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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쟈끄 데리다가 살아있다면…

김상환 철학과 교수는 누구시더냐? 옛날에 손호철 선생은 해체 철학 암만 봐도 뭔소린지 모르겠다 하셨고 내도 맑시스트 유령들 암만 읽어도 뭔소린지 모르겠다만...

 

고대, 1류대다. 설사 개개 학생이 이건희 학교오는거 반기고 건물 지어줘서 고마워 할지라도 전체의 이름으로 노동탄업 업주 절딴내는 쎈스! 여전히 1류대다. 좋은게 좋은거 그냥 넘어가는 순간 똥통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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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끄 데리다가 살아있다면…
학생도 대학도 이건희도 모두 상처만 안게된 명예철학박사 소동
2005-05-22 15:22 김현 (guist10@dailyseop.com)기자
지난해 가을 타계한 해체주의 철학의 창시자 쟈끄 데리다는 생전에 대학과 인연이 별로 없었다.

대학입학 시험에도 한 차례 낙방했던 그는 1960년 소르본 대학 교수자격시험에서도 고배를 마셔 재수생활 끝에 교수가 됐다.

하지만 그가 창시한 해체철학은 철학 역사상 가장 정교한 문헌 해석의 기술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쟈끄 데리다’ 연구의 권위자인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그의 글들은 내용을 떠나 한편의 아름다운 음악”이라고 예찬한다.

그러나 현실 속 데리다의 삶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 지난해 타계한 해체철학자 자크 데리다 ⓒ 네이버 검색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당대 철학계의 거목이었던 소쉬르·하이데거·사르트르·레비스트로스·라캉·푸코 등의 이론을 차례차례 ‘해체’하면서 거꾸러뜨렸다.

그는 근대 인류문명이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진리와 그 진리가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것에 대한 전복을 시도했다. 김 교수는“그 무렵 파리에서는 들뢰즈를 빼고 그를 욕하지 않는 철학자가 없었다”고 말한다.

철학 밖의 영역에서도 그는 줄곧 일체의 권위에 맞서 싸웠다.

이미 철학자로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1981년, 그는 체코 지식인을 지원하다 체코 공산당에 구금되기도 했다. 또 프랑스 내 알제리 이주민의 권익과 인종·동성애 차별철폐 등의 인권운동도 펼쳤다.

넬슨 만델라 구명운동에도 나섰고 팔레스타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아랍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 그에게 캠브리지 대학이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제안한 적이 있었다. 1980년대 말 무렵의 일이었다.

하지만 본인이 수락여부를 밝힐 겨를도 없이 학내에서 철학과 교수들이 먼저 반발하고 일어났다. 철학계에서 이미 캠브리지 학파를 형성하고 있던 교수들은 데리다의 이론과 실천을 ‘과격하다’며 배척해 왔다.

이들은 ‘데리다 명예박사 학위’ 문제를 놓고 6개월 동안 토론하며 갑론을박 하다가 결국 학위 수여 방침을 철회했다.

적지 않은 고민 끝에 캠브리지 학파는 자신들의 보수적인 철학의 방식을 지켰고,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데리다는 자신의 철학적 위치를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김상환 교수는 “쟈끄 데리다와 캠브리지 학파는 철학의 방법으로 정교한 문헌 해석을 채택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며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치열한 논쟁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도 대학도 이건희 회장도 모두 자존심에 상처 남겨

‘이건희 명예철학박사’ 때문에 20여 일째 몸살을 앓고 있는 고려대 상황을 돌아보자.

고려대와 캠브리지 대학의 경우는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줬거나, 주지 않아서 다시 한 번 뉴스를 만들어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교수들이 반발하고 나선 캠브리지 대학은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철회’해서 해외토픽을 장식했지만, 예정대로 학위를 수여한 고려대는 학생들의 ‘반발’이 논란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김 교수는 “만약 쟈끄 데리다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캠브리지 대학은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줬을 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유병문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다른 사람도 아닌 이건희 회장이었기 때문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며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해도 다시 반대 시위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대학 구성원의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못한 고려대 본부측의 입장에 비판이 향할 수 밖에 없다.

캠브리지 대학이 쟈끄 데리다를 배격하면서 생각이 다른 철학적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면 고려대 역시 학생들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이 ‘자존심’ 문제를 두고 캠브리지 대학 교수들은 6개월 동안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토론’대신 ‘시위’를 벌인 고려대의 경우는 어떤가.

학교측은 지난 2일 학위 수여 반대를 주장하는 시위 학생들 앞에 체육학과 학생들을 배치했다. 이건희 회장은 자신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학생들을 보고 수여식장 뒷문으로 빠져 나갔다.

학위 수여식장의 레드 카펫 옆에서 피켓 시위를 하려했던 학생들은 “이 회장이 갑자기 뒷문으로 나가는 바람에 대열이 무너졌으며 체육학과 학생들 때문에 자극을 받았다”고 항변한다.

‘무너지고, 자극받은’ 그들은 성난 폭도의 모습으로 TV 카메라에 잡혔다. 구구절절 안타까운 모습이다. 이건희 회장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학교측의 노력은 사태 이후에도 보직교수 총사퇴로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이 날 학생들의 대열이 무너지는 그 순간, 소란 속에서 학위를 받은 이 회장이나, 학위주고 좋은 소리 못 듣게 된 본부측이나 총학생회 탄핵을 두고 논쟁을 벌이게 된 학생들 모두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기업 ‘기부(give)’에 대학의 ‘테이크(take)’ 방식 생각해야

구성원이 모여서 의견을 수렴하고 입장을 결정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학생들이 본부측보다 훨씬 성숙해 보인다.

학생들의 이번 시위는 시위를 반대하는 다른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총학없는 평화고대’측이 낸 총학생회 탄핵안이 그랬다.

‘평화고대’측은 “총학생회가 폭력적인 시위로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탄핵안을 내고 학생대표자 회의에 부쳤다.

여기에 고려대 각 과 학생회장들은 지난 19일 밤 회의를 열어 3시간 반 동안 토론을 벌이고, 표결을 했다. 결과는 참석인원 54명 중 39명이 탄핵 반대 의견.

‘부당한 사건에 항거하는 목소리를 냈다고 하여 학생회를 탄핵한다는 것은 탄핵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평화고대’측은 “총학생회측의 활동 방식에 문제 제기를 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며 표결에 승복했다.

문제제기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학생회의 행동에 징계를 제안하고, 토론을 거쳐 결정하고 철회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대학 본부측보다 훨씬 더 성숙해 보인 것이다.

하지만 학교측은 어떤가. 고려대가 지금까지 기업인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준 것은 이건희 회장이 15번째였다. 이 가운데 명예철학박사 학위만을 따져보면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1995년),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1997년)에 이어 세 번째다.

▲ 김현 기자 
하지만 여지껏 그 어느 때에도 이들 기업인의 학위 수여를 앞두고 학내에서 토론을 벌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물론 대학 운영에 기부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여기에 대한 어떤 방식의 감사 표시도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려대는 기업의 ‘기부(give)’에 대한 ‘테이크(take)’의 방식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무작정 기업 돈을 받아 지은 건물에 그 기업의 이름을 붙이는 것만이 능사일까. 이미 고려대에는 기업의 이름을 딴 건물들이 즐비하다.

‘LG-포스코 경영관’은 말 그대로 이들 기업이 지어 준 건물이다. 이 건물의 조경은 삼성 에버랜드가 맡았고, 디자인은 신라호텔이 대행 형식을 빌어 도와줬다. 더구나 이 건물 라운지는 5억원을 기부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이름을 따 ‘이명박 라운지’로 불리고 있다.

이밖에도 고려대에는 제일제당이 투자한 인터내셔널 하우스, 현대가 투자한 아산 이학관, 삼구 주식회사가 투자한 우당 교육관 등이 있다.

언제까지 대학 건물 명칭에 학생들이 존경하는 인물 대신 기업인이나 정치인의 이름만 기부금 액수 순으로 나열할 건가.

대학에게 기업의 기부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대학 구성원의 자존심도 함께 살리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토론이었다.

쟈끄 데리다가 살아있다면…

다시 쟈끄 데리다로 돌아가보자.

그가 텍스트 속의 모든 진리를 부정하고 일체의 권위에 항거했던 근거는 ‘차이가 동일성에 앞선다’는 이른바 ‘입장 바꾸기’였다.

그는 하나의 입장만을 강요하는 동일성이 아닌, 상대방의 생각을 한번 더 되새겨보는 ‘입장 바꾸기’를 통해 인류에 평화가 실현될 것으로 믿었다.

이같은 생각은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를 인정하는 프랑스의 보편적 가치 ‘똘레랑스’와도 맥락이 닿아 있다.

만약 지난해 타계한 쟈끄 데리다가 아직 살아서 고려대 소동을 봤더라면, 그리고 고려대가 캠브리지 대학처럼 그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제안한다면, 이번엔 데리다가 먼저 거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혼자 만의 생각일까.

ⓒ 데일리서프라이즈 < 김현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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