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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월에...

어제 우리집 세 사람이 미용실에 갔습니다.

 

36년간 오직 전통의 헤어스타일 한 가지만을 고집하던 저에게

주선생님께서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파마를 하자고 해서 간 겁니다.

 

미용실에 들어서자

거기서 좀 높아보이는 여자분이 와서

이것 저것 참견합니다. 그러다가 하는 말.

 

"어머, 애기 코에 이거 자기 손으로 긁었나 보네..

손톱을 잘 깎아줘야지...

아빠가 화 나겠다..엄마 뭐했어~"

 

순간 주선생님 얼굴에 열이 확 뻗칩니다.

저는 그 사람이 뭐라고 하는 지 못 들었다가

주선생님한테 얘기를 듣고, 뒤늦게 열이 확 뻗쳤습니다.

 

'아니, 애 손톱은 꼭 엄마가 깎아주라는 법이라도 있어요?

그리고...얼굴 긁었으면 아빠가 엄마를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화를 내요?

직장 나와서 일하시는 분이 본인도 다 겪어봤을 거면서

애는 무조건 여자가 키워야 한다는 겁니까?'

 

저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속으로 말했습니다.

 

미용실에 있는 내내

주선생님은 많이 불편해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데 애 데리고 나왔다고 구박하는 눈치까지

이 여자 저 여자 한테서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이런 일들은 정말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육아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맨날 집에만 있으면

잠깐이라도 밖에 나오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굴뚝 같은지

 

여자들은 서로 이해할 줄로 생각했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미용실의 그 높은 분은

직장 일은 직장 일 대로

집안 일은 집안 일대로 이중으로 하는 여자이면서

말은 꼭 남자의 관점으로 얘기했습니다.

 

이런 저런 핑게로

애 키우는 데는 하나도 신경 안 쓰면서

뭔 일만 있으면  "아니, 대체 집에서 애를 어떻게 키우는 거야?"

이렇게 얘기하는 남자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여자 할 일 따로 있고, 남자 할 일 따로 있다 이겁니다.

애 키우는 일 같은 건 여자들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런 겁니다.

전형적인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입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집에 돌아와서

이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여자와 남자 사이의 불평등이 없어지나

뭐, 그런 종류의 얘기를 하면서

서로를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어제의 일을 잊고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면서 밖에 나갔습니다.

저는 미루를 안고 주선생님은 몇 발 앞서 걸었습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주선생님에게 말씀하십니다.

"저게 뭐야~애기 배가 다 나왔어~~옷 잘 입혀야지"

 

애를 안고 있는 건 전데, 여전히 세상 사람들은

애에 대해서 엄마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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