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근태...

9호기 형님이 추석전 5일을 결근 후에 출근을 하셨다.(2주일을 쉼)

야간조인데 월요일 오전에 호출을 받아 윗대가리들에게 열라 깨졌다.

화요일 야간 출근을 하였는데...

9호기가 멈춰있는것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 윗대가리들이 작업을 시키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졸라~~~ 순각적으로 열이 받았다.

사무실로 휴게실로 전전하며 있는 모습에...

 

일단은 잘잘못을 떠나 어린아이 길들이기 식의 이따위 행태에 현장의 분위기도 너무하다는 의견과 잦은 결근에 따른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야간이라서 직접적인 타격 대상이 없는지라...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부턴 기계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을 드렸지만

내 마음 한쪽에서 휘 하고 불어오는 안타까움은...

 

그 형님은 몇해전 이혼을 하셨다.

워낙 성격이 괴팍하고 남에게 대한 배려가 없는 분이라서 형수되시는 분이 몸이나 마음으로무척 고생을 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분의 주태는 가관이 아니어서

오랬동안 버티고 살아온것이 신기 할 뿐...

 

이혼 후 형님의 회사 생활은 180도 바뀌었다.

일주일에 1~2번의 결근은 기본이고  이번처럼 5일정도 제끼는 것도 다반사로 일어나서

회사에서도 주위 동료들에게도 평판이 바닥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도 조합도 난감한 상황이다. 다른것이라면 약발이 먹힐 만 한데 이놈의 근태와 관련된 것이면 뭐라 할말이 막막하다.

그래도 정식적인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고 어정쩡한 정직(?)을 때린 사측의 귀책사유도 있으니 그걸로 강하게 나가보라는 주문을 주간조 간부에게 전하고 퇴근해버렸다. (9시까지 있기엔 너무 피곤)

 

천만 다행으로 휴가뒤에 흡기제품(대략 배기:15초에 3개씩, 흡기:25초에3개씩 작업)이 걸려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오늘 새벽에 누구하고 한탄했지만 야간조 정말 없어져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대산...

아직 단풍이 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아직 폼만 잡고 있는 중...

 

 

 


 


 


 


소금강

 

 


역시 소금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말 지랄 같은 인생이다.

정말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추석 선물...

연휴 들어가기 전 조합원 교육과 대의원 선출을 하였다.

마음도 심란하고 전만큼 열정이 나오지 않는 내 상태...

친한 녀석들에게는 이번에는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었다.

그러나 막상 다음 대의원 추천 조합원들 의사 타진을 해보면 하나같이

죽는 소리 일색이다. 현장마다 틀리겠지만 우리 사업장도 대의원 역활이 만만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잔업특근을 전보다 하지못하는 것으로 인한 월급인하(?)가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회사나 어용들에게 완전히 낙인 찍히기가 귀찬고 두려운

것이다. 결론은 일부러 추천 많이 받고 사퇴 불가를 외쳤건만 어떤 인간이 나를 추천하는 바람에 투표끝에 압도적(?) 당선이 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위로가 된것은 건강한 젊은 조합원들이 많이 당선되었다는 것이고...

최악의 상황은 모임 성원 중에 내 출마 권유를 무시하고 불출마를 해버린 미선출된 어용들이 득실한 부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교두보를 갖춰 이놈들을 상대하려 하였는데 해당 조합원의 부담감을 덜어주지 못하고 밀어부친 제 탓이 더 큰것 같아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한마디 하라고 해서 "최악의 추석 선물을 받았다고 첫마디를 하였습니다"

누가 그러더군요 "다음에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ㅎㅎㅎ

 

내년부터 불어 닥칠 사측의 구조조정 신호가 정말 암담하기만 합니다.

현장은 아직 많은 준비가 되질 못하고 있는데...

자본의 발걸음의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고...

내년부터는 신기계도입으로 인한 잉여 인력이 우리 부서에서도 대량으로 발생하기 시작하니까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졸린데 잠을 잘수가 없다.

아~~ 쓰...

 

미칠것 같은 붉은 단풍이 산하를 물들어 오는데...

내 몸은 최악의 상태로 달아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황혼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마음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 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 다오.


저 십이(十二) 성좌(星座)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森林) 속 그윽한 수녀(修女)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가지없는 그들의 심장(心臟)이 얼마나 떨고 있는가.


고비 사막(沙漠)을 걸어가는 낙타(駱駝) 탄 행상대(行商隊)에게나,

아프리카 녹음(綠陰) 속 활 쏘는 토인(土人)들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地球)의 반(半)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 다오.


내 오월(五月)의 골방이 아늑도 하니

황혼아, 내일(來日)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는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 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  이육사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조선혁명선언

 

<조선혁명선언>

 

1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건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천택(川澤)·철도·광산·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빼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가옥세·인구세·가축세·백일세(百一稅)·지방세·주초세(酒草稅)·비료세·종자세·영업세·청결세·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어지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 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과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 내내 소득으로 자기 한 몸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다바치어 그 살을 찌워주는 영원한 소·말이 될 뿐이오, 끝내는 그 소·말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 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고 빠른 비율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땅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가 굶주린 귀신으로부터 떠돌아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 발짝의 행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언론·출판·결사·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울분과 원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스사노오노미코토(表잔嗚尊)의 형제'라 하여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이 다스리는 땅'이라 한 일본놈들의 적은 대로 읽게 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半) 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하는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 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단근질·채찍질·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팔다리를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 붓는, 생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刑律), 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감옥문에서 나온대야 평생 불구의 폐인이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처한 형편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채찍질·구박·압제를 받아, 바다에 둘러싸인 삼천리가 하나의 큰 감옥이 되어,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계가 되어 강도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지푸라기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가 행한 폭행도 이루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3·1운동 이후 수원·선천 등이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서간도·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몸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잔혹하게 다룬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송장'을 만들려 하는 도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족(異族)통치가 우리 조선민족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앰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조선'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재산 자유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 등을 신명(申明)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민원식 등 한 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 따위 미친 주장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뇌동하는 자-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사한 무리가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이들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온통 굶주린 귀신이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 대의사(代議士)의 선출로 어찌 굶어죽는 화를 면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어떤 자치임을 막론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帝國)'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여기에 딸려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헛된 이름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갑자기 부처·보살이 되어 하루아침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돌려주며, 내정과 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찰을 일시에 철수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이름뿐인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모두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받든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 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總積)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 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망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금전의 힘으로 그 조상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하나는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오랜 옛날 자유롭게 발달한 남은 혜택을 지킴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 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사람의 피를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지킨 전례가 있더냐? 검열·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스스로 떠들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내정독립·자치·참정권 등을 주장하는 자)나 강도정치 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3

강도 일본의 구축(구축(驅逐)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름과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첫째는 외교론이니, 이조 5백년 문약(文弱)정치가 '외교'로써 나라를 지키는 으뜸 계책으로 삼아 그 말세에 더욱 심하여, 갑신(甲申)이래 유신당·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외국의 원조 유무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이 나라를 끌어들여 저 나라를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로하는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甲午)·갑진(甲辰)양전쟁에 일본이 수십 만의 생명과 수억 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러 양국을 물리치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하는 이들은 한 자루의 칼과 한 방의 총알로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포악한 관리나 나라의 원수에 던지지 못하고, 청원서나 여러 나라 공관에 던지며 탄원서나 일본정부에 보내어 국세(國勢)의 외롭고 약함을 슬피 호소하여 국가존망·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년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山林儒生)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기 있는 자로 보면 침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어진 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나라가 망한 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아무개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미일전쟁·러일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 민중의 용기 있게 분발하여 전진하는 의기를 쳐 없애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둘재는 준비론인, 을사조약 당시에 여러 나라 공관에 빗발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 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春秋大義)에 성패를 생각하지 않고 의병을 모집하여 높은 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화승총을 몰아가지고 조일(朝日)전쟁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 쪼가리나 본 이들-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러할 용기가 아니 난다. 이에 '오늘 이 시간에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을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졸병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느껴지고,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庚戌)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京鄕)에 출물하여 십여 년내와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 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 없는 모임뿐이었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게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입고 먹을 방법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일에 비교되게라도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4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 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세력 곧 신·구 양상전 중 누가 더 어질고 누가 더 포악하며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더 악한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한 뿐이요, 직접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목을 베어 백성을 위로한다'가 혁명의 유일한 근본취지가 되고 '한 도시락의 밥과 한 종지의 장으로써 임금의 군대를 맞아들인다'가 혁명사의 유일한 미담이 되었거니와, 오늘날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팽창의 뜨거운 정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 돈 없는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富力)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도 구착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첫 걸음은 민중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은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神人)이나 성인(聖人)이나 어떤 영웅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이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부자연·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각오의 첫째 길이니라.

일반민중이 굶주림·추위·피곤·고통, 처의 울부짖음, 어린애의 울음, 납세의 독촉, 사채(私債)의 재촉, 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 되는 강도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때려누이고, 강도의 일체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四海)에 전하며 뭇 민중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굶어죽음' 이외에 오히려 혁명이라 하 길이 남아 잇음을 깨달아, 용기 있는 자의 그 의분에 못 이기어 약한 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 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사·교활·잔혹·포악한 강도 일본이 마침내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養兵)십만이 한 번 던진 폭탄만 못하며 억천 장 신문·잡지가 한 차례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굴리는 돌과 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라, 우리 지나온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의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의 한때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의 대의로 분격하여 일어난 독서계급의 사상이며, 안중근·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행동이 열렬하였지만 그 뒷면에 민중적 역량의 기초가 없었으며, 3·1운동의 만세소리에 민중적 일치의 의기가 언뜻 보였지만 또한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폭력' 둘 가운데 하나만 빠지면 비록 천지를 뒤흔드는 장렬한 거동이라도 또한 번개같이 수그러지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니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가사 교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뒤에는 어두운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앞에는 빛나는 활기이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을 기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파괴·폭동-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찰꾼·매국노

4. 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정치의 기계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

혁명의 길을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사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첫째는 이족 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專制)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를 파괴함이니라.

 

둘째는 특권계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계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적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셋째는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함이라.

 

넷째는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한 자 위에 귀한 자가 있어 모든 불평들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탈, 서로 질투, 서로 원수로 보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마지막에는 또 수수끼리 서로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끝내 숫자상의 공(空)이 되고 말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

 

다섯째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전해 내려오는 문화사상의 종교·윤리·문학·미술·풍속·습관 그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가 아니더냐? 일반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다. 그러므로 민중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 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파괴·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결국...

사측에서 월례조회를 이용하여 새로짓는 공장과 기계공정 라인에 1인2라인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단조반의 절단, ppw(프라즈마 용접)를 외주화하고 기존의 프렉션 프레스(수동)를  SP(자동프레스)로 교체한다고 통보하였다.

친절(?)하게도 이 모든 사항은 조합과 협의 하겠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인원 충원없는 설비도입과 신기계가 아닌 구형 라인의 이전설치, 자기공정을 잃어버린 작업자들이 넘쳐날것이 뻔한 상황에 현장 또한 설왕설래하고, 이 와중에도 어용들은 회사의 미래를 생각해서는 이 안을 받아야 한다고 설치고 다니고 구조조정으로 이어질것이 뻔한 상황에 조합의 대응은 참으로 더디기만 하다.

얼마전 임단협에서 커다란 틀에서 합의된 사항이 있건만 세부내용 논의하기도 전에 터져버린 사측의 도발에 대자보 한장으로 상황을 넘기고 있다.

긴급 회의에서 강력한 투쟁을 해야한다는 의견들이 소수 있었지만...

별다른 대책없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이 모든것이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투입의 신호탄임이 뻔한 수작인데...

손놔버린 조합의 상황에 열불 날뿐이다.

 

내 기계는 5년 이후에나 폐기된다고 하던데...

그때까지 안짤리고 버틸 수 있을런지.

 

누군가 내가 해고 영순위라고 농담처럼 하던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4번째 하늘에서 - 쿠쿠츠카...

요즘 읽고 있는 책인데 그의 열정과 고집스러움이 맘에 다가온다.

상업화에 물든 산악계를 질타하고 최소한의 장비만을 가지고 고봉들을 누비던

그의 삶이 파노라마 처럼 그려진다.

 

쿠쿠츠카, 그는 세계에서 2번째로 8천미터급 14봉을 오른 위대한 산악인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언제나 외롭고 험난했다.

이탈리아 출신인 메스너(첫번째 14봉 정복)와 달리 폴란드가 조국인 그로서는 항상 궁핍한 산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궁핍이 그에게 더욱더 도전의식을 갖게했고

극한의 루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만을 오른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그는 1989년 14좌를 다 오른 후 험난하고 어렵기로 유명한 로체(8511m) 북벽을 오르다

추락하여 사망하고 만다.

 

 

쿠쿠츠카가 오른 14봉

 

- 로체(8511m) 79년 오리지날 서북면으로 초크,하인리히,스코레크와 같이

- 에베레스트 (8848m) 80년 초크와 남벽에 루트개척

- 마칼루 (4881m) 81년 혼자 마칼루 라에 베리에이션 루트 열고 서북릉으로 등정

- 브로드 피크 (8047m) 82년 쿠르티카와 오리지날 서릉 루트로, 87년 쿠르티카와 북봉과

                            중앙릉을 지나가는 새 루트 개척 

- 가셔브룸2 (8035m) 83년 쿠르티카와 동서릉에 루트개척

- 가셔부룸1 (8068m) 83년 쿠르티카와 서남벽에 루트개척

- 다울라기리 (8167m) 85년 초크와 오리지날 동북릉으로 동계초등

- 초오유 (8153m) 85년 하인리히와 동남벽에 루트개척 후 베르베카와 파울리코브스키 

                      합류하여 히말라야 동계 초등 루트 개척     

- 낭가 파르바트 (8125m) 85년 하인리히,로보드진스키,카르솔리오 등과 동남벽에 루트

                                개척

- 캉첸준가 (8598m) 86년 비엘리키와 서남벽 오리지날 루트 동계 초등

- K2 (8611m) 86년 피오트로브스키와 남벽에 루트 개척

- 마나슬루 (8156m) 86년 하이제르와 동북벽에 루트 개척

- 안나푸르나 (8091m) 87년 하이제르와 오리지날 북벽으로 동계 초등

- 시샤 팡마 (8013m) 87년 하이제르와 서릉에 루트 개척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편안한 안식을 빌며...

얼마전 퇴근 버스를 타고 가다가 안타까운 비보가 날아들었다.

프레스 최고참 형님의 아들이 청평에서 익사했다는 연락이 온것이다.

꽃다운 나이 24살...

얼마전 그 힘들다는 군대 제대하고 알바뛰며 복학 준비를 하던 청춘은

물웅덩이에서 허우적 거리던 여자친구를 구한뒤 자신은 나오지를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 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잔업에 특근까지 마다하시지 않았던

늙은 노동자 까만 얼굴엔 연신 피눈물만이 흐르고 있다.

 

주위에 5,6명의 사람들이 있어도 감히 누구도 들어가질 못했다고 한다.

모래 채취를 한 탓에 곳곳에 소용돌이 치는 웅덩이들이 있어서...

거기에 있었으면 나 또한 그랬을까?

 

다음주 금요일 회식은 꽤 많이 먹을 듯하다.

 

짧은 인생을 살다간 청춘을 위하여 그리고 남은 이들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