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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만날 수 있을까?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2/05/11 11:36
  • 수정일
    2012/05/11 11:39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민주노총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만날 수 있을까?

_2012년 메이데이가 드러낸 것

 

122주년 메이데이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집회에서 ‘총파업’을 함께하자는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과 스스로를 ‘프레카리아트’로 정체화한 사람들의 총파업 행진. 이렇게 두 개의 행사가 동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었다.


민주노총의 이번 집회는 8월에 있을 총파업의 사전결의대회였다. 김영훈 위원장은 시청광장에 모인 1만 5천명의 조합원을 향해 “오늘을 시작으로 5월 한 달을 연대를 복원하고, 6,7,8월을 대투쟁의 시동을 거는 날들로 이어 나가자”고 말했다. 프레카리아트 총파업에 모인 500여명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여러 강요들을 모두 ‘노동’이라고 표현하며 이러한 강요를 거부하는 총파업을 하자는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집회에서 ‘총파업을 하자’는 말이 계속 나왔다는 정도다.

 

작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야말로 메이데이를 대표하는 행사로 여겨졌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각종 진보적 단체들은 민주노총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하고 부스를 차려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 예를 들어 동성애자인권연대와 같은 경우 최근 몇 년간 메이데이, 노동자대회 집회에 활발히 참여하고 활동해왔다.

하지만 이번 메이데이 집회에서는 민주노총 주최의 집회에 참여하지 않고 노동운동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사안과 요구를 가지고 집회와 행진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민주노총이 주최하는 집회만이 운동을 대표한다는 암묵적 분위기에 균열이 가시화된 것이다.

 

민주노총과 투쟁사업장의 괴리

 

민주노총이 더 이상 운동을 대표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민주노총 소속 조합들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희망버스 이후에 이슈가 되기 시작한 ‘희망뚜벅이’, ‘희망광장’ 운동은 그 자체로 민주노총, 각 산별연맹(노조)을 통하지 않고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꾸린 운동이었고 여기에 정당과 정치․사회단체들이 함께 했다.

소속 단위 사업장의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결합을 하지 못하는 것이 반복되면서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스스로 희망 운동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과 함께 민주노총 상층부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 사이의 괴리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4월 20일에 있었던 희망광장 평가 토론회는 이러한 괴리가 분명히 드러나는 자리였다.

희망광장의 주체가 되었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앞으로 이러한 공동투쟁을 어떻게 진행해 나갈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길 원했다. 그러나 토론회에서 두 시간 반 넘게 이루어진 발제는 민주노총의 총파업 계획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민주노총 정의헌 수석부위원장의 발제는 각 연맹별로 언제 몇 명이나 총파업에 동원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자리에 참가한 연맹 위원장들에게도 대표자라는 이유로 발제가 요구되었는데 그 대답에도 실질적인 내용은 없었다. 그 자리에 참가한 모 연맹 위원장은 “지도부도 아직 (총파업) 준비는 안 되어 있다.”, 하지만 “어떻게든 긴장감을 가지고 해보자”는 말만 했을 뿐이다.

이러한 발제가 2시간 가량 이어진 후 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겨우 발언을 할 수 있었다. 이들은 이미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민주노총이 이야기하는 총파업이 뻥파업이 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지속해서 상층에서 지침을 내려서 오는 파업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었다.

사측의 노조말살에 맞서 싸우고 있는 유성기업 노동자는 “왜 총파업을 선거에 맞춰서 하려고 하냐”며 현실적으로 노조가 다 깨져나가는 상황은 외면하고 선거에만 맞춰서 진행되고 있는 총파업 안에 대해 비판했다. 콜텍 노동자는 과연 총파업한다고 해서 정리해고․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될 지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1600일 넘게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과 노동조합을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유명자 재능 지부장 동지는 “이 자리에 와서야 (특수고용 노동자들인 화물과 건설노동자들의) 공동투쟁본부가 꾸려져 있는지 알았다”며 왜 재능에는 제안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이어 “재능투쟁이 단사투쟁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해서인가? 아니면 조직이 작아서 제안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4년 넘게 투쟁하고 있는 재능 노동자들을 배제한 공투본 구성과 계획은 현재 민주노총이 실제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다양한 목소리로 스스로 움직이는 사람들

 

이번 프레카리아트 총파업에 모여든 사람들도 민주노총과 대공장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주류 노동운동에서 배제된 채 투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은행 앞에 모여서 각자의 상황과 투쟁을 공유하고 원하는 구호를 외치면서 명동을 거쳐 시청광장까지 행진했다. 명동 중심부에서는 각종 퍼포먼스와 구호를 통해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장이 만들어졌다. 이는 서울시장이나 각 ‘위원장’들의 발언이 압도적으로 많은 민주노총의 집회와는 또 다른 방식이었다.

 

두물머리 밭전(田) 위원회가 발언하고 있다

 

4년째 4대강 토건 개발에 반대하며 싸우고 있는 두물머리의 농민들, ‘밭전(田) 위원회’가 있었다. 이들은 정부의 강제적인 토지 수용시도에 맞서 씨앗을 뿌리고 농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한국은행 앞에서 각종 씨앗과 모종을 나누어주었다. 국가의 생태계 파괴에 맞서 자연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두물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구럼비를 계속해서 폭파하고 있다. 정부의 갖은 폭력에도 불구하고 제주도 구럼비를 지키려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도 한국은행 앞으로 모여들었다. 녹색당 사람들은 탈핵을 외치며 함께 행진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행진했다. 명동에서 열린 중간집회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박경석 상임 공동대표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은 자본의 효율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 동안 시설에 갇히거나 방구석에 처박혀야 했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파업’ 상태였다”라면서 “장애인들도 여러분과 함께 거리의 파업을 통해 자본의 속도에 맞서고 체제를 바꾸는 투쟁에 함께할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보조인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봉사가 아니라 노동임을 주장하는 피켓을 들었다.

슬럿워크 코리아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잡년행동의 성원들은 명동 한복판에서 하이힐을 벗고, 메이크업을 지우고, 브라를 벗어 브라를 이어 줄넘기를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는 여성들에게 강요되고 있는 브라, 하이힐, 메이크업을 ‘강요된 꾸미기 노동’을 거부한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또한 “성적 지향, 성정체성을 존중”하라며 이성애중심적인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청소년들의 발언도 있었다. 이들은 몇 주, 몇 일 전에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청소년에게 온전한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이 현실에서 청소년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라는 것을 폭로했다. 청소년이라는 차별당하고, 인격적인 무시도 당해야 했으며 심지어 임금체불에 부당해고까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삼성범죄지도’를 만들어 행진하며 삼성이 전국에서 벌이고 있는 토건개발과 산업재해 방조 등을 규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너의 사랑 나의 사랑 기본소득”을 외치며 사회구성원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도 함께 했다.

이들의 다양한 요구와 투쟁은 기존의 주류 노동운동 내에서는 이슈화되지 못했던 사안들이었다. 또한 단순히 지침을 통해 동원된 사람들이 아닌,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기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메이데이 집회가 아닌 자신들의 요구를 외칠 수 있는 집회를 선택했다.

 

지침을 내리는 사람이 아닌,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야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민주노총은 반MB를 이유로 각종 선거의 야권연대에 함께 하는 것에 집중해왔다. 그 전부터 존재했던 민주노총 상층과 투쟁사업장의 괴리는 야권연대를 경과하면서 더욱 더 격화되었다. 그리고 재능교육, 쌍용자동차, 3M, 유성기업 등 투쟁사업장은 더 이상 민주노총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연대사업을 꾸려왔다.

민주노총이 상층의 야권연대에 집중하는 동안, 각종 투쟁들이 생겨났다. 4대강에 반대하는 투쟁이 생겨났고 구럼비 파괴에 반대하는 투쟁이 생겨났다. 촛불투쟁, 두리반, 마리 등의 철거투쟁을 겪으면서 새롭게 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번 메이데이 전후로 분명해진 것은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이들은 힘겹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장기투쟁사업장의 노동자들과 이번 프레카리아트 총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과 민주노총의 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사실 투쟁사업장 노동자들과 프레카리아트들은 이미 여러 차례 함께 행동해 온 경험이 있다. 희망버스가 내려간 부산 영도에서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성폭력 사건에 맞선 투쟁에서도 함께 했었다. 이번 메이데이에도 프레카리아트 총파업 대오는 형식적인 ‘총파업’ 발언이 남발되는 시청광장에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맞은편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에는 방문하여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있었던 이러한 더 의식적으로 함께 하는 활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기대를 거는 것보다는 실제로 움직이고 자신들의 투쟁을 해나가는 사람들이 함께 하며 서로의 문제의식과 투쟁 사안을 공유하는 것이야 말로 더욱 폭넓은 지지와 연대의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희망’의 싹은 거대한 주류 노동운동에서 배제된 사람들의 연대로부터 돋아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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