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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기획]사노련 유죄판결!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04/08 19:46
  • 수정일
    2011/04/08 19:53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회주의는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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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7부는 구(舊)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하 ‘사노련’)> 활동가들에 대해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오세철, 양준석, 양효식, 최영익 등 4명의 활동가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다른 4명의 활동가들에게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또한 집시법 위반을 덧붙여 8명의 활동가 모두에게 벌금 50만원 형을 부과했다.
촛불투쟁이 계속되고 있던 지난 2008년 8월에 벌어진 <사노련> 사건은 초기에 구속영장이 연거푸 기각되는 등 사건성립조차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해프닝으로 끝난 것 같던 <사노련> 사건은 남대문경찰서와 검찰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10년 결국 기소가 이루어져 이번 판결에 이르렀다.


사회주의 선전의 불법화

대부분의 국보법 사건에서 처벌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7조1항과 3항에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이하의 징역에 처”하며,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남한 사법부는 현실적으로 북한을 반국가단체(정부를 참칭하거나 국가를 변란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국내외의 결사 또는 집단)로 해석하고 이를 이롭게 하는 단체를 이적단체로 규정하여 심판해 왔다.
하지만 <사노련>의 경우 북한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음이 명확했기 때문에 검찰은 국보법 7조3항을 확대해석하여 국가변란 선전· 선동단체라는 혐의로 사노련을 기소해야했다. 이 때문에 별도의 반국가단체를 전제하지 않는 <사노련>과 같은 단체에 국보법이 적용될 수 있는가가 재판의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반국가단체를 전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 제도와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등 자유민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면서 무장봉기 등 폭력적 수단을 통한 현 정부의 전복 및 새로운 정부의 수립”을 주장하는 것을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사노련>을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로 규정, 유죄를 선고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서 사노련의 구체적인 활동이 아니라 사노련이 발간했던 책과 기관지의 문구들이 주요한 유죄 근거로 제시되었다.


문필활동의 합법적 테두리 드러나

이번 판결에서 판사는 <사노련>이 발행했던 방대한 분량의 인쇄물의 구절구절을 짚어가며 기관지 몇 호의 어떤 기사는 유죄, 어떤 기사는 무죄라고 읊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든가 ‘자본주의를 철폐하자’는 구절은 ‘무죄’였다. 그러나 ‘폭력혁명’이나 ‘무장봉기’ 등의 구절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라고 해석했다.
유죄로 판단된 문구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방법에 있어 ‘무력’을 주장할 경우에 그 구체적인 행동이 없다고 하더라도 국가변란을 선동한다는 의미로 규정한 것이다. 이는 현재 지배계급이 규정하는 정치선전내용의 합법적 테두리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판결의 주요 근거가 된 국보법 7조1항은 구체적인 지시 없이 편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지배계급의 입맛에 맞게 저항세력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대표적인 조항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 때문에 국보법 존치론자들조자 이 조항에 대해서는 대개 수정 또는 폐지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를 더욱 확대해석하여 단순한 문필, 선전행위까지 위법으로 규정했을 뿐 아니라, “반드시 ‘무장봉기 내지 폭력혁명 등을 통한 정부의 전복’ 등의 표현이 직접 사용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주장 내용의 전체 취지가 '무장봉기 내지 폭력혁명 등을 통한 정부의 전복' 등에 해당하면 충분한 것으로 되며, 앞서 본 ‘선전'의 개념에 따르면 그와 같은 내용에 대한 토론회나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 역시 ‘국가변란 선전·선동’에 해당”한다고 명시하여 더욱 자의적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실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이나 행동이 있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정치적 주장과 사상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좌파 운동 탄압의 법적 근거를 제시

이번 판결은 국보법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과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회주의 단체들이 법적 제재를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실제로 1990년대에는 소위 친북단체뿐 아니라 모든 반정부·반체제 세력이 국보법의 탄압을 받았다.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타도와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주장하기 하기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사법부는 국보법 적용을 엄격히 하여 친북 운동단체에 한정해왔다.
따라서 2001년 <진보의련> 사건을 마지막으로 소위 ‘좌파’ 단체에 대한 국보법 적용 사례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 2003년 경부터 많은 단체들이 ‘사회주의’를 내걸고 공개적으로 선전물을 발행하고 활동해왔다. 사실상 지난 10여년 동안 사회주의 사상의 선전선동과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은 사노련에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 무려 15년이나 지난 1997년 <전국학생연대> 사건을 판례로 들었다. 지난 몇 년 간 ‘좌파’ 조직에 대해서 사문화되었던 국보법을 다시 살려 공안기관이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새롭게 만든 것이다. 때문에 <사노련>뿐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사회주의 정치단체 활동가와 개인의 블로그나 홈페이지까지 국보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있게 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신문(이하 ‘사노신’)> 역시 2009년 사무실 압수수색으로 컴퓨터 하드디스크 및 자료, 발행물 일체를 빼앗겼고 2010년에는 활동가가 연행되기도 했다. <사노신> 사건은 현재 기소여부가 결정나지 않은 상태인데 이번 판결의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작년 10월 여러 사회주의·노동 단체들의 기사를 취사선택해서 게시하는 블로그 <프롤레타리아네트워크뉴스>의 박회송 운영자가 인천 지방경찰청 공안부로부터 이메일과 블로그 자료에 대해 조사했다는 통고를 받았다고 폭로한 바 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은 강화되고 있다

<사노련> 유죄판결이 나고 갓 한 달이 지난 3월23일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세미나와 포럼을 진행해온 <자본주의연구회> 회원 3명이 국보법 위반으로 긴급체포 되었다. 사회를 연구하는 동아리 활동까지 막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민주주의 후퇴와 국가보안법 부활이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선전과 활동이 실제로 제재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주의를 비롯한 전반적인 저항운동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판결에 불복하는 항소가 명분이 아닌 운동사회의 공동대응으로 나아가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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