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2·3월호][국제]튀니지 봉기가 계속되다

  • 분류
    국제
  • 등록일
    2011/03/02 16:32
  • 수정일
    2011/04/08 16:4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2011년 2월2일
앤 탤벗(Ann Talbot)
출처 ; WSWS
번역 기사의 내용은 본지의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독재자 벤 알리를 몰아낸 튀니지 혁명은 지금 전세계로 퍼지고 있는 중동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튀니지 혁명은 이집트로 이어졌고, 18일 간의 치열한 시위 끝에 독재자 무바라크는 사임했다. 무바라크 사임 이후에도 이집트에서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시위는 이어지고 있다.
이집트 바로 옆 나라인 리비아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용병을 써서 시위 참여자와 부상자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런 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이어졌고 독재자 카다피 피신설이 나오기도 했다. 바레인, 예멘, 이란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는 소식과 잔혹한 시위 진압 소식이 잇따랐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다시 민주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튀니지 시위 역시 지속되고 있다. 2월20일에는 수도 튀니스에서 3,000명이 과도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한다. 이에 벤 알리 퇴진 이후 튀니지 상황과 튀니지를 둘러싼 열강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글을 번역해 싣는다.


벤 알리 정권의 인사를 내각에서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개각 발표 이후, 거리에서의 시위는 잦아들었지만 튀니지에서의 봉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 봉기는 점점 더 노동계급적 성격을 띄고 있다.
비공인파업이 국영산업과 정부부처, 호텔에서 터져 나왔다.
튀니지 공항을 멈춘 최근의 파업에서 항공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이 파업은 노조의 어떠한 공식적인 준비 없이 갑자기 터져 나왔다. 회사 이사인 몬타싸르 왈리(Montassar Wali)는 이번 주에 특별한 이유 없이 사임했다.
튀니지 텔레콤 노동자들 역시 파업에 돌입했다. 그들은 파리 증권거래소(Paris Bourse)에 회사를 상장하려는 계획에 반대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일반 노동자와 경영진 사이의 임금격차를 줄일 것을 원하고 있다.
적어도 대형 호텔 한 군데에서는 직원들이 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관리자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고등교육부의 직원들은 항의파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내각은 화요일에 회의를 열어 안보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통행금지령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대변인은 “현재 정국이 아직 안정화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최근 범죄조직의 소행이나 기존 정권의 조직적 시도로 추측되는 약탈행위들이 많이 발생했다. 이러한 시도는 사람들 사이에 공포감을 조성하여 군대가 봉기를 제압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화요일(1월 25일)에는 청년 패거리들이 수도 튀니스 근교의 부유한 동네인 카르타고에 나타나 학교를 공격했다. 군은 그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그들 머리 위로 총을 쏘았다. 이 사건은 월요일, 카쎄린(Kasserine)에서 공공건물들을 마구 뒤지고 약탈한 사건에 이어 발생한 것이었다. 튀니지 노동총연맹(UGTT, General Union of Tunisian Workers)의 지역 지부 임원은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이 예전 집권 여당인 입헌민주연합당(RCD) 의 당원임을 확인했다.
월요일 밤에는 방화범들이 가베스 시의 유대교 회당에 불을 질렀다. 토요일에는 청년 패거리들이 광란에 휩싸여 튀니스 시를 가로지르며 페미니스트들의 집회를 풍비박산을 냈다. 나무막대기와 칼로 무장한 지역의 소규모 가게 주인들이 그들을 내쫓았다.
입헌민주연합당 지지자들이 이렇게 도발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노동자와 농촌의 빈곤층이 튀니지 봉기에서 독립적인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요일(1월29일), 남부 튀니지의 가스파(Gasfa) 지역의 엘 기타르(El-Guettar)에서 21세의 아이만 벤 벨라카셈(Aymen Ben Belgacem)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 인산염 광산 지역에 만연한 억압과, 실업, 빈곤이 그가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하도록 내몰았다. 그는 튀니스의 병원으로 옮겨졌고 병원에서 그는 매우 위태로운 상태였다. 절망으로 인한 그런 행동이 소위 자스민 혁명 이후에도 반복되었다는 사실은 어떠한 진정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진보도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임시정부는 벤 알리 정권 당시 수상이었던 모하메드 간누치(Mohammed Ghannouchi)를 수장으로 하고 있다. 간누치는 벤 알리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너무 공공연히 알려진 몇몇 장관들을 마지못해 경질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경질된 인물에는 외무부 장관인 카멜 모르잔(Kamel Morjane)과 같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개편된 간누치의 내각이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생한 폭력적 사태 중 몇몇이 구(舊)정권 요인이 벌인 일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군 경찰 비밀경찰 등 벤 알리가 의존한 안보 기관 모두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안 기관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반대 인사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을 재판에 회부하려는 시도 역시 없었다.
UN은 봉기과정에서 최소 219명이 사망하고 이에 더해 510명의 사람이 부상당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교도소에서만 72명이 사망하였고 그 중 48명은 모나스티르(Monastir) 교도소에서 사망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UN의 조사는 현재 진행 중이며 사망자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사회에서의 체면 때문에 벤 알리의 재산에 대한 동결과 몰수가 시도되었다. 그의 조카 중 한 명이 소유한 비행기는 프랑스의 르 부흐줴(Le Bourget) 공항에서 몰수되었다. 스위스 당국 역시 비행기를 몰수했다. 유럽 장관들은 벤 알리와 아내인 레일라 트라벨시의 재산을 동결하는데 합의했다. 그러나 벤 알리 부부는 튀니지 중앙은행에서 빼간 5천 6백만 달러(한화 670억) 상당의 금괴 1.5톤으로 호화로운 망명생활을 즐기고 있다. 벤 알리 일가의 총 재산은 100억에서 120억 달러로 추측되며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 벤 알리 일가의 재산에는 호텔 체인, 제약회사, 자동차 공장, 참치 어업, 통신회사, 은행, 보험회사의 지분이 포함되어 있다. 벤 알리 일가는 튀니지 경제의 30~40%를 좌지우지 한다고 여겨진다.
벤 알리 가문 구성원 30명은 체포되었으며 그들이 국외로 밀반출 하려고 하던 귀중품들은 회수되었다. 그러나 벤 알리가 권좌에 있던 23년 동안 그와 그의 가문이 튀니지에서 부정하게 취득한 재산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와 스위스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의 입장발표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이는 수년간 벤 알리와 같이 행동해 온 다른 국가의 정부들이 뒤늦게 몰락하는 독재자와 거리를 두려고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대국들은 이전 동맹자인 벤 알리와 서둘러 거리를 두는 한편 임시 정부를 공고히 하는 데 열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급함과 열의는 튀니지 봉기의 반향이 이집트, 요르단을 비롯한 다른 곳으로 지속적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한 강대국의 우려를 보여준다.
내각 인사 개편과 개혁에 대한 빈껍데기뿐인 약속을 제시하는 것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지배층이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봉기에 대해 공통으로 보이는 대응 방식이다. 이와 동시에 그들은 억압적 군대와 지식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들은 대중의 경제적 필요나 민주적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다. 그들이 도입한 자유 시장을 위한 조치들은 지배 엘리트의 구성원들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고, 다수의 사람들을 더욱 빈곤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배 계급의 부를 필연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또한 지배층의 사유화 계획을 지지하고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투자기회를 이용해왔던 전 세계의 자본가 계급 역시 위협할 것이다. 튀니지의 독재자가 재산을 비축해 놓았던 은행들은 그 재산이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벤 알리 일가뿐만이 아니라 세계적 금융 귀족들 역시 튀니지에서의 약탈을 통해 이익을 얻어왔다.
튀니지의 노동계급과 농촌 빈민층이 직면한 문제에 대한 일국적인 해답은 없다. 벤 알리와 남아있는 나머지 튀니지 자본가들은 국제 금융 자본을 대변하고 있으며, 서구 정부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권을 재건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국가 통합을 호소하고 있는 튀니지 노동총연맹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노동총연맹은 이미 교사들을 일터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했고 다른 경제 분야에서 터져 나오는 파업을 가능한 한 신속하게 잠재우려고 시도할 것이다. 노동총연맹이 계속해서 국가 통합의 화신이라고 칭찬하는 군대와 마찬가지로 튀니지 노동총연맹 역시 구체제의 일부다.
튀니지 봉기가 계속된다면 노동자는 그들 자신의 정치적 전망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전망은 국제적인 것이어야만 한다. 그들은 군대나 현존하는 정당에 기댈 수 없다. 비록 이전에 불법이었던 정당이 간누치 수상의 임시정부와 급속히 화해모드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정당들은 국가의 민주주의적 외양을 선전하면서 공식적 야당으로서의 지위를 차지하는데 관심을 쏟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전하는 국가란 빈부 격차가 여전히 심각하며 벤 알리의 후계자가 계속해서 다수의 희생으로부터 이윤을 얻고 있는 국가일 것이다.

 

번역│정지원 (jeewon@jinbo.net)


 

벤 알리는 누구인가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는 튀니지의 정치인이자 군인, 장군이다. 1987년 이전에는 하비브 부르기바 정권에서 짧은 기간 동안 수상을 역임했으며, 무혈 쿠데타로 1987년 11월7일,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11년, 높은 실업률과 물가 상승에 의한 정권퇴진 운동으로 대통령직을 사퇴,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했다. (출처: 위키피디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