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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저질이라고? 당신도 즐기잖아

[오마이뉴스 윤형권 기자] 침침한 조명아래 거나하게 술잔이 돌고 있는 자리. 한 사람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배꼽을 잡고 큰 소리로 웃는 사람, 고개를 돌리고 주위를 살피며 슬쩍 웃는 사람이 뒤섞여 보인다. 이런 상황이라면, 십중팔구 음담패설이 오가는 현장이다.

성 담론을 풀어놓는 그 자리를 사람들은 음탕하고 음란한 시선으로 보지만 사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까운 사람끼리의 음담패설은 특정인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마음에 상처도 없다. 그저 성을 대상으로 하는 진한 농담일 뿐이다. 풍자와 해학을 다룬 우리 옛 문헌 여기저기에도 음담패설이 잔뜩 묻어있지 않은가.

사람이 모이는 곳에 이야기가 있듯 이야기가 있는 곳에 음담패설이 있게 마련이다. 음담패설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건드려 공통분모를 만들며 거리감을 줄여준다. 어색했던 자리, 떨떠름했던 사이라도 음담패설이 한차례 지나가면 한결 분위기가 좋아진다. 이처럼 음담패설은 인간의 원초적 배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맞다. 나는 음담패설 옹호론자다.

동서고금 막론한 공통화제, '음담패설'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綠水)에 홍련화(紅蓮花) 미풍(微風)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 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東海) 청룡(靑龍)이 굽이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荊山)의 백옥(白玉)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얼핏 보면 음탕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춘향전> '사랑가' 원전의 일부를 옮겨놓은 것이다. <춘향전> 같은 고전뿐만 아니라 옛 민화에도 음담패설을 주제로 한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내용과는 달리 <춘향전> 원전에는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군데군데 담겨있다. '사랑가'가 대표적. 사진은 1999년 영화로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
ⓒ2005 태흥영화사
선조들도 다르지 않았다. 시인 이원규가 과거부터 전해내려 오는 남한, 북한, 연변 등의 음담패설을 정리한 <육담>(1996, 지성사)은 신분 차별과 농사에 평생을 바쳐온 민초들이 어떤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 이원규 시인은 이 책에서 "육담이 한갓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유교 문화에 깊숙이 젖어 금기시돼 오던 성을 풍자나 해학을 통해 노골적으로 얘기함으로써 억압된 성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도록 하는 노릇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음담패설은 음담배설... 탈 나기 전 소통시켜줘야"

고등학교 졸업반 때였다. 대학 입학고사를 치른 뒤여서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수업 중에 어떤 선생님은 노래를 부르며 위로를 해주기도 했고 어떤 선생님은 대학생활에 대해 조언도 해주었다. 그런데 엄격하기로 소문난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뜻밖의 음담패설이 나왔다.

"아버지와 아들이 소 시장에 갔다. 사람들이 소를 사려고 여기저기를 쓰다듬고 있었다. 아들이 '왜 소를 만지지요?'하니까 아버지가 '좋은 소를 사려면 손으로 이곳저곳을 만져서 감정을 해야 한단다' 한 거야. 며칠 후에 옆집에 다녀온 아들이 아버지에게 헐레벌떡 뛰어오며 말했지. '어떤 형이 옆집 누나를 사려고 하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썰렁하기 이를 데가 없는 농담이다. 그러나 당시 수학 선생님은 이런 음담패설을 한 시간 내내 한 다음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한 너희들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음담을 늘어놓았다"며 "음담패설은 음담배설이다. 배설이 안 되면 막혀서 탈이 나니까 소통을 시켜줘야 한다"고 하셨다. 항문이나 요도를 통해 몸의 찌꺼기나 체액을 배설한 뒤의 그 개운한 맛을 음담패설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게 수학선생님의 지론이었다.

수학 선생님의 음담패설이 있은 후 아이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의 새로운 면을 보았다. 인간적인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라고들 했다. 아이들은 이날 이후로 수학 선생님을 보는 시각이 부드러워졌다.

▲ 음담패설을 다룬 우리 민화 작품들도 많이 있다. 가사문학관에서 구입한 그림엽서
진한 농담일뿐...손가락질 할 것까지야

많은 사람들이 음담패설 속에 가부장적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인지 남자들은 음담패설에 대해 대단히 관대하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씨는 술자리에서 음담패설을 자주 나눈다고 한다. 그는 남자들의 음담패설에 대해 "사람을 가깝게 해주는 수단"이라며 "수다의 일종으로 술자리 끝나면 사라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공무원인 전모씨는 "남자 셋 정도 모이면 '야설'이 끊이지 않는 게 사실 아니냐"면서 "친한 친구 둘 셋이 모인 자리에서 편하게 하는 야하고 진한 농담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가 변함에 따라 음담패설도 진화한다. 조선시대에는 봉건적 유교사상을 겨냥했고, 억눌린 시기에는 높으신 양반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이제는 점차 가부장적 음담들도 성평등적 내용으로 바뀌고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그저 악의 없는 우스개일 뿐이다. 오히려 성적인 상상을 죄악시 하면서 이를 은밀한 공간으로만 밀어 넣으려 할 때, 그때부터 성범죄가 시작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음담패설에서 중요한 단어는 담(談)과 설(說)이다. 음란함(淫)과 어그러짐(悖)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 다소 짓궂지만 음담패설 한마디가 한바탕 웃음과 자연스런 소통을 가능케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솔직히 말해봐라. 당신도 즐기지 않는가.

/윤형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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