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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조항'이 던지는 헌법적 화두

  

 

 

연재기사 | 박성철의 <헌법재판 오디세이> + 종합
'영토조항'이 던지는 헌법적 화두
[헌법재판 오디세이 4] 영토는 공간적 존립기반, 기본권으로 구성될 수도
텍스트만보기   박성철(bonn) 기자   
헌법 제3조 영토조항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습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발언이 불을 댕긴 모양입니다. 국회 대정부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영토조항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힌 것이 발단입니다.

영토조항, 묻혀있어도 뜨거운 감자

영토조항을 둘러싼 논란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간 정치권 및 학계 일각에서 꾸준히 문제제기가 있어왔습니다. 이번에 이슈가 사그라진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특히 개헌논의가 시작되면 이 조문을 놓고 적지 않은 갈등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영토조항에 대해 생각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정치인들의 논의 또는 정치적 배경을 견지하고 있는 이들의 주장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 이념적 성향이 어떠하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적 득실에 따라 입장을 택하고 기존논리를 뒤집기도 하는 논지는 허구에 가깝습니다.

학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그래도 유용할 것입니다. 학자라고 해서 정치적 색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헌법전체를 아우르며 쓴 책에서 밝힌 학설은 당파성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데 학자들의 태도가 일목요연하게 일별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영토조항이 담고 있는 헌법적 쟁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민감한 사안인 국가보안법 문제, 북한주민의 법적 지위와도 직접 얽혀 있습니다. 게다가 독창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학자들은 조금이라도 남과 구별되는 견해를 피력하기에 바쁩니다.

영토조항, 평화통일조항과 관계는...?

여기서 영토조항의 헌법적 함의를 파악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비록 영토조항의 한 단면에 불과하지만, 그 이상으로 참고가 됩니다. 영토조항과 관련해 불거지는 화두는 대개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해묵은 논점이니만큼 숱한 학설이 쌓여 있습니다. 왜 이를 문제로 삼는지 우선 조문을 읽어봅니다.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두 조항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 발제입니다. 제3조에 따르면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게 되는데, 이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제4조와 상충된다는 설명입니다. 영토조항은 분단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규정한 것이어서, 분단현실의 인정을 전제로 한 평화통일조항과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지적인 것입니다. 문제인식 자체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시되는 해법은 다양합니다.

우선 영토조항의 현실적 규범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우리 헌법전문의 '평화적 통일의 사명'이라는 문언을 중시해서 평화통일조항의 우월적 효력을 인정하는 견해, 평화통일조항과 상호 모순되는 영토조항을 개정 혹은 삭제해야 한다는 견해 등이 이에 속합니다.

반면 영토조항의 현실적 규범력을 인정하는 입장도 다수 존재합니다. 이는 북한지역을 불법적인 반국가단체가 지배하는 미수복 지역으로 보는 종래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통일방안으로 무력통일을 배제하면 영토조항은 평화통일 조항과 충돌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조화되는 것이라는 견해가 대표적입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인 이중적 성격이 영토조항과 평화통일조항을 통하여 반영된 것이라는 목소리도 지지를 받습니다. 헌법입법의 독특한 방식인 상반구조적 입법기술을 전제로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영토조항을 구체화한 국가보안법과 통일조항을 구체화한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이 서로 다른 방향의 하위입법으로 존재한다고 봅니다.

영토, 우리의 공간적 존립기반으로 삶의 터전

이렇게 통일조항과 관계를 풀어내는 학설들은 영토조항이 주로 남북관계 틀 속에서 토의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토에 관한 논의 대부분을 현재의 남북관계에만 할애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단견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영토를 담론으로 삼을 때는, 가령 통일 이후 중국 혹은 일본과 영토분쟁이 벌어지는 상황도 감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간도문제, 독도문제는 미래의 일로만 치부할 성격이 아닙니다. 영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으로 보전해야 할 공간이라는 시선도 더해져야 합니다. 물론 세계시민으로서 공존을 지향해야 하겠지만 역사가 말해주듯 특히 동아시아에는 힘이 부딪히는 갈등지점이 엄연히 상존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어업에 관한 협정 비준 등 위헌확인’ 사건에서 아래와 같이 판시한 부분은 그런 점에서 눈에 띕니다. 비록 본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적법요건을 판단하면서 설시한 것입니다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다소 길지만 정확한 의미전달을 위해 모두 옮겨봅니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여,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를 명백히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영토조항의 헌법적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존재하지만, 이러한 영토조항이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권리인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본권이라는 것이 국민의 국가에 대한 주관적인 헌법상의 권리인데 대하여, 영토조항은 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에 대한 규정임을 고려하여 볼 때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적 권능의 정당성근거인 동시에 국가권력의 목적인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 대표적인 헌법재판제도로서의 헌법소원심판의 본질은 개인의 주관적 권리구제 뿐 아니라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보장도 겸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 개별적인 주관적 기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보장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그 예로서,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은 우리나라의 공간적인 존립기반을 선언하는 것인바, 영토변경은 우리나라의 공간적인 존립기반에 변동을 가져오고, 또한 국가의 법질서에도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필연적으로 국민의 주관적 기본권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국민의 개별적 기본권이 아니라 할지라도 기본권보장의 실질화를 위하여서는, 영토조항만을 근거로 하여 독자적으로는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없다할지라도, 모든 국가권능의 정당성의 근원인 국민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권리구제를 위하여 그 전제조건으로서 영토에 관한 권리를, 이를테면 영토권이라 구성하여, 이를 헌법소원의 대상인 기본권의 하나로 간주하는 것은 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2001. 3. 21. 99헌마139·142·156·160(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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