐데, 이 양반은 유별나게도 "런던에 가난한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이고 왜 가난한가?"라는 질문에 꽂혀버렸다. 계기는 어느 사회주의자가 "런던 노동자의 4분의 1이 극빈층"이라 주장한 데서 시작됐다. 부스는 이 주장이 과장이라 믿고, 직접 반박할 요량으로 조사에 나섰다. 결과는 본인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실제 빈곤율은 그가 반박하려던 수치보다 훨씬 높은, 런던 인구의 30퍼센트를 웃돌았던 것이다.

 

찰스 부스(위키피디아)

지도에 가난을 입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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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가 남긴 최대유산은 17권짜리 대작 「런던 시민의 삶과 노동」이다. 조사원들을 거리마다 보내 집집이 벨을 누르게 하고, 소득과 직업과 생활형편을 캐물었다. 그 결과물을 지도 위에 색깔로 표시했는데, 금색은 부유층, 검은색은 최하층, 그 사이를 일곱 단계로 나눠 칠했다. 런던의 거리 하나하나가 부와 빈곤의 등고선을 입은 셈이다. 이 지도를 보면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가 담벼락 하나 사이로 붙어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부자와 빈자가 한 나라 한 골목에서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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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업을 도운 조수 중 한 명이 훗날 더 유명해진 비어트리스 웹(Beatrice Webb, 1858~1943)이다. 그녀는 부스의 친척이자 동료로 빈민가 조사에 뛰어들었다가 아예 사회개혁 운동가로 전업해, 남편 시드니 웹(Sidney Webb, 1859~1947)과 함께 페이비언 협회를 이끌고 런던정경대학까지 세운다. 부스의 취미생활이 뜻밖에 영국 사회학의 씨앗이 된 셈이다.

 

1889년 부스가 만든 런던 화이트채플 지도의 일부. 붉은색 구역은 '중산층, 유복한' 지역을, 검은색 구역은 '준범죄적' 지역을 나타낸다(위키피디아)

 

부스가 색으로 표시한 런던의 빈곤 지도 범례(위키피디아)

숫자 하나가 정책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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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요크에서는 시봄 라운트리(Seebohm Rowntree, 1871~1954)가 자기 고향을 상대로 똑같은 조사를 벌여 최소한의 영양 섭취를 기준으로 삼은 "빈곤선" 개념을 만들었다. 부스와 라운트리의 조사가 겹치며 도출된 결론은 하나였다. 가난은 게으름의 결과가 아니라 늙거나 병들거나 실직했을 때 사회가 아무런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는 구조의 문제라는 것. 이 결론은 곧 정치를 움직였다. 재무장관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1945)는 부스의 자료를 들고 의회를 설득해 1908년 노령연금법을 통과시켰다. 영국 복지국가의 첫 벽돌이 통계표 한 장에서 나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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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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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에서도 빈곤과 복지를 둘러싼 말싸움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논쟁의 상당수가 통계보다 신념으로 굴러간다. 누구는 복지확대가 나라를 망친다 하고, 누구는 부자 증세가 만병통치약이라 한다. 정작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어떤 이유로 가난한가"를 발로 뛰며 확인하려는 노력은 뒷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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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가 놀라운 이유는 그가 원래 복지 확대론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오히려 복지확대를 반박하려고 나섰다가 자기 손으로 만든 자료 앞에 무너졌다. 이념보다 사실을 앞세운 태도, 자기 예상이 틀렸을 때 결과를 인정한 태도, 이것이 한국정치와 언론에 가장 부족한 덕목 아닐까. 기초연금이나 최저임금, 기초생활보장제도 같은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논쟁에서도, 누구의 확신이 아니라 누구의 조사가 더 촘촘한지를 따져 묻는 문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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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부스의 지도는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가 얼마나 가까이 붙어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서울의 강남과 그 뒷골목, 재건축 아파트와 쪽방촌이 지하철 한두 정거장 거리에 공존하는 현실도 다르지 않다. 다만 한국은 아직 그 격차를 부스처럼 정직하게 지도로 그려 시민 앞에 내놓은 적이 없다. 불편한 진실을 색칠해 보여주는 용기, 그것이 백 년도 더 전에 어느 배 장사꾼이 남긴 가장 값진 유산이다.

 

런던 SW7, 그렌빌 플레이스 6번지에 있는 찰스 부스 기념 파란색 명판(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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