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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노동자운동의 어떤 가능성들

필리핀에서 자행되고 있는 사회운동 활동가들에 대한 정치살인이 끔찍한 수준으로 계속되고 있다. 최근 노동, 사회단체들이 진행한 기자회견(필리핀의 정치살인 및 노동탄압을 규탄한다! )이 진행되었다. 필리핀 정부(그리고 군부와 지방 우익조직들)는 최근 몇 년 동안 무려 1,000여명의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암살했다. 최근에는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1,000명이라는 것은 쉽게 말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 나의 동료가 살해당할 수 있으며, 내일 내가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필리핀의 사회운동 활동가들을 최근 태국에서의 회의를 비롯해서 서너 번밖에, 그것도 단절적이고 피상적으로 만난 적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을 생각할 때 숙연해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부끄러워진다.
(아래는 정치살인에 항의하는 필리핀의 집회 사진, 프레시안기사 지은/'경계를 넘어' 활동가로부터 인용)


최근 태국에서의 회의에 참석한 한국 활동가 중에도, 남한의 운동이 잘나간다는 식의 거만함같은 것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내 경우에도 필리핀의 노동, 사회운동의 지형 정도가 관심대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들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있어야했던 그 자리에서 말이다. 눈앞에서 이야기하는 Lidy Nacpil(주빌리사우스-아시아태평양 코디네이터), 빛나는 활동가인 그녀도 몇 년전 이러한 살인에 남편을 잃어야했던 사람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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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노동자운동을 활동가들과의 간혈적인 대화나 팜플렛을 통해서 접하면서,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적 발전이 미약하다고 해도, 오히려 그 때문에 자본주의의 극심한 모순에 불균등하게 노출되어 있고, 사회운동이 치열하게 발전하는 곳이 필리핀이다. (사회운동의 발전은, 심지어 노동자운동의 발전조차도 자본주의의 발전, 혹은 노자관계의 전면화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순의 불균등한 발전과 “계급투쟁”이, 그 함수라는 것을 필리핀을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필리핀의 노동자운동은 정치적 입장과 노선에 따라 여러 조직으로 분할되어 있다. 독립적인 노동조합들은 모두 공산당(CPP)계열의 KMU(노동절운동)에서 분리되어 좌파들이기는 하지만, 입장들은 상이하다. 최근 태국회의에 참가한 것은 필리핀 노동자운동조직 내에서 사회운동과 친화적인 BMP(필리핀노동자연대)APL(Alliance of Progressive Labor)이다.(둘다 전국적인 수준의 노동조합 연합단체이다. 그러나 그 규모는 KMU에 비해서는 작다.)
(필리핀 노동자운동의 지형에 대해서는 불충분하고 어떤 점에서는 왜곡도 있지만 한노사연의 기사를 참고할 수 있다. (아시아 노동운동의 현황과 과제 2. 필리핀 )

APL은 독특한 조직형태를 갖고 있다. 이들은 노동자운동의 연합단체이지만 같은 조직 안에 노조의 연맹, 산업노조, 지역노조 뿐 아니라, 협동조합, 노동자공동체/협회, 노동자 자조조직, 직업조직 등의 다양한 노동자조직형태를 포괄한다. 이것은 노동자운동의 조직형태는 노동조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그에 비해서 민주노총에 노동자 협동조합이나 직업조직이 가입할 수 있을까?) 노동자운동을 하기에 적합한 형태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정세에서는 노조의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배제되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APL은 정치조직 중에는 AKBAYAN(시민행동당)과 경향적으로 함께하는데, 최근 총선에서는 월든 벨로가 정치살인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이 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APL은 자신들의 지향으로 직접 사회운동노조주의를 표방한다. 위의 한노사연 글에서 APL을 사민주의 좌파라고 소개하는 것은 사회운동 노조주의에 대한 한노사연 식의--우익적-- 해석이 반영된 것같다.)

이것은 마치 전노협 시기에 지노협의 조직과도 유사하다. 지노협은 노동조합만이 아니라 지역의 노동단체, 노동자 교육단체 등을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92년 전노대의 구성부터, 95년 민주노총의 건설에 이르기까지 노동자운동은 노조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이 과정에서 노조 외의 조직형태는 모두 배제된다. 그 원인이자 결과는 무엇인가? 노조는 사업장 내의 경제투쟁, 사회-정치적인 투쟁은 사회운동-정치단체들이 하는 것으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이에 “어울리게” 노조는 사업장내의 (때로는 전투적으로) 경제투쟁에 몰두했다.(이점에 있어서는 좌우파가 다를 바가 없었다.) 전국적 총연합단체(민주노총)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층 노조의 경제주의를 보완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사업장 단위의 경제주의가 어떻게 그 노조 외부에 있는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여성노동자를 배제해왔는지 알고 있고, 사회적 합의가 얼마나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

최근 비정규직운동의 고민 중 하나는 기존의 노동조합 모델이 이 운동에 절대적인 조직형태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안적인 조직형태가 무엇인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기존의 노동조합들은 사업장단위의 노조결성--사업장단위의 임단협교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이클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들은 이러한 형태와 어긋나는 조직과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심지어 지역차원에서 자주 일자리를 옮기기 때문에 사업장 단위의 활동도 한계가 많다. 따라서 다른 방식의 조직화, 활동이 있을지가 고려된다. 그러나 현재 민주노총과 같은 수준에서라면 그것을 포괄하거나 연대할 수 있을까? (다만 노조조직이 전적으로 무용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 적어도 지역노조와 산별노조는 가능성이 있다. 산별노조들은 매일 실망을 주는 중이지만 말이다.)

한편, BMP는 총연합단체가 아니다. 오히려 지역적인 투쟁연대체에 가깝다. 다른 총연합 단체에 속해있더라도 BMP와 함께 할 수 있다. (전노협도 한국노총에 가입해있거나 독립적이거나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BMP 활동가는 총연합단체를 일부러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며, 역량이 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러한 조건에서도 조직들을 관통하는 투쟁을 조직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적어도 그게 가능하다는 사고가 전제되어야하기 때문인데, 민주노총은 연맹만 달라도 연대의 수준이 뚝 떨어진다.)

최근 BMP는 지역단위의 불안정노동자 조직화 전략을 채택하고 3개년 계획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마치 민주노총의 전략조직화와 유사한 것일 수 있겠지만 자세한 것은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충분히 다른 방식을 것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을 것같다.

한편, BMP는 노조를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 BMP 활동가는 대화 속에서 APL의 조직화 방식, 즉 노조를 넘어선 조직화에 대해서 “나는 실용주의자다. 그들(APL)은 자신의 노선을 현실에서 증명할 수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나는 실용주의자”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의 말도 아마도 비슷한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세 속에서, 노선과 실천은 검증되어야한다. 그것은 단지, 또한 전혀 실증주의가 아니라 정세에 개입하는 것의 본질이다. 정세 속에서 활동가들은 정세를 사고하고, 자신의 대응-노선을 창안하며, 그것을 정세에 기입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은 실패할 수도 있고 성공할 수도 있다. 그것은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간지”가 정세와 그 우연성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에 달려있다. 그것의 성공은 보증이 없지만, 정세 속에서 살아남을 경우 새로운 정세를 형성하고 지속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상상력도 필요할 것이다. 자신을 “실용주의자”라고 말하는 BMP 활동가는 조직형태들 속에서도 그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먼 곳에서 우리에도 마찬가지이다. “정세 속에서, 당신들이 실현하라.”

그리고 발리바르가 말한 대로 여기서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11. 공산주의는 복수의 의미들로, 즉 잉여노동의 제한,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의 분할의 종언, 시민성과 국민성[민족성]의 구별의 종언으로 이해된다(그 외에도 다른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맑스가 말한 바대로 공산주의는 인류의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운동이다. 우리는 여기에 이렇게 덧붙여야한다. [미래에 대한] 보증없는 [현재의] 운동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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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와 “우연성” 그리고 활동가의 포지션에 대해서는 사회운동(사회진보연대) 2007년 7-8월 합본호 “정세들: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튀세르의 우발론적 해석”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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