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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관동지회 강민주 사무국장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5/04 12:46
  • 수정일
    2012/05/04 12:46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편집자주] 이번 총선에는 유달리 후보의 성폭력 전력이나 여성비하적 발언 등과 관련한 논란이 많았다. 이는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통진당이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례대표 4번으로 공천한 것을 규탄하는 1인 시위와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정진후 의원은 2008년 말에 발생한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 당시 전교조 위원장이었다. 그는 전교조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가진 피해생존자와의 독대자리에서는 ‘전교조 내 2차 가해자 3인의 자숙 기간 3년과 공개 사과’라는 피해생존자의 요구대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가 대의원 대회에서 내놓은 안은 위의 내용과 전혀 다른 2차 가해자의 징계 감경을 추인하는 내용이었다. 위원장의 안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많았음에도 그러한 의견들은 묵살되었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정진후 의원은 피해생존자가 직접 후보사퇴를 요구하러 찾아갔지만 피해생존자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진후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관동지회’, ‘잡년행동’ 및 여러 단체와 개인들은 3월 초부터 성명서를 내고 1인 시위를 하였다. 또한 3월 16일부터 매주 금요일에는 관악구 이정희(후에는 이상규) 사무소 앞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에서는 이번 투쟁과정에 적극적으로 함께한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관동지회’와 ‘잡년행동’ 활동가를 만나 이번 투쟁에 결합하게 된 배경과 심경을 들어보았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왔다. 개인적이든 초등관동지회에서든 그 간 이와 관련하여 활동하신 것이 있다면 어떤 활동들을 함께했나
 
개인적으로는 후원금을 낸 것 이외에 특별히 한 것은 없다. 초등관동지회 집행부들이 움직인 것은 이번 4.11 총선을 앞두고 정진후가 비례대표로 추천되면서부터다. 정진후가 사퇴할 때까지 그리고 피해자 동지가 치유될 때까지 피해자 동지와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번에 정진후 공천과 관련하여 문제가 불거졌다. 정진후가 공천된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노총 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시기에 정진후는 전교조의 핵심에 있었고, 그 핵심 권력을 휘두르며 피해자 동지에게 거짓과 기만으로 일관했다.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채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기만이다’라는 글귀가 생각난다. 조직 보위라는 미명하에 조합원을 소모품 취급하며 철저히 저버리는 사람이 노동자 민중을 위한 교육개혁을 말한다는 것은 사기다. 그래서 사기꾼 정진후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총선 전까지 매일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정희(후에는 이상규)후보의 사무실 앞에서 1인 시위와 촛불집회를 진행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3월6일 초등관동지회 집행부 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정진후가 통진당 비례대표로 추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 지회 조직부장인 조영원 선생님이 1인시위라도 하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머지 집행부들도 시간나는 대로 결합하기로 했다. 1인시위라도 몇 명이 함께 할 거라면 집회 신고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조영원 선생님의 아이디어로 집회신고를 한 달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주위에 알려나가면서 금요일은 촛불집회 형식으로 진행하여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집회는 3월 9일부터 4월 10일까지 진행하였고 매주 금요일과 마지막 날인 4월 10일은 촛불집회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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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진행한 1인시위와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아래는 개인적인 평가다. 집행부 회의에서 처음에 1인시위 이야기가 나온 후 집회신고를 하고 한 달간 집회를 하자고 결의를 모았을 때만해도 이 집회의 의미는 단순한 문제 제기 수준이었던 것 같다. 이정희 사무실 앞에서 매일 집회를 한다고 해도 정진후가 사퇴를 하거나 통진당이 눈이라도 한번 껌벅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우리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쓸 사람들 같았으면 정진후를 후보로 추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전교조라는 조직에서 그리고 ‘통합진보당’이라는 ‘소위’ 진보당에서 일어나고 있었기에 우리의 분노를 어떻게라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정희 사무실 앞 집회를 하면서 이 투쟁이 정당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피해자 동지의 편에 서서 집회를 할 수 있었던 점, 피해자 동지가 금요일마다 진행된 촛불집회에 함께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선거기간 동안 피해자 동지에게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관동지회에서 한 달간 진행한 집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동지가 관동지회에 보내온 편지를 읽고 한참을 울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관동지회 선생님들도 피해자 동지의 편지를 받고 함께 울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마지막 집회가 있었던 4월10일에 함께 결의했다. 이 집회는 선거를 앞 둔 마지막 집회이지만 우리는 피해자 동지와 끝까지 함께 투쟁할 것임을. 피해자 동지가 다시 전교조 조합원으로 우리와 함께 투쟁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피해자 동지와 함께 할 것임을 다짐했다.
 
4월21일 전교조 집회에서 심상정 의원이 발언하는 것을 제지하셨는데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해 달라. 그리고 그때의 심경은 어떠했나
 
4월21일 집회에 관련된 전교조 위원장 서신을 메일로 받았다. 집회 일정도 나와있더라. 통진당 대표와 전교조 출신 국회의원 2명의 발언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 메일을 읽고 바로 아래와 같은 글을 써서 전교조 홈페이지 조합원마당에 올렸다. 발언을 제지한 이유는 아래의 글로 대신하겠다.
 
4월 21일 집회 웹자보와 함께 온 위원장 서신을 읽었습니다.
일정 중에 연대사1 : 통합진보당 당대표, 국회의원 당선자2인 이라 되어있더군요.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성폭력피해자에게 거짓와 위선으로 일관한 국회의원 정진후를 전교조 집회에 세울수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당하게 정진후를 비례대표로 만들고 국회의원까지 만든 통진당 대표의 발언도 들을 수 없습니다.
왜냐구요?
성폭력피해자 외면하는 사람과 정당은 진보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보위라는 미명하에 개인을 소모품 취급하여 철저히 저버리는 사람과 조직은 교육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21일, 그 날!
단상을 점거해서라도  두 사람의 발언을 꼭 막겠습니다.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피해자의 치유를 진정으로 바라는 동지들!
더이상 전교조가 피해자에게 조직적 가해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동지들!
21일, 그 날, 함께 해 주십시오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관동지회 사무국장 강민주 드립니다.
<추신>
앞으로 서울지부 모든 행사에 국회의원 정진후가  나타난다면 똑같이 행동할 것입니다. 이 투쟁은 피해자 동지가  치유되고 다시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 때 현수막을 들고 집회가 끝날 때까지 단상에 있었다. 심상정이 가고 집회는 계속 진행되었다. 현수막을 들고 있는 우리 앞에서 웃고 떠들며 손뼉치며 전교조는 12월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통해 법을 개정해서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자고 했다. 중간 중간 저희들을 보고 ‘내려와, 그만해...’라는 발언들이 있었지만, 힘을 가지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약자들에게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인 ‘무시’로 일관했다. 
그 자리에서 무엇을 느꼈느냐면,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들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학교 교무회의 시간에 일어나 학교의 비민주적인 행태나 전교조 관련 일에 대해 발언을 할 때면 교무, 연구, 신우회 소속의 선생님들, 즉 교장 교감의 마름들이 일어나 교장, 교감 편을 들며 저를 공격한다. 하지만, 아무도 저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교무회의 자리에서도 나는 외롭거나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다. 내 뒤에는 전교조라는 든든한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1일 그날 단상에서는...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처음으로 절망을 느꼈다. 내가 의지했던 든든한 전교조가 아무리 소리치고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벽’이었음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제가 이렇게 답답하고 절망스러운데 피해자 동지는 4년 동안 어떠했을까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래서 집회 내내 흐느끼면서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떻게 민주노총이라는 조직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어떻게 전교조라는 조직에서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려고 하는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피해자 동지가 어떤 마음으로 민주노총 이석행 전 위원장의 도피처를 흔쾌히 제공해 주었는지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몇 년도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발전노조 파업당시 전 조합원 산개투쟁을 전개했다. 그 때 나는 동해화학 동지들이 우리 집에서 지낼 수 있도록 열쇠를 건네 준적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아는 선배 집에서 지내며 너무나 뿌듯했다. 역사적인 발전노조의 파업투쟁, 산개투쟁에 나도 아주 조금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투쟁이 정리되고 집으로 가보니 동해화학 동지들이 써 놓은 메모가 있었다. 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6줄 정도 되는 글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 메모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조직일로 힘들고 지칠 때,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하는 생각에 빠질 때, 그 메모를 보면서 힘을 받곤 한다. 이렇듯, 투쟁하는 동지들을 위해 자신의 집을 흔쾌히 내어주는 마음을, 이석행 전 위원장의 도피처를 제공해 준 피해자 동지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믿었던 동지들이 배신을 하다니... 그렇게 믿었던 동지들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일들을 버젓이 저지르다니...
이 사건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조합원들 중에서도 그렇다. 앞으로 이 사건의 진실을 계속 알려나가고 피해자 동지와 함께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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