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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6/06/27
    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2)
    노란리본

가을 맞기

 

새벽녘엔 이불이 그리워지더니

급기야

어제는 몇 시간씩 끊기지 않는 에어컨 바람이 부담되는 날씨.

 

계절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니

예정대로 가을이 슬몃 여름의 끝자락에 말걸고 있다는 증거겠지요.

 

통상 이맘때쯤이면

더위 먹어 쳐진 어깨도

나른한 오후같은 하품도 좀 덜어졌을텐데

올해는 이상하게도 몸에 활력이 붙질 않아

뛰기로 했습니다.

 

뭐, 당연히 매일 뛸수도 없을 것이고

(일주일에 한두번 뛰어주면 칭찬받을 일이겠죠. 큭)

매우 격식갖춰 뛰지도 않을 것이지만

(걷다 뛰다 그러다 지치면.. 그냥 누워버릴수도;;)

그런건 전혀 상관없습니다.

 

석촌호수 바닥은 조깅트랙이 깔려있으니

이 동네에 이보다 더 좋은 코스 있을리 없고

게다가 롯데월드의 그 무시무시한 놀이기구들을 타며

꺅꺅대는 사람들 구경에 지루할 새 없을 겁니다.

 

그래서 나는

더 생기있고 유쾌한 가을을 맞을 수 있을듯합니다.

.

.

 

자, 모두들-

가을 맞을 준비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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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 계시나요?


 

그 형형색색 선명함에 보고만 있어도 흐뭇해지는 것.

상상만으로도 유쾌한

청명한 파란 하늘과

그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상쾌한 너의 비누향이 실려오는 것.

스카프 한 장에 찬바람을 막고

쟈켓을 벗어 팔에 걸치면 온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가을아,

어느만큼 와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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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아이

 

하루만큼의 아쉬움과 버거움을 등에 지고

타박타박 돌아오는 퇴근

집 앞 놀이터를 가로 지르는 길.

빈 그네 하나가 유난히 삐그덕삐그덕.

 

그늘막 하나없이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을 고스란히 받아낸채

지칠줄 모르고 꺄르르대던 동네 꼬마들의 흔적을

그네 발치 깊게 파인 모래밭 자국과

반들해진 그네줄이 말해주는 시간.

 

무언가 반짝 한다.

한 여자아이,

대낮의 꼬마들처럼 서로 먼저 타겠다며 앞다투는 분주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숨을 쉬듯

밥술을 뜨듯

그렇게 그네 위에 앉아 흔들댄다.

 

당장 내일 있을 쪽지 시험과

등 뒤로 쏟아지던 주변의 비난 따위와는 다른 세계인양

그녀 위로는 무지개빗 비누방울과

흰 돌고래들이 춤을 춘다.

 

왁자한 소음으로 가득찼던 놀이터는

어느새 습한 어둠과 동네 노인들의 흡연실이 되어 버린지 오래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다.

 

단지

그녀가 후회하는 것은

그네를 흔드는 이유를 그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지 못했다는 것 뿐.

 

그녀가 나를 빤히 본다

질문을 포함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떤 질문에도 답해줄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만, 주춤, 하고 돌아서고 만다.

 

그 여자아이는 밤새 나를 원망했을지 모른다

혹은

운이 없다면 나는 오늘 밤이나 내일 저녁 또 그 여자아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꼭 말하기로 한다

너와 손을 잡고 걷고 싶다고,

어디로든.

우리에겐 목적지가 중요치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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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 성공.

휴가를 마치고

업무복귀 레드카펫까지 밟고 나니

이제야 착륙을 무사히 끝낸 기분이 듭니다.

키보드 자판까지 손끝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휴가 얘기는 떠오를때마다 하나씩 남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추억은 나만 알고 있어야 더 짜릿할수도 있겠습니다. 후후

 

더운 날 아이스커피라도 한잔씩 물며 잘 견디시길.

 

Ne t'inquiete p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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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 탓이겠지

더한 생각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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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즐겨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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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ckets

 

같은 시간 같은 공기 속이어도

나는 여기에 당신은 거기에 앉았다.

우리는 동시대를 살고 있으나

내가 여기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물며 느긋한 여유를 즐기는 동안

당신과 또 다른 당신에게는,

사랑하고. 헤어지고. 울고. 웃고. 화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너는 우리를 아주 잘 알고 있겠지만

그건 단지 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뿐

또 우리가 그렇게 보이는 것일뿐.

실제의 나는 그렇지도 않으며

보름달 뜨면 헐크로 변신하는 늑대인간 따위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돌변하는게 우리의 진짜 모습일수 있겠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너는 우리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나 너 우리가 모이면 토요일 저녁 버라이어티쇼보다도 더 재미나고 다이나믹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터.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노인은 눈을 감고 무엇을 회상하는가.

아이를 안고 있는 그녀는 타인의 친절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그건 그만이 알고 있다.

그건 그녀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로마로 향하는 기차 안.

우리는 다양한 군상으로 앉아 제가 내릴 곳을 기다린다.

어떤이는 우아한 일등석 식당칸에 여유롭게 두자리를 잡고 앉아 방금 헤어진 낯선 여인과의 로맨스를 분절적으로 상상하며,

또 어떤이는 자기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미쳐 알지 못했던 과거의 사실들에 새로운 심정이 되고,

또 어떤이는 처음으로 맞부닥친 텍스트 속 난민을 이웃하며 자신의 소소한 행복과 그네들의 생사의 답안지를 놓고 왁자한 고민에 빠진다.

 

1등석과 3등석 마냥 전혀 비슷할 것 없는 이들의 존재는 희한하게도 언뜻언뜻 교집합을 만들어내고 조심스레 서로의 경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물론 서로는 서로를 여전히 잘 알지 못하고 서로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일단 지우개를 들고 1-2-3등석의 선을 조금씩 지워나가기 시작한다면,

그 노인은 난민 꼬맹이에게 따끈한 우유를 건넬수도

고집불통 그 노파가 실은 여리고 상처많은 영혼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새로이 알게 될지 모른다.

 

그렇더라도 너무 호들갑떨지는 말자.

그네들은 본래부터 그런 사람들이었으나 눈치 없는 우리가 이제야 알아차린 것일 뿐.

 

게다가

여전히 열차는 로마를 향히 달리고 있고

수많은 우리는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티켓 tickets, 2005>

이탈리아, 영국, 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켄 로치, 에르마노 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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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교회와 운주사

지난주 전주, 광주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첫 도착지가 전주 리베라호텔이었는데, 마침 그 옆에 천주교전동교회가 있는 터.

새벽기타를 타고 내려간 덕을 봐 근처를 잠깐 둘러보았다.

 

전동교회는 100년전 지어진, 호남지방 최초의 서양식 근대건물. 영화 <약속>에서는 전도연, 박신양이 결혼식 올리는 배경으로 나왔다고 하더라.

100년의 세월 동안 겪었을 세월의 풍파와 모진 비바람은 모두 잊은듯

오로지 기품만을 간직한 듯한 성당은, 아름답고 고요하다.

 

광주 근처 화순에는 <운주사>라는 절이 있다. 시간이 되면 가보려 했으나 하루만에 전주찍고 광주, 화순까지 갈 여력은 없었으니. 아쉬운 마음을 예전(아주 예전) 기억에 의존해 몇 가지 메모로만 남긴다.

 

'운주사'는 '천불천탑'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곳. 이름그대로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탑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많은 수가 없어졌다.

신기하게도, 그 곳에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정형화'된 탑과 불상은 찾아볼 수 없다. 굴러다니는 큰 바위에 얼굴선 몇 개를 잡아놓은 불상과 특정양식없이 쌓아놓은 석탑. 그래서 오히려 볼수록 정겨운 얼굴, 금방이라도, 안녕, 하고 말걸어올것같은 소박한 마음. 그래서 어떤 이들은 바로 이 곳에서 민간고유 신앙의 흔적을 찾기도 한단다.

몇 번의 학술조사에도 불구하고 은주사 불상과 탑의 창건시대, 세력, 배경에 대한 사실을 밝히지 못하였다니 매우 불가사의한 유적임에 틀림없다.

 

또 하나, 여기에는 와불상이 있다. 그 앞에는 이런 기록이 있는데, 새로운 세상을 기원하던 한 사람이 밤낮으로 기도하던 어느 마지막날 부처님을 조각하던 석공들은 하늘로 날아가버리고 난데없이 와불상이 만들어져있더란다.

하지만 나의 추측은 이렇다. 석공들이 바위에 조각하는 것까진 끝냈으나 더이상 임금체불을 견디지 못하고는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결국 불상은 세워지지 못하고 땅위에만 누워있게 된 것이라는.. ㅎㅎ 아님 말구.

언제고 광주에 가게 되면 그땐 꼭 짬을 내 다시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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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 새와..

 

"10분만 얘기하고 싶어요" 하고 당돌하게 전화 저편의 여자가 말했다.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고 나는 깜짝 놀라 되물었다.

"10분만 얘기하고 싶다고 했어요" 하고 여자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한번도 들은 기억이 없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어디에 거셨습니까" 하고 나는 끝까지 예의바르게 물어보았다.

"그런건 관계없어요. 어쨌든 10분만 얘기를 하면 돼요. 그러면 서로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요" 하고 여자는 빠른 어조로 말했다.

"서로 이해한다구요?"

"기분을요"

 

 

.

.

저 대목에서 가슴이 쿵.

밤의 어둠은 2006년 6월 27일의 결말을 향해 치닫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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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향하며 북을 바라보다

 

<도널드덕을 어떻게 읽어야하나>를 얼핏 읽었던 기억에 아리엘 도르프만을 그저 칠레의 반미 작가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책을 보면 그가 칠레 내에서 꽤 영향력있고 아옌데 시절에도 많은 역할을 해온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회고록이다.

그런데, 보통의 회고록이 자신의 일대기를 시간순으로 돌이켜 적은 기록이라는 의미에서, 이 책은 전혀 통상적이지 않다.

 

일단, 아리엘 도르프만은 자신의 역사'만'을 기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즉 칠레와 그 주변국들과 미국에 대한 역사를 기록하는데에 충실하다.

제목 그대로, "나를 돌아보다"가 아니라, "남(south)을 향하며 북(north)을 바라"본다.

그는 남(칠레)과 북(미국) 사이에서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갈등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다가 종국에는 남에서의 삶과 투쟁을 택하게 된다. 끝없이 제기되는 남을 둘러싼 환경과 북에 의해 강제되는 상황들이 선택의 주요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가 기록하는 방식은 또한 통상적 회고록과 달리 매우 친절하지 못하다.

과거의 일정한 시간을 건너뛰어 현재(글쓰는 시점에서의 현재)에 대입시키는 등 시공간이 무시되어 하나의 서사 속에 공존하게 되는데,

1973. 9. 11. 칠레의 모네다 궁에서 아옌데가 죽음을 맞으며 역사속으로 물러났던 것과

2001. 9. 11. 뉴욕 무역센터가 미제국주의의 현실 속에 무너져내린 것의 교집합을 작가의 유년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는 식이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서사방식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

아내인 안헬리까가 피노체트의 끄나풀들에게 붙잡혀 일종의 고문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는 대목은, 마치 짧은 단편 하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자, 이쯤에서 읽으며 껄끄러웠던 사소한 몇 가지.

미국의 히피에 대해, 가난을 선택해 역겨운 호사따위를 부리는 작자라고 말하는 대목은, 문화와 개인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작가의 자세라기 보다는 철저한 반미정신으로 무장한 칠레의 운동가라고 보는 편이 나을듯. 사실, 작가 조차 엘리트 부모 밑에서 등따시고 배부른 진로에 등돌리고 '칠레의 운동가'가 되는 길을 택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자신의 가족사를 설명하는 지리한 과정과 자신의 유년시절 회고의 몇몇 대목은 '뼛속부터 잘난척 거부주의자'인 내게는 조금 역겨웠던게 사실.

 

70년대 칠레의 상황을 잘 모르거나 나처럼 이해력이 약간 모자란(-_-) 독자라면 맨 뒤 옮긴이의 말 부터 시작하는 것도 팁.

 

대체로 흥미롭고 신선한 기운까지 덤으로 얹어주는 책이다.

물론 나의 읽기 방식과 해석 방식에 한해서이다.

작가의 말대로 '가장 단순한 이야기라도 독자의 수만큼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자신있게 적어놓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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