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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2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1,2
모리스 마이스너 지음, 김수영 옮김 / 이산

 

 

중국 현대사를 진지하게 다룬 이 책을 보면서 이제야 10여년 전에 보았던 사회주의 이행논쟁에서 중국의 입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을 먼저 고백해야겠다. 서사연에서 냈던 [사회주의의 이론.역사.현실](1991)에서는 특히 이행이론과 관련하여 스탈린주의와 함께 마오주의 입장을 평가하고 있었는데, 그 책을 처음 읽을 당시에는 단지 '대과도기론'이라는 결론으로만 인식했던 마오주의의 입장이 어떠한 역사적 경로를 거쳐 형성되었으며 현실에서 의미는 어떤 것이었는지를 알수 있게 되었다.

 

또 한편으로, 나는 알튀세르가 당대에 마오주의로 이해되었고 마오의 영향을 실제로 받았다고 할 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이데올로기에서의 계급투쟁, 당을 관통하는 계급투쟁, 사회주의 하에서 계급투쟁 등, 알튀세르나 발리바르가 강조한 정치적 명제들이 마오에게서 기원하거나 실마리를 얻었을 것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현실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났는지를 중국의 사례를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혁명을 거치면서 형성되어온 중국 현대사를 사실들과 함께 역사적 쟁점을 예리하게 지적하면서 서술하고 있다. 덕분에 중국혁명과 마오주의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보다 풍부한 이해가 가능하게 해준다. 저자는 마오주의와 중국혁명의 역사적 과정들을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함으로써 역사목적론을 지양하고 사회주의 운동의 시각에서 제기되는 쟁점을 풍부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해준다. 현대 중국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서 자본주의로만 치닫는 것으로 보이는 오늘의 중국에는 어떠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쟁점이 있었는지, 따라서 현재와 앞으로 제기될 쟁점은 무엇인지 알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내용과 의의에 대한 소개는 월간 [사회운동] 5월호에 백승욱 선생이 쓴 아래 글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모리스 마이스너,『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백승욱]/ 2005.5

 

나는 다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게된 몇가지 쟁점들에 대해서만 아래에서 언급하려고 한다.



마오의 주의주의와 주체사상, 알튀세르

 

마오주의는 주의주의적 경향을 가진다고 평가된다. 이 책의 전반부는 마오주의의 주의주의가 역사적 경혐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혹한 대장정의 시련에서 살아남았으며,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토대가 거의 부재한 거대한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지를 앞세우는 주의주의가 강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이후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이러한 마오주의의 주관주의는 한편으로는 북한의 경험에 영향을 준다. 북한의 주체사상이라는 것은 마오주의의 주의주의를 더 극단화시킨 하나의 변종인 것으로 보인다. 마오도 '사람'을 강조하고 '사람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러한 강조는 북한에서는 다소 경직된 방식으로 변용되어 수용되었다. 마오주의에 함께 포함된 사회주의 하에서의 이데올로기적 계급투쟁이라든가, 당을 관통하는 계급투쟁과 같은 관념은 제거되고 다만 사람의 의지에 대한 무한한 관념론적 강조, 지배의 이데올로기적 토대 강화로 변용되었다. 마오주의의 대중노선과 대중에 대한 신뢰는, 몇번의 간접적 영향을 거쳐 남한의 NL까지 와서는 대중추수주의와 근거없는 낙관주의로 변화되기도 한다.(역사란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이후 한편에서는 60년대말 프랑스에서 알튀세르 등의 이데올로기론에 영향을 준다. 구조주의적으로 수용된 마오주의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대신 과학의 대상으로서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사회주의 하의 계급투쟁

 

마오(와 그 동료들)는 1949년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중국혁명이 하나의 일회적 계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들은 현실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는 혁명이 장기적 과정이 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로부터 중요한 정치적 결론들이 도출된다.

 

사회주의 정권의 수립 이후에도 계급적 모순은 소멸되지 않는다. 중국은 50년대를 거치면서 성공적으로 지주와 자본가라는 구 지배계급을 인적으로 소멸시켰지만 계급투쟁은 소멸하지 않는다. 마오는 그것을 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잔재 때문인것으로 보았다. 사회주의 하에서도 계급투쟁은 계속된다. 계급투쟁은 사상투쟁의 형태를 띈다고 규정되었는데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개념이다. 이로부터 50년대 후반의 백화운동, 60년대의 문화대혁명 등의 사회주의 하에서 이데올로기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이 제기된다.

 

마오는 이러한 쟁점을 단지 '논쟁'이 아니라 대중운동을 동원함을 통해서 제기하고 물질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계급투쟁이 당을 관통할 뿐 아니라, 그것이 대중운동에 의해 제기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정한 혁명적 잠재력이 당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는 자발적 농민운동에 있다는 점, 오히려 대중운동에 대해 당이 지체될 수 있다는 관점은 무오류-일괴암성이라는 레닌주의적인 당 관념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실재로도 그런 차이가 제대로 드러난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정통'이론으로 회귀하려는 경향은 물론 실용적인 이유에서 당의 무오류성에 대한 주장은 반복되었던 것이다. 특히 대중운동을 억압하고 당의 통치성을 회복하려 할 때마다 이 점이 강조되었다.)

 

다만 마오는 대중운동을 통해 계급투쟁의 과제를 제기해야한다는 점은 충분히 강조했지만, 바로 그 계급투쟁의 모순이 대중운동 자체도 관통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는 않았다.(따라서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대중-'인민' 내부에조차 이미 차이와 적대가 존재한다는 사실. 마오는 '인민'의 규정을 제한함을 통해서 문제를 편의적으로 해결했을 뿐이다.) 마오는 매 계기마다 최종적으로는 기존의 국가기구를 방어하는 것으로 후퇴하고 대중운동을 억압했다.

 

사상의 자유를 확대하고 논쟁을 촉발한 백화운동의 예를 보자. 백화운동은 결국 인민의 단결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가 있었는데, 이는 '인민'은 기본적으로 단결된 통일체라는 운동의 전제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 결과, 백화운동이 '통제 가능선'을 넘어서자  이단색출로 전환되어 탄압이 시작된다. 인민이 그 목표와 이해관계에 기본적으로 일치한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관점을 보인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비판이 분열을 낳는다면 운동을 끝낸다는 것이다. 인민-대중 자체가 다른 이해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의도적으로 무시되었다.

 

마오는 백화운동에 뛰어든 지식인들-사회주의 비평가들의 평등주의적이고 반관료주의적인 목표에는 동의하고 이를 추동하여 당내의 우파들을 공격한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에 대한 그들의 헌신에는 공감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촉발시킨 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돌아선다. 마이스너는 마오가 지적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적 제도가 사회주의 건설에 필수적이라는 점을 마오는 간과했다고 지적한다.

 

마오는 '만약 우리가 사회체제를 공고히 하는 일에만 매달린다면 이 체제를 반영하는 사상이 융통성을 잃을 것이고 사람들은 새로운 변화에 자기의 사상을 맞추어 나가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고 말은 했지만 정작 그 한도에 대해서는 당-조직과 국가기구의 유지라는 명확한 선을 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대중운동과 인민주의, 개인숭배

 

문화대혁명도 마찬가지로, 당과 국가의 관료화의 우경화에 대항하여 대중의 혁명적 진출을 통해 당과 국가를 개조하려고한 시도였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에도 혁명을 계속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대중운동의 방식에 의해야한다는 점을 마오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훗발 '대재앙' 정도로만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사건은 사회주의 혁명 이후 계급투쟁이라는 문제를 결정적으로 제기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대중운동의 폭발은 마오에 대한 개인숭배를 경유해서 이루어졌다. 저자는 개인숭배는 양면적인 성격을 가진 현상으로, 한편으로 이것은 인민이 사회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에 대한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말한다. 개인숭배는 단순히 대중이 자기 위에 선 국가의 권위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지의 체현이자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여기는 한 인간의 최고권위에 자기(그리고 자기의 권력)를 완전히 예속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오숭배는 사회권력의 소외가 정치적 귄위에 대한 맹복적 숭배로 나타났던 역사적 현상들 중 가장 극단적인 예의 하나이다.)
 
그러나 문화혁명 기간에 개인숭배는 시민이 그들 위에 군립하는 관료기구를 공격하고 권위에 반기를 드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주요 도구가 되었다. 마오가 당을 경유하지 않고 대중과 직접 관계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대중의 진출을 위한 정치적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민주의적인 정치스타일이 대중의 진정한 해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대중의 행동을 촉발하는 계기는 될 수 있다고 해도 말이다.) 실재로 문화대혁명을 추진하던 홍위병, 활동가, 대중들은 마오와 당에게 모두 배신당하고 상하이 등에서 그들이 형성한 각 지역 코뮌은 모두 분쇄되거나 화석화된다.

 

중국혁명이 진행과정에서, 혁명 이후 체제에서 이러한 인민주의적인 정치동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좀 더 비판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농민이 압도적이었고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농촌이 급진화되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중국의 인민주의의 물질적 토대는 20세기초의 인민주의 보다는 19세기의 (미국이나 러시아의) 농민적 인민주의와 유사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 있다. ([인민주의 비판](공감/2005)을 참고)

 

계급투쟁의 물질적 토대

 

문화혁명의 과정이 마오주의의 주의주의적 경향과 맞물려, 물질적 토대의 변화와 결합되지 않은 주관주의적인 계급투쟁의 일면적 강조로 나가는 측면이 있었다는 비판이 있다.([사회주의의 이론.역사.현실]의 평가가 그렇다.) 물론 그러한 측면이 강하지만, 반드시 물질적 근거가 간과된 것으로만 평가하기는 힘들 것같다.

 

이러한 다양하게 제기된 '계급투쟁' 과정에서 생산력 증대라는 과제에서도 자본주의를 모방한 소련식의 산업화가 아니라 농촌에 기반한 대안적인 전략을 채택하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초기에 실시되었던 소련식의 경제개발 계획은 대약진운동 등이 정리된 이후에도 소련식의 중공업 일방 우선과 다른 방식의 경제계획이 입안되었다. 또한 농업 집단화와 농촌의 공업화 등에서도 소련의 경험과는 다른 실험이 이루어졌다.

 

생산력의 성격이라는 것이 계급투쟁과 분리되어 순전히 양으로 환산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의 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제기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도 이러한 계급투쟁의 성과를 생산관계에서 물질적으로 남기는 과정은 인민공사의 설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인민공사에 도입된 '공산주의' 요소

 

대약진 운동 기간 설립이 촉발된 인민공사에는 여러가지 '공산주의' 요소가 도입되었다. (공사=코뮌) 이는 매우 의식적인 작업이기도 했는데, 중국공산당이 단순히 협동농장을 생산력증대의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생산-생활 단위를 만드려고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농촌의 소공업을 통해 농업과 제조업을 결합하고, 교육과 산업활동을 결합하는 등 도시-농촌의 구별,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할 - 지적차이 감축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적차이의 모순 자체를 제거할 수 있는가는 문제가 있는데 이후 마오가 보여준 반지성주의와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오는 이후 당시의 제도 교육에 대한 불신 속에서, 청년들이 너무 책을 많이 보아서는 안된다는 등의 주장을 한다. '노동현장의 실천적 지식'을 일면적으로 강조할 경우 경험주의에 빠질 수 있으며 이에 근거하지 않는 과학들을 경시할 수 있다. 이는 지적차이를 감축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은 아니다.)

 

마오 이후, 중국에서의 계급투쟁

 

마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최고실력자가 된 덩샤오핑의 '사회주의 민주'에는 민주적 내용이나 사회주의적 내용도 없었다. 민주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생산품과 노동조건을 통제하는 수단을 가지는 것을 의미하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한 제도적 조건도 전혀 고민되지 않았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반적 이해(하지만 스탈린주의적 이해)처럼, 사회주의는 생산에 대한 국가통제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심지어 주요모순이 적대적 사회세력간의 모순이 아니라 중국의 '선진적 사회주의 제도'와 낙후된 생산력 사이에 모순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생산력을 사회주의 제도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다른 모근 것을 무시하고 생산력 발전만 추구하는 정책이 이후 지속된다. 심지어 농업집단화를 해체-후퇴하면서 사회발전 수준과 경제발전 수준사이의 모순이 어느정도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궤변도 등장한다. 사회주의 몰락과 포기로 인한 이데올로기 공백을 공산당 정권은 내셔널리즘과 애국주의로 매꾸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애국주의 열풍이 추동된다. 마오 이후에 이데올로기가 다시 강조된 셈이다.

 

그나마 혁명의 지향은 분명하게 가지고 있던 5.4운동 세대의 원로 공산주의자들이 사망하면서, 새로 등장한 공산당 지도자들은 대부분 당관료 출신의 인사들이다. 덩사오핑 이후의 실권자로 등장한 장쩌민은 사회주의가 21세기 말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결국 사회주의는 현재의 희망이나 행동과는 사실상 단절된 먼 미래의 일로 연기되고 사회주의는 결국 무의미한 수사가 되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들어, 공산당 간부가 앞장서서 자본가로 변신하고,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확대되었으며, 새롭고 거대한 노동자 계층이 형성되었다. 거대한 노동자층은 극단적인 빈곤에 시달리는 불안정노동자들이다. 실버가 [노동의 힘]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본이 갈등을 몰고 다니고, 자본의 이동에 따라 새로 형성되는 노동자 대중이 새로운 노동자운동을 만들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에서 새로운 노동자운동의 등장은 필연적일 것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사회주의의 전망은 지배정당이 공산당이 아니라 새로운 대중운동에서 시작될 것이다.

 

중국에서 새롭게 형성된 부르조아지도 정치적 변화의 주체가 될 수는 없다고 지적하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중국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현 자체가 당 관료로서 특권에서 가능했을 뿐더러 이들의 이해를 보장하는 것도 중국 국가이다. 따라서 이들이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한다고 해서 정치적으로도 그런 것은 아니며, 따라서 정치적 민주주의와 자유를 실현하는데 있어 혁명적 세력이 될 수는 없다. 계급들이 혁명적일 수 있는 상황은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라 정세와 계급역관계에 따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중국 사회주의의 진짜 근원은 먼 미래의 어느 시간에 이루어질 공산주의 제도를 실현하기 위한 경제적 성숙 속에서가 아니라 오늘날 바로 이 자리에서 공산당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투쟁 속에서 찾을 수 있다. .. 그것은 자본주의의 사회적 파괴에 반대하는 투쟁이 필연적으로 나타나면서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행위자는 프롤레타리아가 될 것이다. 독립적인 노조설립의 자유는 가장 치열한 정치적 쟁점이다.

 

평가를 위한 질문

 

마이스너는 마오주의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한다. 마오주의는 근대적 경제발전의 수단과 사회주의의 목적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한다는 딜레마와 정면대결한 이론이기는 했지만 대중민주주의가 사회주의 실현에 필요한 수단인 동시에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점은 간과했다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시기는 국가권력을 생산자들의 자치정부로 바꾸어가는 시기라는 점과 사회주의는 국가소유가 아니라 '연합된 생산자 소유'라는 점을 간과한 점에서 스탈린주의와 똑같은 한계를 마오도 보여주었다. 마오의 비-스탈린주의적 전략이 결국 스탈린주의와 같은 한계를 보여주고 같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 책을 보면서 마지막 의문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름대로 50~60년대 중국의 공산주의자들은 당시의 시대적 조건 하에서 '사력을 다해' 최선을 다 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를 새로운 지배국가로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혁명을 계속 진전시켜나가려고했으며 이행기 사회 자체에 공산주의 요소를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무엇인가? 스탈린주의와 구별되지 않는 결과를, 곧 이어 실용주의자들이 승리하고 자본주의로 회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마오주의와 중국의 공산주의자들도 넘어서지 못한 물질적 한계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사상이론적, 실천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 사회주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반성에서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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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환경지회, 다시 시작하는 싸움

지난 15일 칠곡군청 군수실 점거 농성 이후, 16일 강제해산 및 연행, 18일에는 대경공공서비스노조 위원장, 조직국장, 사무국장, 지회장 4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

 

힘든 상황이지만 다시 오히려 한번 투쟁의 결의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7일에는 APEC 반대투쟁을 위해 부산으로 가던 참가자들까지 결합한 집회가 칠곡군청 앞에서 다시 진행되었다. 아무리 짓밟아도 다시 투쟁한다는 결의다.

 

 

칠곡군청은, 대화는 커녕 '적극적인' 탄압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관변단체를 동원한 노조비방 유인물 10만장(칠곡 군민이 11만이라고 한다)을 살포하기도 했다. 예산을 모두 소진하자 이제는 군청에 플랭카드로 대응하고 있다.

 

"직장폐쇄로 경북위생사가 해고한 노조원은 군민에게 피해 주는 시위행위 즉각 중단하라"

"'군청은 미화원 투쟁을 지지합니다'라는 말이 웬말이냐 공무원은 분노한다 즉각 사죄하라"

등등, 웃기지도 않는다. 한심한 작자들이다. (칠곡군청에는 전국공무원노조 지부도 없다. 독자적으로 '칠곡군공무원노조'라는 것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모양이다.)

 

 

집회를 마치고, 연행되었던 40여명 중 대경공공서비스노조 4명을 제외한 사람들이 석방되었다. 집회 후 석방된 동지들을 기다리다가 환영하는 정리집회를 진행하는 모습. 특히 정리해고/폐업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국일여객 동지들이 대거 연행되었는데, 자신들의 투쟁일정에도 불구하고 긴박한 연대투쟁을 우선해야한다는 결의에서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멋진 동지들이다!

4명의 동지가 없는 것이 무척 아쉬운 마무리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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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위기에 대해서 토론하다보니..

얼마전 한 수련회에서 연맹을 비롯한 노조운동의 위기를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인해서 활동가들이 의기소침, 사기저하를 겪고 있는 요즘에, 이에 대한 진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논의를 하지는 못했지만, 몇가지 입장의 차이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노조운동의 위기와 그 원인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몇가지 유형.

 

* 위기의 원인은 집행부(혹은 활동가)의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입장

 

- 정파적 입장과 처한 위치에 따라 몇 가지 판본이 있다.

- (우파) 임원급 인사는 (좌파) 사무처 실무자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좌파) 사무처 실무자는 (중앙파나 우파) 임원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고 말한다.

-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사무처 실무자가 다른 사무처 실무자가 헌신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 혹은 그밖에 이런저런 조합에 따라 다양한 옵션의 비난이 가능하다. 모두 '열심히'만 더 하면 위기가 해결된다는 인식들이다.

 

* 위기의 원인은 정규직을 중심으로 하는 노조운동의 현실에 있다는 입장

 

- 보다 위기의 근원에 다가가는 인식이기는 하지만, 역시 몇가지 판본이 있다. 주로 '대책' 수준에서,

- 그렇기 때문에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운동의 방점을 극적으로 전환하고 활로를 모색해야한다는 입장과

- 비정규직 투쟁으로 노조운동이 바뀌는데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그 기간 안에 노조운동은 망할 수밖에 없으므로, 정파 간 '대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있다.

 

* 그 밖에, '투쟁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위기라는 입장으로

 

- 투쟁의 내용은 차치하고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투쟁을 한번 조직해보자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투쟁'은 있으나 '내용'은 나중에 생각해보자는 투쟁만능론(?)에 가까운 입장.

 

몇시간 동안의 토론에서 나타난 것은 대략 이 정도의 입장들과 논쟁지형이다. 여러가지 방향에서 위의 지형에서 나타난 각각의 입장에 대한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이 토론 과정에서 좌우파 모두를 막론하고 활동가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식의 의지주의적인 입장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보고 놀랐다. 또한 이러한 논리 속에서 정파 간 상호 비난의 근거가 된다는 점도 마찬가지다.(이로부터 좌우파 기회주의가 여러가지 판본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에서, 위기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면서도 대안에서 '대연정'을 제시하는 방식의 결론도 생소한 것이었다.

 

위기의 원인에 대한 인식이 다양한 것만큼, 결론도 다양하다. 다만, 나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위기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인식한다기 보다는 피상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많았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장기간, 활동가들 사이에 토론은 물론, 이론가들의 연구 성과와도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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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위탁에 반대하는 칠곡전투, 옥천전투

지난 15일, 비정규권리보장입법 쟁취를 위한 전비연 ‘전국순회투쟁’ 둘째날,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와 순회투쟁단과 대경지역 연대대오는100여명은 칠곡군수실 점거했다. 이 투쟁을 통해서 군수면담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만, 불과 24시간도 안되어 다음날 오후 4시에 경찰의 침탈로 전원연행되었다. 연행자들은 하루가 지난 오늘(17일) 오후 7시 이후부터 풀려나오고 있지만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위원장, 사무국장 등 핵심간부들을 중심으로 아직 석방되지 않고 있다.

 

* 매일노동뉴스 관련 기사

칠곡군수실 점거 농성자 60여명 전원 연행 

순회투쟁단·대경 노동자 100여명 칠곡군수실 점거 

 

이번 투쟁은 칠곡군청의 민간위탁으로 인한 업체의 비리와 노동탄압으로 대경공공서비스노조 칠곡환경지회 조합원 12명이 전원 해고되면서 시작되었다. (관련된 내용은 "경북 칠곡군 해고 환경미화원 12명의 투쟁"참고) 공공기관의 민간위탁은 제조업에서 하청과 같이 간접고용을 통해 고용을 유연화하고 노사관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비정규직 양산의 방법이다.

 

▲ 15일 오후 5시30분. 칠곡군청 앞 연대집회를 마친 순회투쟁단과 대구경북지역 노동자들이 칠곡군청 현관에서 진입하는 과정 ⓒ 매일노동뉴스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확산의 주요한 방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변형된 사유화 방식인 '민간위탁'에 반대하고, '민간위탁'이라는 간접고용의 '원청'인 칠곡군청에 원청 직접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이다. 그런 점에서 주로 제조업 대공장의 사내하청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간접고용 노동자 투쟁에 공공부문도 함께 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산, 민간위탁이라는 변형된 사유화 방식의 문제를 신자유주의적인 NGO들은 인식하지 못하는데 아래에 한 사례가 있다.

 

한편, 유사한 투쟁이 다른 곳에서도 많이 전개되고 있다. 경기도지역에서는 경기도노조 안양분회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관련기사[매일노동뉴스] : 경기도노조 안양지부, 31일 파업 15일째) 한편, 최근에는 충북에 옥천환경관리노조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옥천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투쟁과 신자유주의 NGO

 

옥천에서는 이미 2000년에 생활쓰레기 처리 업무에 대해 민간위탁을 실시하여왔다. 그런데 올해를 마지막으로 기존 업체와의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경쟁입찰'이라는 명목으로 기존의 작업구역을 인위적으로 분할해 2개로 나누고, 각각 새로운 업체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위탁업체가 바뀌면서 노동자들의 고용은 자동적으로 해지되는데, 군청은 이에 대해서 고용보장은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뿐만 아니라 '제한최저가 낙찰제'라는 것을 도입하여 기존의 낙찰가의 72~77%수준에서 가장 낮은 금액을 써낸 업체를 선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경우 낙찰가의 저하와 동시에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군청은 이나마도 '낙찰된 금액에 비례하여 90%의 인건비 보장'이라는 것으로 사실상 현행 임금의 60%수준으로 저하할 것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72~77%x 90%=약 65%)

 

말하자면 고용도 보장할 수 없고, 운이 좋아서 새로운 업체에 고용되더라도 임금을 보장할 수 없다는 논리다. 환경부 등은 '투명성'을 명분으로 '경쟁입찰'을 활성화하고 '독점체제'를 '경쟁체제'로 변화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는 데 이것이 결국 입찰가 하락으로 인한 임금삭감, 작업구역 분할과 업체 교체로 인한 고용불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최근 진행한 환경부 담당부서와의 면담에서 이들은 고용보장, 임금보장은 '노동문제'이기 때문에 노동부에 가야할 일이지 자신들은 어떤 지침을 내더라도 노동문제와는 관계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였다. 관료들의 전형적인 책임 떠넘기기다. 이러고도 이들은 동일한 지침에 바로 다음 페이지에 '노동조합의 파업등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복수 업체 운영'을 운운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짜고치는 고스톱으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고 임금삭감,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옥천환경관리노조는 17일 현재 위원장이 10일째 단식 투쟁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도 집회 등을 진행하면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투쟁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한달 정도 투쟁이 사실상 중지되었었다.

 

한달 쯤 전에, 옥천지역의 한 NGO 지역 명명가가 투쟁을 준비하고 있는 옥천환경관리노조에 나타났다. 노조에 대해서 이런저런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던 이 사람은, 투쟁을 해보았자 현재의 노조 조직으로는 승산이 없으니 차라리 '군민주' 방식으로 업체를 설립해서 경쟁입찰에 참여하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조합원들은 투쟁을 힘들게 하지 않고서도 고용을 보장받고, 공동으로 업체를 운영할 수도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그리고 이런 '개혁성향의' NGO 활동가들의 말빨은 어눌한 환경미화원들을 솔깃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노무현처럼 '말'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연맹과 지역본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조합원 모금으로 자본금을 마련하고 입찰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군청이 낙찰가를 70%대에서 설정하고 고용보장도 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확인했을 뿐이다. 노조가 낮은 낙찰가를 써낼 경우, 임금삭감을 스스로 동의하는 것이 되고, 원칙적으로 100%를 써낼 경우 응찰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결국 노조는 투쟁을 다시 조직하게 된다.

 

이 과정에 개입했던 이 NGO 인사는 이른바 '안티조선 옥천전투'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이 인사는 대화과정에서 '민간위탁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민간 참여가 확대되는 것으로 올바르다고 본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관점이 있었기 때문에 민간위탁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그것을 군민주 등의 방식으로 '민주적 운영'으로 바꿀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몇주 만에 그 허구성이 현실에 드러나고 말았다.

 

'안티조선'운동은 유명한 운동이지만, 신자유주의 개혁엘리트들을 엄호하기 위해서 다른 정치분파를 타격하는 운동으로서 한계가 분명하다. 이 운동을 주도했던 NGO와 한겨레 신문 등은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을 충실히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 어떤 것인지,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 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 이번 옥천환경관리노조 투쟁과 관련된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미화원 민간위탁 등을 주도하고 있는 것도 열우당 출신의 군수이고, 열우당 국회의원이 있는 지역에서, 신자유주의 NGO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뻔한 것이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이제 옥천에서 진정으로 의미있는 '옥천전투'는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시작될 것이다. 칠곡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칠곡에서 조합원들은 척박한 한나라당 아성인 칠곡 땅에 민주노조의깃발을 반드시 꽂겠다는 결의를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신자유주의자들과 싸우는 척하는 한심한 '게임'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자들과 노동자, 공공성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진정한 전투가 이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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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은 무엇이 두려운지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여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그 지남철은
자기에게 지니워진 사명을 완수하려는 意思를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며 바늘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어도 좋다. 만일 그 바늘 끝이
불안스러워보이는 전율을 멈추고 어느 한쪽에
고정될 때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이미 지남철이 아니기 때문이다.

 

- 신영복, [나무야나무야] 중에서

 

▽ 그림은 '더불어숲'(http://www.shinyoungbok.pe.kr)홈페이지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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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공서비스노조 운동의 몇가지 고민, 쟁점들

[속보]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전국순회투쟁단,

민간위탁 반대 원직복직 투쟁 전개하는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칠곡환경지회 투쟁에 연대하며

11월15일 오후 6시경 칠곡군수실 진입하여 연좌농성 돌입!

=> 관련 내용 보기 [전비연 홈페이지 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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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가 올해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했다. (http://blog.jinbo.net/rudnf/?pid=37) 심사위원단은 "조직성에 있어서 모범을 보여주었으며 비정규 8개 노조가 연합하면서 책임감 있게 투쟁해 나간 점 등을 들어서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를 수상 조직으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많은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만 각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출범부터 함께 활동한 한 활동가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이러한 결정은 '조직을 불렸다'는 점에서만이 아니라 지역을 근거로 투쟁에서 연대하고, 조직을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평가받았을 것이다.(조직을 크게 불린 것도 사실인데, 노조 건설 이후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를 받아들이고,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새로 조직된 사업장의 투쟁을 엄호하고 유지시켜줄 수 있는 조직적 기반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역일반노조운동과 많은 부분 유사하지만 또한 독자적인 고민들을 가지고 있다.

 

지역공공서비스노조는 공공연맹의 미조직비정규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부터 조직화작업을 시작해서, 지금은 2005년 초부터 대구경북, 광주전남, 충북에 조직되어있고, 전북지역평등노조가 취지에 동감하고 함께 활동하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기존에 존재하던 중소영세비정규직노조가 통합하는 방식으로 출범했고, 출범을 전후해서 새로 조합원들이 가입하기 시작했다.

 

△ 전태일노동상 수상 모습 (참세상 사진)

 



지역을 근거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비정규직노동자를 하나의 조직으로 묶고 단결해서 투쟁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대공장노조만이 아니라 소규모의 노조, 비정규직 노조까지도 사업장 이기주의에 갇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를 극복하면서 지역차원의 운동을 복원하기 위한 시도다.

 

이 운동이 조직되는 과정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지속적으로 이 운동의 의의를 폄하하는 개인/세력이 존재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다. 혹은 마땅히 이 운동을 지지하고 엄호해야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은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주로 헌신하고자하는 '신규조직화'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든 기존 조직들의 '조직구획'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민감한 정치적 쟁점이 된다는 것 자체가 노조를 '자기 나와바리' 정도로 생각하는, 천박한 의미에서 '정치적인' 사고방식이 노조운동에 팽배해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초기에는 전국단위 소산별노조와의 조직구획의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최근에는 이른바 '전국지자체일반노조' 조직화 시도와 이에 대한 대항조직화 시도 등 속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이러한 파괴적인 조직경쟁 대신에 지역에서부터 비정규직조직화, 투쟁의 기반을 만들어가는 시도로서 이 활동은 의미가 있다. 심지어는 공공연맹 중집은 물론 상집에서도 여러가지 이견이 존재하지만, 앞으로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 조직화, 산별노조 건설 등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직 개인적인 수준에서이기는 하지만, 이 운동을 함께 해오면서 느낀 점들이 많다. 아래의 시사점들은 지역별로 편차가 있고, 주체들마다 고민의 지점이 다른 점도 있지만, 운동주체들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문제의식들이다.

 

지역을 기반으로 미조직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한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 지역일반노조의 문제의식을 계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역별로 해당 지역의 지역일반노조와 조직경쟁과 갈등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운동의 주체들은 몇가지 점에서 문제의식을 달리한다.

 

우선 조직운영에 있어서, 이미 조직된 사업장에 대한 안정적인 일상활동과 활동가 양성을 더 중요시한다. 이는 일부 지역노조의 '철새형 조직화 방식'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는데, 일단 조직화를 진행하고 당면한 사안을 해결한 뒤, 다른 사업장으로 활동가 역량을 옮겨가는 식의 활동을 지양하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일상활동을 강화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더 풍부하게 하려고 한다. 이러한 일상활동은 '공부방/주간포럼'같은 일상적인 교육사업이나 정치적, 사회운동적 과제로 채우려고 노력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더 중요한 점이 여기서 연결되는데, 사회운동적 과제를 일상활동의 주요한 부분으로 만들어가려고 한다는 점이다. 이는 일상활동의 측면보다 더 중요하게 주요 조직대상이 공공부문이라는 점에서, 공공성이라는 쟁점으로 사회운동과 연결고리를 찾기 때문에 가능하다.

 

예를 들어 (원래는 지자체 업무인) 재활용품처리 업무를 하는 민간위탁된 사업장의 조합원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복합적인 투쟁쟁점을 가지게 된다. 공공업무의 민간위탁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변형된 사유화와 간접고용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의 노동보건 단체와 연대하기도 하며 환경단체와 연대 하기도 한다.(민간위탁은 공공서비스에 이윤논리를 강화하여 노동강도를 크게 높이고, 이는 곧장 산재와 공공서비스의 부실화로 여결된다. 재활용품의 부실한 처리는 환경문제와 직결된다.) 사회복지관, 장애인복지관의 경우 복지관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투쟁, 장애인단체와의 연대 투쟁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공공성을 쟁점으로 지역의 사회운동과 연대를 조직하는 데 있어 공공서비스노조는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점은 현재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산별노조가 지역을 중심으로 건설될 때, 사업장 간 연대는 물론이려니와 공공성이라는 쟁점으로 지역의 사회운동과 연대할 수 있다는 점, 노조 스스로 사회운동적 쟁점을 제기하고 투쟁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산별노조 건설이 어떠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야할 것인지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가능성과 함께 여러가지 난점과 쟁점들이 존재한다.

 

우선, 지역일반노조가 가지는 조직화 상의 난점, 운영 상의 난점을 그대로 갖고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조직화가 주로 신규조직상담을 통해 이루어지고, 전략적인 부문에 대한 의식적인 조직화 노력을 기울이기 힘든 조건이다. 신규조직상담을 통해 조직되는 경우 대부분 투쟁사안이 당면한 경우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의 상근역량이 전적으로 투여되다보면 전략부문에 대한 조직화가 쉽지 않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마치 '해결사'와 같은 역할을 요구받게 되는데 이는 활동가의 역할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조합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이른바 전략부문이란 무엇인가? 여기에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조직하려고 하는 조직대상의 두가지 특성과 관련된 문제가 존재한다. 지역공공서비스노조는 (1) 지자체를 상대로 투쟁전선을 형성할 수 있는 지자체 직간접 고용노동자와 (2) 지역을 근거로 조직되어야하는 지역의 공공부문 중소영세비정규직노동자를 조직하고자한다.(소유관계는 민간이라도 서비스의 성격이 공공적인 경우를 포함) 전자는 주로 지자체 직접고용 상용직, 일용직 노동자와 민간위탁 환경미화원, 사회복지기관 등이 있다. 후자의 경우는 통신산업비정규직, 시설관리, 공기업 하청사업장 등이 있다.

 

애초에 조직할 때부터 지자체 직간접고용 노동자를 전략적으로 조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특히 지자체 직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를 통해서는 지자체를 교섭에 끌어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했는데, 지자체를 상대로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명확히하고 공공서비스부문의 '원천사용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교섭을 성사시키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전략부문에 대한 조직화가 의식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조건이 되었다. 이는 노조가 지자체를 상대로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하나하나의 단위사업장의 투쟁에 개별적으로 집중하도록 만든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업장별 운영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공동의 투쟁과제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는 서로 연동되는 문제인데, 사업장별 운영은 매번 현안을 갖고 처음 조직되는 사업장에서, 해당 사업장의 현안 해결을 위해서 강제된다. 또 한편,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공통이 요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조건--이는 요구를 정식화할 수 없는 한계이면서 동시에 지자체 직간접 고용 노동자를 충분히 조직하지 못한 한계--에 따라 요구도 사업장별로, 이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도 사업장별로(비록 끈끈한 연대투쟁이 존재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사업장별 요구), 결국 사업장별 운영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사업장별 운영구조의 고착화는 기업별노조와 같은 폐단을 낳게 되는데, 자기 사업장 이기주의가 일정한 시점부터 작동하기 시작하고 실리주의, 투쟁회피 경향이 발생한다.

(나는 사업장별 조직, 사업장별 요구를 무조건 터부시하는 산별만능론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은 부차화되어야하며, 지역차원에서 공동의 요구가 수립되고 그것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목적한대로 지자체를 상대로 하는 공동이 요구를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차원에서  묶어내고 이를 사업장별 요구에 앞서 노조의 가장 중요하고 현실적인 요구로 만들어내는 투쟁이 조직되어야한다. 예를 들어 지자체의 직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지역협약을 쟁취하거나, 이러한 요구를 지자체 조례 형태로 요구할 수도 있다.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가 민주노동당 서울시당과 함게 추진하는 지역생활임금투쟁도 예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쟁점을 중심으로 투쟁하고 실현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지역노조로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지역산별노조'의 위상에 걸맞게 운영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지자체 직간접고용노동자를 보다 집중적으로, 전략적으로 조직해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타당하다. 그러나,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1), (2) 두 종류의 공공부문 비정규직노동자 모두를 조직화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인정해야한다. 전략적인 부문의 조직화를 할 수 있는가의 부분은 매우 중요하지만 당장 이것을 '요구'한다고 가능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그것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되어야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공공연맹 등 상급단체의 물질적 지원을 통해서 활동가를 더 배치하고 전략적인 조직화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나는 산별노조가 필요하다거나 한다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인력과 예산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중에도 편차가 있다면, 잘 되는 지역은 해당 지역의 연맹 지역본부가 탄탄한 경우이다. 연맹 지역본부의 지원과 엄호 속에서 조직이 활성화되고, 그 어떤 대공장 사업장보다 연맹 지역본부의 핵심사업장이 된다. 반대로 연맹 지역본부가 아예 없는 지역에 건설된 충북의 경우 큰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그러나 당장은 민주노총이 50억 기금 모금도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고, 비대위는 책임있게 사업을 집행하려 하지 않는 조건이다. 결국, 관건은 현재 조직된 조합원 중에 활동가를 어떻게 훈련하고 형성할 수 있는가이다. 현재 있는 조합원을 교육하고 투쟁속에서 단련하는 과정을 통해서 활동가를 조직해야한다. 그래야 이 활동가들이 신규 조직화 사업을 하거나 혹은 지금 있는 조직활동가들이 '조직관리' 대신에 전략적인 부문에 조직화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운동의 운명은 여러 측면에서 열려있다. 앞서 언급한 장점들(혹은 가능성들)을 생각해보자.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장을 넘어선 연대투쟁을 강화하고, 지자체를 상대로 공동의 요구를 모아내며, 이를 사회운동적 쟁점으로, 사회운동들과 연대하여 투쟁할 수 있다는 장점을 활성화시켜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이 일상활동을 통해서 현장에서 활동가를 지속적으로 양성하고 전략적인 부분에 조직화를 시작할 수 있어야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조직을 확대하고 아직 '기업별 지회'의 연합체 정도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구조를 바꾸어내야할 과제가 있다.

 

이를 위해서 공공연맹 차원에서도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조직발전 전망을 지원하고 이 운동이 전국화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 현재 지역별로 조직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이미 전국단위(소산별노조)로 조직된 비정규직노조, 지자체관련 중소영세사업장노조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도 전국적인 조직형태를 갖추어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과 통합하고, 전국과 지역에서 운동역량을 상호 강화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직경쟁 속에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운동이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현재 진행되는 이런저런 산별노조 논란 속에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아예 설 자리가 없도록 만드는 주장도 나타나고 현실화되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선배활동가는 지역공공서비스노조가 애초에 그리려고 했던 '용'은 되지 않았지만, '뱀'이 된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된 셈이라고 말했다. 공감한다. 애초에는 '공공산별노조'의 '선도조직'(혹은 '실험조직'?)으로 사고된 측면이 강했던 지역공공서비스노조 운동이 오히려 다른 측면에서 고유한 자기 운동의 의의를 형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자기 스스로 형성해가는 운동의 의의를 얼마나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 활동가들과 조직 스스로의 역량에 성패가 달려있다. 그 '성패'는 단지 노조의 성패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부문 비정규직 운동,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자운동 자체의 성패와 연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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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인터뷰>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정병환 위원장

축하축하! 매일노동뉴스에서 펌.

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58357

 

<수상자 인터뷰>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정병환 위원장
"어려운 사람들 절박함이 조직화로 이어져"
 
 ⓒ 매일노동뉴스
 
“없는 사람들 사정이야 어려운 사람이 잘 알지요.” 14회 전태일노동상을 수상한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의 정병환 위원장은 설립된 지 8개월여에 불과한 신생노조가 전국노동자들의 모범으로 선정된 저력에는 ‘동변상련’의 마음가짐이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홀아비 심정 과부가 안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영세 중소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끼리 의지하고 힘을 합치다 보니 설립 당시보다 조합원 수가 4배로 늘었다.


12일 전태일노동상 수상식 직후 정병환 위원장을 만나 수상소감과 비정규노동자 조직화의 비결,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수상 소감을 밝혀달라.
“죽어가는 세상을 다시 살린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열심히 투쟁하라는 의미로 알고 받았다. 올바른 투쟁, 힘 되는 투쟁에 앞장서겠다.”


- 신생노조라고 들었다. 어떠한 노동자들이 가입해 있나.
“지방자치단체 소속 환경미화원, 대구지하철 비정규직, 장애인복지관 생활지도사, 놀이공원(우방랜드) 비정규직 등이 가입돼 있다. 쉽게 말해 공공부분 지역산별노조라고 보면 된다.”


- 지난 3월 설립됐다. 설립 취지를 알고 싶다.
“지자체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영세사업장 비정규직들이다. 나 역시 환경미화원 출신이다. 잘 알다시피 비정규직일 경우 노조 설립이 매우 힘들다. 또, 노조를 만들어도 규모가 작다보니 제대로 지켜내기가 힘들다. 하지만 지역산별노조는 다르다. 노조를 만들었더니 스스로 노조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역의 미조직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결집하는데 산별노조의 강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


- 설립초기 100명의 조합원이 현재 400여명으로 증가했다. 비결은.
“없는 사람들 처지는 어려운 사람이 잘 안다. 우선은 ‘없는 사람들도 좀 살아보자’는 절박함이 작용했고, 이러한 절박함이 투쟁과 연대의 의지로 확산됐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 사이의 의지하고 힘을 보태려는 노력이 노조 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 향후 계획은.
“우리는 현재 지역산별노조를 튼튼히 세워내는 과정에 있다. 산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년에는 지역의 단일한 요구안을 만들어 공동투쟁을 전개할 계획이다. 쉽지 않겠지만 열심히 싸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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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대회 전야제

노동자 대회 전야제를 방금 다녀왔다. 강바람 부는 고수부지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전야제는, 애처 민주노총의 위기를 말하지 않고 총파업 투쟁만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 자체가 이미 위기의 심각한 한 양상이다.

 

이번에도 문화활동가들이 민주노총의 공식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별도의 판을 진행했다. 그리고 '투쟁과 혁신을 위한 현장활동가 대회'라는 별도의 행사가 전야제 본 행사가 끝난 이후에 진행되었다. 지난 민주노총 사무총국 15인의 집단사직 이후 열린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토론회 후속사업이다.

 

이제 몇시간 후면 민주노총 노동자대회 본 집회가 있기 때문에 짧게 오늘의 인상만 말하자. 뭔가 말해야할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느낌, 화려한 문화공연 속에서도 뭔가 어색한 침묵같은 것이 느껴졌다. 민주노총 전야제가 그런 것은 물론 이려니와 '현장활동가 대회'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정작 현재의 위기의 핵심을 짚어내고, 비정규직 투쟁을 위해서 어떤 실천이 핵심인가를 짚어내준 발언자는 한명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이다. 활동가들의 지혜와 결의를 모으는 장이 되지 못했다.

 

오늘 전야제에서 그나마 의미있는 일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비연 구권서 의장의 활동가 대회 발언, 또 하나는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의 전태일 노동상 수상이다.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의 수상이 갖는 의미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작성할 것이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지역적 단결, 불안정노동자 조직화를 중심으로 하는 운동이 현재 진행되는 이른바 '산별운동'을 돌아볼 계기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구권서 의장은 발언에서, 이번 투쟁이 힘든 것을 솔직히 인정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자고, 이를 통해서 법안의 통과여부가 투쟁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어떻게 깨지고 운동의 일보전진을 위한 실천을 조직하느냐가 문제일 것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투쟁하기 위해서 지역순회 투쟁, 실천단 조직화, 전비연의 선도적 투쟁 등을 조직하고 있으며, 함께 조직하자고 제안했다.

 

구권서 의장은, 마치 법안 내용 하나하나, 실리적 성과를 중시하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내부)정치적 성과를 노릴 뿐인 상층협상과는 달리, 노동자 대중 투쟁을 통해서 어떤 계급정치상의 효과를 얻어야할 것인지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하반기 투쟁이 정말로 최악의 조건에서 최악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투쟁해야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따라서 온갖 비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투쟁해야하는 이유를 구권서 의장의 발언을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운 한강둔치 강바람 속에서 그것을 얻은 셈이다.

 

 

▽ 아래는 전야제 본행사 이후 열린 '현장활동가대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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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노무현식 민주주의 실상 보여준 방폐장 주민투표&quot;

경주가 핵폐기장 부지로 최종 선정되었다.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에 대한 독서일기에서, 부안핵폐기장 반대 투쟁의 가장 큰 의미 중에 하나는 민주주의투쟁이었다는 말을 했다. 부안 주민대중들은 자신의 민주적 권리가 유린되는 것에 분노하고 격렬하게 투쟁했다. 그 결과 부안의 투쟁과정에서 형성된 대중의 공동체(저자 고길섶은 '절대공동체'라는, 518 광주에서 연유한 개념을 사용한다)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번에는 반대로, 경주 등 핵폐기장 투표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주의가 철저히 유린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 하, 포퓰리즘 정치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의 실상에 대해서 비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딱 맞는 글이 프레시안에 실렸다.

 

[프레시안] "노무현식 민주주의 실상 보여준 방폐장 주민투표"  
[긴급 기고] 방폐장 주민투표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보다 
 
민주주의로 가장한 투표행위가 철저하게 대중동원의 기제로 활용되었다. 대중의 자기결정권에 기반한 정치라는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이번 경우에 정반대로 도치되었다. 노무현/열우당 등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그들은 다양한 정치행위에서 바로 이런 식의 기만을 행해왔던 것이다. 기표와 기의가 철저히 분리되고 대중동원에 유리한 형태로 언제나 편의적으로 왜곡되었다.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공학'이 개입되어왔다.

 

이번 핵폐기장 부지 선정 투표는 그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폭로하였다. 이번 투표를 계기로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가 다시 시작되어야한다. 인민주의적인 대중동원의 기재로 활용되는 그들의 '민주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 '참여민주주의'의 참모습을 드러내고, 비판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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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


부안 끝나지 않은 노래
고길섶 지음 / 앨피

 

 

부안 이후, 방폐장 선정을 위한 주민 투표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곳에서 주민투표가 진행된다. 금권과 탈법이 난무하고, 주민들에 대한 기만이 판치고 있다. 핵폐기장 유치가 거대한 지역이권 사업이 되어 한수원과 지자체의 돈놀음에 민주주의는 온데간데 없다. 사회단체들은 투표의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프레시안]"방폐장투표 강행시 '원천무효'행동에 나설것") 이런 상황에서 부안투쟁을 다룬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펴는 순간부터 내내 진짜 민주주의가 투쟁 속에서 살아나는 모습에, 책장 곳곳 글과 사진에서 눈시울이 불어지고 코끝이 찡하다. 파업배낭같은 '핵폐기장보따리'를 메고 추운 아스팔트 반핵광장에서 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라, 주민들의 투쟁은 하나하나가 진심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며칠후 방폐장 주민투표가 걱정되면서도 책을 읽는 내내 이 감동들은 어쩔 수가 없다.



문화평론가로 잘 알려져있는 고길섶은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고향인 부안에서 일생일대의 행운을 얻었다. 대중이 스스로 주체가 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실현해가는 과정에 직접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혁명을 경험했던 것이다. 고길섶이 부안에서 투쟁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안을 밖에서 지켜보았던 우리같은 독자들에게도 행운인데, 덕분에 부안투쟁을 보다 잘 정리된 형태로 다시 돌아보고 그 의미를 더 풍부하게 고민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안투쟁을 해석하는 저자의 견해에 모두 동의하든, 일부만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간에 말이다. (사실 나는 고길섶의 자율주의, 들뢰즈주의의 입장에는 별로 동의하지 못한다.)

 

저자는 부안항쟁을 통해서 부안은 반핵과 민주주의 투쟁의 역사적 장소로 출현하였다고 말한다. 19세기 말의 고부, 20세기 말의 광주에 이어서 21세기 초의 부안. 대중이 봉기하였고, 절대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민주주의가 전면화된 저항의 공간.

 

정세적으로, 부안항쟁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배제된 지역의 엘리트가 대중을 미혹하는 지역화된 발전주의의 미망, 에너지 체계의 모순, 지역과 중앙에서의 인민주의적 정치, 이들이 작동하기 위한 전제로서 민주주의의 파괴에 저항하였다. 이러한 모순들은 가히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 '반주변의 주변'지역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모순을 망라한 것이다.

 

소외된 주변지역으로서 전북 발전주의의 산물인 새만금간척사업과 영광원전 사업으로 인해 어장이 파괴되고 피폐해진 위도에, 핵쓰레기장 유치가 현금 보장을 쥐어줄 것이라고 속였던 것이다. 이래저래 생존권을 파괴하고 다시 그런 상황을 이용해 핵폐기장을 강요하는 황당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부안항쟁은 특히 김종규 부안군수의 반민주적인 폭거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단순히 반핵만으로는 이렇게 떨쳐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주민들의 손에 선출되었으면서도 주민들과 정반대의 의사 결정을 폭력적으로 내리는 군수는 주민들의 투쟁이 민주주의 투쟁이 되도록 했다. 대의제의 모순이 폭발하였고, 대중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요구로 나섰다. 그 일환으로 2.14 주민투표가 진행되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민주적인 행위들은 대중들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가 된 각종 투쟁이었다. 삭발, 촛불집회, 해상시위, 고속도로 점거, 삼보일배, 수업거부 등 주민 모두가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에 참여했다. 놀라운 장면들. 주민들은 어디서 심오하게 배운적없는 민주주의를 스스로 실현해갔다. 그것도 자동적으로, 급속하게! 대중의 민주주의적 역능을 이렇게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많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할 때 보이는 모습과도 같지만 대중은 그것보다 훨씬 더 전면적이고 더 자율적이었다.

 

김종규 군수는 꼬마 노무현이라고 할만하다. 주민들을 직접 상대하면서 당선된 것도 그렇고, 직접적으로는 노무현이 총애한 김두관 행자부 장관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러한 정치스타일은 인민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하 정치이념의 위기를 반영하는 퇴행적인 정치스타일. 부안은 그것이 얼마나 반민주적인지, 그리고 대중들의 민주주의 투쟁이 그것의 허구성을 얼마나 신속하게 폭로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노무현은 민주주의 투쟁의 시기는 지났다는 헛소리를 부안에 대한 탄압으로 몸소 실천했다. 경철계엄이라고 불린 부안의 2003년말 상황은, 단지 수사적인 비유가 아니라 그 폭력의 강도에서 볼 때 직접적인 살인만 피했다 뿐이지 군대의 계엄과 다를 바가 하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창집)가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화'(최원)이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안항쟁은 '민주주의의 이후의 민주화'가 심지어 신자유주의 하에서 배제된 지역에서조차 대중 속에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만 고길섶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도식을 활용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논리적 모순으로 보인다.)

 

고길섭은 또한 부안의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가 아닌 '자치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것은 근대정치이념으로서의 대의민주주의 보완물, 보충에 불과한 '참여'가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통치한다는 점에서 '자치'라는 것이다. 그것은 고길섶이 부안을 일컬어 '코뮌'이라고 했던 것처럼, 대중이 자기 스스로를 통치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적극적인 행위다. '참여민주주의'를 말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NGO를 동원, '참여'시키면서 통치를 정당화하려 할 때, 사회운동이 가야할 방향이 어디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안항쟁은, 신자유주의자들이 '민주화 세력' 운운하면서 대중을 동원하는 인민주의적 정치스타일은 이러한 대중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고길섶은 부안항쟁이 여성들의 정치적 진출이 특징적이었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가부장적 사회의 억압구조에서 해방되는 계기를 포착했다는 점, 어느 주체들보다 적극적으로 생명을 지키는 운동에 강렬하게 나섰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여성들이 저항 정치의 과정에서도 오히려 수동화되는 장면들을 자주 목격했던 상황에서 이례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투쟁이 생명과 환경을 지키는 투쟁이라는 점, 민주주의 투쟁으로서 대중들 안에서도 민주적 관계를 촉발시켰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의미를 인식할 수 있다.

 

여성들만이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들도 수업거부, 대안수업, 촛불집회, 문화행사, 삼보일배 등을 통해서 스스로 정치적으로 발언했다. 수업거부의 결정과정에서 자기 의사를 말하고, 각종 투쟁과정에서 스스로의 입으로 누가 결정해준 것이 아닌 바로 자신의 입장을 발언하며, '모의투표' 형식이기는 하기만 스스로 투표를 조직하기도 했다. 근대의 인구관리에서 무능력자로 관리의 대상이었던 어린이, 청소년들의 이러한 정치적 성숙은 그들을 과소인간을 보는 것이 부당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준다.

 

부안주민들은 투쟁과정에서 부안에만 핵이 없어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핵이 사라져야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투쟁의 과정에서 스스로를 성찰한 결과다. 그것은 투쟁이 과정에서 환경운동, 인권운동 등 사회운동들과 대화하고 서로를 교육한 결과이기도 하다. 매일 집회에서 사회운동가, 지식인들의 강연이 진행되었다. 고길섶은 그것은 강사가 대중을 교육하는 과정이기도 했고 상호교통을 통해서 강사가 교육받는 과정이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아마도 우리가 만들어가야한 대안적 대중교육은 부안의 집회에서 보여진 장면과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

 

고길섶은 마지막으로 부안항쟁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그것이 진정으로 주민들의 민주적 의지를 결집하는 성과를 남기지 못한 이유로 대책위의 패권주의와 독단을 들고 있다. 익히 노동운동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그러한 '운동권력'들이 거기에도 있었나보다. 전북 지역동지들에게 직접 들어보아도, 부안군농민회 주류 등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사람들로서, 노무현 정권의 반민주적 폭거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우선시하고 일부는 선거 때도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등, 부안항쟁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에 동원되는 NGO와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대중의 투쟁 성과를 물질적 성과로 남기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다.

 

이제 내일이면 각 지역에서 방폐장 주민투표가 부안 못지않게 기만과 협잡, 폭력 속에서 치루어진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보통투표행위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대중을 속이고 동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배제한 이 지역들에서, 비극이 비극을 낳고 있다. 사회운동들의 실펀이, 비록 협잡과 사기의 주민투표 결과가 어떻든 계속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안만이 아니라 모든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생태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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