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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꼬뮌 전사들의 벽

빠리, 꼬뮌 전사들의 벽

 

페르라세즈(Pere Lachaise) 묘지에 갔다. "꼬뮌전사들의 벽“이라고 불리는,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빠리 꼬뮌 전사들이 총살당한 벽이 있는 곳이다.

 

아침부터 찾아간 이곳은 한적한 마치 한적한 공원 같다. 쇼팽, 발자크, 짐 모리슨 등 유명한 이들의 무덤도 많은 곳이라 찾는 사람들이 아침부터 드문드문 있다.


 

찾기가 쉽지 않다. 묘지입구의 이정표에는 한참을 찾아도 꼬뮌전사들의 벽은 나오지 않는다. 무작정 걸어가서 직접 찾아보기로 했다. 묘지 동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관리사무실에 가서 안내 지도를 받아보았지만 거기에도 없다. 한시간반 정도를 언덕빼기의 묘지를 헤멘다. 오늘은 날씨가 덥다. 그리고 문득 한 구석에서 그 벽을 만났다.



 

한적한 구석. “AUX MORTS DE LA COMMUNE, 21-28 Mai 1871”이라고 씌여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꼬뮌의 죽음을 위해”라는 뜻. 불어아시는 분들, 맞나요?)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묘지 자체의 벽돌 벽이다. 앞에는 장미 꽃 다발들이 놓여있다. 벽에 손을 대본다. 슬픔이 들려오는 것같다. 벽에는 총알 자국 같은 것들도 있다. 피처럼, 혹은 혁명처럼 붉은 담쟁이가 참혹한 벽을 감싸고 있다.


어떤 순간에 우리는 역사의 “나쁜 방향”을 마주할 수도 있지만, 죽음에 도망치지 않고, 죽음도 어쩔 수 없는 주체들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역사를 어떻게 살아야할까.

 

벽 앞의 계단에서 가져온 사과를 하나 먹으면서 한참을 앉아서 바라본다. 가끔 이곳을 찾는 사람이 들렸다가고, 나처럼 사진을 찍는다.

 

벽이 보이는 맞은 편에는 프랑스공산당에서 만든 것으로 보이는 레지스탕스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가 있다. 여기에는 루이 아라공이 레지스탕스를 위해 쓴 Strophes pour se souvenir (Strophes to help you remember, 1955)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새겨져있다.

 

그 옆쪽에는 “프랑스공산당의 누구누구”이런 식의 묘비명이 적힌 무덤들이 이어져있다. 프랑스의 공산주의자들도 죽으면 이 벽이 보이는 곳에 함께 있고 싶어했나보다.

 

이걸로 빠리까지 와서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거의 한 셈이다. 여행의 이제까지의 과정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시간.


가는 길에는 쇼팽의 묘지를 만났다.

 

  (혹시나 나중에 가실 분이 있다면, 이렇게 하시라. 정문에 들어서서 언덕을 약 100미터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좀 더 가면 관리사무실이 있다. 들어가면 지도를 구할 수 있다. 지도는 정문에서는 나누어주지 않는다. 꼬뮌전사들의 벽은 지도 상에서 97블럭 맞은 편, 76블럭 옆쪽에 있다. 묘지의 동쪽 끝 구석이다. 꼬뮌 시민군들이 그곳까지 몰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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