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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레쉬·모닥불 집회는?... "하소연은 술 먹고"

미친놈들 스토리 1

 

 

후레쉬·모닥불 집회는?... "하소연은 술 먹고"
[取중眞담] 대권 3수 한나라당의 '트라우마'
텍스트만보기   최경준(235jun) 기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 장윤석 한나라당 정치관계법 제개정특위 소위원장은 18일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시설은 정당과 정당 후보자 간 또는 정당과 무소속 후보자 간의 후보자 단일화를 위한 토론 등을 방송할 수 없도록 한다"는 등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7년 대선을 앞둔 한나라당의 '오버'가 예사롭지 않다. 대선 예비주자 '빅2'의 지지율 합계가 70%를 육박하는 당 치고는 가볍다. 1997년, 2002년 잇따른 대선 패배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한 탓이다.

다음은 지난 19일 SBS <김어준의 뉴스앤조이>에 출연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과 김어준씨의 대화다.

김어준 "한나라당이 내놓은 정치관계법 개정안, 내용이 너무 웃기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웃기시면 저는 어떻게 먹고 삽니까?
홍준표 웃기는 게 아니구요. 지난 대선 때 김대업씨가 온갖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후보를 음해했거든요.

김어준 한나라당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알겠는데요. 구체적으로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촛불집회를 금지했는데, 말이 안되는 발상 아닙니까? 후레쉬를 들던 촛불을 들던 사람들의 자유 아닌가요?
홍준표 "지난 대선 때 촛불시위를 이용한 특정 세력의 책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촛불시위 금지…, 그것 좀 이상하네요. 하하

김어준 이상하죠? 그럼, 모닥불 집회는 해도 됩니까?
홍준표 그것 좀 내가 들어봐도 이상하네요. 아마 한나라당 정치관계법특위 위원 일부가…, (한나라당은) 피해의식이 강합니다."

김어준 또 있습니다. 다른 당 후보들이 단일화하는 방송 중계를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데) 한나라당이 어떻게 막습니까?"
홍준표 그것도 그렇네요. 하하

김어준 개인적으로 가장 웃긴 것은 이겁니다. '포털에서 선거관련 단어를 인기 검색어에 포함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홍준표 누가 그런 법안을 제출했습니까? 그냥 발표만 했겠죠. 그게 웃긴 게 아니고, 지난번에 너무 피해를 많이 봤기 때문에 방어적인 측면으로 나온 것이겠지요. 법안으로 나갈 수 있겠어요?

김어준 그럼, 법안으로 만들지 말아야지요. 하소연을 법으로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술 먹고 하소연해야지. 듣고보니까 재미있지 않습니까?
홍준표 듣고 보니까 재미있네요. 그것(선거 관련 단어 인기 검색어 금지)은 좀 심하네요. 하하"


거센 저항에 부딪힌 정치관계법 제·개정안

 
▲ 한나라당은 19일 오후 정책의총을 열고 대북정책 변화에 대해 토론했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의총에서 양손을 들고 김형오 원내대표와 전재희 정책위의장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한나라당이 대선을 앞두고 추진중인 정치관계법 제·개정안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선거에 영향 줄 수 있는 촛불집회 등 금지 ▲국가 보조금·지원금을 받는 시민단체 및 대표자의 선거운동 금지 ▲전자개표는 보조, 수개표 의무화 ▲허위사실이 선거 결과에 영향 미쳤다고 인정될 경우 당선 무효, 재선거 실시 ▲보도 금지 등의 요청에 법원이나 선관위는 72시간 내 최종 판단 내리고, 그 전까지 보도 금지 ▲선거 관련 단어 포털 인기 검색어 금지 ▲정당 후보자간 단일화 위한 토론 방송 금지

한나라당 정치관계법 제·개정특위는 이같은 내용을 지난 16일부터 매일 한차례씩 국회 기자실에서 기자회견 형식으로 발표했다. 기자들은 "당론이냐"고 물었고, 특위는 "당론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장윤석 의원은 '선거 관련 인기 검색어 금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기 위해 당내 의원들에게 서명까지 받아놨다.

그러나 정치관계법 제·개정안은 타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최재성 열린우리당 대변인은 18일 "한나라당은 제정신이 아니다"며 "대권 편집증환자 한나라당의 광기가 국민의 정치의식과 민주주의와 언론을 향해 계엄령을 선포했고, 군사정권의 후예가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을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이영순 민주노동당 공보부대표는 "사실상 한나라당판 긴급조치 10호에 해당한다"며 "집권하지도 않은 정당이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집권을 하고 나면 얼마나 더 가혹할 지 벌써부터 몸서리 쳐진다"고 성토했다. 타당도 "주권자는 한나라당 당원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임을 명심해야 할 것"(통합신당모임), "군부독재 정권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형질을 드러냈다"(민주당) 등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당도 처음에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격", "선거법 개정투쟁은 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빛의 세력과 불의를 방치하자는 어둠의 세력간의 대결"(박영규 부대변인)이라고 저항했다. 그러나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정치관계법 개정안은 어디까지나 특위 차원의 검토되고 있는 안에 불과하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의원총회에서도 "의총을 거쳐서 확실한 당론이 되기 전에 특위에서 오버를 하고 있다"며 "당 지도부와 협의 없이 언론에 발표해 마치 당론인양 언론에 보도됐다"고 질책했다.

"문제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당내 일각에서도 문제제기가 잇따랐다. 원희룡 의원은 20일 "위헌적 선거법 개정시도는 한나라당의 자살골"이라며 "국민의 기본권 제한을 통해 집권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발상은 원내 제 1당으로서 지난 대선의 패배를 남 탓으로 돌리는 옹졸한 처사로 국민들이 기억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 의원은 또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잊을만하면 오만하고 과거로 돌아가려는 정당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대선을 앞둔 우리당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며 "문제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장윤석 의원이 발의하려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서명했던 의원들이 철회를 요청하고 나섰다. 결국 장 의원측은 당론이 확정된 뒤 발의하려고 했던 법안의 의원 서명인부를 이날 소각하기로 했다.

향후 특위안이 최고위원회의와 의총 등 당론화 과정을 거쳐 위헌성이 있는 조항이 삭제되고 어느 정도 정제될 지 두고 볼 일이다.

"술 한잔 먹고 하소연 할 일"을 법안으로 만들려고 했으니 쉽지 않은 작업이겠지만, '결자해지' 자세가 필요하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한나라당이 대선 패배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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