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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이반을 다시 읽고

 

내 손을 물끄러미 들여다 본다. 매끄럽고 굳은살이 없는 게 험한 일 안해본손이다. 혹시 몰라 자세히 구석구석 살펴보니 첫째, 둘째, 세째 손가락 끝마디에 약간의 굳은살이 박여있다. 다행이다. '바보나라'에 가면 식탁 끝자락에라도 끼어줄지 모르겠다.
톨스토이가 단편 '바보이반'에서 그리는 '바보나라'는 왕도 바보이고 백성도 바보이다. 그곳에서는 누구라도 찾아오면 식탁에 앉혀 대접을 하는데 다만 손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은 "식탁에 앉게 되지만,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자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먹어야 한다".  

바보이반은 공주의 병을 고치고 공주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장인이 죽자 왕위에 오른다. 바보이반이 나라의 왕이 되자 사람들은 왕이 바보라는 것을 알고 "똑똑한 사람은 모두 이반의 나라를 떠나 버렸고 남은 사람은 그저 바보 뿐이었다. 돈이라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었다. 그들은 모두 일을 하며 스스로 살아감과 동시에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살아갔다."

바보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잘 살자 옆에서 이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다.
도깨비들은 첫번째는 군대의 힘으로 바보나라를 없애려 하였다.  바보나라의 주민인 바보들은 군대가 와서 약탈하면 모두 다 내어주고, 집이며 곡식을 불태우자 그저 울 뿐이었다.
" 왜 우리들을 괴롭히는 겁니까? 어째서 우리 재산을 빼앗아 가는 겁니까? 필요하거든 차라리 그냥 가져가면 될 것을..."
군사들은 침울해져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도깨비들은 두번째로 금화로 바보들에게 도전한다. 자기밑에서 일을 하면 금화를 준다고 하였지만 바보들에게 돈은 그저 노리갯감에 불과하다. 돈으로 지불하는 것도 없고 세금도 없는 바보나라에서 금화는 아이들 가지고 노는 장난감일 뿐이다. 도깨비는 결국 금화로는 밥 한 그릇 사 먹을 수 없어 식탁옆에서 남은 찌꺼기를 얻어 먹어야했다. (물론 손에 굳은살이 박여있지 않으니까...)

가장 통쾌한 장면은 세번째 장면이다. 바보들이 손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본 도깨비는 머리를 써서 일하면 힘들여 고생할 필요가 없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그 장면은 밑에 옮기니 직접 느껴 보시라...

<이하 옮김> ----
                ('톨스토이단편선', 톨스토이저 박형규옮김 인디북 244p-245p)

이반은 신사의 모습이 잘 보이도록 그 곳으로 안내했다.
바보들은 손을 쓰지 않고 머리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신사가 실제로 보여 주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큰 도깨비는 그저 말로만 어떻게 하면 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지를 가르칠 뿐이었다. 바보들은 뭐가 뭔지 통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고 저마다 제 일을 하러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큰 도깨비는  하루종일 망대위에 서 있었다. 다음날도 내내 서 있었다. 그리고 줄곧 지껄여댔다. 그는 무엇이라도 좀 먹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바보들은 만일 저 사람이 손보다 머리로 훨씬 일을 더 잘할 수 있다면 제 머리로 빵쯤은 실컷 만들겠지 생각하고, 그에게 빵을 가져다 줘야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 (중략) ......

큰 도깨비는 하루종일 단위에 서 있었고, 조금씩 쇠약해지기 시작하더니 비틀거리기까지 하였다. 그리고는 그만 기둥에 머리를 부딪혔다. 한 바보가 이것을 보고 이반의 아내에게 알리자, 그녀는 곧 들에 나가있는 남편에게 달려갔다.

" 자, 가시죠, 구경하러. 신사가 드디어 머리로 일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옵니다."
" 그게 정말이오?"

이렇게 말하고 이반은 말을 돌려 망대로 갔다. 큰 도깨비는 굶주리다 못해 이제 완전히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비틀거리면서 머리를 기둥에 박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반이 도착한 그 순간, 도깨비는 쿡 거꾸러지더니 우당탕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층한층 발판을 세기라도 하듯 사다리를 따라 거꾸로 떨어져 내렸다. 이반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하, 언젠가 머리가 빠개지는 수도 있다고 훌륭한 신사가 말하더니, 아닌게 아니라 정말인 걸. 하지만 저렇게 일을하다가는 머리가 남아나지 못할 게 아닌가."

<이상 옮김> -----

돈과 힘(권력)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사람들은 믿어왔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지속적으로 믿음이 모이고 쌓이면 그것은 하나의 신화가 되어 아무도 그것을 부정하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이 신화를 무너뜨리려는 사람조차 그 권위를 내면으로는 인정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신화가 전혀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바보'이다. 스스로를 바보라 칭하는 사람은 '진짜 바보'가 아니다. 바보가 되고 싶다는 사람, 남들이 자신을 바보라 부른다고 힘겨워하는 사람도 '진짜 바보'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사회에 '진짜 바보'들은 장애인이 되었다.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기는 커녕 살던 마을에서도 내몰리고 있다. 자기의 권리는 자신이 주장해야 되는 시대에, 스스로 조직도 만들지 못하고  성명서 하나 내지 못하는,  '지적장애인'(정신지체인)이라 불리우는 '진짜 바보'들은 가장 사람대접을 받지못한다. 언론에 고발기사로 나오는 '20년 노예노동'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지적장애인이다.

10여 년전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속이 시원하고 통쾌한 느낌이었다.
그때 '바보나라는 힘들어도 바보마을은 만들수 있지 않을까?'하면서 주변사람에게 이야기하던 기억도 난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내가 생각했던 바보는 '진짜 바보'가 아니라 바보처럼 살려는 '자칭 바보'일 뿐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자칭 바보가 아닌 '진짜 바보'들을 만나면서,  톨스토이가 그린 바보나라는(바보마을은) 바보처럼 살려는 사람들이 만드는 곳이 아니라, '진짜 바보'들이 마을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진짜 바보'들도 한 곳에 모여 살고 있기는 한다. 그곳은 마을이 아니라 외딴 곳에 위치한 시설이고, 그들은 마을의 주민이 아니라 시설의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예전 동네마다 한 두 명씩은 살았던,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그들은 지금 그곳에 다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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