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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애초에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사람잡는 정체성>이라는 책 때문이었다. 책의 저자인 아민 말루프는 레바논에서 태어나서 프랑스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이 어떤 폭력이 되는 지 흥미롭게 보여주었다.(이 책 역시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그리고 그가 쓴 또 다른 책인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이런 저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다. "아랍인의 눈"이라고는 하지만 아랍인의 입장을 '종파적으로' 대변한다기 보다는, 침략당한 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이 쓴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를 바라본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재단된 '성전'으로서의 십자군 전쟁이 아닌 다른 시각을 접하기 위해서 의미있는 이 책은, 여기에 더해서 매우 흥미롭기도 하다. 100여년의 시간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소아시아 지역의 전쟁에서 명멸해갔던 것이다. 마치 팔레스타인의 삼국지라고 할 수 있을 것같은 이 역사는 하나의 서사이기도 하다.

 

특히 이 책의 포인트는 왜 아랍인들이 그렇게 무기력하게 침략당하고 학살당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 있다. 아랍세계는 단일한 정치체제가 무너진 후에 만성적인 내전에 시달려왔으며, 정치적 통일은 요원하였다. 심지어 수만명이 사는 도시의 인구가 깡그리 학살당하는 상황에서도 이런 조건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랍이 침략자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정치적 단결을 우선 회복해야 했으며 여기에는 100여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 점에서 아랍세계를 통일하고 프랑크족을 몰아낸 살라딘이 현대의 아랍 지도자들에게 이상적인 인물로 비치고 모방하기 위한 상징이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이라는 기독교국가가 창설한 "라틴왕국"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아랍인들을 학살하고 있지만, 아랍세계는 만성적인 정치적 분열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 않는가. 그러니 살라딘의 땅인 시리아에서부터 칼리프의 땅인 이라크까지 (민족주의자이자 발전주의자들인) 바트당의 독재자들이 살라딘과 자신을 동격화하려는 것은 절실한 정치적 요구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형식이지만 소설과 같이 생생하다. 김태권의 뛰어난 만화작품인 <십자군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다. (도대체 <십자군 이야기> 3권은 언제 나온담!) 무지막지한 보에몽, 정신나간 사기꾼에 가까운 '은자 피에르'를 떠올리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생생한 느낌을 얻으려면 시공디스커버리총서로 나온 <십자군 전쟁-성전탈환의 시나리오>를 함게 보는 것이 좋다. 십자군 전쟁의 역사를 풍부한 도판과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당시에 프랑크족(유럽인들 말이다)과 아랍인들이 서로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시각적으로 알 수 있다.

 

이런 시각적 이해 속에서 특이한 점을 곧 발견할 수 있다. 유럽인들이 그린 전투장면은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느낌이 드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영화 <반지의 제왕>이다. 수많은 판타지 작품들의 기원 말이다. (따라서 문제는 이후의 판타지작품들에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아래는 영화에 정의의 편으로 나오는 중세기사들, 이런 녀석들이 바로 십자군 전쟁에서 프랑크족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서 영화에서 우르크하이 같은 녀석들은 유럽이 그린 아랍인과 유사한 이미지. 검은피부에 갑옷도 못갖추고 있다. 당시 전투에서 프랑크족의 주력은 갑옷을 입은 기병이었으며, 이에 비해서 아랍인들은 갑옷은 없는 경기병 혹은 기마궁수였다.

 

<반지의 제왕>만이 아니다. 일전에 화제가 되었던  <다빈치 코드>는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의 전설에 대해서 다룬다. <다빈치 코드>가 신성한 존재로, 핍박받는 순교자로 그리는 "성전기사단"은 죄송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호전적인 학살자들이었다. 이들은 무장한 수도사들과 같은 조직으로, 기사와는 달리 상비군을 구성하고 강력한 무장력을 갖추었다. 덕분에 막대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는데,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유럽의 왕조들과의 대립은 아시아에서 프랑크국가들의 몰락 이후 성전기사단에 대한 탄압으로 이어진다. 이들이 탄압받았다고 해서 '선량'한 것은 전혀 아닌 것이다. 갖가지 방식으로 침략 전쟁의 침략자들을 미화하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이들 "성전기사단Knights Templar"은 여러 판타지에, 심지어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게임에도 반복된다. "하이템플러" 혹은 "다크템플러"로 등장하는 포로토스 유닛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는 최근의 영화에도 다시 반복되고 있다.

말도많은 <300>이라는 영화다. 크게 히트하고 있다고 하는데,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아래의 이미지가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유럽인들이 처음 보고 놀란 동방의 괴물, 바로 코끼리인데, 당시 유럽인들은 코끼리를 보고 놀라서 이렇게 그렸을 것이다. (왼쪽은 <반지의 제왕>, 오른쪽은 <300>의 한 장면.)

 

 

 코끼리뿐 아니라 야만족의 모습도 비슷한데, <300>에서는 이 야만족은 직접적으로 페르시아인, 현재의 이란을 지칭한다. 결국 이 모든 이미지가 동일한 근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십자군 전쟁에서 시작된 아랍인에 대한 이미지를 인종적, 문화적 편견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비해서는 한참 앞선 문명국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한다.)

 

이런 점에서 <300>이라는 영화가 가지는 정치적 프로파겐다로서의 성격을 지적한 아래 기사도 참고할만하다. 프레시안의 기사 "괴벨스의 나치선전물 같은 영화 <300>" 나도 TV의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영상만 보고도 역겨웠는데 역시 그렇고 그런 정치영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로보면, 아랍인이 훨씬 문명적이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적이라고 해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으며, 학살을 일삼는 프랑크족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화적으로도 훨씬 성숙되어 있었는데, 이후 유럽은 이 전쟁 이후 많은 것을 아랍으로부터 배워갔고, 특히 이들이 다시 접하게된 그리스-로마의 유산은 르네상스를 촉발한다.

 

그에 비해서 아랍의 피해의식은 아랍세계를 점진적으로 후퇴시키는 요인이 되는데, 이 결과는 십자군 전쟁 후 6~700여년이 지난 19세기, 20세기 유럽에 의한 아랍의 정복과 분열까지 이어진다.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굳이 '현재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실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만으로 현재를 다시 바라볼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전쟁에서 침략자가 아니라 피침략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먼저 바라보아야한다면 십자군 전쟁에도 마땅히 그래야한다. 그 과정에서 보다 많은 진실을 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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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총학생회, 뉴라이트, 오래된 반성

연세대 총학생회가 총여학생회를 폐지하겠다고 학생 총투표를 한다고 한다.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여기에 더해서 의결기구로서 단과대 학생회와 함께 구성하게 되어 있는 중운위를 폐지하고 그 권한을 총학생회 상집이 가져갈 뿐 아니라, 단과대 학생회가 "외부" 단체와 하는 연대활동(성명서까지도)도 총학생회의 허락을 받도록 한다고 하니, 독재를 위한 쿠데타가 따로 없다.

 

관련 내용은 아래 링크 참고

[연대총여] 연세대 총학생회의 독단적 총투표 강행과 총여 폐지 주장을 규탄한다!

 

학생동지들로부터 이 이야기를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아울러 들은 이야기는 (내가 요즘에 학생운동에 관심이 좀 많이 없었나 보다) 서울시내 규모가 있는 주요대학 17개 정도를 따져보니 몽땅 비운동권-반운동권 총학생회더라는.

 

연세대 총학생회는 '뉴라이트'라고 알려져있는데, 이들의 정치가 어떤 내용인지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반여성주의, 반정치주의(역설적이게도)에 입각한 대중의 정치적 동원. 이것은 그냥 '보수'라기 보다는 파시스트들을 떠올리게하는 정치양식이다. 특히 자신들이 장악한 총학생회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제반의 비민주적 학생회칙 개정 사항을 반여성주의적 동원 아래 묻어가고 있다는 것은, 반여성주의가 가진 성격, 따라서 여성주의에 대한 쟁점이 가지는 보편적 성격을 드러낸다.

 

이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대자보들도 학내에서 훼손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들이 정치적이지만 또한 反정치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치란 무엇보다도 공동체 내에 이견과 쟁점을 다루는 방식일 텐데, 이들의 방식이란, 의견을 억압하는 폭력으로서 도대체 정치라는 것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공공연하게 드러나고, 동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까지도 있다는 것이 현재의 학생사회라고 생각하니 우울해지는 일이다. 여기까지 오는데에는 많은 복합적인 요인이 있고,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어떠한 집단적 희망도 발견할 수 없는 대중의 정치적 후퇴가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현재의 노동자운동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한때 실천했었던 학생운동을 반성할 필요도 있을 것같다.

 

90년대 중반부터 우리가 만들어낸 학생사회의 논쟁이란 참으로 빈약한 것들이었다. 특히 학생사회의 논쟁이 집중되는 총학생회 선거 공간에서 '정치적 후퇴'란 좌우파가 모두 공범이었다. 정치적 구호가 중심이던 총학생회 선거에서 92년부터 처음으로 이른바 '복지공약'이라는 것이 NL 선본의 대대적인 선전 아래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었고, 좌파들도 93년부터 이를 모방했다. 그래도 그나마 정치적 쟁점이 남아있던 것이 93년까지 정도였던 것같다. 그 이후로는 모든 정치세력의 선본이 학내 복지사항을, 기껏해야 학교와 협의해서 만들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 상품들로 선거를 도배했던 것이다. 미디어 선거를 전면화했던 것은 애초에는 NL이 시작이었으나 이후에는 오히려 좌파가 더 유능했던 것같다.

 

군대를 다녀온 90년대 말에는 이런 상황은 더욱 전면적이어서, 총학생회 선거에서 정치적 입장이란 선본 자료집 맨 뒤 몇페이지에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들 선거에서 항상 NL들이 복지공약에는 유능했지만, 그렇다고 좌파들이 그나마 정치적으로 나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닌데 그런 감각에 무능했을 뿐이다.

 

결국, 노동자운동에서 노조운동이 90년대 내내 단위 사업장 내에 경제적 이익에 몰두하면서 모든 방면에서 노조를 실리주의에 빠지게하고, 결국 신자유주의에 제대로 대항할 수도 없게 조합원 사회(그것을 '현장'이라고 부르지)에서도 실리주의가 만연하게 만들고 말았다.

 

학생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학생회는 실리적 도구일 뿐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은 애초에 운동권들이었다. 운동권들이 학생회를 '수권'하기 위해 몰두할 수록 이런 경향은 강화되었다. 그러나 결국, 비운동권, 반운동권들이 세력화될 수 있었을 때, 이런 쟁점이 훨씬 유리한 것들은 이들이었다. 일말의 꺼리낌없이 '정치'를 배제하자는 주장이었는데, 그래도 이제까지 복지사안이라는 것을 도구적 쟁점으로 제기했을 뿐인 운동권들보다 이런 방면에서 훨씬 유능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태는 매우 불행하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의 원인중에는 90년대 우리가 해왔던 학생운동의 실천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중요한 요인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학생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주체였던 학생운동 세력이 이러한 상황에 전혀 책임이 없을 수 없다면, 그 책임의 내용과 성격이 무엇이었는지 반성하는 것이 필요할 것같다. 나 자신도 이러한 상황에 (내가 활동했던 캠의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동의 책임이 있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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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노조가 뭐 이래?

공공노조 출범 이후, 지난 2월 말 선거와 과도기 집행부 이후 제도를 정비하는 3차 중앙위원회가 지난 주 끝난 이후 나에게 특징적인 정서는 (많은 분들에게 대단히 죄송한 일이지만) "환멸"이다. 이런 낱말을 쓴다는 것이 참으로 나 자신에게도 분노스러운 일이라도 그렇다.

 

앞서 썼던 글들에도 말했던 것처럼, 공공노조의 출범과정은 대단히 문제가 많이 있었고 많은 쟁점이 '봉합'된 채로 '일단 출범'한 상태였다. 결국 선거와, 그 이후의 제도 정비과정에서 묻혀있던 여러 쟁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던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쟁점들은 노동자 운동의 발전을 위한 고민에 입각해서 발전적으로 정리되기보다는 기존 조직들, 특히 대공장 사업장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가운데 (또한 감히 말하건데) 폭력적으로 정리되었다. 

 

선거=민주주의?

 

아래 글에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선거가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담보하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이번 공공노조 선거와 그 이후의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월말에 진행된 선거는 아래와 같았다.

(1) 공공노조 위원장-사무처장 (2) 업종본부 본부장-사무처장 (3) 지역본부 본부장-사무처장 (4) 업종선출 노조 대의원 일반 (5) 업종선출 중앙 노조 대의원 여성할당 (6) 지역선출 노조 대의원 (7) 지역선출 노조 대의원 여성할당

조합원들은 총 7장의 투표용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의원 투표의 경우 많은 경우 16명에 이르는 후보에 대해서 투표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선거구의 조합원은 30여명에게 투표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3월말에도 선거가 예정되어 있는데,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가 쟁점이 되었다. 앞서의 선거에서 (1)을 제외하고 선출되지 않은 기구에 대한 보궐선거(많은 경우 6개)에다가 지역본부 대의원(일반, 여성할당), 업종본부 대의원(일반, 여성할당) 등 총 10장의 투표용지를 받아야하는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평조합원의 입장에서 불과 한달만에 이런 선거를 두 번이나 한다는 것이 어떻게 느껴질까?

 

쟁점은, 이러한 과중한 선거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3월말 선거에서 지역본부, 업종본부에 당연직 대의원제도를 임시로 운영하는 등의 방안을 도입하자는 서울본부의 제안에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제안은, 조합원들이 표찍는 기계도 아니거니와, 지난 선거 경험을 통해 볼 때 이러한 규모의 선거를 진행할 경우 한달간 모든 활동이 마비된다는 점에도 있었다. 학교 비정규직 등 투쟁사안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고 산별적인 사업을 위해서 현장 순회 등으로 조직력을 정비해야할 시기에 모든 일정이 연기된다면 단위 지부의 임단협마저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

 

일부의 주장은, 완고하게 "제도에 정한 대로"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규약과 규정도 사람이 만든 것인 이상, 지난 선거 이후 모든 제도가 얼마나 탁상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실제로 확인한 이상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지역본부와 업종본부 대의원 선거는 이번에는 각 단위 자율로(결국 대부분의 단위가 선거를 진행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다)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돌이켜볼 때 선거는 각 집행기구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사실상 노조의 활동 방향에 대해서 토론이 가능하게 되어야하는데 30여명에게 투표해야하는 선거에서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선거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선거라는 것이 민주주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결국 과도하게(지역-업종으로 2중으로 불어난) 노조의 기구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조합원을 동원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진정으로 노조 민주주의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선거를 많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며, 조합원이 노조와 노동자 운동의 쟁점에 대해서 사고하고 발언할 수 있도록 조건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노조의 활동, 노동자운동의 방향에 대해서 조합원들과 교육이든 토론이든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공유하고 조합원들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할 수 있어야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대리인을 선출하는 것으로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고 노조의 방침에 따르는 수동적인 조합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능동적 조합원으로 조직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선거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과정은 민주주의에 대한 알리바이로 선거가 이용되고 있다.

 

조합비, 0.65%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은 조합비와 관련된 부분이다. 많은 노조에서 보통의 조합비는 1%로 생각되어 왔다. 0.65%라는 조합비 기준은 기형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임금규모가 일정하게 되고 조합원수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는 노조들에서 총임금의 1%가 아니라 기본급의 1% 등의 방식으로 조합비를 낮게 책정해온 데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이 금액의 10%는 희생자구제-투쟁기금으로, 나머지의 60%는 다시 지부에 교부된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조합비 결정과정에서 많은 "유예"조항이 신설되었다. 기존 조합비가 인상되는 지부에 대해서는 1년간 이를 유보하고 이후 3년동안 점진적으로 인상한다든가, 해고자가 많은 사업장 지부에 대해서는 조합비를 감면한다든가 하는 조항이 그것이다.

 

유예조항이 도입됨에 따라 기존에 노조 활동을 열심히 하느라고 조합비를 많이 걷었던 지부들은 기존의 규모만큼 부담해야하고, 그렇지 않았던 곳은 오히려 계속 혜택을 보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열심히 하는 데만 부담이 가중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해고자 부담 등을 이유로 사회보험 지부에는 산별중앙에 할당된 금액의 50%를 감면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는데, 문제는 조합비를 감면하는 대신 해고자들이 산별노조의 각급기구에서 활동한다든가하는 조치가 함께 통과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별노조에서 일하는 해고자에 대해서는 상근자 임금수준의 급여를 지부 대신 노조 중앙이 부담하기로 하면서 '이중혜택'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결정되는 과정에서 조직적인 공동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에 대해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지부가 어렵다"는 것만이 모든 주장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자세는 사회보험만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사업장 규모가 클 수록, 임금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그런 모습이 강했다.

 

이는 산별노조 건설 이후에 어떻게 각종 사업을 산별차원에서 함께 진행하면서 통합력을 증진할 것인가를 각 단위가 고민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사업을 보전하고 산별노조(중앙과 지역, 업종본부까지 포함하여)에 납부되는 기금은 마치 어딘가 빼앗기는 것처럼 사고하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막 출범한 산별노조에 대한 신뢰에 대한 문제도 있겠지만, 애초에 산별노조를 출범하는 과정에서부터 원칙으로 천명되던 '단결의 증진과 힘의 결집'이라는 것과는 다른 사고가 팽배해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것은 역시 중소영세비정규사업장 동지들이었다. 이들은 보전해야할 사업장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도 않으며 최대한 많은 사업을 산별노조 차원에서 함께 하기를 바라는 곳들이다. 결국, 조합비를 낮게 책정하고 산별노조의 기구들, 특히 지역본부를 약화시키는 것은 대공장 정규직 사업장과 중소영세비정규사업장의 관심이 충돌하는 쟁점이 되었다.

 

결국 결정된 예산안을 볼 때, 가장 예산축소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은 지역본부들이다. 원래 예산의 규모가 작은 상태에서 심지어 가장 작은 강원, 대전충남, 충북, 전북, 울산 등의 지역본부들은 월 130만원 대의 예산으로 사업을 집행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대부분의 사업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이 과정에서 기본에 연맹 지역본부가 설치되어 있던 지역에서는 가용한 예산이 줄어들기도 했다. 서울의 경우에는 연맹 때와는 '현상유지'를 한 정도지만 전북, 대전충남 등에서는 연맹 지역본부 시절보다 예산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지역운동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가 무색해지는 일도 발생했던 것이다. 노조 중앙이라고 상황이 나은 것은 아니어서, 현재 작성중인 예산에 따르면 중앙의 각 부서의 사업비가 총 20여만원에 불과한 상황이다. 5개 정도 실이 만들어질 경우 4만 몇천원으로 사업을 하라는 이야기다.

 

전국단위의 비정규직노조들의 상태는 심각하다. 학교비정규직, 보육, 자활, 사회복지 등 지부들은 이미 지역별로 조직을 편제하기로 하고 중앙조직을 해산하고 있는 과정이다. 이들 사업장은 어차피 임금총액이 적기 때문에 조합비 교부금을 받아도 독자적인 사업이 불가능하다. 이런 속에서 지역별로 편제할 경우에도 지역별 주체형성도 문제이거니와 노조의 지역본부가 매우 취약하게 되면서 공세적인 조직화 사업은 커녕 조직유지도 힘들어지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들 조직의 상근자들은 공공노조에 고용이 승계되면서 최소한 지역-업종본부, 중앙단위 이상으로만 인사배치가 이루어지게될 것인데, 이 경우 상근활동가가 조직을 담보하기도 힘들어지는 상황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모두 아는 상태에서(회의 장소에서 조합비에 따른 각단위 사업비의 시물레이션이 즉각 공개되었다)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몰라서 그랬다"는 식의 변명은 이루어질 수 없고, 산별노조에 대한 각 단위 간부들의 솔직한 입장이 반영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오히려 저임금 사업장, 중소영세비정규직 동지들이 조합비 인상을 요구하는 상황이었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업장의 한 간부는 이런 논란이 '우습다'는 말도 했는데, 0.65%로 책정될 경우 산별중앙이 가져가는 조합비 수준은 연맹-민주노총의무금에도 미달하기 때문이다.(최저임금 조합원이 늘어날 수록 산별중앙 사업비는 줄어든다는 말이다.) 또한 이런 조건에서 지역, 중소영세비정규직 사업장에서는 오히려 "연맹 때가 좋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너무나 역설적인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결국 이 과정은 산별노조 건설의 과정이 운동적 의의를 공유하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일단 결의하고 보자'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렇게 만들어진 이후에도 최소한의 원칙을 확인하지 못하고 "제도 정비"를 중심으로 전개된 이후 과정이 만들어낸 결과다.

 

산별노조,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벌어지게된 이유를 사업장 현장 간담회라든가 이런 저런 과정에서 본 것을 통해서 생각해보면, 산별노조는 여전히 명분뿐이거나 개별 기업별 사업장의 이해를 지키기위한 방편정도로 인식되는 것같다. 기업별을 넘어서 적어도 유사한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하나라는 의식, 당장 자신의 일은 아니라도 투쟁하는 노동자가 있으면 연대한다는 연대의식이라든가 중소영세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겠다는 목표들은 공문구가 된다.

 

당장 사업비가 월130여만에 불과한(추가 할당된다고 해도 170만원을 넘기는 힘들 것이다.) 지역본부에서는 운영비도 빠듯할 뿐더러 투쟁사업장이 발생할 경우 제대로 지원도 할 수 없는 조건에 이른다. 이런 조건에서 미조직비정규직 전략조직화라거나 지역 차원의 산별교섭이나 사회공공성투쟁과 같은 것은 "좋은 사업계획"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오히려 산별노조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산별노조는 이런 것'이라는 관성이 이미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내부투쟁은 물론이지만) 제한된 자원을 활용하면서 최대한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할 수밖에. 그것은 당장은 조직적으로는 "초기업-초업종 지역지부"를 조직하는 노력과 사업으로는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으로 볼 수 있다. 기존 조직 내에 조직적 근거를 확보하는 것과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노조운동의 주체를 이를 중심으로 조직하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기존의 노동조합들을 바꾸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이번 과정을 통해서 아무리 훌륭한 관점을 갖고 있더라도 대기업 정규직 노조 간부는, 자신들의 조건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말았다.(그런 것을 확인할 때마다 느껴지는 막막함이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은 말로 되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실천이 기존의 운동을 압도해가도록 할 수밖에. 그것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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