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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시간

요새 제가 계속

슬럼프에서 못 벗어나니까

 

주선생님이 은혜를 베풀어서

혼자만의 시간을 선사하셨습니다.

 

"상구, 어디 가서 하루 신나게 놀고 와라..너무 힘들어 보여.."

 

"나는 그냥 집에서 하루 쉬고 싶어..."

 

저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주선생님이 미루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저녁밥까지 먹고 온 답니다.

 

"현숙아 조심해서 놀다 와..."

 

"응, 상구도 푹 쉬어.."

 

"미루야~엄마랑 잘 놀다 와~~"

 

현관문이 닫히고

집에 혼자 남게 됐습니다.

 

8개월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가슴벅참을 표현하기 위해

세 걸음을 옮긴 다음 바닥에 있는

고무 공을 발로 힘차게 찼습니다.

 

"얏호~~"

 

할 게 없습니다.

뭘할까 고민하면서 둘러보니

집이 참 지저분합니다.

 

여기저기 미루 장난감 널려 있는 걸

조금씩 치웠습니다.

 

"이러면 안돼...이건 내 시간이야.."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음악을 틉니다.

 

"짜자장~~쿵쾅쿵쾅..."

 

간 떨어질 뻔했습니다.

미루가 깰까봐 완전히 깜짝 놀랐습니다.

 

휴..근데 미루는 지금 집에 없습니다.

 

갑자기 전화 벨이 울립니다.

또 화들짝 놀랍니다. 미루 깨면 낭팹니다.

아...미루는 지금 집에 없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치다가 문득 안방 문이 열려있던 게 기억납니다.

미루는 자판 소리에도 민감합니다.

몸이 통째로 오그라 들었다가, 겨우 다시 편안해집니다.

 

미루가 자고 있을 때의 고요함 말고

새로운 정적에 적응이 안됩니다.

 

최대한 몸을 편하게 의자에 묻습니다.

 

"벗어나야지, 벗어나야해..."

 

좀 편해졌습니다.

마음 놓고 인터넷도 하고, 책도 봤습니다.

 

아, 이제 좀 살 것 같습니다.

 

한 30분 쯤 있다

완전 무신경 상태의 낮잠을 잘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물 한잔 마시고

이 즐거움을 계속 이어나가야 겠습니다.

 

부엌으로 갔습니다.

물을 따르는데, 주전자가 좀 무겁습니다.

 

"쿵"

 

주전자를 내려놓다가

살짝 놓쳤는데 집안이 다 울립니다.

 

깜짝 놀라서 안방을 쳐다봤습니다.

결국 미루를 깨우고 마는가 싶었습니다.

 

미루는 딴 데서 놀고 있는데

저는 계속 미루 옆에서 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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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된 미루

미루가 완벽한 자세로 앉긴 앉지만

몸이 흔들흔들한게 불안합니다.

 

아침에도

기어가다 앉고, 다시 기어가기를 반복했는데

앉아 있으면 온 신경이 미루한테 갑니다.

 

근데 한번도 뒤로 넘어가진 않습니다.

 

"으앗~!"

 

미루가 넘어가는 모습에

주선생님이 비명을 지릅니다.

미루는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왼쪽으로 떨어집니다. 머리는 괜찮습니다.

 

"휴...놀랬다..."

 

"그러게...깜짝 놀랐다.."

 

또 다시 뒤로 넘어가려고 합니다.

이번엔 힘을 잔뜩 줘서 허리를 튕기더니

몸을 앞으로 숙입니다.

 

주선생님

미루를 아주 믿음직스러워 합니다.

 

"우리 미루는 역시

뭐든지 다 준비가 된 다음에 하는 것 같애..."

 

"그런가?"

 

"뒤집을 때도 그랬고, 지금 앉는 것도

뒤로 안 넘어질 정도로 근육이랑 감각이 발달한 다음에 앉은 거라고 볼 수 있잖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맞장구가 필요한 순간입니다.

 

"그러게 말야, 뭐든지 충분히 분위기가 익은 다음에 하는 건

나를 닮은 것 같애..."

 

"......"

 

소리가 안 나는 웃음은

싸늘한 법입니다.

 

"그렇지, 설거지도 그릇이 쌓여서 충분히 익은 다음에 하고

재활용도 쓰레기가 충분히 쌓여서 분위기가 익어야 버리잖아..그런 거 말이지?"

 

부모님한테

미루 앉은 사진을 보냈더니

전화를 하셨습니다.

 

"야, 혹시 모르니까 잘 보고 있어..뒤로 넘어가면 큰 일 난다.."

 

"네..."

 

적막한 오후가 됐습니다.

 

주선생님은 사무실에 있고

더 이상 전화는 오지 않습니다.

 

미루는 여전히

단단하게 앉아 있습니다.

 

역시 믿음직스럽습니다.

 

오후 내내

 

두 번

뒤로 떨어졌습니다.

 

소리를 들으니까

제대로 떨어졌다 싶습니다.

 

내내 옆에 있다가

잠깐 딴 짓 할 때 마다 그랬습니다. 

 

많이 후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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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갈아 입히기

다른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미루도 옷 갈아입는 걸 무지하게 싫어합니다.

 

목욕시키려고 옷 벗길 때

목욕시키고 나서 옷 입힐 때

 

외출하려고 옷 입힐 때

외출하고 들어와서 옷 벗길 때

 

미루의 징징거리는 소리가

집안에 가득찹니다.

 

요새는 힘도 점점 좋아져서

팔에 힘을 꽉 주고 버팁니다.

 

"잉잉잉...으아아..."

 

"미루야, 금방 옷 갈아 입혀줄께.."

 

외출하고 돌아와서

목욕을 시키려고 옷을 벗기다가

 

미루가 깨닫지도 못하는

엄청난 속도로 옷을 벗기면

울 틈도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항상 이렇게

적절한 순간에 딱 좋은 생각이 납니다.

 

'상의 아랫부분부터 목 까지를 한 번에 두 손으로 쥐어서

순식간에 확 뒤집듯이 벗기면 되겠군...팔이랑 머리랑 동시에 빼버리는 거야..'

 

그 동안엔 미루 안 울릴려고

팔 먼저 빼고, 머리 빼고 그랬는데

좀 지나치게 조심조심 하다가

도리어 미루를 불편하게 한 것 같습니다.

 

"미루야~~옷 벗자~!! 아빠가 벗겨줄~~"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저는 옷을 통째로 움켜쥐고 아래서부터

휙 뒤집었습니다.

 

1초도 안 지나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얼굴에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은 없습니다.

이럴 때 당황하지 않아야 성공합니다.

 

좀 더 힘을 줘서

힘껏 옷을 위로 올렸습니다.

 

미루 눈썹이랑 눈이 옷에 끼어서

위로 늘어 올려졌고

팔은 만세 자세에서 멈췄습니다.

얼굴은 벌개져있습니다.

 

저도 얼굴이 벌개졌습니다.

 

"미루야, 미루야...가만히 좀 있어봐.."

 

미루,

엄청 버둥거립니다.

 

최후의 시도를 해야 합니다.

있는 힘껏 옷을 당겼습니다.

 

애가 질질 끌려 올라갑니다.

불쌍한 미루, 큰 봉변을 당했습니다.

 

제가 세웠던 계획의

부작용이 첫 시도에서

너무 드러났습니다.

 

옆집에서 빌려온

'손이 나왔네'라는 책이 있습니다.

 

아이가 옷 입는 과정을

묘사한 장편인데

이걸 제대로 읽어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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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가 앉았어요

"어어어어..."

 

"쿵"

 

"으앙~~"

 

예전에 없던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미루가 얼마 전부터 앉기 시작한 겁니다.

 

앉았다가 다시 엎드린 자세로 바꿀 때

잘못해서 머리를 바닥에 쿵 부딪히기도 합니다.

 

한 이주 정도 열심히 연습한 것 같습니다.

 

엎드린 자세에서 상체를 높이 세우고

다리를 몸 안쪽으로 가져 옵니다.

 

오른쪽 다리는 됐는데

왼쪽 다리는 안됩니다.

 

어떤 때는 엄마 얼굴 같은 걸 짚고

무릎을 꿇고 앉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어정쩡한 자세

 

어떤 자세든

팔로 바닥을 짚고 겨우 앉습니다.

 

그러기를 한참 하더니

오늘 아침부터는 두 다리를 모두 앞으로 하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저녁엔

드디어 손으로 땅을 짚지 않고

순전히 허리 힘 만으로 앉았습니다.

 

"똑딱, 똑딱.."

 

제가 혀로 시계 소리를 내니까

미루가 기어 옵니다.

 

입 속에서 혀가 움직일 때 마다

소리가 나는 걸 신기해 합니다.

 

엎드려서 한참을 보더니

몸을 천천히 세워

바닥에 팔을 짚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팔을 완전히 뗍니다.

몸이 곧추 섭니다.

 

미루가 처음으로

완벽하게 앉는 순간입니다.

 

"현숙아~미루 봐...앉았어!!!"

 

이제 바닥에 납작 붙지 않고

대충만 엎드려도

미루랑 눈 높이가 맞습니다.

 

미루는 이제 저를 올려다보지 않고

그냥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눈높이가 같아지니까

미루 눈동자에 비친 모습이 보입니다. 

 

눈동자 속에서

제가 계속 똑딱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허리 힘도 아주 좋습니다.

조금씩 까딱까딱 거리긴 해도

한참을 앉아 있습니다.

 

마주보고 있으면서

속눈썹을 세고도 남을 시간입니다.

 

미루가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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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기억

미루가 얼굴도 건조하고

또 변비가 있는 것 같아서

병원에 갔습니다.

 

"선생님, 얘가 또 며칠 째 똥을 안 싸는데요..."

 

"어디, 애 거기 눕혀봐요..."

 

의사선생님은

미루 배를 꾹꾹 누르십니다.

 

"뱃속에 딱딱한 게 조금 만져지긴 하는데,

아주 심한 정도는 아니예요..."

 

"네..."

 

"가만 있어봐...좀 더 확인해볼까? 기저귀 좀 내려주세요"

 

뭘 하실려고 그러시나

궁금했지만, 그냥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비닐 장갑을 끼더니

순식간에 미루 항문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습니다.

 

"으아아앙~~"

 

아,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하나

미루는 난생 처음 당하는 정말 당황스러운 일에 놀라

엄청 크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눈물까지 뚝뚝 흘립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을 돌립니다.

 

순간,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한 10년 전쯤에 장이 안 좋아서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었습니다.

 

검사실이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의사선생님은 안 계시고,

그냥 웬 아저씨가 작은 페인트 통에 담긴

흰 액체를 젓고 있습니다.

 

"저기, 대장 검사 하러 왔는데요..."

 

"아, 왔어요? 잠깐 이것 좀 젓고 있어요.."

 

그 아저씨는 처음 본 저에게

자기가 젓고 있던 흰 액체를 좀 저으라고 했습니다.

 

검사 받으러 온 환자한테

일을 시킨 겁니다.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자, 인제 이 가운으로 갈아입고 저기 누워요...속에는 옷 다 벗고.."

 

기계 위에 누웠습니다.

 

아저씨는 어디선가, 석유통에서 난로로 석유 옮길때 쓰는 도구 비슷한 걸 가져오더니

한 쪽 관의 끝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저한테 푹 꽂았습니다.

 

"헉..."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도구의 다른 한 쪽 끝은 아까 제가 저었던

하얀 액체에 담겨 있었습니다.

 

"쭉, 쭉, 쭉..."

 

하얀 액체가 관을 타고 몸 속으로 들어갑니다.

 

"모니터 봐봐요...저기 하얀거 퍼져 나가죠? 저게 있어야 사진이 찍혀요.."

 

시간이 꽤 오래 지났지만

아픈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미루가 눈물을 흘리면서 우는 심정을

저는 잘 압니다.

 

"뭐, 똥 거의 안 찼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그냥 두세요..."

 

"네..."

 

진료실 밖으로 나와서

저는 다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성스럽게 미루를 위로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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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붙어있기

미루가 급성장기에 분리불안이 겹쳐서

요즘 정말 험악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분위기 좋게 하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미루랑 하루 종일 바짝 붙어 있는 겁니다.

 

하루 내내 지겹도록 붙어 있으면

나중에는 미루가 먼저 떨어집니다.

 

떨어지긴 전까지는 많이 맞습니다.

 

"열 둘, 열 셋, 열 넷.."

 

미루가 제 얼굴을

계속 때리고 있습니다.

 

전 숫자를 셉니다.

 

"퍽퍽퍽~"

"열 다섯, 열 여섯.."

 

어릴 때 동생이랑 장난하면서

서로 툭툭 건들면 꼭 그걸 세어놨다가

나중에 갚아주던 습관이 살아났습니다.

 

"에이...그런 건 세면 안되지..."

 

자기가 맞는 것도 아니면서

주선생님이 간섭합니다.

살살 때리는 건 빼랍니다.

 

미루가 제 콧구멍을 잡더니

막 잡아 당깁니다.

 

"어..어...이런 건..?"

 

"..그런 건 기분 나쁘니까 집어 넣어.."

 

"열 일곱, 열 여덟...아싸!! 열 여덟대...인제 미루 너 대!"

 

너무 쪼그만해서 때릴 데가 없습니다.

 

장부를 따로 두고

맞을 때 마다 써둘까도 생각했는데

당연히 안 합니다. 치사해 보입니다.

 

"아악!!"

 

미루가 누워 있는 저를

이마로 받았습니다. 코를 정통으로 맞았습니다.

 

너무 아파서 순간적으로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야~!! 미루..이건 너무 하잖아..."

 

인상을 팍 쓰니까

미루도 움찔합니다.

 

아무리 8개월된 아기여도

분위기 파악은 합니다.

 

제가 코를 잡고 계속 아파하니까

옆으로 기어오더니

손을 제 얼굴에 댑니다.

 

딴에 위로하려고 하나 봅니다.

그새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미루는 손을 천천히 뻗어

제 얼굴에 댑니다.

 

그리고  눈꼬리를 잡더니

쭉 찢었습니다.

 

또 기분이 나빠집니다.

 

꼭 붙어있기는 참 힘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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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어디 갔어?

미루가 요새

이동능력이 굉장히 좋아졌습니다.

 

배밀이와 기기가

특이하게 결합된 폼으로

여기저기를 휘젓고 돌아다닙니다.

 

얼마 전까지 움직이던 거랑은

차원이 달라서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부엌으로, 작은 방으로 옮겨 다닙니다.

 

"미루야~!! 너 거기서 뭐해~~!!"

 

미루 몸이 반쯤 화장실에 들어가 있습니다.

손으로 화장실 바닥을 퍽퍽 치고 있는 걸 붙잡아 옵니다.

 

"어이구, 미루~~거실로 나올라구?"

 

피곤한 주선생님이 자는 사이

옆에서 자던 미루가 깨서

안방을 탈출하는 걸 제가 발견했습니다.

 

자기 의지를 갖고

어딘가로 향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입니다.

 

특히 평소에 사람이 잘 안 가는 곳,

가기 싫어하는 곳, 가봐야 즐겁진 않지만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곳

그런 곳을 향하는 건 특히 그렇습니다.

 

미루는 청소 안 한 탁자 밑

쓰레기통 옆, 재활용 쓰레기 모아 놓은 상자

이런 곳을 주로 향합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미루를

주선생님과 저는 항상 예의주시합니다.

 

"어?!! 미루 어디 갔어?"

 

주선생님이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습니다.

 

한참 곤히 자던 새벽.

자다가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미루가 없어졌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습니다.

 

밤 중에 자다가 어딜 갈 줄은 몰랐습니다.

자기 전에 방문을 완전히 안 닫은 게 실수였습니다.

 

무슨 큰 일이야 안 났겠지 바래면서도

마음은 쿵쾅쿵쾅 진정이 안됩니다.

 

온갖 상상이 머리를 때립니다.

 

미루가 쓰레기와 어울려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

화장실 바닥 위를 내달리는 광경

전선 위의 먼지 퇴적층을 시식하는 장면 등이 빠른 속도로 지납니다.

 

미루가 자던 곳을 다시 한번 쳐다봤습니다.

 

미루가 있던 그 곳

그곳에는

 

미루는 잘 자고 있었습니다.

 

주선생님이 처음에 잠 들 때

미루랑 같이 바닥에서 자다가

중간에 침대 위로 올라와 놓고는

 

새벽에 눈을 떴다가 자기 옆에 미루가 없으니까

그 난리를 친 겁니다.

 

"미루 잘 자는구만.."

 

"그래?"

 

"에이, 진짜...."

 

미루는 낮에만

여기저기 잘 돌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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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의 방법

주선생님이 청소 한다면서

안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상구, 나 살려줘~~으으으으"

 

전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안방으로 향했습니다.

빨리 갈 필요도 없습니다.

 

안방에 들어가니

주선생님이 미루 매트에 깔려 있습니다.

 

침대에서 둘만 자는 게 미안해서

미루 자라고 싱글매트를 하나 사다가

침대옆 바닥에 깔아줬는데

 

방바닥 청소할 때는 미루 매트를 들어서

침대 위에 올려놔야 합니다.

 

이때 주선생님은 꼭 미루 매트 밑에 깔려

얼굴과 팔 다리만 내놓고 버둥거리면서 저를 부릅니다.

 

이럴 때는 가서 그 광경을 봐주고

주선생님을 구출해줘야 합니다.

 

안 구해주면 언제까지 그러고 있다가

서서히 지쳐갑니다.

 

"우우워워워워~~"

 

"뭐해?"

 

"상구도 나랑 똑같이 한 번 해봐봐.."

 

하라는 데 안 하면 또 삐치니까

그냥 해줍니다.

 

"워워워..."

 

"어때? 답답하지?"

 

"응..답답하네.."

 

"요새 미루가 힘드니까 징징대는 건데 말은 못하고 정말 답답할 것 같애...방금처럼"

 

듣고 보니 미루 심정이

정말 답답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가만히 보면

미루가 요새 의사소통의 동작이나 표정이

많이 늘어났는데, 그런 것도 제대로 포착 못하는 것 같습니다.

 

고개를 흔들면서 싫다고 하는 걸

처음엔 얘가 왜 이러나 하고 말았고,

 

심심할 때 몸 꼬는 건 어른들도 자주 하는 건데

그것도 이해 못했습니다.

 

책을 찾아보니까 8개월엔

싫다 좋다는 표시도 하고, 몸을 뒤로 뻗대거나 밀어내고 끌어당기는 등

풍부한 몸짓과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다 미루가 하는 것들입니다.

 

미루의 소통 방식을 잘 듣고 보고

함께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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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잠을 방해하는 세력들 2

"으아아아아악~~~~"

 

거의 한 시간 넘게 아기띠로 안아서

미루를 재우기 직전에

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엎어져 있던 미루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고개를 번쩍 듭니다.

 

"현숙~~!!! 왜 집으로 전화했어~!! 핸드폰 있잖아~~"

 

"핸드폰 안 받길래..."

 

"그럼, 애 재우고 있는 줄 알아야지, 왜 집으로 전화를 해...왜!"

 

핸드폰 번호를 널리 알리고 있건만

꼭 집으로 전화가 올 때가 있습니다.

 

제일 전화 많이 하시는 건

시골에 계신 어머니이십니다.

 

"미루 자냐?"

 

그럴 때마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다가도 깨겠네요...'

 

어머니한테 들리기는 이렇게 들릴 겁니다.

 

"네, 자요...헤헤"

 

두번째 많이 전화하는 건

핸드폰 교환하라는 업체 전화입니다.

 

'휴...우리집에 애 있다는 정보는 확보 못 하셨나보죠...'

 

물론 전화하신 분한테는

이렇게 들릴 겁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통화를 못할 것 같은데 다음에 전화 주세요..."

 

그 동안 감정이 쌓여 왔지만

괜히 전화한 사람한테 투덜거릴 수 없어서 참아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화가 터진 겁니다.

 

"미안해...내가 왜 그랬지..미안해, 정말..."

 

주선생님

진짜 재수없습니다.

 

생전 집으로 전화 안 하다가

딱 한번 한 겁니다.

 

전 그 한번을 제대로 물었습니다.

 

"요새 미루 재우는 거 얼마나 힘든 지 알잖아..

지금도 한 시간 넘게 해서 겨우 재우기 직전이었는데...어휴, 씨.."

 

주선생님은 제가 있는대로 성질 내는 걸

다 들은 다음 전화를 끊었습니다.

 

실컷 화 내니까 기분이 풀립니다.

 

미루는

1시간 30분 더 보채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시 화가 부글 부글 끓습니다.

 

요 며칠

전화선 뽑아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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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징징

미루가 밤새 징징댑니다.

단 1초도 쉬지 않고 징징댑니다.

 

칭찬도 24시간 내내 들으면 지겨운데,

징징대는 걸 24시간 듣는 건...와, 진짜 미치겠습니다.

 

밤엔 자다깨다를 수십회 반복 후

발작적으로 울어대는데,

제 머리뚜껑이 들썩들썩합니다.

 

미루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새벽 3시 40분

 

12시 직전에 자러 들어갔는데

4시간 가까이 잠을 설치다 나온 겁니다.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미칠 듯이 힘이 듭니다.

 

한달 쯤 전에 감기 걸려서 고생한 이후로

지금까지 내내 생활이 엉망진창입니다.

 

미루를 안아 달래다가 내려놨습니다.

저를 도둑놈 보듯이 쳐다 봅니다.

 

"미루야~왜 그래..나, 아빠야 아빠..너랑 8개월 동안 지지고 볶았잖아..."

 

"......"

 

말이 없습니다.

계속 징징거리더니, 갑자기 밝은 데로 나와서 놀랬나 봅니다.

 

뒤쫓아 나온 주선생님한테 물었습니다.

 

"근데...미루 지금 몇 주지?"

 

"35주 넘어가고 36주 다 됐지..."

 

"36주?"

 

이럴수가, 36주라면

그 유명한 급성장기입니다.

 

애들이 느닷없이 팍팍 커서

몸도 놀라고 마음도 놀란다는 주간입니다.

 

정말 급성장기라서 그렇게 징징댄 거였으면

미루한테 참 미안한 일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화만 냈습니다.

 

그 동안 쌓였던 신경질이

얼렸던 이유식 녹듯 녹습니다.

 

"음...미루야 고생이 많다...토닥토닥.."

 

험악했던 분위기가

아끼고 챙겨주는 분위기로 바뀝니다.

 

"미루야...많이 힘들지..?

우리 기분전환 좀 하고 다시 자자..."

 

그렇게 달래고 나서 미루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이번엔 징징대지도 않고, 깨지도 않고

잘 잡니다.

 

우리도 겨우 한숨 잡니다.

이렇게 얼마라도

잠을 자야 겨우 살 것 같습니다.

 

......

 

 

방이 환해지는 게 벌써 아침인가 봅니다.

 

"이잉...낑..끼잉...징징징.."

 

또 하루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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