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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

얼마 전에 회사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그 날은 여느 날처럼 평온한 저녁이었다. 6시를 넘어서자 퇴근을 준비하는 사람은 업무를 마무리하기 시작했고, 야근-_-을 준비하는 사람은 저녁먹으러 나갈 사람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내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팀에서 갑자기 띄운 공지사항 하나가 평온한 사무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공지사항의 내용 자체는 매우 간단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 간단함이 문제였다.

"Nate.com을 통해 보안사고가 발생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회사 내에서 Nate 서비스로의 접근을 막겠다."

뭔가 추가적인 설명이 있을거라 생각해서 글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혹시 하얀 글씨로 써 놨나 싶어-_- 마우스로 긁어도 보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평소 회사에서 처리하는 일의 속도로 봐서는 매우 놀랍게도 즉시(!) Nate.com, 네이트 메일, 그리고 싸이월드까지 사내에서 접속할 수 없게 되었다. (참고로 나의 경우 입사한 후 한 달이 넘어서야 정식으로 사원증을 받을 수 있었다.-_-)

 

그리고 당연한 반응이지만 공지사항 아래에는 덧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우리 회사 서비스를 통해 내부 정보가 유출되면 그것도 막아야겠군요."

"혹시 경쟁사 서비스라서 막은 게 아닐지..."

"엠에쎈 막은 건 참겠지만 이건 너무하다고 봅니다."

...등등

 

"회사 서비스로 내부 정보가 유출될 수도 있으니 이것도 막자"라는 덧글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비슷한 내용의 비꼬는 덧글들이 주루룩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남들 재미있어 하는 꼴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는지, 유쾌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람이 나타났다.

"회사에서 생각이 있어 경쟁사 서비스를 제한하겠다는데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습니까."

"게다가 우리 서비스를 막으라니. 키보드를 치고 있는 손이 떨리는군요."

 

아아 "키보드를 치고 있는 손이 떨리는군요"라니! 이렇게 멋진 표현력은 좀 배워야 한다. 덧글을 읽다가 웃겨서 숨넘어가는줄 알았다. 게다가 더 웃기는 것은 위의 내용으로 덧글을 쓴 사람이 두 사람인데, 이 사람들이 비슷한 내용으로 번갈아가며 몇 개씩 덧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면 아디 바꿔가면서 하나씩 덧글을 달았는 줄 알았을 게다. 뭔가 텔레파시라도 통한 건지.

 

나중에는 CEO까지 등장해서 네이트 메일을 쓰고 있었는데 불편하다는 사람의 덧글에 대해 "네이트 메일 쓰는 걸 자랑스럽게 올리다니 무슨 배짱이냐"라는 글까지 남겼다. 나중에 보니 지운 것 같지만.

 

현재 싸이월드로의 접근은 가능하지만 여전히 Nate.com으로의 접근은 막혀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한 어떤 보안사고였는지, 그리고 경쟁사 서비스 제한의 의도는 없는지, 또는 회사에서의 싸이질-_-을 막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해명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이다.

 

예전에 엠에쎈 메신저를 경쟁사 제품이라 해서 사용금지를 시키고 포트 자체를 막아버린 사건도 있었다. 이외에 각종 크고 작은 문제들을 접하면서, 겉으로는 평등하고 합리적인 문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억압적이고 일방적이라는 사실은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의 문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이 회사의 노동 통제 방식이 세련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사건을 보아하니 그런 세련미마저 없어져가는 것 같다.

 

이와 더불어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대변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이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듯 하다. 평소에는 절대 베풀지 않을만한 관용을 총동원하여 회사의 입장을 십분 헤아리고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늘어간다는 것은, 회사의 인사정책의 결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견디기 힘든 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회사는 지금 서서히 굳어가고 있는 중이다.

 

뭐 이 모든 변화에 대해서, 나로서는 원래부터 회사에 기대한 바가 1g도 없었기 때문에 실망할 것도 전혀 없지만 말이다. :)

 


♪ Queen - I'm going slightly m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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