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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우리는 MB심판을 위해 입을 닫아야 하는가?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5/04 11:48
  • 수정일
    2012/05/04 11:4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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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9일 집단 폭력을 가능하게 한 진영논리
 
4월9일 저녁, 시청 광장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 날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과 잡년 행동의 성원 4인은 시청광장에서 통합진보당 정진후 비례대표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피켓 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시위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피켓 시위가 시작된 지 30분 남짓 흘렀을까. 집회 참가자들 일부(200명 가운데 20명 정도)는 이들의 피켓 시위에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피켓을 부수고 피켓 시위 하는 사람들을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진영논리, 그 단순한 이분법 
 
피켓 시위를 하는 사람들에게 집단린치를 가한 사람들의 논리는 단순명쾌했다. ‘조중동이 이러한 시위를 찍어가면 MB심판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피켓 시위에 처음으로 시비를 걸었던 군복을 입은 중년 남성은 “여기 조선일보 기자가 와서 당신들 사진 찍어가면 당신은 스타 되고 여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바보 되는 거야”라면서 “누구 좋으라고 이러는 거야”라고 하기도 했다. 
 
이는 최근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진영논리를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반MB 정서가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나는 꼼수다>는 촛불집회 이후 직접행동의 양상으로 터져나오지 못한 반MB 정서를 속 시원히 긁어주는 역할을 했다. <나꼼수>는 의혹투성이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사안들에 대해 일종의 설명의 틀을 제공하였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그것은 바로 이 모든 것이 ‘가카의 꼼수’란 것이었다. 
 
<나꼼수>의 이러한 접근은 사람들의 불만을 표출하는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었으나 반MB와 다른 모든 것을 MB를 지지하는 쪽(대표적으로 조중동)의 음모나 꼼수로 이해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이러한 말은 최근 사용되는 ‘알바’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거나 대세와 다른 의견을 가지는 댓글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알바’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비일비재한 일이 되고 있다. 특히 반MB에 동조하지 않는 의견,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에 동조하지 않는 의견은 손쉽게 ‘알바’라는 이름으로 무시되었다. 4월 9일 시청광장에서 집단 린치를 가한 사람들 역시 피켓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새누리당 알바’, ‘한나라당 알바’라고 부르면서 피켓 시위를 저지했다.
 
진영논리, 내부의 문제제기를 묵살하다
 
이러한 진영논리의 문제점은 자신이 속한 진영에 유리한지 불리한지 여부로 모든 것을 판단하게 한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 진영논리는 진영 내·외의 문제제기를 자신이 속한 진영을 해치는 것으로만 여기게 만든다. 그에 따라 문제제기에 대한 묵살과 폭력적인 대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상당수다. 
 
최근의 여러 사건들은 진영논리가 어떻게 문제제기를 묵살하는지 잘 보여준다. 백분토론에서 시민논객이 유시민에게 던진 질문을 둘러싸고 상당수의 네티즌들이 보여준 태도 역시 그런 사건 중 하나다. 백분토론에서 한 시민논객이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한 사람들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한 통합진보당에 문제제기 하는 일이 있었다. 백분토론이 끝나고 네티즌들은 이 시민논객이 새누리당 비대위 회의 사진에 찍힌 남성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백분토론에서 그 남성이 제기한 문제는 ‘새누리당의 꼼수’로 여겨졌고 남은 것은 ‘유시민, 시민논객 완벽제압’ 정도였다. 그 이후 새누리당 비대위 회의 사진의 남성은 백분토론의 시민 논객과 다른 사람임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그가 제기한 문제제기는 이미 묵살되고 난 이후였다. 문제제기에 대한 내용이 논쟁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한 사람의 ‘알바’ 여부만이 논쟁이 되었던 것이다.
 
4월 9일, 집회에서의 피켓 시위에 대한 폭력 사태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집단린치를 가한 사람들은 피켓 시위를 통해 알리려는 내용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사태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심지어 잡년행동과 피해자지지모임의 성원들이 계속적으로 피켓시위의 이유를 설명했음에도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이름도 ‘정진수’라고 잘못 알 정도였다. 결국 집단린치를 자행한 사람들에게는 이 피켓 시위가 반MB에 도움이 될지 안 될 지, 그것만이 중요했다. 
 
적으로 몰리는 여성주의적 문제제기
 
진영논리에 의해 묵살되는 문제제기가 많은 만큼, 진영논리에 대한 비판과 갈등 역시 많았다. 특히 2012년에는 여성주의적인 문제제기가 진영논리에 의해 묵살되는 모습을 보였다. 올 해 가장 처음으로 진영논리가 이슈화된 것은 비키니 시위와 <나꼼수>가 보인 태도에 대한 것이었다. 경향신문이 <나꼼수>의 관련 발언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하자 SNS에서는 경향신문에 대한 비난과 절독을 하겠다는 사람들까지 나타났다. 주요한 논리는 왜 조선일보와 같은 논리를 들이대냐는 것이었다. 한 사안에 대한 입장이 그 입장 자체로 평가되지 못하고 누구와 같은 논리인지 여부가 판단기준이 되는 진영논리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후, 총선 즈음에 이슈가 되었던 것은 김용민의 막말 파문이었다. 여기서 진영논리를 잘 보여주는 것은 김용민을 지지하고 야권연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탁현민씨는 “오늘까지 이어지는 새대가리당의 찬란한 성희롱의 역사에 비하면 김용민의 발언은 집회하다 교통신호 어긴 것 쯤 된다. 낮에 본 트윗처럼 그가 한 말이 성희롱이라면 전두환을 살인마라고 하면 노인학대고 이명박을 쥐새끼라고 하면 동물학대다”라는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이들에게 성희롱 문제는 더 큰 대의인 MB심판을 위해서는 넘어갈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심지어 단순한 김용민 막말에 대한 포용을 넘어 “김용민을 끌어 내리려는 정치 알바들의 공세”라는 트윗들이 보이기도 했다.
 
4월9일 시청광장에서 진행한 1인 시위 역시 피해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조직 내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옹호한 정진후 후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 피켓 시위는 MB 심판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폭력적으로 철거되었다. 이들에게 성폭력 문제, 여성에 대한 문제는 언제나 ‘우리 진영’을 위기에 빠뜨리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우리 진영이 아닌 적일뿐이었다. 
 
성폭력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 진영논리로 수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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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는 불특정 다수의 집회참가자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조직들의 조직보위논리 역시 진영논리와 유사하다. 4월 9일의 피켓 시위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집단린치를 가능하게 했던 논리는 역설적이게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에서 부딪혔던 조직보위논리와 매우 닮아있었다. 2차 가해자 중 1인인 정OO은 이 사건이 알려지면 민주노총 및 피해자 소속 연맹에 대한 음해와 부당한 공격이 가해질 것이며 악의적인 언론보도로 피해자도 힘들어질 것이라는 말로 피해생존자의 고소입장을 바꾸기 위해 끈질기게 설득하였다. 사건의 제대로 된 해결보다는 피해생존자의 침묵과 희생을 요구하던 조직은 4년 째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사과는 커녕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가면서 가해자들의 징계를 감경시킨 정진후 당시 전교조 위원장은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후보가 되었고, 이제는 국회의원까지 되었다. 
 
정OO가 한 발언은 여성주의적 문제제기가 상대 진영에게 도덕적 타격의 빌미를 준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4월9일 집단린치를 했던 사람들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소위 ‘진보’와 ‘민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역시 성폭력의 문제를 가해자 개인의 도덕성의 문제로 여긴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이 있다는 것 자체를 숨겨야 할 것으로만 생각한다. 집단 전체의 도덕적 이미지를 갉아먹고 그것은 전체 ‘진영’에, 전체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주의적 문제제기는 불편한 진실로 여겨지고 때로는 폭력적으로 묵살된다. 
 
이 때 진영논리가 등장한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상대 진영에게 비난의 근거를 준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꼼수로 왜곡된다.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순수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어떤 꼼수와 ‘정치적’ 의도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을 받는다. 결국 공동체의 성원들이 피해자의 행동을 ‘우리 집단, 조직’을 해치려는 과도한 행동으로 여기게 된다. 여성주의적 문제제기를 도덕주의적으로, 집단의 이미지 유지를 위한 수단적인 것으로 접근하는 한 성폭력/성희롱 문제는 진영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피해자의 문제제기는 묵살되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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