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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07/12
    생각을 없애자
    씨앗(산길)
  2. 2010/07/01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1)
    씨앗(산길)
  3. 2010/06/25
    김반장(2)
    씨앗(산길)
  4. 2010/06/24
    연애하는 여자, 긍정적 상상력이 필요해! (1)
    씨앗(산길)
  5. 2010/06/24
    난 한 게 별로 없다
    씨앗(산길)
  6. 2010/06/24
    우스운 생각
    씨앗(산길)
  7. 2010/06/21
    <스카이>연애기간과 결혼의 관계
    씨앗(산길)
  8. 2010/06/21
    여보 비가 와요
    씨앗(산길)
  9. 2010/06/21
    효재
    씨앗(산길)
  10. 2010/05/29
    돌이킬수는 없을
    씨앗(산길)

생각을 없애자

일터를 그만두어야 겠다고 생각되는 날, 아니 그만둘 수 밖에 없게 될 때가 오게 될 날

내적으로든 외적으로든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내적으로 외적으로 그러고 싶지만 그것은 도전이 아니라 도망일 것이기에

그러지 않기로 하다

이 고통은 배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예 하고 합니다"라는 명심문과

하고 싶지 않은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 라는 말이

마음에 꽂힌다.

 

100일 출가를 하든하지 않든

내 마음과 물질, 이러한 것들을 내려 놓고

 

농사를 짓고 싶다

가족들이 반대해도

그 길을 향해 나아가거나

혹은 이해할 때까지 그냥 살며 기다리거나

둘 중 하나가 되겠지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다

흙과 함께 작물을 가꿀 수 있다면

 

업을 소멸시키고 빚을 갚아가는 나의 삶을 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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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매거진 esc] 이기호의 독고다이 상담실
 
 
한겨레  
 
 
» 연애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
 




Q 왜 연애 유통기한은 3년일까요? 아무리 사랑에 빠져 죽을 것같이 좋다가도 3년이 되면 사랑이 식는 걸까요?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이 왜 3년이 되면 고비를 맞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3년이라는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요?

 

A 영원하지 않을 걸 알면서 하는 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로다

내가 미치거나 총 맞지 않고서야, 왜 이런 코너를 맡겠다고 홀라당 넘어갔는지 지금도 거 참,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주변에 총 갖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분명 전자가 확실할 텐데, 그런 정신을 가지고 어떻게 남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지…. 새삼 온 정신으로 돌아와 걱정만 하고 있는데, 세 살짜리 아들놈이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파워레인저 엔진포스 총을 쏘고 도망갔다. 아아, 그래서 걱정은 단번에 사라져버렸다. 그건 그냥 총 맞은 거였구나, 총 맞은 거였어! 그렇게 두 팔 벌려 환호작약한 다음,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총 맞고 난 뒤, 쓰는 원고라는 점, 유념해주길 바란다. 거 뭐, 무서운 건 하나도 없다. 자, 이제 시작해보자.

하나. 연애의 유통기한은 왜 3년일까요, 묻는 당신은, 안타깝지만 이 땅의 중등교육의 또다른 피해자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먼저 해본다. 3년이 지나면 왠지 졸업해야 할 거 같고, 그다음엔 다른 애인으로 진학해야 할 거 같고, 학용품도 새로 장만해야 할 거 같고, 뭐 그렇고 그런 모범생들 있지 않은가. 알게 모르게 주위엔 그런 모범생이 제법 많다. 50분 전화하고 10분 침묵하고, 50분 이야기하고 10분 섹스하고, 50분 술 마시고 10분 꺼이꺼이 울고. 연애를 학교 시스템에 맞춰, 똑같이 운용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다. 3년에 맞춰 교과서를 다 떼고 나니, 이런, 이제 더 이상 배울 것도, 궁금한 것도 없구나, 그러면 남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애인을 ‘수학의 정석’화시킨 전형적인 사례. 그런 당신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일화 하나. 예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 동네에 노는 형님이 한 분 계셨다. 이 형님은 학교를 무슨 유엔안보리 이사회 참석하듯 띄엄띄엄 다니셨는데, 그래서 당연하게도 1년 더 ‘꿇게’ 되신, 학교 시스템의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한데, 이 형님의 마지막 학교생활 1년은, 다른 해와는 다르게 아주 열심이었다. 체육대회에도 열심, 보충수업이나 ‘야자’에도 열심(안타깝게도 성적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반 미팅에도 열심. 해서, 어느 토요일 하굣길이던가, 내가 슬쩍 물어본 적이 있었다. 형, 요새 왜 이렇게 학교생활에 열심이세요? 그러자, 동네 노는 형님은, 위로는 천문이요, 아래로는 지리를 꿰뚫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정들어서.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 형님이 정말 병원에 입원해야 되는 건 아닐까, 고민했지만, 이젠 어렴풋이나마 그 뜻을 알게 되었다. 정든다는 것의 참말로 큰 의미 말이다.

둘째. 동네 노는 형님이 해준 말과도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사랑에 빠져 죽을 거같이 좋은 시기가 3년 이상 지속되면 미안한 말이지만 그러단 정말 죽고 만다. 심장마비고혈압 같은 것이 올 확률이 높다. 내 경운 분명 그랬다. 살기 위해서라도 사랑은 좀 식을 필요가 있다. 사랑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차이는 좀 있겠지만, 우리가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지속시킬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6개월 남짓이 전부일 것이다. 그다음은 그저 리얼리즘의 시대일 뿐이다.(내가 알고 있는 한 선생님은, 이 리얼리즘의 시대가 수십년 이어지고 나면 휴머니즘의 시대가 온다고 했다.) 방귀도 트고, 트림도 트고, 쩝쩝 음식 먹는 소리도 갑자기 요란해지는 리얼리즘의 시대 말이다.(그 모든 것이 사실은 모두 살아보겠다고, 이러단 만성 속쓰림에 암까지 생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의 발로 때문에 튀어나온 본능들일 것이다.) 그 시기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관계는 쫑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은 꼭 ‘좋아 죽을 것 같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은 영원할 것만 같아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도 사랑하는 게, 그게 바로 사랑의 위대한 점이라는 것, 그걸 좀 생각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사랑에는 당연히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그걸 빤히 알면서도 가는 게 핵심이다. 우리가 무슨 이마트나 홈플러스냐, 새삼 유통기한 따위에 놀라게.


 
» 이기호의 독고다이
 
정리 차원에서 한마디만 더 하자. 그 옛날 프랑스에서 7월혁명이 일어났을 때, 시민들이 가장 처음 공격한 곳은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그 당시 시민들은 시간에 대해, 그러니까 근대에 들어서부터 계량화되고 수치화된 시간에 대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 우리가 3년이라는 사랑의 유통기한에 대해서 말할 때, 이것 역시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역시 사랑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하는 데 익숙해져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점 말이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내가 할아버지에 대해서 물을 적마다 늘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 양반하고 내가 오래 살긴 오래 살았지, 뭐. 따져 보니 그 세월이 40년이었다. 너무 날짜 따지고, 그러면서 다시 날짜 때문에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는 말자. 때론 한 달 만난 사랑이 평생을 가는 경우도 있다. 그게 바로 우리가, 우리 사랑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와는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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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장

안녕하세요! 나의 이름은 김반장입니다. 나는 음악을 하는 음악가로 살고 있는 사람이며, 자연의 넉넉함과 풍요로운 영감을 사랑하는 지구의 인간입니다. 녹색연합의 <녹색희망>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며 많은 메시지를 귀담아들으려 한답니다. 음악가라는 말이 여러분들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음악가란 단순한 직업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음악과 함께 살고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나누고자하는 바가 있기에 “무슨무슨직업”과 같이 돈만을 위해서 행하는 형태와는 다소 다른 의미를 음악가라는 말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음악가는 어떤 면에서 농부 같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모든 예술의 근본이 그렇듯이 음악 또한 사람을 비롯한 많은 생명들을 이롭게 하는데 그 뜻을 두고 있습니다. 농부가 숨 쉬는 흙, 땅에 씨앗을 뿌리듯이 음악가는 자라나는 또 다른 아이들에게 ‘영감’이라는 씨를 뿌립니다. 누가 뭐라든지 자기가 뜻한 바 있는 무농약 재배법으로 땅을 경작하는 농부처럼 음악가도 누가 뭐라든지 자기가 생각한 음악의 이상을 항해 묵묵히 나아가며 음악을 짓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예술, 모든 음악가가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는 레게음악이라는, 어찌 보면 한국에서는 굉장히 생소할 수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인데요, 이 레게음악이 나에게 음악의 길이 무엇인지 많이 가르쳐주었습니다. 레게는 자메이카에서 파생된 음악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자메이카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부들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레게음악은 거북이처럼 느린 드럼비트에 묵직하면서도 넘치는 풍년과 같은 느낌을 담은 베이스(베이스기타이기도 하지만 베이스음역대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다)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또 그것이 독특한 느낌을 내는 음악이지요. 많은 음표를 연주하며 꽉 채우는 것보다 연주가 필요한 곳을 찾아 여백을 두며 연주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 음악은 자메이카의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의 섭리를 섬기는 신심을 가진 롸스타(Rasta)라고 하는 이들의 전통적인 북음악 ‘나이아 빙기’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풍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메이카의 아름다운 풍경 웅장한 숲속의 자연 그리고 욕심내지 않고 사는 겸손하고 검소한 롸스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농부들이 연주할 때 당나귀도 춤을 춥니다.

참 멋진 잔치 아닌가요? 그곳에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선비정신을 느껴볼 수 있었어요. 한국에 선비정신이 계속 살아 있었다면 아마 우리들도 댕기머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랩을 하는 청년, 상투를 튼 모습에 드럼치고 노래하는 선비를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뿌리가 있는 전통을 가지고 산다는 것, 자연과 함께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산다는 것, 그것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의 진정한 가치 실현이자, 진정한 기쁨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지금 먹고산다는 핑계로 쉽게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겸손함 보다는 자기를 내세워 욕심을 채우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는 착각 속에서 많은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심지어 다른 이에게 해를 입혀가며, 다른 생명을 짓밟아 가면서 자기만의 밥그릇을 채우려하는 욕심쟁이들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인간적인 가치가 얼마만큼의 재물과 지식을 가졌느냐 하는 것과 혼동되고 너무 많은 TV화면과 소리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모습을 찾기도 전에 같은 얼굴과 같은 옷을 기대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때입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음악가로써 지혜로운 삶의 자세가 무엇일까 진지하게 고민해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말을 써가며 논쟁을 벌이고 많은 종교와 신심이 자기의 형식과 형태만이 진리라고 말하며 다투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을 자유롭게 인간을 풍요롭게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진리란 어린아이도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며, 그 형태와 형식이 어떠하든 서로 통하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나는 느낍니다. 레게음악이라는 아직은 생소한 음악을 한국의 땅에서 경작하면서 나는 좀 더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성숙한 삶의 자세를 가지려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곳은 자메이카와 아프리카와는 또 다른 땅이기에 이 땅 위에서 자라나는 좋은 레게음악, 나의 레게음악, 우리의 레게음악을 잘 경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레게음악은 언제나 “자신의 뿌리를 알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뿌리를 부모님이라 생각하고 혹은 한국인의 전통이라고도 생각할 것입니다. 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 제 아무리 잘난 맛에 살고 오만함을 가지고 위대한척 하더라도 인간 존재 그 또한 위대한 자연의 섭리 속에 있으며 그것을 통해 삶이 주어진 하나의 작은 생명에 불과합니다. 우리들이 자연에 대해 경외감을 가지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겸손함으로 자연을 대할 때 그제야 나와 너, 우리 그리고 한국인을 넘어선 자연의 아름답고 귀한 인간으로서의 '뿌리'를 다시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나는 그렇게 믿습니다.

<녹색희망> 편집자 여러분, 구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우리 참 좋은 인연입니다. 그렇지요? 그동안 우리가 오랫동안 복종하고 안주해왔던 험하고 마음 아픈 착각의 늪에서 벗어납시다. 진정 생명을 위한 삶(life to live), 삶의 기쁨이 넘치는 삶,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삶을 다시 떠올리며 나아갈 꽃길, 함께 손잡고 갑시다. 자연이 내어준 새로운 세대로서 청년의 늠름함, 듬직함, 열정과 사랑으로 세상을 밝게 비추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김반장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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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는 여자, 긍정적 상상력이 필요해!

연애하는 여자, 긍정적 상상력이 필요해!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한겨레  
 
 
» 연애하는 여자, 긍정적 상상력이 필요해!
 
Q 외모에 딱히 문제도 없는데 왜 자꾸 남자들에게 차일까요?

저는 일생일대의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서른살 직장 여성입니다.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을 찾을 수 없고 머리만 터져버릴 것 같아 상담을 드립니다. 저는 요즘 인생을 헛산 것 같습니다. 헛살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햇수로 4년 넘게 직장을 다녔지만 모아놓은 돈도 없고 내 사람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고 애인도 없어서요. 나름대로 저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다 생각하고 살아왔지만 되돌아보니 이게 뭔가 싶습니다. 그중에서 저의 가장 큰 고민은 남자들이 저를 떠난다는 것입니다. 대학 시절 한번의 오랜 연애 이후 여러 만남이 있었지만 지속적인 관계로 발전이 안 됩니다. 남들은 소개로 만나서 결혼도 하는데 저는 남자들이 한달 후면 다 저를 떠나갔습니다. 제가 성격에 뭔가 결함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엔 호감을 가져주니 외모 문제는 아닌 것 같고요. 제가 혼자 너무 앞서가는 걸까요? 남자들한테 제가 알게 모르게 부담을 주는 걸까요? 저를 알면 모두들 실망을 하는 걸까요? 왜 항상 제가 버림받는 처지가 되는 걸까요? 너무 정에 약해서? 끝까지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데 남자한테서 반응이 없는 걸 못 견디고 먼저 연락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한 남자한테 두번을 차이질 않나, 정말 저 자신이 싫고 바보 같고 돌아버리겠어요. 애정결핍일까요? 저의 문제는 대체 뭘까요?

 

A 외모나 기타 등등 지극히 멀쩡한데 연애는 잘 안 풀리는 불가사의한 여자들이 있지요. 착잡해하는 그녀들에게 사람들은 곧잘 “네가 남자 보는 눈이 없는 거야”라고 결론을 내려주곤 합니다. 그리고 너그럽게 덧붙이지요. “그런 남자 내버려둬. 넌 소중하니까. 언젠가 너에게 딱 맞는 남자가 나타날 거야.” 천만에요. 차이는 구체적인 이유는 늘 있었습니다. 당사자들이 자각하지 못할 뿐.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가 ‘상대의 사랑을 잃었다’라는 차원에서 ‘차인 것’이 아닌, 공식 연인 관계로 갈까 말까 서로 간을 보다가 ‘거부당했다’라는 의미(당신의 경우는 후자겠지요)로서 ‘차인 것’에는 대개 여자들이 스스로 자각하지 못했던 아주 명징한 패턴이 있습니다. 콕 찍어 말하겠습니다. 남자가 발을 빼고 싶게끔 만드는 그 공통적으로 바탕에 깔린 몹쓸 습성, 그것은 여자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을 남자가 부정해줌으로써 자신을 긍정해주길 바라는 행위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엥? 뭔 소리? 가령 이런 겁니다.

“왜 전화한다면서 안 했어요? 잊은 거죠?”

“나랑 있어도 별로 즐겁지 않죠?”

“나 너무 살찌지 않았어요?”

 





“내가 싫어진 거예요?”

여자는 “솔직히 나 좀 별로잖아. 사실 나 그다지 좋아하는 거 아니지?”라는 의미를 함축시킨 질문을 매번 다양한 형식으로 응용해 남자에게 던집니다. 그녀가 그로부터 기대하는 대답은 물론 “무슨 소리야. 아니야. 절대 아니야”라는 정겨운 ‘부정’이지요. 못 이기는 척 그의 강한 부정에 끄덕거리며 그녀들은 스스로를 긍정할 용기를 얻습니다. 자기평가가 실제로 낮든 안 낮든 간에 이렇게 자신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인정을 구걸하는 것, 자신이 원하는 뻔한 답을 유도해 내고자 질문을 던지는 것, 이거 참말로 구립니다.

“난 원래 이런(못난) 애야. 이래도 날 좋아할 수 있어? 나 따위 정말 좋아하기는 하는 거야?”라는 질문에 남자도 처음엔 ‘아냐~ 네가 얼마나 멋지고 소중한데’라고 안심시켜 줍니다. 하지만 자꾸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덧 피곤해지며 정말 그녀 말대로 그녀가 가치 없는, 막 대해도 되는 여자처럼 생각됩니다. 남자나 여자나 연애 초기에는 ‘내가 월척을 건졌구나’라는 행복한 확신이 필요해 안달인데 거기에다 대고 여자는 자꾸 초치며 남자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이거야 원, 나서서 ‘난 당신의 사랑을 받기엔 충분치 않은 여자’라고 계속 세뇌시키는 꼴이지요. 마치 ‘어서 나를 차버려’라고 주술을 외우듯이. 하나 나쁜 생각은 나쁜 예감을 만들고 나쁜 예감은 나쁜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저런 습성은 이기적이기도 합니다. 연애할 상대를 관찰하고 바라보고 행복하게 해주려고 궁리하기보다 신경이 온통 연애에 실패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나 자신에게 예민하게 집중되어 있거든요. 내 인생이 실패작이지 않기 위해, 내가 평균적으로 나쁘지 않은 여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내가 제때 결혼할 수 있기 위해, 나는 절대 차여서는 안 돼, 라는 초조함, 아, 그리고 어쩌면 실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차여서 더 자존심 상하면 어쩌나, 라는 오기마저 한데 어우러져 자의식의 후덥지근한 고기압이 형성되니 남자가 훅 나가떨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감은 없어지고 생각은 많아지고, 남자의 다음 반응에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연애하려는 여자에겐 긍정적인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죠. ‘난 차이는 여자’라는 딱지에 자가중독되면 다른 남자 나타나봤자 “또 너 나 찰 거지? 안 봐도 알아” 식으로 긁고, 벗나가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올라올 텐데.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가 늘 그 뻘짓 하면서 시리즈 이끌어 온 거 아닙니까. 왜들 그러냐고요? 엉덩이 주사 맞을 때 먼저 괜히 엉덩이 아프게 때리는 것처럼, 그렇게라도 선수를 침으로써 행여나 나중에 크게 입게 될 상처를 미리 최소화시켜 자신을 보호하려는 얕고 소심한 속셈인 거지요. 그러고는 꼼꼼히 스코어 따집니다. 0승 4패. 차고 차이고의 스코어가 뭔 의미 있을까요. 어차피 결혼은 한 놈하고만 하는 건데.

임경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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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한 게 별로 없다

그래도 10여년 내가 바라봐온 지향점 - 생태,농업,

을 향해서 나는 해바라기처럼 커 가고 있었던 듯하다

귀하신 인연들도 만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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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생각

우리 어머니는 때때로 살림이 힘들 때 아르바이트를 하신 적이 있다

그리고 취미삼아 한문강사로 일하신 적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세월은 살림을 해 오셨다

 

어머니가 넉넉하게 살림을 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안다

고생해서 노후대책에 우리들 결혼시킬 돈까지 마련해놓으셨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우습게도 어머니는 고생을 하지 않고 살아오셨다고 생각해버리고 만다

왜냐면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농사일로 고생하거나, 남편 때문에 고생하거나 자식들이 많아 고생하거나

그런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어머니도 고생했다. 신혼초 몇년간 할머니도 모셨고, 친인척 관계에서 뒷다마에 당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처럼 신경질적이고 반항만 하는 딸을 만나 제일 큰 고생 하고 계시다.

 

너무나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는 우리 집의 분위기가 나는 답답했던 걸까? 이게 왠 호강에 초친 소리인지...공무원인 아버지에 전업주부인 어머니 덕분에 잘 먹고 잘 살았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삶에 대해 너무 수비적인 태도와 유교적인 태도를 만드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답답해진다.

 

사람은 고생과 경험이 많을수록 성장하는데본인들이 그다지 그러지 못하셨기에 내가 그러는 것을 마음 깊이 이해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은주제넘은 자식년의 생각이었다!

 

호강에 겨운 소리라는 것 안다 ^^ 그렇지, 호강에 겨운 소리지...그래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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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되면서, 결혼을 생각하게 되면 여자는 마음이 가볍지 않다

우리 집, 부모님들과는 다른 분위기...그래 복에 겨운 소리다. 우리 집은 그닥 문제가 없는 집이다. 가족 간 사이에는...내가 너무 평탄하게 살아와서 그렇지 않은 삶에 뛰어들게 되면 적응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같은것. 혹은 오히려 너무 몰라서 환상을 갖거나 잘 할 수 있으리라고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둘다 좋지 않아!!~^^

 

어쨌든, 연애를 하던 연애 비스꾸레한 것을 하던지 간에 나는 아직 남자랑 한 방을 쓰고 싶지도, 시부모라는 존재를 대면하고 싶지도 않다.아니, 연애를 하면서 상대의 부모님,가족들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긴 하다.... 단정지을 일은 아니군. 그래서 가끔은 그 언니들, 조카들 생각이 날 때도 있다.

 

아직도 부모에게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기에

그러나 그것을푸는 것은 나여야 하기에 부모의 잘못이 아니기에

여전히 마음 속에는 앙금이 남아있나보다

부모는 부모요 나는 나라는 것만 주지하고 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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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게 요구되는 역할을 의식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게뭔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나에게 엄청난 역할이 요구된 건 아니다

다 나의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만들어낸 것이니까.

그게 사랑받는 방법인줄알고 살아왔으니까...

자존감이 부족해...알면 이제부터 시작인거야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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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에 대한 감정과 생각, 느낌은 20대 시절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바로 내가 아직 미숙하다는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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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연애기간과 결혼의 관계

 
연애기간과 결혼의 함수관계

<우리 벌써 만난 지 햇수로 삼 년이야>
<아직 당신을 잘 모르잖아요>

연애를 늘 짧게 짧게 하는 이들에겐 말 못할 ‘짧은 연애 콤플렉스’라는 게 있다. 왜 내 연애는 석 달을 못 넘기냐고 한탄을 하며 그들은 소개팅에서 만난 제법 마음에 드는 상대남자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바라보며 ‘사귄다 한들 대체 우리는 얼마나 갈까’라며 자조적인 생각에 빠지게 된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의 속 깊은 고민은 연애 자체가 짧게 끝나는 데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다. ‘나 이러다가 제대로 결혼할 수나 있을까?’일 것이다. 연애기간의 길고 짧은 것이 결혼의 성사에 정말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  

1.     오래 사귈수록 관계는 확실할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대개 ‘오래 붙어 있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편이다. 회사도 한 회사에 지그시 오래 다녀야 한다고 하고 배우자가 꼴 보기 싫어도 오래 데리고 사는 걸 권장하는 사회다.

하물며 연애를 짧게 하는 이들에겐 ‘그 따위는 연애가 아니야’라며 노는 남자, 노는 여자,라며 색안경을 끼고 보질 않나, 캠퍼스커플로 4년 내내 사귀었다가 졸업 후 이내 다른 사람으로 갈아타서 몇 달 만에 결혼하는 친구는 수군거림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편견의 이면에 는 인간관계란 자고로 오랜 기간 서로 겪어내야 양자가 인간적으로 성숙한 인격체가 된다, 라는 사상이 깔려 있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른바 결혼적령기에 도달한 그녀들이 보내오는 ‘이젠 결혼하고 싶어요’류의 상담을  보노라면 반드시 남자친구와 사귄 기간을 함께 써서 보낸다. 마치 병원에 가서 진찰받을 때 밥은 잘 먹고 잠은 잘 자는지 대변은 잘 보는지 밝혀야 하는 필수항목처럼 하나의 주요 잣대나 지표로 생각하는 듯 하다.

과연 그럴까? “저 이 남자랑 얼마 동안 사귀었어요.’라는 교제기간에 대한 명시는 물론 유용한 힌트이긴 하다.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우유부단함이나 성급한 뜨거움, 만난 지 석 달쯤 되었을 때 느껴지는 희미한 실망감과 초조함, 그리고 만난 지 일년 후의 아득한 권태기와 편안함 등, 연애에도 일련의 사이클이 있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평균적인 ‘연애’사이클에 불과하지 여기에 ‘결혼’이라는 큰 명제가 들어가게 되면, 그 보편적인 사이클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자못 ‘특수’해진다. 어떤 남녀는 만난 지 반년도 체 안 돼서 바로 상견례를 감행하고 어떤 남녀는 여러 유혹을 다 견뎌내고 8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한들 끝내 결혼에 이르지 못한다. 한 쪽은 눈을 반짝거리며 장담한다. “첫눈에 이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했어요.” 또 다른 쪽의 눈빛에는 원망이 가득하다. “만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어떻게 청혼을 안 할 수 있죠?” 마치 시간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듯이. 오래 사귀었는데 남자친구가 결혼을 먼저 얘기하지 않고 질질 끄는 상황을 듣노라면 내가 다 안쓰럽고 미안하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두 사람, 이미 결혼할 타이밍 넘겨버린 것 같은데. 오래 사귄 안심되는(?) 연인들의 함정은 그렇게 한 두번 결혼할 타이밍을 ‘미루게’ 되면 생기는 그 ‘미루는 습관’이다. 한 번 미루면 두 번 미루는 것은 쉬우니까 말이다. 여자가 참다 참다 못해 “대체 우리 관계는 뭐였던 거야?”라는 철학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면 이별이 가까워졌다는 징조다. 그리고 두 남녀는 각자 생각에 잠긴다. ‘대체 뭐가 잘 못 되간 거지?’. 너무 오래 만나면 도리어 결혼하기 힘들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방점은 어느 시점에선가는 찍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2. 연애기간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란?

물론 연애의 숙성을 위해서 적절한 교제기간이 권장사항이 되는 것은 일리가 있다. 서로의 몰랐던 면을 하루아침에 발견하기는 쉽지 않고 또 차분히 서로 단계를 밟아가며 더 가까워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진작에 ‘짧고 길다’는 것은 기준이 어디에 있을까? 한달? 석달? 일년? 오히려 특정 연애기간에 대한 선입견은 ‘내 연애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어떤 틀에 끼워놓고 해석하려다 보니 탈이 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짧게 만났다 해서 두려울 것도 없고 오래 사귀었다 해서 당연히 결혼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대사에는 시간으로 ‘때우는’ 것 이상의 거대한 힘이 작용해주어야 한다. 어떤 기세나 기합, 의지랄까. 그것은 ‘이 사람을 잃거나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열정일 수도 있고 ‘더 이상의 상대는 안 나타날 거야’같은 현실감각일 수도 있다. 내용은 저마다 제 각각이다. 공통점이라면 그들의 결혼을 향한 에너지의 농도는 두 사람이 처음 연애할 때 도와준 에너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점이다. 농도와 강도가 차원이 다르다. 그리고 그것이 강하고 진할수록 “어떻게 그 사람이 운명의 상대인 줄 알아봤어?”라는 질문에 “그.냥.알.게.돼.”라는 다소 거만한 대답과 “너무나 자연스러운 호흡처럼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라는 싱글들에게 전혀 도움 안 되는 모호하고도 잔잔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잔잔한 듯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이 에너지가 바로 그 유명한 ‘타이밍’ 되시겠다.

3.     결론

부끄럽지만 나 역시도 만난 지 삼 주 만에 청혼을 받아 두 달 후 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속도위반을 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 말하기엔 부끄럽지만 하루라도 빨리 그 남자랑 살고 싶었다. 서두르면 후회할 수 있다고 주변에선 말렸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고작’ 석 달이지만 만난 빈도수, 성의, 열기나 소통의 깊이로 따지자면 10년 만난 연인 버금가는 집중된 ‘힘’이 작용했던 것 같다. 사람들은 그것을 ‘마법’ 혹은 ‘운명’이라고도 즐겨 부른다. 그리고 마법과 운명은 저 멀리에서 찾아오는 게 아니라 보통은 내가 ‘보이지 않게’ 만들어놓는 것! 자, 그 동안 사귄 기간을 가지고 연인에게 질문하고 다그치기 보다 결혼을 하고 싶다면, 결혼을 당장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어떤 계기를 찾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십 년은 빠를 것이다.    


글/임경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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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비가 와요

여보, 비가 와요  

 

                     신달자  

 

아침에 창을 열었다

여보, 비가 와요

무심히 빗줄기를 보며 던지던 가벼운 말들이 그립다

 

오늘 하늘 너무 고와요  혼잣말 아닌 혼잣말

그저 그런 사소한 말 품에 안아 볼을 대고 싶다

 

너무나 거칠었던 격분  너무나 뜨거웠던 적의

무겁고 치열한 그 싸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한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2.

가슴을 울렁거리며 내 진정 하고 싶은 말

국이 싱거워요? 밥 더 줘요? 뭐 그런 이야기

 

안고 비비고 입술 대고 싶은 시시한 그 말들에게

나보다 먼저 아침 밥 한 숟가락 떠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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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재

[스크랩] 효재처럼. 천상 여자같은 그녀처럼.주소복사

작성자
김하나
작성일
2010.06.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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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난 남편 만나고 아이 못 낳은 것까지 다 나의 복(福)"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자연을 닮은 살림 고수,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

[ 2007-09-01 12:06:41 ]

이효재, 한국의 타샤튜더,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아내, 한복 전문점 효재 숍의 디자이너. 그녀를 아는사람은 매니아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오라.

그녀의 책을 읽고 나는 이 여성이 진정 21세기에 존재할 수 있는 모습일까 내 눈을 의심했다.

한없이 지고지순하고 오롯이 여성스러운 타고난 살림꾼, 효재.

그리고 그녀의 살림 하는 모습에서 우리 엄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읽고나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지다가도

나는 정말 이렇게 살 수 없을거야 자책하게 되지만,

그녀의 성실함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는

한국의 타샤 튜더라 칭송받아 마땅하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곱디고운 자태도

필시, 그녀의 아름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아래는 손숙이 진행한 인터뷰 프로그램의 전문.

 

 


 
“별난 남편 만난 것, 삯바느질 장이가 아티스트 대접 받는 것, 아이를 못 낳은 것까지 다 나의 복(福)” 자연을 닮은 살림 고수, 이효재 한복 디자이너

서울 삼청동에는 쇼룸도 없고 간판도 내걸지 않은 아담하고 예쁜 한옥 한복 가게가 있습니다.

자연을 닮은 한복디자이너 이효재 씨가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하는 곳이죠.

드라마 ‘왕의 여자’와 ‘영웅시대’의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던 이효재 씨…,그녀는 낮에는 혼수 한복을 짓고 밤이면 피아노 치는 남편 임동창 씨가 있는 산골 외딴집으로 퇴근을 합니다.

그리고는 살림 재미에 푹 빠져 밤 깊어 날 새는 것도 잊은 채, 바쁘게 움직입니다.

텃밭에는 고추, 부추, 연, 땅콩, 토란 등을 심고 나물 캐가며 시골 살림을 꾸려가고요. 눈에 보이는 건 뭐든 예쁘게 꾸미고 다듬습니다.

손길만 닿으면 헌것도 명품이 되는 살림 감각!입는 거, 먹는 거, 집 꾸미기까지… 무엇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멋지게 해내는 살림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