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시대
방송 : SBS (월, 화) 오후 09:55~
제작사 : 옐로우필름
제작진 : 한지승 연출, 박연선 극본
1. 저 바다에 내 사랑을 맹세해, 부서지는 파도에 내 사랑을 맹세해. 극중 은호의 입을 통해 '재연'되는 동진의 대사. 젊은 연인의 프로포즈를 순식간에 희화화시키는 이 재연의 방식은 보는 이의 웃음을 끌어내는 데 대단히 성공적이었던 반면, 이 대사가 이 드라마의 중심 대사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맹세할 그 무엇이 남아있는지 갸우뚱하는 나로서는 '맹세'라는 말의 무게감 때문에 겉으론 코웃음치고 속으론 줄행랑칠 뿐이지만,
하필 바다에, 변화무쌍한 바다에,
혹은 부서지는 하얀 포말의 허망한 파도에, 맹세할 수 있을 것인지.
무릇 젊은 연인의 밀어가 갖는 유통기한은 유가공업체의 그것 만큼이나 믿을 수 없는 것이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성 같은 것이다. 이 대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의 맹약이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 지키기 어려운 것인지를 말한다. 연애시대가 흔히 만남-고백-시련-확인의 전형적인 멜로의 서사를 따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2. SBS의 드라마는 정미하고 연연하다. 그 강점을 뒤집어 말하면 간녕하다고도 할 수 있다. 수많은 SBS 드라마에 탐락했으면서도 결코 SBS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연애시대를 보면서 어쩌면 강한 상업성을 지니고 있는 SBS는 바로 그 상업성 때문에 어떤 방송사보다도 강한 실험적 도전과 과감한 배팅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의 드라마 포맷의 변화가 모색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 드라마는 많은 유의미한 시사점들을 던져 준다. 특히 장기간의 제작 기간이 한국 드라마를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 화면 내에 얼마나 많은 코드를 삽입할 수 있는지, 대사의 경제적 사용과 더불어 어구 하나하나의 적절성, 에드리브조차 드라마 내에서 적절하게 배치해내는 연출 등. 올봄 최고의 드라마다.
3. 모 출판사의 책 {연애의 시대}가 갑자기 잘 팔린다는 소문. 드라마 연애시대의 인기는 엉뚱하게도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의 풍속도를 다룬 이 연구서의 판매고를 높이고 있다고. 이는 2004년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소지섭이 언급한 그람시의 {옥중수고} 덕분에 모 출판사의 관련 책이 갑자기 불티나게 팔렸던 것에 비견할 만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