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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호][FocuS]희망버스가 드러낸 빛과 그림자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08/16 16:08
  • 수정일
    2011/08/16 16:08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7월30일, 3차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7월9일에 출발했던 2차 희망버스와 비슷한 수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처음에는 성사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웠던 희망버스는 희망자전거, 희망기차, 희망비행기 등으로 변주되면서 벌써 3차까지 진행되었다. 곧 4차 희망버스 일정도 진행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이어진 희망버스는 새롭게 등장한 자발적인 연대를 보여주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기점으로 곳곳에 솟아나오기 시작한 자발적 연대는 85호 크레인을 중심으로 더욱 확대되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이러한 새로운 흐름과 동시에 기존 조직노동운동의 무력함도 재확인되고 있다. 사실상 정리해고 투쟁을 정리해버린 한진중공업 채길용 집행부는 금속노조로부터 어떠한 징계도 받지 않았다. 또한 조직노동운동의 핵심대오라고 여겨졌던 금속노조 현대·기아차지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연대투쟁을 조직하기는커녕 희망버스 참여에도 소극적이었다. 한진중공업지회의 노사합의와 이제 4차를 예고하고 있는 희망버스에서 이러한 대비는 더욱 명확해지고 있다.

 

노조집행부의 노사합의, 분노를 이끌어내다

 

 

촛불문화제에서 발언하는 송경동시인

2차 희망버스가 한창 준비되고 있던 6월27일,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채길용 지회장이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를 정상화 하기로 하는 노사협의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한진중공업지회 지도부는 ‘해고자 중 희망자는 희망퇴직자와 동일한 처우를 받을 수 있다’고 협의함으로써 정리해고를 인정해버렸다. 심지어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퇴거는 노조에서 책임진다는 내용까지 합의되었다.
한진중공업지회 집행부는 “농성 노조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밑바닥을 드러낸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파업을 철회했다고 밝혔다. 파업을 철회함에 따라 농성을 진행하던 비해고자 역시 7월1일자로 현장에 복귀했다.
사측과 노조집행부가 합의한 27일은 투쟁하던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에게 강제퇴거조치가 강행된 날이었다. 사측의 침탈로 85호 크레인을 지키고 있던 조합원 대부분은 법원집행관과 용역깡패의 손에 끌려나왔다.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전해진 행정대집행 소식은 사람들의 분노와 연대를 이끌어냈다. 몇몇 시민들은 퇴근 후 부산으로 직접 내려가기도 했다. 직접 가기 어려운 사람들은 트위터를 통해 부산에 가는 사람들에게 교통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행정대집행에 대한 분노가 컸던 만큼, 채길용 한진중공업지회장에 대한 분노도 컸다. ‘채길용 지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은 물론이고, ‘채길용 지회장을 공개수배한다’는 트윗들이 많이 올라왔다. 행정대집행 다음 날 서울 보신각에서 진행된 ‘한진 85호 크레인의 눈물’이라는 이름의 촛불문화제에서도 채길용 지회장에 대한 규탄이 이어졌다.

 

채길용과 거리를 두려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합의가 이루어진 바로 다음날 채길용 지회장이 진행한 노사협의가 무효라고 선언했다. 금속노조는 산별노조라서 단체교섭권과 협약권은 금속노조 위원장에게만 있으며 정리해고와 같은 사안에서 금속노조 위원장의 위임이 없는 한 개별 사업장 노조위원장의 협의는 무효라는 것이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은 채길용 지회장을 비판하면서 정리해고 투쟁을 사수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또한 2차 희망버스에 함께할 것을 결의했다.
하지만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 사수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6월28일, 한진중공업지회 집행부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애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전국금속노동조합 부산양산지부, 그리고 한진중공업지회로 꾸린 ‘공동투쟁본부’는 6월30일까지 회사와 합의하는 것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또한 6월 말에 투쟁을 정리하고 해고자들은 현장 바깥의 투쟁으로 빼낼 계획이 있었으며, 공권력 투입 계획을 앞둔 상황에서 합의를 사흘 앞당긴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금속노조도, 민주노총 부산본부도 투쟁을 정리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6월27일 한진중공업지회 집행부의 합의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금속노조, 민주노총은 채길용 집행부의 독단적인 행동임을 부각시켰다. 채길용 집행부와 금속노조 사이에 차별성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금속노조는 채길용 집행부에 대해서는 어떠한 제재도 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현재 인터넷 상에서 돌고 있는 채길용 집행부의 탄핵을 요구하는 서명 역시 금속노조 내부 혹은 조합원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노동자·시민’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금속노조의 현실

 

금속노조가 보이고 있는 태도는 현재 금속노조의 조직력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금속노조의 주력대오라고 하는 완성차 정규직노조의 희망버스 참가율에서 잘 드러난다.
금속노조는 6월28일에 열린 중앙집행위원회에서 2차 희망버스에 노조간부 및 조합원까지 최대한 참석케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정작 7월9일 영도에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은 잘 보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지부는 참여도 하지 않았으며 기아자동차지부는 몇몇 활동가와 노동조합 집행부만 참여했을 뿐이었다. 완성차 정규직노조는 휴가 기간과 겹치는 3차 희망버스에 아예 버스를 대절하지 않았다.
형식적인 상급단위를 대체했던 것은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서울부터 천릿길을 걸어서 부산 영도로 찾아왔다. 희망버스 이전에도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와 노동자들은 희망열차를 타고 85호 크레인을 방문하였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부산으로 모였다. 1300일 넘게 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는 재능 학습지 노동자들과 사측의 노동조합 탄압에 맞서 투쟁하는 유성기업 노동자들도 희망버스에 탑승했다. 이렇듯 매번 연대 선언은 상급단체가 하지만 실제로 연대를 만들어 나간 이들은 곳곳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이었다.

 

집행부의 합의를 넘어서려는 ‘외부세력’

 

 

외부연대가 투쟁을 이어가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투쟁을 정리하려는 집행부와 무기력한 상급단체의 모습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투쟁은 두 가지 지점에서 새로워 보인다. 첫째로 한 사업장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집결 장소는 남쪽 끝 부산이다.
이러한 자발적인 연대는 올해 초 벌어진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 때에도 엿볼 수 있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에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후원물품을 보내고, 집회에 참여했다. 이제는 그러한 연대가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을 중심으로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두 번째로 놀라운 점은 외부의 연대가 이어지면서 노동조합 집행부가 사측에 백기투항한 이후에도 투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간 노동조합 집행부의 직권조인이 있었을 때, 이후에 그것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있었어도 실질적으로 투쟁이 조직되지 못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노사협상을 하면서 한진중공업 사측과 노동조합 역시 예전과 같은 양상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투쟁은 정리되는 수순을 밟지 않았다. 물론 현장에서의 분위기가 그리 좋지는 않다. 올해 초 투쟁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는 700여명 이었지만 6월 말에는 그 수가 10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투쟁이 장기화되고 노동조합 지도부가 합의함에 따라 투쟁주체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주체가 소수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진숙 지도위원의 고공농성이 지속되고 희망버스를 겪으면서 외부의 연대가 확산되었다. 투쟁하는 조합원 수는 많지 않지만 사회적인 지지와 연대가 이 투쟁을 유지하는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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