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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하지 않아야 더 재미있는 <웰컴 투 동막골>

요즘 온갖 정치 이슈가 난립하여

시절이 하수상하여 그냥 넘어가서 그렇지

남북 군인들이 함께 미군에게 총뿌리를 돌렸다.

이 얼마나 혁명적인 영화인가!

 

 

몰입하지 않아야 더 재미있는 <웰컴 투 동막골>
텍스트만보기   양중모(mojungy) 기자   
"웃지도 못하게 하고, 그게 뭐냐?"

얼마 전 <오마이뉴스>에서 같이 인턴을 하던 동생과 술을 마시며 <친절한 금자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금자씨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이 영화를 잘 모르는 관객들에게 실소를 나오게 하는데, 정작 박찬욱 감독을 아는 이들은 웃지 않아 결국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영화 보기가 불편해진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그 동생 녀석이 하는 말이 이랬다.

"그건 일부러 그런 거지. 감독이 금자씨에게 관객들이 너무 빠져들어 금자씨 편들지 않게 하려고."

그 때는 그냥 어렴풋이 그럴 수도 있겠네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장면은 어찌되었든 빼 버렸으면 더 좋았을 듯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말을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서 이해하게 됐다. 관객이 지나치게 인물에 몰입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 과연 누가 우리의 적인가?
ⓒ2005 필름있수다
<웰컴 투 동막골>을 본 사람들이라면 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특수 효과가 들어간 장면들은 좀 지나칠 정도로 어설프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특히나, 멧돼지를 잡는 장면에 있어서는 드라마에서 같은 장면을 연출해도 더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도 난 그에 대해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 얼굴에서 빛이 난 데 트집을 잡았던 것처럼, 트집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면을 그렇게 표현해 낸 것이 더 좋았다. 우리와 북한이 한 민족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민족 공조라는 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마음만으로 '하나 되자'고 끊임없이 생각한다고 해서 남과 북이 쉽게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즉, 감성적으로만 접근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어설프게 표현한 덕분에 민족적인 그런 감성에만 물들어 보지 않는 게 가능했던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한 가족이 따로 떨어져 만날 수 없는 상황은 우리를 아프게 하고, 그 아픔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은 이제껏 많이 나왔다(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공동 경비 구역 J.S.A 등).

그런 작품들이 우리에게 비극적 현실 인식을 안겨준 것은 부인할 수 없겠으나, 그 이상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느냐고 물어본다면, 개인적으로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디까지나 그 영화들이 그려낸 것은 비극적 현실을 바탕으로 한 비극적 결말까지 이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에는 성공했으나 대안 제시은 없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영화들에 비해 어떻게 보면 <웰컴 투 동막골>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는 영화다. 비록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와 무관했던 공간적 배경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은 안 웃을래야 안 웃지 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TV 드라마보다 못한 특수 효과는 비웃음을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의 가벼움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바로 이 두 가지가 사실은 <웰컴 투 동막골>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 <웰컴 투 동막골>은 남북간의 전쟁이라는 듣기만 해도 예민해지는 우리에게 유머를 이용해 여러 에피소드를 보면서 웃을 수 있게 하고, 꽁꽁 닫혔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한다.

사람이 웃게 되면 경계심이 풀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심지어 사람이 떨어져 죽는 장면에서까지 웃는 관객이 있을 만큼, 영화를 현실로 인식할 만큼의 사실성은 떨어지지만, 대신 관객들에게 '이 영화 끝까지 잘봐야지'라는 마음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한다.

▲ 특수 효과가 다소 엉성한 측면이 있다.
ⓒ2005 필름있수다
그리고 문제는 바로 그 다음부터였다. 실컷 웃어서 좋긴 하지만,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비극적인 얘기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뒤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 난다'라는 얘기처럼, 이야기의 분위기를 돌릴 때 잘못 돌리면, 아무리 앞에서 실컷 웃어도 마지막에 가서는 '이게 뭐야'라는 결말로 치닫기 쉽다.

관객에 따라 생각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천군>은 철처히 사람들, 특히나 젊은 남자들의 가슴을 요동치게 할 만큼 비장함으로 무장해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영화 속으로 뛰어들어가 싸우고 싶은 심정이 들게끔 만들었다.

그걸 보고 여자친구는 '감동적'이라고 했지만, 마치 군대에서 '정신교육'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지나치게 국수주의적 시각으로 그린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으로 인해 결국 난 <천군>을 '잘 본 영화' 목록에서 지울 수밖에 없었다.

박중훈만 봐도 웃는 나처럼 웃는 관객들 덕분에 웃을까 말까 고민하는 장면에서도 곧잘 웃었지만, 역시나 다소 감정적으로 그려진 <천군>의 후반부는 내게 도리어 영화에 몰입하기를 거부하게 만들었다. 빠져들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결국 영화를 제대로 보기 힘들었다.

▲ 정재영이 들고 있는건, 정말 혼자서 저렇게 들고 쏠 수 있을지는 의문.
ⓒ2005 필름있수다
그러나 <웰컴 투 동막골>은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다소 엉성한 특수 효과나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웃는 등 감정 이입을 하지 않게 알아서 영화에서 제어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천군>에서는 최종적으로 적을 규정지어주는 반면, <웰컴 투 동막골>의 적은 누구라고 할 수 있을지 상당히 애매모호한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미국, 북한, 한국 과연 어느나라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인가.

영화 주인공들에 몰입해 마지막 장면만 놓고 보면 우리의 주적은 미국인 듯한 느낌도 든다. 그러나, 동막골에 있던 미군 장교도 미군에 대항해 싸우려 했다는 점을 보면 과연 그런가라는 의문도 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관객에게 완벽히 몰입하지 않게 해 주는 장치를 마련해 주어 '무조건 미군은 나쁜 놈'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해주었다.

그렇기에 다소 엉성하다고 지적 받을 만한 특수 효과라고 해도 난 그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관계는 단순히 신파조로만 다루어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또한 지금 한쪽의 주장에 치우쳐 미국의 잘못이니, 북한의 잘못이니 하는 것들을 따지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 정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분석이다. 감성에 얽매여서는 더 나은 미래로 향해 가기가 힘드리라.

바로 그러한 점에서 <웰컴 투 동막골>이 칭찬 받을 만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감성에 얽매여 남북관계를 바라보았던 영화들에 비해 다소 어설픈 특수 효과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제발 좀 냉정하게 바라보기도 원하는 관객들에게 남과 북으로 갈라진 현실을 이성적으로 바라보기를 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보는 시각이 부족해 다소 잘못된 분석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전 이렇게 보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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