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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바람에 쓴 글 - 용산참사 4주기

 

[용산참사4주기]

 

용산, 그리고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이 나라 곳곳의 상처들을 기억하며.

 

 

비가 오면은 창문 밖을 두드리는 / 물소리가 음악이 되고 / 밤이 되면은 골목 수놓은 가로등이 / 별빛보다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 집은 이제 허물어져 / 누구도 이사 올 수가 없네 / 마음속에 모아 놓은 많은 이야기들을 / 나는 누구에게 전해야 하나

나는 노래를 부르고 사랑을 나누고 / 수많은 고민들로 힘들어도 하다가 / 결국 또 웃으며 다시 꿈을 꾸었네 / 여기 조그만 옥탑방에서

좋아서하는밴드, “옥탑방에서”

 

집. 그것이 곧 나다. 나의 역사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 베개 위에 머리를 눕히고 하루의 고단함도 함께 내려놓을 때, 그 마음을 ‘내 집’만이 안다. 그것이 아무리 누추하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그곳은 결코 쉽사리 지워져서는 안 될, 우리 삶의 마지노선이다. 오직 그 곳에서만 가난한 우리의 고민과 웃음 그리고 눈물의 기억들이 오롯이 담겨 있으니. ‘돈’이라는 반질반질하고 네모 각진 권력을 갖지 못한 우리들에겐, 작은 방 한 칸에 새겨진 울퉁불퉁한 기억들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니.

 

철거. 아마도 그것은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올려진 구조물을 허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머니가 창가에 놓아두며 매일 정성껏 길러왔던 화분이 사라진다는 것, 어느 날 가족들과 여행에서 다정하게 찍어 벽에 걸어둔 사진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 또 이와 같이 다른 무엇으로 대체 불가능한 삶의 흔적들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그 집에서 살던 사람들의 삶은 다른 어딘가에서 또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살던 이 곳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때를 추억할 돌멩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영문 모를 콘크리트 더미만 쌓아올려져 있다면, 나의 과거가 허리가 끊어진 채 울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말 것이다.

 

얼마 전 사당동 판자촌 지역 주민 연구를 다룬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저자는 판자촌이 철거된 이후에 이들이 서울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아온 20년이 넘는 세월을 한 권의 책에 빼곡히 담았다. 그 책을 읽으며 가장 공감이 된 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 삶에 대한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 속에서 1년 전 또는 10년 전의 삶을 떠올리고, 이를 통해 자기 삶을 반추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삶이 불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철거가 반인권적이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나에게 이 물음이 던져진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자신의 역사를, 삶의 뿌리를, 사정없이 흔들고 결국 끊어놓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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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나는 노들에서 한소리반 사회수업을 맡았다. 어찌어찌 마지막 수업까지 오게 되었을 때, 무슨 내용으로 수업을 할까 고민하다가 4주기를 맞는 용산참사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용산 뿐만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자기 역사와 삶의 뿌리들이 끊어져 신음하고 있는 곳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국민들의 손으로 뽑은 정부가 국민들을 자기 삶의 터전으로부터 내쫓는 아이러니의 현장들. 용산, 두리반, 그리고 강정마을.

 

용산. 그곳은 콘크리트 더미를 쌓아올려 빌딩숲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살던 터전을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비록 철거 이후 자금 조달이 어려워 재개발은커녕 겨우 주차장으로 쓰일지라도, 네모 각진 화폐의 권력으로 쓰일 일이 없는 낡고 허름하고 삐쭉삐쭉한 가옥들은 대걸레로 복도를 쓸어내듯이 내동댕이 쳐졌다.

두리반. 그곳은 한 가족의 소박한 생존을 위해 파 놓은 작은 우물이었다. 그런데 이 작은 우물을, 고작 이 칼국수 가게 하나를, 수천 수만개의 우물을 가진 대형 건설사가 차지하겠다고 벌린 탐욕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강정마을. 물이 귀한 제주 땅에서 유일하게 깨끗하고 풍부한 물을 가진 강정천이 있는 곳. 천혜의 희귀 생물들과 수천 수만년을 이어온 구럼비 바위가 있는 곳. 이 마을을 지켜온 강동균 마을회장은 구럼비 바위를 엄마의 품과 같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엄마 품과 같은 이 곳에서 정부는 화약을 터뜨리고 있다. 마치 지구와 전쟁이라고 할 듯이.

 

내가 마지막 수업 준비를 위해 돌이켜 본 이 세 곳 중에서, 두리반만이 투쟁에서 승리해서 온전한 자기 터전을 찾았고, 용산과 강정마을은 아직도 아파하고 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구속되었으며, 벌금 탄압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수업을 준비하는 내내 가슴이 아팠고, 답답했다. 이 투쟁에 늘 함께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는 나조차도 마음이 지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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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정도로 유약했다.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한 투쟁의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으니.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용산참사 당시 구속자들이 특별사면 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기분이 찝찝한 사면이었다. 이명박 측근 비리 인사들의 특별사면에 대한 비난을 막기 위한 방패막이용인 것이다. 치사하고 더러운, 그러나 어쨌든 사면이니 받지 않을 수 없는. 나는 쏟아지는 기사들을 무심하게 찾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특별사면으로 나오신 이충연씨의 인터뷰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들이 권력으로 나를 석방했지만 나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살육의 현장에서 살아남아, 결국엔 옥살이까지 해야 했던 사람. 그 때문에 누구보다 힘들고 신음했을 법한 사람. 그런 사람이 이런 사자후와 같은 일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일성은 마치, 저들이 여름날 밤을 귀찮게 하는 모기에게 살충제를 뿌리듯 우리 철거민을 모욕하고 모든 것을 빼앗는데도, 절대 빼앗을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용서의 자격.

 

권력자들이 보기에 모기보다 못한 목숨 따위가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감히 “용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들은 이 말이 가소롭게 들렸겠지만, 동료‘모기’의 한 명으로서 나는 큰 위안을 받았다. 저들이 아무리 우리의 삶을 짓밟아도 결국엔 우리의 용서를 ‘받아야’하는 자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무너져 내리더라도 이와 같은 ‘도덕적 긍지’만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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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봄이 다가오지만, 삶의 뿌리를 위협받는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한겨울이다. ‘끝내 승리하리라’라고 장담하듯 응원하는 말을 하기엔 용기가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 한마디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긍지를 잃지 말자고. 자신을 버리지 말자고. 우리가 몸을 누이는 집이 비록 초라해도, 그 안에서 새긴 당신들의 삶의 역사는 매 순간 남김없이 감동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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