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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는 여의도에서 작업중!

로비스트는 여의도에서 작업중!

“삼성 직원은 왜 386 초선의원실을 돌고 있을까”
인맥 총동원해 정책결정 입김 행사하려는 기업들의 로비 실태

▣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국회 의원회관 238호를 찾는 삼성의 발길이 잦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삼성SDI, 삼성중공업, 삼성화재의 ‘국회 로비 담당자’들은 우원식 열린우리당 의원실에 부쩍 공을 들이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인 우 의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삼성의 하청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낮은 장애인 고용률 등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부터다. 우 의원이 입을 열 때마다 삼성의 이미지가 조금씩 훼손되는 것을 그냥 놔둘 수 없는 탓이다. 삼성이 고된 ‘386’ 초선 의원 설득 작업을 하고 있다.

정책 하나하나에 수천억원이 왔다갔다

삼성뿐 아니다. 현대기아차그룹, 현대중공업, 옛 LG칼텍스 등도 우 의원실을 찾는다. 기업의 대국회 로비 담당자들은 299명의 의원실 곳곳을 소리소문 없이 누비고 다닌다. 국회는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와 함께 기업의 가장 중요한 로비 대상이다. 국회의원이 국정감사 등 의정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이미지나 영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SK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떠들면 기업 이미지뿐 아니라 실제 감독 당국의 조사가 이뤄질 만큼 파괴력이 크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법의 자구 하나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서 기업의 운명이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CJ그룹은 지난해 말부터 국회 담당자를 여의도에 보내고 있다. 국회에서 출자총액제한제의 대상이 자산 5조원에서 6조원으로 완화할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면서부터다. CJ는 자산규모가 5조원대다. CJ로서는 출총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호기를 맞아 국회에서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국회 산업자원위 관계자는 “기업으로선 정책 하나에 수천억원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방카슈랑스나 전자파 유해물질 규정 등 기업의 커다란 이해가 걸린 갖가지 법안과 정책들이 이 순간에도 국회에서 쉼 없이 논의되고 있다.


△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전경. 299명의 의원실이 위치한 이곳엔 기업, 정부 연락관, 이익단체 등 200~400명의 '로비스트'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용호 기자)

기업들의 로비가 가장 치열한 곳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상위다. 통신요금 등 통신정책에 따라 통신업체끼리 이해가 뚜렷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KTF 관계자는 “통신업체들이 국회에 상시적으로 담당자를 둔다는 것은 국회에서 업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상임위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KT, KTF, KT, LGT 등의 국회 담당자들은 특별한 이슈가 없어도 꾸준히 과기정위 의원들을 ‘관리’하고 있다. 또 기업들을 규제·감독하는 공정위와 금감위를 관할하는 국회 정무위도 기업 국회 담당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국회 건설교통위나 산업자원위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임위들이다. 특히 과거와 달리 환노위가 17대 국회 들어서 기업들의 중요한 로비대상이 되고 있다. 대기업과 각을 세우는 민노당의 의회 진출과 대기업에 ‘할 말은 하는’ 여당 초선 의원들이 늘어난 탓이다. 기업 입장에서 ‘방어’에 드는 비용이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가장 많은 비용을 들이는 곳은 ‘1등 기업’ 삼성이다. 삼성 계열사의 국회 담당자들은 각각 국회에 현안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수시로 국회를 출입한다. <한겨레21>이 국회 17개 상임위 의원실 등에 확인한 결과 삼성생명, 삼성SDI,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화재, 삼성탈레스, 삼성테크윈 등 대부분의 삼성 주력 계열사들이 지난 1년여 동안 국회의원실을 수시로 출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도 종종 국회에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삼성 로비의 힘은 ‘지인 데이터’

건교위 의원들을 맡은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안이 있을 때나 일주일에 한두번씩 국회에 나간다. 현실과 괴리가 있는 법안이 많다.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해 법안에 반영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국회 출입 이유를 설명했다. 삼성 계열사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구조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모른다”며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 구조본의 기획팀 산하 전략지원 파트(옛 정보팀)에서 계열사 나름대로 있는 정보 라인의 사령탑 기능을 하고, 대외협력 파트에서는 계열사 임원과 간부 수백명으로 구성된 대외협력관을 유기적으로 움직여 대국회 로비에 활용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이른바 삼성의 ‘전방위 로비’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 계열사에서 대국회나 대관(관청) 업무를 하지 않는 곳이 없다. 삼성 관련 내용들이 국회에서 이슈가 되지 않는 것은 자신들과 관련된 게 터지면 학연, 지연 등을 총동원해서 무조건 막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 국회 의원회관 내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실. '오일게이트' 를 수사 중인 검찰은 이 의원 비서관 심아무개씨를 불러 로비를 받았는지를 조사했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삼성 로비의 힘은 그룹 임직원의 ‘지인’ 데이터에서도 나온다. 국회의원뿐만 아니라 보좌관들의 인적사항 등도 그물망처럼 관리된다. 환노위의 한 보좌관은 “일 때문에 만나기로 한 삼성SDI 임원 한분이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 선배를 데리고 나와,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이 학연, 지연은 기본이고 결혼기념일, 좋아하는 음식 등 관리 대상의 사소한 것까지 꼼꼼히 챙긴다고 많은 보좌관들은 털어놨다. 이들은 하나같이 “삼성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감탄엔 까닭 모를 두려움이 깃들어 있었다. 종종 해프닝도 있는 법이다. 지난해 8월 국회 정무위 소속 의원실에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 보좌관님의 출신 학교와 나이가 어떻게 되죠?”

“어딘데 남의 개인정보를 물어봐요?!”

“예… 여기, 삼성인데요?”

전화는 도중에 끊겼으나, 나중에 보좌관과 가까운 ‘인연’이 닿는 삼성 직원이 의원실을 찾아왔다. 기업 국회 담당들이 처음 의원실을 찾아갈 때 학연, 지연을 꼼꼼히 따져서 인연을 찾고,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것이 기본이다. 삼성의 지인 관리시스템은 SK, LG, 한화 등도 따라 하고 있다.

SK그룹은 SK(주), SKT 등 5명의 국회 담당이 있다. 이들은 SK(주) CR지원팀에서 총괄 관리한다. LG그룹은 계열사별로 관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LG칼텍스 국회 담당자가 GS로 분리되기 이전까지 환노위를 출입했으며, LGT에서도 과기정위 의원실에 가끔 들른다. 한화는 구조본 산하 기획팀에서 6~7명이 대관 업무와 국회 담당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KT는 사업협력실 정책협력팀에서 2명, KTF는 한명의 국회 담당이 활동하고 있다. 포스코는 대외협력팀, CJ그룹은 회장실에서 각각 한명씩 국회에 나오고 있다. 이 밖에도 현안이 있을 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험업협회, 은행협회, 석유협회, 전경련 등 협회와 단체 등도 국회를 수시로 들락날락한다. 삼성탈레스, 대우종합기계 등 방위산업체들도 국방위 의원실을 찾아가 로비를 한다. 기업의 국회 담당자들은 업체와 1차적으로 관련된 상임위를 중심으로 의원실의 보좌관을 만나고 다닌다. 업무의 성격 탓인지 국회 로비 담당자들은 의원 보좌관 출신들이 많다.

칼자루 쥔 의원실, 기업에 인사청탁 일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주로 대행사를 내세운다. 외국계 회사들의 까다로운 사내 윤리규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접 손에 때를 묻히지 않으려는 것이다. P&G코리아, BAT코리아는 각각 대정부팀(Government relation)과 규제대응팀(Corporate&Regulator affairs)에서 대정부, 국회 로비를 관장한다. 최근 옥션과 야후코리아는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이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자, 직접 의원실을 들러 업체의 입장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헤드헌터들은 외국기업들의 대정부, 국회 로비 인력을 특별히 관리해, 공급해주고 있다.


△ 이승희 민주당 의원(가운데)은 "국민과 국익을 위해 로비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규모가 큰 대기업들은 대부분 국회 담당 직원을 따로 두지만, 간혹 대정부 업무를 같이 하기도 한다. 기업들이 아직 각종 인허가와 규정 등으로 기업을 규제하고 있는 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원 입법 발의 건수가 늘어나고, 의회의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국회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 국회 담당자들은 보좌관과 친분을 쌓아 자연스럽게 의원실을 출입하게 된다. 국회가 열리지 않으면 1주일에 1~2번, 3~4시간씩 의원실을 들른다. 이들은 자신이 소속된 기업과 관련된 어떤 사안이 터졌을 때, 의원실에 찾아가 소속 기업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익을 대변한다. ‘정보맨’처럼 회사와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또 전문성이 부족한 의원실의 이해를 돕는 자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들은 사실상 기업에 소속된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다분히 ‘교과서적’인 활동이다. ‘그 이상의 것’들이 국회의원 회관과 그 주변에서 종종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기업 국회 담당자들은 자신의 회사에 불리한 상임위 질의나 보도자료, 대정부 질의 내용의 삭제를 요구한다. 특히 총수나 사장이 국감의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되는 것은 막아야 할 제1의 과제가 되고 있다. 기업들은 대체로 국회의원과의 갑을 관계에서 을의 관계에 놓인다. “기업의 을의 입장을 이해해달라”고 삼성 관계자조차 말할 정도다. 국회의원이나 의원실에서는 이러한 갑을 관계를 이용해 각종 민원을 부탁한다. 인사청탁도 이뤄지고 있다. 위험선을 넘나드는 것이다. 한 업체 국회 담당자는 “의원실이 취업 청탁을 하는 것은 부지기수다. 실제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생색 내는 차원에서 일단 알아보겠다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거꾸로 기업 국회 담당이 먼저 ‘선’을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한 국회 담당은 담당 상임위 보좌관들을 상대로 30만원짜리 상품권을 돌렸다. 이 사건은 문제가 되지 않고 그냥 조용히 넘어갔다. 또 룸살롱 등으로 2, 3차를 나가는 경우도 여전히 간혹 있다고 기업 국회 담당자들은 고백한다. ㅇ사 관계자는 “현행 변호사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 데드라인을 넘지만, 그 선 안에서 서로 돕는 일종의 ‘생태계’가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 공장이나 지사의 견학을 명분으로 보좌관들에게 해외여행을 시켜주기도 한다. 물론 17대 들어서 정치자금법 강화와 법인카드 사용한도액 지정, 각종 ‘…게이트’의 학습효과로 과거에 견줘 많이 개선됐다는 게 중론이다.

로비스트 합법화할 것인가


△ 국제적 로비스트인 조안 리는 1986년 맥도널 더글러스사의 FA18 한국 판매 로비를 맡아 유명해졌다. (사진/ 연합)

하지만 기업의 대국회 로비는 여전히 합법과 불법의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거닐고 있다. 최근 ‘오일 게이트’와 관련해 이광재 열린우리당 의원과 전대월씨 사이에서 ‘로비’란 단어가 흘러나오는 것도 제도화되지 못한 대국회 로비의 허술한 틈을 보여준다.

이러한 애매모호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권의 로비 합법화 움직임에 탄력이 붙고 있다. 이승희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4일과 18일 로비스트 법제화를 위한 1, 2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의원은 “현재 모든 로비활동은 사실상 불법”이라며 “로비스트가 비리리스트가 안 되려면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은영 열린우리당 의원도 “부패방지 차원에서 로비를 합법화하는 로비활동 공개법을 준비 중”이다. 무소속의 정몽준 의원은 지난 16대에 이어 17대 들어서도 이미 로비 관련법을 발의한 상태다. 기업의 국회 로비 담당자들이나 보좌관들은 대체로 로비스트 법제화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물론 로비가 합법화되면 자금력이 탄탄한 기업이 더 큰 이점을 누릴 수 있다는 것 등 많은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로비=비리’로 보는 일반인들의 인식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문제를 그대로 덮어둘 순 없는 노릇이다. 보좌관 김영환씨는 “기업체 국회 담당과 보좌진이 자꾸 선후배 등 인적 관계로 만나면 나중엔 할 얘기도 못하게 된다. 제도화된 틀 안에서 전문가 대 전문가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 국회, 정부 등 삼자가 바람직한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도 로비활동의 투명한 공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전화번호 가르쳐줬어?

활동 공개 꺼리는 기업 국회 담당자들

“누가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냐?!”
대부분 기업 국회 담당자들은 기자의 전화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였다. 이승희 민주당 의원이 지난 5월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로비의 현장을 듣다’ 토론회에서도 그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회를 상대로 한 로비 무대에서 질적, 양적으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인들이 출연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국회 의원실을 출입하면서도 활동은 비공개를 원했다. 로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큰 상황에서 신분 노출이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한국과 미국을 무대로 로비스트로서 이름이 꽤 알려진 조안 리조차 이날 토론회 나와서 “나는 스스로 절대 로비스트라고 하지 않는다. 그 말 뒤에 암거래, 뇌물이 왔다갔다 한다는 통념이 있다”며 자신을 국제홍보전문가로 불러달라고 했다. 현재 국회나 정부를 대상으로 한 기업 등의 로비는 있으나, 로비스트의 얼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로비와 로비스트

로비는 미국의 로비스트등록법에 입법, 행정, 집행 작용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공무원과 하는 모든 의사소통으로 규정돼 있다. 공무원에게 법적으로 청원하는 시민의 권리는 로비로 규정돼 침해될 수는 없다. 로비스트는 로비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미국에서 로비는 의회 본회의실 근처 로비에서 청원자들이 기다리던 것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로비는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 설립한 필라델피아 전국산업진흥회가 국립은행 설립을 위해 언론인들을 고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미국에 등록된 로비스트 수는 최근 2만5천여명에 이르고 있다. 또 2000년 한해 동안에만 워싱턴 연방정부를 향한 로비 금액은 우리 돈으로 15조원에 이른다.


한겨레 21 2005년05월25일 제5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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