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 만만세!!! 지구해방운동!!!!
 
양돌규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소개글에서는 지구를 지켜라를 노자간의 모순을 지구인과 외계인의 대립 구도 속에 담아내면서 독특한 형식을 창안해낸 영화로 소개한다. 그렇게 볼 때 강만식 사장(백윤식 분)은 병구(신하균 분)와 같은 노동자의 관점으로 볼 때 감히 덤빌 수 없는 엄청난 파워의 담지자면서 그 실체의 전모조차 알기 힘든, 이를테면 외계인과 같은 인물이다. 노동에게 자본은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다가오며 신비화의 극에 달한 존재로 현시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외계인의 비유는 그렇게 무리하지는 않다.



 

병구는 식물인간으로 살아가는 엄마, 파업투쟁 과정에서 숨진 애인, 어릴 적부터 자신을 괴롭히고 못살게 군 선생, 급우들 등 주위 사람들에게 일어난 그 모든 일의 배후에 외계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실체를 추적하고 연구한다. 그의 결론은 어머니가 일했던 그리고 애인이 숨졌던 바로 그 화학공장의 강만식 사장이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들의 지구 총책이라는 것이다. 병구는 강사장을 인질로 잡아 외계의 왕자를 유인하려고 한다.

 

경찰은 강사장 납치건을 해결하기 위해 수사에 나서지만 수사는 미궁에 빠지고 엉뚱한 용의자를 뒤쫓을 뿐이다. 하지만 경찰에서 물러난 추형사(이재용 분)는 병구의 냄새를 맡고 그의 집에까지 찾아오지만 강사장을 구출해내는 데에는 실패하고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종반으로 치달으며 감추어져 있던 여러 사실들이 폭로되면서 점차 흥미를 더해간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진실들 앞에 서면 감독의 상상력에 놀라울 수밖에 없다.

 

사실 어쩌면 자본의 힘은 안드로메다에서 온 외계인들의 힘보다 더욱 강력할지도 모른다. 또 그 지배의 방식에 있어서도 자본은 비밀리에 암약하며 지구인을 상대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는 외계인들과는 달리 훨씬 공공연하게, 또한 공개적으로, 그것도 자발적 동의기제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외계적 힘, 즉 우리의 의지 외부의 강력하고도 두려운 존재로 다가오는 자본은, 지구를 공격할 채비를 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전지구를 장악하고 지배하며 통제하고 명령하고 있는 듯하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실천적 테제는 '지구를 지켜라'라기보다는 '지구를 해방하라'여야만 한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지만 그 자신의 고투를 통해 밝혀낸 병구의 진실이 순이에게 육감적 예지력으로 행동을 촉발시키듯이, 다른 지구인들, 즉 자본의 명령과 힘을 외계적 힘으로 마주하고 있는 70억 인류와 지구자연계의 그 모든 생명으로부터 공명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이 힘을 분쇄하고 자신의 힘으로 환수해야만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운동은 그처럼 거창한 것이었다. 수많은 병구의 모습들이 아무리 하찮고 우스꽝스러우며 초라한 외양을 지닐지라도 적어도 그 존재의 무게감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쌀포대를 쓰고 자본의 아시아주 로컬센터인 홍콩에서 일배하고 삼보 걸었던 한국 농민의 투쟁이 그리하지 않았던가? 홍콩의 시민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사는 존재인지, 지구의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공명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혹은, 생명을 걸고 하는 진짜 단식을 보여주는 지율이 우리 안에 종유석과 석주로 굳어버린 지구에 대한 염려과 걱정의 감정선을 건드려 율동감과 리듬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던가?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장준환 감독의 이 비극적인 한 지구인의 이야기는 지구해방운동사의 전사(前史)로서 풍부한 함의를 지닌 낙관적 희극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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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14:25 2006/11/07 14:25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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