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주부의 증거 2

부엌에서 살다 보니까 좋은 일도 있지만

안 좋은 일도 있습니다.

 

가장 안 좋은 일은

자꾸 손이 데는 겁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습니다.

 

"아휴..씨..또 디었네..."

 

보리차 끓인다고 물 올려놨다가

끓는지 안 끓는지 순간적으로 분간이 안 가서

주전자 뚜껑을 열었는데

뜨거운 김이 새끼손가락을 덮쳤습니다.

찬물을 틀어놓고 손을 한참 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몇 번째야..이거.."

 

조심을 한다 한다 해도 자꾸 뎁니다.

덕분에 손가락 끝은 점점 단련되고 있습니다.

 

정신 놓고 있다가

뜨겁게 달권진 냄비를 잡는 건 인제 안 하지만,

이것 말고도 데는 방법은 많습니다.

 

전자렌지에 음식 뎁힐려고 넣었다가 꺼낼 때

접시가 뜨거워서 손가락을 데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접시가 안 뜨거워야 하는데 암튼 전 데었습니다.

 

닭가슴살 익힌 다음 손으로 찢는데

처음엔 괜찮은 듯 싶더니 점점 뜨거워집니다.

억지로 참고 하다가 또 데었습니다.

 

사골국을 폭삭 끓인 다음 국그릇에 옮겨 담는데

그걸 하나 제대로 못해서

찰랑거리는 국 속으로 손가락이 들어갔습니다.

 

당근하고 햄하고 섞어서 볶다가

당근조각 하나가 하늘을 날라서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무심코 그걸 손가락으로 집어들었는데...아, 이거...이것조차 뜨거웠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일은 이겁니다.

 

햄을 아주 잘게 잘라서 볶고 있는데

이게 갑자기 통통 튑니다.

 

신기해서 "야~이게 통통 튀네~"하고 바라보고 있다가

그 중 하나가 긴 포물선을 그리더니

제 팔뚝에 사뿐하게 안착하는 걸 못 피했습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이 모든 걸 꿋꿋하게 참아내던 저는

그러나 정말 죽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글지글 기름에 뭔가를 볶고 있다가

제가 정말..정말 아무 생각없이

후라이팬에 물을 좀 뿌렸습니다.

 

"파지지직..파파파파파팟~~"하면서,

기름인지 아니면 그새 뜨거워진 물인지가 튀어 올라와서

마침 더워서 웃통을 벗고 있던 제 배로 튀었습니다.

 

아...조선시대에 인두로 지지는 고통이 이쯤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몇 번 아주머니들이

"괜찮아~이 생활 몇년인데"를 외치시면서

뜨거운 냄비 같은 걸 팍팍 잡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금만 훈련하면 저도 그 경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전국의 부엌에서 지금도

기름으로 몸을 단련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에게

조심하시라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