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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좋아하는 시인

내가 참 좋아하는 시인은 두명이다.  한사람은 김남주이고 다른 한사람은 박영근이다.

 

김남주 시인의 시는 20대 초반에 많이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했다.  좀 쑥스럽지만, 그때 자취방에 그의 사진(조그만 신문사진)을 붙여놓기도 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온후 어느 집회장 화장실에서 우연히 만나 되게 좋아했던 기억도 나고,  공연장에서 그가 시낭송을하는 모습이 무척 작게(?)느껴져 마음이 안좋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후 94년 타계하였다

 

박영근시인의 시는 그 전에도 몇편 읽은적은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읽은것은 얼마전 나온 그의 유고시집'별자리에 누워 흘러가다'부터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연도를 거꾸로 그의 시집을 하나씩 읽어갔다.  당시 나의 상황과 엊마물려 무척이나 가슴에 와닿았다. 시인이 살던 곳이 내가 이전에 머물렀던곳과 비슷한 동네여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의 시중에 좋은시는 많지만 가장 나를 울렸던 시는 '겨울비'다. 차마 그전에는 마음이 울렁거려 블로그에 올리지도 못했는데...ㅜㅜ

 

 

겨울비

          박영근

 1

그 겨울엔 유난히 눈이 없었고,  정신병동에서 나는 흰 벽만 바라보고 살았어요.
흰 벽 위에서 새까맣게 고물거리던 무슨 글씨 같은 것들이 생각나요 지겹도록 약을 먹어댔고, 그리고 허기와 잠......  머리통을 짓밟고 지나가던 개새끼 같은 쌍소리들
음악이 없었으면 어쩌면 난 죽어버렸을 지도 몰라요 단순하게 살게 해달라고 매일 매일 나에게 애걸했어요
해동을 하는 나무처럼 목도 팔도 다리도 잘라버리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내 마음이 붙잡고 있던 오래 된 흑백사진 한 장
다섯 살 무렵 어머니 치마꼬리를 붙들고 삐죽하고 웃고 있는, 그 애의 작은 손과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 막 생겨날 듯한 볼우물,  아직은 살아갈 날들이 비어 있는

그때 당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기억이, 기억이 나질 않아요

 

2

어디서 본 그림이었을까,  盲目鳥(맹목조)라는 그림,  조롱 속에서 어둑하게 허공을 보고 있는 눈먼 새,  몸은 자꾸만 말라가고,  제 울음소리도 잊은 채로 머지않아 죽어갈......  돌아갈 집도,  밥상머리에 함께 둘러앉을 식구들도 나에겐 없었는데,  문득,  문득 돌아갈 자리를 찾곤 했던가봐요

그래요, 뜨거운 물방울들이 내 몸 속으로 아주 힘겹게 떨어지는,  그런 때가 자주 찾아오곤 했어요
당신과 내가 십오년 넘게 끌고 다닌 그 단칸방들이었어요. 시궁쥐들이 와서 조합신문을 쏠고. 쪽방 불빛을 가리고 학습을 하고,  짠지와 막걸리 잔으로 서로 건네주던 먼 지역의 소식들,  그리고 늦은 잔업에서 돌아오면 마당에서 눈을 맞고 있던 빨래들...... 그런데 그 단칸방에, 십여 년이 흘렀는데 내가 다시 그 방에,  아파트를 돌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가 걸레쪽 같은 몸을 끌고 돌아와 흰 벽을 바라보고 있는 거야 분명 그 방들을 떠난 지 오랜데,  그 텅 빈 방에 주저앉아 한 움큼씩 안정제를 먹고,  나가게 해달라고 쌍소리질을 하고 있는 거야 정말이지 그 방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어 세상에, 나이 마흔을 넘긴 여자가

생각나요?  살아갈 날이 너무 힘들어서 내가 뱃속의 아이를 지우려 했을 때 당신이 울면서 했던 말,  아이를 낳아서 기르자는 말...... 그 애는 지금 어디 있나요

 
3
누군가는 시간강사 노릇을 마치고 전임이 되었고 누군가는
출판사에 들어가 주간이 되었고 또 누군가는 대기업에 들어가 딸라장사를 하였고
누군가는 이혼을 했고
누군가는
폐 인이 되어 떠돌기도 하였고,  밤 12시나 1시,  고등부 학원 수업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당신은 늘 소주를 마셨어요 18평짜리 임대아파트였지요 아,  정말이지,  지긋지긋해 내가 왜 다시 그때 일을 떠올려야 할까 그 지루한 헛소리,  다시 현장에 들어가 살아야겠다 이건 온통 사기다 북한에 한번 갔다와야겠다 세상 보는 눈이 넓어질 텐데 아니야 자본주의를 더 깊게 보고 파들어 가야 해 아직 껍데기만 보고 있어, 그렇게 쓰러져 잠든 모습은 수의도 없는 시체 같았어요 깨어 일어나 대낮부터 멍하니 앉아 TV  채널을 돌리던 그 무표정한 얼굴 그런 중에도 살을 섞기도 했으니,  그 때 내 모습은 어땠을까

등에 얼음이 박힌다는 말 알아요?
어디에도 나는 없었어요


4

나 때로 한밤중 고속도로 갓길 같은 곳에 차를 세워놓고, 술을 마시고 홀로 잠들기도 하였다

돌이킬 수 없이 달려온,  또 살기 위해 달려갈

길 위에서,  길을 잃으며

저를 찾고 있는
망가진 사내 하나를 보았다

온몸 환하게 얼어 가는 겨울비 속에서

** 박영근 시집 '저 꽃이 불편하다'에서 

 

박영근시인의 유고시집을 보다 뒤의 연표를보니 시인은 58년 생이다. 2006년에 돌아가셨으니 만 48년을 살았다. 어~ 하는 생각이들어 김남주의 연표를 찾아보니 그도 46년-94년 만 48세에 세상을 떴다.  그리고보니 박영근시인의 동료인 조영관시인은 2007년 만 50세에, 그리고 시인은 아니지만 시인같은 사진가 김영갑도 2005년 만48세에 삶을 마쳤다. 

김남주는 췌장암, 박영근은 결핵성뇌수막염, 조영관은 간암,  김영갑은 루게릭병이 최종 병명이었다.

인생의 순간순간 자신의 모든것을 다 걸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아마  마지막 자기를 지켜야할 에너지마저 다 쏟아 낸것같다.    하여 그리도 괴롭고 외로운 삶의 자취가 몸에 이러저러 이름의 병명으로 붙여졌고 그에  50년을 못넘기고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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