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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미래가 심상치 않다..

다음에도 또 노씨 대통령이...

 

노회찬의 미래가 심상치 않다..
     등록 : 한강  조회 : 5453  점수 : 1454  날짜 : 2005년8월19일 10시10분 
어제 노회찬 의원이 쓴 [나를 기소하려면 하라]라는 짧은 글은 명문(名文)이다. 짧은 글에 그토록 분명하게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이 하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의 이규택처럼 흐리멍텅한 사고의 소유자들은 100년이 가도 흉내도 못낼 것이다.


그의 글이 명확해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구질구질하게 감옥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에 내가 좋아하는 운동권 선배들이 흔히 하는 말이 이것이었다..--``100만,200만.300만이 모두들 감옥행을 자청한다면 이미 전두환/노태우 파쇼정권은 그날로 끝나는 거야.``


그 당시 친일파와 파시스트들에게 세뇌 당한 분들이 금과옥조처럼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서양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의 권위를 등에 업는 것도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악법도 법]이라고 한 사람은 소크라테스가 아니라 1930년부터 1945년까지 경성제국대학 법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정당화하고 일제의 강제징병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해방 후 한국 법학계의 주류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라고 한다.


누구보다 정보에 빠른 서프앙들에게는 상식에 속할지 모르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은 [학벌없는 사회]라는 사이트에 김주일님이 남긴 글과 윌 듀란트의 책을 참고로 한 것이다. 윌 듀란트는 결코 좌파 쪽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윌 듀란트의 책에 인용된 플라톤의 책<변명> 그 어디를 보아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인용문에서 [악법에 저항하는 그의 목숨을 건 투쟁의 자세]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악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군중들의 광기>에 목숨으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김주일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기 전에 이런 말들을 남겼다고 한다..--<양심이 육체보다 귀하다><내게는 정의가 있을 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인생의 참된 집은 영혼에 있다>.


플라톤이 서술한 곳에서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나의 여행을 잘 끝내도록 신께 기도하는 것은 허용되겠지>.


윌 듀란트도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최초의 순교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변명>에서 철학의 최초의 순교자는 자유로운 사상의 권리와 필요성을 선언했으며 국가에 대한 자기의 가치를 주장하고 경멸해 온 군중에게 자비를 애걸하려 하지 않았다. 군중은 그를 용서할 권한을 갖고 있었으나 그는 관용을 호소하는 것이 떳떳한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윌 듀란트의 책,제1장 플라톤 편에서)


당시 그리이스 시대는 직접민주주의 시대였기 때문에 [군중의 광기]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목숨을 건 저항]은 현대 간접 민주주의로 치면 [국회의원들의 광기]에 대한 [양심지킴이의 저항]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그의 말대로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는 <양심과 정의와 영혼이 목숨보다도 더 소중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서양철학의 아버지]다. <목숨을 건 진리수호 의지/정의수호 의지/양심수호 의지>야말로 모든 지성인의 핵심적인 지향점인 것이다.


흔히들 이상형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학술적으로는 [가치준거]라 부르는 것 같다. 가치기준의 척도가 되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치준거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소크라테스는 [진리와 양심과 정의]에 임하는 기본자세를 목숨을 걸고 보여 준 모든 지성인들의 가치준거인 셈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1930년 이후 경성제국대학에 둥지를 튼 [실정법주의자] 오다카 도모오가 실정법에 너무 경도된 나머지 소크라테스를 지 맘대로 해석해서 왜곡시켜 써 먹어버린 것이다. 그는 1937년 그의 저서 <법철학>에서 악법도 법이라고 하면서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하는 시민의 의무``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리고 해방 이후 오다카의 충실한 제자들, 황산덕, 이항녕 등이 한국 법학계의 주류가 되면서 소크라테스는 한국에서 일그러진 모습으로 반세기 이상 호된 고통을 겪게 된다.


다 아시다시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일제치하의 경성제국대학 실정법주의자 교수의 [지 멋대로의 해석]이 소크라테스를 제치고 소크라테스를 가장하여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지배하고 수천만 명의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왜곡된 해석은 군사 파시즘 정권의 인권유린의 주요 도구가 되었다.


친일파의 잔재들과 파시스트들이 만들어낸 한국현대사의 초상화인 셈이다.


<추가> 나는 현재의 민주노동당을 포함하여 여야정당 모두에 대해 결코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회찬 의원이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진실을 위해서 의원직 상실이나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는 그 개인 스스로나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좋은 국회의원은 의원직 상실을 각오하고 소신을 펴는 국회의원이다. 헌법상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지 지역구를 대표하는 게 아니다. 지역구 눈치에만 열중하는 국회의원에게는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한국 민주주의의 딜레마는 국회의원은 지역구보다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데 지역구에 연연하는 자일수록 당선이 잘 된다는 점이다. 이래서는 절대 국회의 발전도 국회의 개혁도 없다.


지역구에 연연하는 국회의원이 적을수록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과 국회발전/정당발전이 앞당겨 질 것이다.


<추가-2> 노회찬 의원에게 칭찬이 과했으므로 쓴소리도 하자면 민주노동당이 좀 더 구체적인 정책대안 마련에 힘써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민주노동당이 가끔씩 무늬만 좌파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우리 정당사에도 숱한 일들이 많을 것이다. 노회찬 의원에게도 젯밥보다는 제사에 더 신경쓰다 보면은 좋은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기가 오를수록 더 자신을 겸허하게 바라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강

 


노회찬 의원이 발표한 글 - 편집자 주

 

나를 기소하려면 하라


오늘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떡값검찰 7인의 실명을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그 사실을 미리 보도자료에 담아 배포했다. 면책특권 범위 안이니 밖이니 말들이 무성하다.


나를 기소하고 싶은가? 기소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


국회의원이기 이전에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우리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알리는 것이 도리다. 나라와 국민에게 도움 되고 옳은 일이라면, 법의 잣대에 개의치 않고 나는 한다.


나의 오늘 행동이 공익에 반한다면, 국민이 알 필요도 없는 내용을 공개하고 부당하게 사리(私利)를 추구했다면, 스스로 면책특권을 포기할 것이다. 나 스스로 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 것이다.


과거 ‘내부고발자’들은 범법자였다. 수많은 사람이 법의 잣대로 심판받았다. 그 덕분에 내부고발자 보호제도가 정착되었다. 옳다면 해야 한다. 다시 또 이런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나의 행동은 똑같을 수밖에 없다.


국 회 의 원    노 회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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