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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잡년행동 랜디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5/04 12:51
  • 수정일
    2012/05/04 12:51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편집자주] 이번 총선에는 유달리 후보의 성폭력 전력이나 여성비하적 발언 등과 관련한 논란이 많았다. 이는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통진당이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례대표 4번으로 공천한 것을 규탄하는 1인 시위와 촛불집회가 이어졌다.
정진후 의원은 2008년 말에 발생한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의 처리과정 당시 전교조 위원장이었다. 그는 전교조 대의원 대회를 앞두고 가진 피해생존자와의 독대자리에서는 ‘전교조 내 2차 가해자 3인의 자숙 기간 3년과 공개 사과’라는 피해생존자의 요구대로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가 대의원 대회에서 내놓은 안은 위의 내용과 전혀 다른 2차 가해자의 징계 감경을 추인하는 내용이었다. 위원장의 안에 반대하는 대의원들이 많았음에도 그러한 의견들은 묵살되었다. 이번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정진후 의원은 피해생존자가 직접 후보사퇴를 요구하러 찾아갔지만 피해생존자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정진후 후보 사퇴’를 요구하는 ‘민주노총 김OO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지지모임’,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관동지회’, ‘잡년행동’ 및 여러 단체와 개인들은 3월 초부터 성명서를 내고 1인 시위를 하였다. 또한 3월 16일부터 매주 금요일에는 관악구 이정희(후에는 이상규) 사무소 앞에서 촛불집회를 진행했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에서는 이번 투쟁과정에 적극적으로 함께한 ‘전교조 서울지부 초등관동지회’와 ‘잡년행동’ 활동가를 만나 이번 투쟁에 결합하게 된 배경과 심경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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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년행동 이외에 이러한 활동에 함께 한 적이 있는가
 
삼성 모바일에서 기획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삼성 홈페이지에 보이지도 않는 페이지에다가 웹진을 하나 만들어 놓고서 인디밴드들을 취재해 오라고 하더라. 내가 처음에 두리반에 갔을 때가 아마 그것 때문에 갔을 거다. 두리반은 좀 말기에 갔었고.
이후에 결합한 마리에서는 거의 상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박정근 씨는 아마 아실텐데 그분하고 같이 사진전도 했고. 8월 3,4일 경에 대규모 침탈이 일어났다. 그 때 찍은 사진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고.
 
그 전부터 마리, 두리반과 같은 투쟁에 관심이 있었나
 
대학 때. 난 대학 때 사진전공을 하지 않았다. 성공회대학교에 전산정보학과라고 거기 처음 입학했었다. 그 학과의 처음 학번은 아니었고. 98학번이니까. 사진이랑 별 상관없는 전공을 하고 군대 갔다 와서 바로 사진 일을 시작했다. 
알다시피 98학번쯤 되면 그 땐 운동권에는 NL밖에 없었을 때다. 나도 처음했던 게 고등학교 때부터 97년 연세대 투쟁할 때, 밖에 나가서 맞고 들어오는 게 내가 처음 했던 거였다. 그 때 학교 땐 그게 다 하는 일인 줄 알았고. 저도 어렸으니까 다른 걸 몰랐다.
대학을 갔다 오고 나서 웨딩스튜디오 할 때, 한 동안 현장에 못나갔다.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스튜디오 이런 일이 보통 거의 휴일이 없다. 내가 스튜디오 일을 하기 전에는 현상소 일을 했다. 현상소 일은 하루 12시간 일한다. 거긴 진짜 휴일이 없다. 비유적 표현으로 휴일이 없다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휴일이 없다. 월화수목금토일 전체 나가야 되고 당연히 야근수당 없고, 그 때 한 100만원 받았나? 배운다는 명목으로 일을 하는 거다. 도제였다.
그래서 웨딩스튜디오 일을 하다가 제가 일을 그만두었다. 일을 배운 건 있었는데 옛날부터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그거 그만두고 나서) 처음 시작했던 게 인디밴드 인터뷰였다.
삼성모바일에 제일 처음 이야기했던 건 사진은 무조건 흑백으로 하겠다는 거였다. 흑백으로 찍는 것은 내가 객관성을 포기하고 내가 무엇인가를 지향하겠다는 거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객관성을 뭐 하러 유지하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두리반과 마리 갔을 때부터 그랬다. 보통 사진가들은 프레스 완장을 두르고 “아 나는 사진 찍는 기자니까 절 때리지 마세요”라는 어필을 한다. 그런데 난 그거 대신 채증방지 스카프를 둘렀고. 그 입장으로 들어가면 절대 보호받을 수가 없다. 나는 옛날부터 공감하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작년 잡년행동 때 그것을 알게 되었다. 7월16일에 첫 잡년행동이 있었는데 그 당일에 포토라인이 아주 자연스럽게 생겼다. 그리고 우리가 사전 준비를 그 전날부터 그 저번 주부터 열심히 했었는데 아무도 취재오지 않았다. 사진 취재 온 사람은 아무도 없고. 하다못해 기자들 중에 저희랑 인터뷰한 사람도 없었다. 그냥 와가지고 포토라인 앞에서 열심히 사진 찍고 이제 필요한 사진 건졌으니까 그냥 갔다. 그 행사가 끝나고서도 그 뒤로 많은 행사, 행진 말고도 굉장히 많은 행사들이 있었는데 기자들은 필요한 사진 찍고 나니까, 행진 끝나고 나니까 그냥 다 가버리더라. 그리고 나하고 또 다른 사람 말고는 그 뒤에 행사 사진은 아무도 찍은 사람이 없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온 사진들은 다 뻔했다. 그게 이제 우리가 인터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한국잡년행동 사진들이다. 사진들이 전부 다 똑같고.
내가 사진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제가 많이 본, 유서깊은 사진들을 보면 사진 캡션에 제일 많이 써 있었던 말이 “나는 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 사람하고 며칠을 같이 보냈다.” 이런 말이 제일 많이 적혀있었다. 나는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아무도 안 그런다.
 
잡년행동에는 어떻게 같이 하게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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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처음엔 다 그렇듯이 트위터 보고 같이 하게 되었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주장이 많았기 때문에. 나는 잡년행동에 대한 첫 번째 오해는 여기서 시작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여성들이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나는, 꼭 나만이 아니라 (잡년행동 내)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실제 잡년행동에는 여성들만 온 게 아니라 성소수자들도 많이 왔고, 남자들도 많이 왔고.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왔었다.
잡년행동의 기본정신은 그거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는 권리에서 시작을 했지만 근본적으로 얘기를 더 하고 싶은 것은 인간에게는 신체의 자유가 있다는 거다. 여성에게는 당연히 자유롭게 입을 권리가 있고 남자나 성소수자나 혹은 다른 사람들도 자유롭게 자신의 신체에 대해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거다. 그게 잡년행동의 주요 정신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첫 행사 하기 전부터 트위터에서 그 얘길 많이 했었고 많이 공감받았다.
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아, 야하게 입고 오는 퍼포먼스다’ 이렇게 이야길 하지 않나. 그런데 난 그 때 정장을 차려입고 갔다. 왜냐면 그게 남자를 표현할 수 있는 되게 멋진 옷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저는 헤테로 섹슈얼 남자로서 정장을 하고 갔다. 아직도 나를 표현하는 것 중에 제일 좋은 의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다른 외국의 상황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잡년행동, 잡년행동에서는 다른 사안에 대해서 연대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잡년행동 한 당일도 여성가족부 앞 현대차 성희롱 피해자 농성장에 갔다고 알고 있고, 지금 정진후 후보 사퇴 관련해서 같이 투쟁하는 것도 그렇고. 그런 것이 어떻게 가능했나
 
일단 처음에 말했던 최초의 잡년행동 때부터 이야기를 해보자면, 토론토에서 처음 시작이 되었지 않나. 그게 미국으로 확대가 되었고. 미국 잡년행동은 이후에 어떻게 활동하게 되었냐면, 월가에 집중했다. 거기도 마찬가지로 그래요. 그게(월가 점령)가 모든 이슈를 흡수했다. 월가 이후에 더 이상의 잡년행동은 거기서도 없는 상황이고. 우리는 이제 2011년 7월에 처음 했었고 그 다음에 잡년 난장이 또 한 번 있었다. 현대차 성희롱 피해자 농성장에서 시위가 있었고.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행사를 많이 못했다.
우리가 첫 행동 이후 너무 오랫동안 뻗어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올 해 여성의 날 행사가 계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가 다른 행사를 해야 하는데 그 때 우리가 제일 핵심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었다. 나꼼수 비키니 사건이 현안이었고 그런데 그게 우리가 행사를 하던 당시로 봤을 때는 약간 유행이 지난 이슈였다. 그 때 우리가 뭐에 주목을 할까 생각을 해봤을 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었었던 게 정진후 사태였다. 그런데 그 때 우리는 연대한 적이 없었다보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었고. 이게 선거법에 걸리는 행위일까 우리도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4월 4일 국회의사당에 잡년행동에서 1인 시위 하러 갔을 때에도 스케치북에 정진후 후보 이름을 대놓고 써놨더라. 선거법 위반으로 걸리면 벌금이 거의 300만원이 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원래 잡년행동 내부에서도 집회에 나오자는 얘기는 여성의 날 행사 때부터 했었다. 왜냐하면 이 사안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촛불집회가 있다는 얘기는 이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피해자 대리인 분한테 들었고 이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전부터 느끼고 있기는 했지만 3월 10일 여성의 날 행사를 하고나서 우리 행사도 나름대로 계속 해야겠지만 더 많은 연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여성의 날 행사에서 제일 많이 그런 페이소스를 느낀 게 요양보호사분들이었다. 요양보호사 분들이 100만 요양보호사 권리 쟁취를 위해 올라오셨다. 전국의 70% 이상의 요양보호사들이 100만원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고, 그래서 그것 가지고 싸우고 있다. 실재로 요양보호를 하는데 자신들이 요양보호를 받아야 할 정도로 여러 가지 직업병에 시달리는 분들이 많더라. 어머니도 요양보호사를 하고 계시고. 그래서 그런 페이소스를 많이 느꼈고. 우리가 여성이란 이름으로 연대를 하고 있는데 여성은 세상의 반의 이슈를 포괄할 수 있는 그런 문제지 않나.
그래서 나는 그 때 거기 있던 사람들과 같이 하면 거기서 만났던 단체 분들이 우리에게 많은 힘을 실어 줄 수가 있고 또 우리도 그 분들에게 많은 힘을 실어 줄 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저희 말고도 그 날 행진했던 단체들 모두가 느끼지 않았을까?
 
연대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불만이나 부담스럽다는 사람은 없는가
 
우리는 개인참여다. 우리가 하자센터에 입주하고 조직화를 하는 것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조직화를 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어떤 당이나 강령 이런 걸 내세울 수 있는 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선언문이나 어떤 텍스트를 작성을 하더라고 강령을 내세우진 않을 것 같다. 강령이 있다는 건 당원들이 약간의 이견이 있더라도 여기에 따라달라는 뜻이지 않은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나가도 좋습니다’ 이런 거 아닌가.
 
잡년행동에는 기본적으로 그런 건 없다. 앞으로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딜 가는데 못 나가면 인간으로 누구나 미안함 같은 건 있다. 그런데 그거 가지고 멘붕(멘탈붕괴,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나오지 않았다고 매일 미안해하다 보면...우리같이 특히 강령으로 묶이지 않은 사람들은 계속 미안해하다보면 자책감에 너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같이 연대를 못하니까 그거가지고 계속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한 분위기부터 일단 없애고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진후 사태에 대한 투쟁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다
 
꼰대 같은 얘기지만 옛날 얘기를 한 번 해보겠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내가 운동권을 할 때에는 다들 알고 있는 NL밖에 없었고 그런 활동을 했었다. 그 때에는 누구나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내가 그곳을 나오면서 대자보에 ‘고립을 구하여 연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써놓고 나왔다. 그 말은 지금 생각해도 잘 쓴 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때 그 말을 하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었다.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굉장히 유의미하고 앞으로도 유의미할 거다. 그런데 나는 그 때 느꼈다. 지금 운동권에서도 옛날에 있었던 일이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같은 운동권 내에서도 성폭력이 있고 내부분열이 있고. 어제까지 연대했던 사람들이 오늘은 또 적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럴 때 연대 자체에만 매몰되어가지고 아, 이게 아니면 나는 죽어, 이게 아니면 난 사는 의미조차 없어 라는 동지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얘기를 해줬다. 난 고립을 구했기 때문에 연대를 오히려 구할 수 있었던 거라고. 연대가 나를 떠나더라도 실존적인 내가 존재하고 있지 않나. 나는 그래서 실존적 개인들이 자신이 실존하고 있는 개인이라는 걸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그래서 매번 사회 이야길 하는 건 좋은데 거기서 왜 항상 실존하고 있는 개인의 말은 없는가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사회에 대한 문제를 생각을 하는 건 좋은데 왜 자신에 대한 문제는 잊혀지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우리가 투쟁을 하는 것도 만약 지금 이 투쟁으로 인해서 승리를 반드시 해야 되고 뭔가를 꼭 바꾸기 위해 투쟁하는 거라면 아마 그 사람은 절대 활동을 지속하진 못할 거다. 그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지칠 것이고, 자신이 믿고 있던 연대에 의해 버림받을 거다. 자신이 고립을 구하지 못한다면 승리는 드물고 패배는 판을 치는 이 바닥에서 아마 오랫동안 버티진 못할 거고 끝내는 자신들이 경멸했던 사람들의 길을 걸어가게 될 거다. 나는 그것을 10년, 15년 전의 선배들의 모습에서 보고 있다. 지금도 아마 똑같이 갈 것이라고 생각되는 걸 보면 저는 사람들이 개개인의 자신의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이 투쟁은 그것에 대한 투쟁이라고 생각을 한다.
잡년행동 친구들이 이번 사건의 피해자 지지모임과 같이 연대하는 것도 솔직히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지금, 개인적인 사정들이 다 있기 때문에. 아마 거의 칠월하고 나만 계속 오고 있을 거다. 잡년행동이란 이름을 걸고, 아 저희가 잡년행동 공식계정에서 “잡년행동 여기 지지 연대했습니다” 하고 내보내는 것보다 잡년행동 안에 있는 랜디와 칠월이라는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거다. 한국의 잡년행동을 모이게 한 점도 그 점이 아닐까 한다. 개인에게는 개인의 권리가 있고, 우리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개인의 신체적 기본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거다.
 
앞으로 잡년행동의 활동방향은?
 
잡년행동은 아마 방금 말씀드렸듯이 계속 연대할 것 같다. 잡년행동이라는 내가 여기에 있고 많은 연대들이 있다. 그쪽과 손을 잡자라는 것, 그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손을 맞잡았으면 좋겠다. 그게 잡년행동의 나아갈 방향인 것 같고.
그리고 더 많은 말을 할 것 같다. 3월 10일 행사 때 이런 일도 있었다. 나도 사진가를 담당하고 있지만 잡년행동 잡년행진의 멤버다. 같이 연대도 하고 있고. 그런데 내가 그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어디 신문사에서 나오진 않았는데 뉴시스 같은 그런데 사진을 판매하는 프리랜서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가더라. 그 때 어떤 사진가들이 포즈를 취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포즈를 취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 거기 남자분은 좀 비켜달라는 거다. 그날 되게 어이없었다. (그 사람들은) 여자를 찍어가고 싶었던 거다. 나는 그 때 우리가 더 많은 말을 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잡년행동는 기본적으로 위악적인 집단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 듣기 싫으면 꺼져라라는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그런 래디컬하고 위악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게 우리 정체성이다. 그건 우리 정체성이기 때문에 아마 그걸 포기할 수는 없을 거다. 그걸 포기하면 잡년이 아니니까. 이 위악적인 정체성 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버리고 한 번 참년으로 한 번 나가볼까 하는 얘기를 하기도 했지만 흐지부지 되었다. 아마 계속 이렇게 나갈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 대해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는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사진가니까 많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가 트위터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앞으로는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서도 공식적인 말을 더 많이 할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여성은 그리고 인간은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고, 앞으로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잡년행동도 잡년도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오해를 받을 것이고 그리고 그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더 많은 말들과 더 많은 행동을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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