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화장실에 음란화 그린 분들, 연락주세요"

 

 

"화장실에 음란화 그린 분들, 연락주세요"
[인터뷰] 화장실 낙서를 양지로 끄집어낸 조정화 작가
텍스트만보기   김대홍(bugulbugul) 기자   
▲ 지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선 국내 최초로 화장실 낙서를 주제로 한 전시회, '소통을 위한 드롱잉'전이 개최됐다. 어두운 실내에 관객들이 플래쉬를 들고 감상해야 하는 이색 전시회였다.
ⓒ2005 김대홍
어디에 있든 그 내부가 음담패설로 꽉 채워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남자 화장실이 그곳이다. 난잡한 성행위 그림에서부터 이성을 유혹하는 문구와 전화번호까지 그야말로 음담패설 천지다. 왜일까. 왜 화장실, 특히 남자 화장실에는 낯 뜨거운 음담패설이 홍수를 이룰까.

화장실 음습한 낙서문화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작가가 있다. 조정화 작가. 조 작가는 지난 10월 5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소통을 위한 드로잉전'을 개최했다. 점잖은 제목이지만 내용은 '화장실 낙서'다.

강간과 동성애, 근친상간 등 자극적 그림과 '우연히 함께 있게 된 옆집 누나를...'로 시작하는 포르노성 스토리로 구성된 전시회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19세 이하 관람 불가'라는 안내문은 어떤 문구보다 눈길을 끌었다. 이 전시된 '낙서'들을 보기 위해 주말에만 4백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어두컴컴한 전시회장. 희미한 조명 아래 사진 속의 낙서를 주시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불 꺼진 방에서 스탠드만 켠 채 음란물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 그것이었다. 관객들은 그림 중간 중간에 마련된 거울을 통해 음란물을 보는 자신을 마주 대하고, 뚫린 구멍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통해 관음증의 단면을 지켜봤다. 전시회장에선 인간의 욕망들이 생생하게 살아 꿈틀거렸다.

화장실 속에 숨어있던 인간의 거친 욕망을 전시회장으로 끄집어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자극적인 소재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 것은 아닐까. 과장된 남녀의 성기와 소통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일까.

▲ 전시회는 관객들이 관음증을 체험하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관객들이 뚫린 구멍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2005 김대홍
게다가 여성인 작가가 2년 동안 누볐을 화장실은 대부분 남성의 공간이었을 터. 과연 그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작가는 작업 노트에서 "나는 벗는다 너도 벗어라, 나는 드러낸다 너도 드러내라, 나는 솔직해진다, 너도 솔직해져라... 진정한 소통만이 널 자유롭게 한다"라고 털어놓았다.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화장실 낙서'를 끄집어낸 조정화 작가를 찾아가봤다.

왜 하필 화장실 낙서인가

- '화장실 낙서'라는 자극적인 소재로 전시회를 개최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화장실에서 몰래 몰래 표현하는 욕망을 드러내놓고 생각해보자는 의도였다. 성(性)이 화장실에서 범죄 저지르듯 털어놓아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성은 밥 먹는 행위처럼 자연스런 일상의 한 부분이다. 또한 성에 대한 관심은 작가라면 누구나 가져볼 만하다. 피카소나 세잔 고흐도 성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적지않게 그렸다. 그들의 작품을 한 번 봐라. 놀랄 정도로 화장실 낙서와 닮았다."

▲ 이번 전시회는 관객 그림이 한 면을 차지했다. 화장실 낙서를 직접 그리고 있는 관객.
ⓒ2005 김대홍
- 일부에서는 상업성이나 또 다른 관음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상업적인 비판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석은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전시회를 봤다면 그런 비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단지 사람들이 몰래몰래 구경하는 게 아니라 실제 관객들이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다. 참여가 너무 뜨거워서 그들의 그림을 벽에 다 붙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속에서 관객들은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나 또한 관객 그림 속에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사실 '성'은 누구나 관심 있어 하는 소재가 아닌가. 솔직히 포르노사이트에 회원가입 하는 사람 숫자를 한 번 파악해보고 싶다."

- 남자화장실의 낙서를 2년 동안 감상한 느낌이 궁금하다.
"처음 화장실 낙서를 접했을 때는 왜 성적 욕망을 이성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화장실에서까지 와서 저렇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야 하는가 싶기도 했고. 그런데 점점 작업을 하면서 연민의 정 같은 게 느껴졌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항상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해야 하는 인간의 한계, 존재감 같은 것 말이다. 경기대 박형택 교수는 추천사에서 '슬픈 하드코어'라고 썼는데, 그 말에 공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화장실에서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걸 억제하지 못해서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을 볼 때와 비교하면…."

"포르노의 원조는 화장실 낙서, 하지만"

▲ 화장실 낙서는 성기 부분만 집중 묘사되는게 특징이다. 그 점은 포르노와 놀랍도록 비슷하다.
ⓒ2005 김대홍
- 전시된 사진을 보니 포르노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 포르노의 원조는 화장실 낙서다. 특별한 이야기 없이 '삽입'에만 치중한다는 점, 은밀하고 당당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두 문화는 닮았다. 밀폐된 공간에서 익명성을 전제로 음란한 그림을 감상한다는 점에서 둘은 차이가 없다. 하지만 화장실 낙서는 엉성한 그림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보더라도 실제 현실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반면 포르노는 실제 우리가 보는 '사실 그대로의 사람'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받는 충격도가 다르다. 그리고 접근성이 대단히 강력하다."

- 화장실 낙서의 특징 중 댓글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인터넷 리플의 원조가 화장실 낙서에 따라붙는 댓글이라고 본다.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흥미 있거나 관심 있는 글에 자신의 의견을 추가해왔다."

- 사진에 있는 그림 대부분이 남자와 여자의 성기나 혹은 삽입장면이다.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곤혹스러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나.
"다양했다. 한 30대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호탕하게 웃었다. 그 관객은 방명록에 '올해 들어서 가장 좋은 전시회를 봤다'고 적었다. 어머니의 권유로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온 20대 남자도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50대 주부들은 사진 감상에 무척 소극적이었다. 남편만 들여보내고 자신들은 보지 않겠다고 입구에서 버티는 모습도 봤다."

- 여자와 남자의 반응이 달랐다는 얘기 같은데.
"여자들은 '고생했겠다'는 반응이었다. 화장실 낙서가 그려진 곳이 주로 남자화장실이었겠기 때문에 촬영이 힘들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남자들은 그런 고충을 모르는 것 같더라."

"좋고 나쁨은 낙서하는 당사자들이 잘 알 것"

▲ 관객이 전시회장에서 직접 그린 화장실 낙서 그림(좌).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한 사람이 그린 작품 '거울, 내가 없다'(우)
ⓒ2005 김대홍
- 왜 남자들이 화장실에서 성행위를 묘사하는데 열을 올린다고 생각하나.
"글쎄. 내가 남자가 아니어서 모르겠다. 관객들하고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 자신이 과거 화장실 그림을 그렸다고 털어놓은 분은 50대 중년남자였다. 어린시절 그렸다는데, 당시엔 자신의 성적 본능을 억제하지 못해서 어떻게든 표출해야 했다고 고백했다. 지금 10대나 20대, 그리고 '작업 중'인 사람들은 어떤 심정인지 모르겠다."

- 만약 누군가 화장실 낙서를 한다고 고백하면 뭐라고 말해주고 싶나.
"작업노트에서 말한 대목으로 설명을 대신할 수 있겠다. '나는 벗는다 너도 벗어라, 나는 드러낸다 너도 드러내라, 나는 솔직해진다 너도 솔직해져라, 나는 자유다 너도 자유인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소통만이 널 자유롭게 한다'라고 썼다. 화장실 낙서가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는 이분법 사항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이 알 것이다. 건강한 소통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만약 건강한 소통이라면 자유롭다고 느낄 것이다."

- 화장실 그림을 그리는 현장을 직접 목격한 적은 없나.
"딱 한 번 있다. 그림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40대 중반의 중후한 남자였다. 길에서 보면 아주 모범적인 인격을 갖춘 신사라고 생각했을 사람이었다."

"화장실에 남성중심의 사회상이 담겨있더라"

▲ 화장실 낙서는 '삽입' 위주, '남성' 주도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2005 김대홍
- 전국 각지의 화장실을 다녀봤을 텐데 지역별 차이는 없었나?
"없다. 놀랄 만큼 똑같다. 그림 형태, 내용 모두 닮았다. 한 사람이 그림과 텍스트 모델을 뿌렸다고 착각할 정도로. 가령 내용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더니 친구는 없고 누나가 있더라' 희한한 점은 상대여성이 모두 연상의 여자라는 점이다. 친구 동생이나 친구의 여자친구 이야기는 없다. 모두 누나 아니면 동네 아줌마다. 그림은 남성 중심적이다. 여자는 수동적인 자세로 남성을 받아들이고 남성이 성행위를 주도한다. 여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반면 남자들은 의기양양하다."

- 여자 화장실은 어떤가.
"여자 화장실에 있다고 모두 여자가 그린 것은 아니다. '누나 시리즈'나 남자 핸드폰 번호를 남긴 그림들은 남자들이 그렸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진짜 여자들이 그린 그림도 발견된다. 그들의 그림은 남자들에 비해 소극적이다. 가슴 두 개를 그리거나 조개 모양을 그린 게 전부다. 욕망을 많이 드러낸 글도 보기 힘들다."

조정화 작가는

올해 프랑스 에띠엔 드 코장 갤러리에서 'panorama전'을 개최한 것을 비롯, '한국사진의 수평전'(1994, 공평아트센타), '또다른 만남'(1997, 삼성포토갤러리), '사진 영상의 해 기념전'(1998, 코엑스), 물전(2003, 서울시립미술관), '몸이 내게 말했다'(2003, 라메르) 등의 전시회를 열었다. <몸이 내게 말했다>(2004, 눈빛출판사)를 저술했다.

현재 남서울대학교에 출강중이다. airjjh@naver.com.
- 과거의 낙서와 현재의 낙서는 어떻게 다른가.
"과거에는 무조건 남녀 관계였다. 그러나 점차 동성애 그림이 증가하는 중이다. 남자가 남자의 성기를 잡거나 여자와 여자가 성관계를 한다. 또한 무조건 수동적이었던 여자가 적극적인 자세로 변화하는 점이 눈에 띈다. 그런 그림들은 보통 여자들이 그린다."

- 다음엔 어떤 걸 계획하고 있나.
"있다.(웃음) 실제 화장실 낙서를 한 사람들을 찾고 있다. 커밍아웃하면 그 분들을 모델로 사진촬영을 할 계획이다. 성에 대해 솔직하고 당당하자는 이번 전시회 주제를 이어가자는 목표에서다. 여기엔 화장실 낙서뿐 아니라 인터넷 포르노 사이트에 회원가입한 사람도 포함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