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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하는 문화, 우린 아직 멀었나?

극우수구들에게 '너와 나는 다르다'는 없다. '너와 나는 틀리다' 너는 틀렸다. 너는 빨갱이다.....

 

그밖에 우리가 잘못 쓰는 말중에 '우리'와 '저희'가 있다.  바로 잡아야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 우린 아직 멀었나?
[오마이뉴스 2005-08-22 09:35]    
[오마이뉴스 김정원 기자] 원어민(native speaker)이라 하더라도 모국어를 올바르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유창하게 모국어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한국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자주 '틀리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다르다'와 '틀리다'를 '틀리게'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한 번 들어 보자.

"그 친구는 나와는 성격이 많이 틀려" "이 색은 저 색과 틀리네" 등등, '다르다'를 사용해야 할 경우에 '틀리다'를 써서 '틀린' 문장을 만들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다르다는 형용사는 이것과 저것이 같지 않다, 영어로는 'different'가 되고, 틀리다는 '1번은 틀린 답이다'에서처럼 무엇무엇이 잘못되었다, 즉 영어로는 'wrong'이다.

필자는 아직까지 외국 사람들이 'different'를 사용해야 할 경우에 'wrong'을 쓰는 것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왜 유독 한국 사람들은 이 두 형용사를 '틀리게' 사용할까?

이 질문을 뜬금없이 하다가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획일화된 문화를 생각하게 되었다. 제대하고 호주에 어학연수를 잠시 갔다 귀국했을 때 가장 크게 놀랐던 점중의 하나가 대한민국 거리에서는 소위 노랑머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한국이 경제성장을 거듭하고 세계화를 외치면서 길거리에서 외국 사람들 만나는 횟수가 예전보다는 많아졌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거리는 검은 머리들로 넘친다.

정확한 통계수치를 제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만큼 단일 민족으로 사는 나라도 세계에서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이 하면 나도 그만큼 해야 하고, 남들과는 '다르게' 사는 것을 '틀리게' 여기는 문화에서 이 두 형용사를 오용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강변하면 너무 억지일까?

토론에서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나와는 '틀리다'로 단정하고, 토론이 끝나면 얼굴을 붉힌 채 말도 하지않고 돌아서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지 않는가? 중국집에 여러 명의 친구들이 함께 가서 다양한 음식을 시키고 싶어도 가끔씩 주인 눈치가 보여 그냥 모두 자장면을 시키는 경우가 가끔씩 있지는 않는가?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절대 먹지 않는 유태인계 미국인 친구와 함께 서울에 있는 일반 음식점에 갈라치면 그 친구가 정작 먹을 수 있는 건 메뉴판에 있는 음식 중 많아야 한두 가지 정도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 한국이 얼마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란 걸 깨닫게 된다. 김밥에 들어간 햄을 빼달라고 부탁이라도 할라치면 '까탈스럽게' 군다고 구박하는 음식점 주인도 꽤 된다.

필자가 독일에서 유럽학(European Studies) 공부를 하면서 만난 폴란드 친구를 따라 바르샤바에 다른 나라 친구들 4명과 함께 여행 갔을 때이다. 그날 따라 모두 배가 고파 점심 때 길거리에서 샌드위치를 사먹기로 했다. 그런데,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과정에서 한국에서라면 절대 보지 못할 광경을 보게 되었다.

메뉴가 모두 폴란드말로 적혀 있어 폴란드 친구가 일일이 5명의 외국인 친구들에게 영어로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를 절대 먹지 않는 터키에서 온 두 친구는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소시지가 무엇으로 만들어 졌는지 일일이 캐물었고, 양파와 마늘을 먹지 않는 영국계 벨기에 친구는 5가지 소스에 어떤 야채가 들어가는지 따지고 있었고, 토마토 알레르기가 있는 캐나다 친구를 위해 우리의 불쌍한 폴란드 친구(이름이 아가)는 그 요구사항을 폴란드 말로 쏼라쏼라 통역하고 있었다.

빵 종류도 다양해서 길거리 샌드위치인데도 3가지 종류가 있어서 이 '까탈스러운' 친구들 요구를 맞춰주느라 아가는 그야말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이 친구들 주문을 모두 받는데 30분이 넘게 걸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아가가 '넌 도대체 뭘 안 먹을 건데?'라고 묻는 듯한 그 눈길을 바라보며 나는 외쳤다.

"나, 아무것도 빼지 말고 다 넣어줘!"

샌드위치 하나 먹는데 이렇게 어려웠지만 폴란드 친구는 별로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인종들과 여러 문화를 경험하다보니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데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친구들이 서울의 어느 식당에 둘러앉아 음식을 주문한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그 음식점 주인의 얼굴을 상상하지 않더라도 일일이 그 친구들 주문사항을 통역하는 내가 앞장서서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오늘은 메뉴 하나 밖에 안된대!"

덧붙이는 글
필자는 독일 브레멘에서 유럽학(European Studies)을 공부했으며 현재 영어신문사 Korea Times 사회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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