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는 말이 있다.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낸다"는 뜻으로 중국의 이놈 저놈이 즐겨 썼던 문구다.
흔해 빠진 말, 클리셰다.

소설가 공지영 씨가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애매한 스탠스를 비판하면서 “저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 고 유치송 민주한국당 전 의원 이후 손학규 대표 같은 야당 처음본다”라고 말했단다.
...
민한당은 5공 시절 제1 야당이었다. 국회의원 의석 수 82석.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신군부에 의해 만들어진 관제 야당이었고 집권 여당인 민정당과 대립각을 세우기는 커녕 제2중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84년 말, YS의 상도동계와 DJ의 동교동계가 민추협을 기반으로 신민당을 창당하고 이듬해 85년 2.12 총선에서 황색 돌풍을 일으킬 때, 민한당은 이미 정치적으로 죽었고 곧 사라졌다. (그때도 시대의 흐름을 못 읽던 DJ는 자신의 가신들을 민한당으로 출마시켰고 줄줄이 낙선하기도 했다.)

야당답지 못한 야당은 한국 정치사에서 너무나 많았다. 진산 유영필이 박정희를 만나고 오면 손바닥 뒤집듯이 헛소리를 해댔고 '참여 하의 개혁'이니 '중도개혁론'이니 하는 소리를 지껄였다. 소석 이철승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이들을 두고 '사꾸라'라고 손가락질했다. 김영삼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이런 '사꾸라'들처럼 민한당도 역사 속에 사라졌다. 85년 제1 야당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신생 정당 신민당은 이민우 파동 이후 YS와 DJ가 주도한 통일민주당으로 인해 또 흔적없이 사라졌다. 선명 야당 통일민주당이 87년 6월 항쟁에 참여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난 이런 야당 따위의 역사를 두고, 새로운 정당이 뭐 등장할 거라는 둥 생각하지는 않는다. 뭐 새 정당이야 항상 등장했고 DJ에 피를 바친 386의 수혈론, 매혈론 따위가 지금 '대통합' 얘기의 전사쯤인 거야 말 안 해도 알 사람은 다 안다. 민한당을 밀어낸 신민당이, 신민당을 밀어낸 통일민주당이...... '뭐'를 밀어낸 '무슨 당'이 장강의 뒷물이다, 이따위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국회의원 87석을 가진 민주당이 장강의 뒷물이 아닌 거야 당연하다.
민한당만큼의 존재감은 가지겠지만 민한당만큼 무력했던 건 마찬가지다.
금뱃지를 내던지고 물포 앞에 서지 않는 '민노-국참-통합연대'도 마찬가지다.
최루탄 터뜨린 건 속시원하지만 똥 던진 김두한이가 인민의 편이었던 건 아니지 않는가.

선거와 투표, 정치권력구조 재편성에 인민을 동원하는 야당 따위의 '꼼수'는 6월 항쟁 때도 있었고 96-97총파업 때도 있었다. 전두환을 만나고 온 김영삼이 그랬고 91년 5월의 김대중이도 그랬다. 거리에 인민을 경찰과 대치시키고서 그들은 청와대와 거래를 했다. 그리고 그러한 거래가 거리의 대오를 내파했다.

그래서 우리가 웅숭 깊은 눈이 필요하다는 거다. 지금 서울시청 반FTA 집회장에는 경찰과 시민의 대립선만 있는 게 아니다. 전선은 1개가 아니다. 사람들의 열망을 판돈으로 삼는 것이 저들의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이 아닌가. 꼼수는 가카만의 전매특허는 아니다.

한사코 장강을 밀고 나가고 싶다면 민한당을 신민당으로, 신민당을 통일민주당으로 대체시키는 것으로 될 일이 아니다. 강물이 언제 흘러갈 단계를 두던가. 바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바다까지 가자고 할 일이다. 이 강물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어떻게 굽이칠 건지를 보려면 땅을 볼 일이 아니다. 강물 속 뒷물을 봐야 한다. 웅숭 깊은 눈은 기본적으로 물속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모든 장강의 뒷물은 언제나 인민이었다.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라는 문구 뒤에 붙는 말은 쓰는 놈들마다 달랐지만 대개 이런 식이었다.

일대신인환구인( 一代新人換舊人)
한 시대의 새 사람이 옛 사람을 대신하네

'새 사람'이 인민 속에 있을 거라 믿지만,
어떤 싸움의 현장에 있을 거라 믿지만,
시청 앞 거리와 집회 현장에 있다고 해서 모두 새 사람인 건 아니다.

어쩌면 아직 그 '새 사람'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없는 것은 아니다.
뒷물이란 마치 쓰나미의 파동처럼,
대양에서 그 파동은 파도의 표면에서도, 심해에서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침내 그 가공할 힘을 드러내게끔 되어 있다.

이 전투가 끝을 보는 전투가 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강은 흐를 거고, 댐과 보 따위가 가두지는 못할 거다.
뒷물이 결국 앞물까지 바다에 이르게 해 줄 거다.

나도 그 물속 가느다랗게 흔들리는
작은 떨림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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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4 21:37 2011/11/24 21:37
글쓴이 남십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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