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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에게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인가

이건희에게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인가


장상환(진보정치연구소장, 경제학)


이번 9월 정기국회에서는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의 개정을 둘러싸고 재벌과 국민들과의 한판 싸움이 예정되어 있다. 또 삼성그룹이 공정거래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제기하였기에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도 주목된다. 


1955년에 제너럴 모터스는 미국 자동차시장의 절반을 차지했고, 10억 달러의 이익을 올린 최초의 회사가 되었다. 1953년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당시 제너럴 모터스 회장 찰리 윌슨을 국방장관으로 지명했다. 상원 군수산업위원회의 청문회에 불려나간 윌슨 회장은 ‘만약 국방장관이 된다면 제너럴 모터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윌슨회장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고는 자신은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왜냐하면 오랫동안 나는 미국에 좋은 것은 제너럴 모터에 좋고 그 역도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너럴 모터스의 철학을 너무나도 잘 요약한 말이었기에 나중에 “제너럴 모터에 좋은 것은 미국에 좋은 것이다”(What's good for General Motors is good for the country)라는 경구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런데 2005년 3월에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는 제너럴 모터스의 신용등급을 정크 본드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제너럴 모터스는 4월 5일에는 기관차 부문을 팔았다.


제너럴 모터스가 위기에 빠진 것은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경쟁업체들을 합병하는데 골몰하고 기술혁신에 소홀했던 탓이다. 기존모델을 써먹으려고 새로 개발한 기술도 도입을 늦추었다. 제너럴 모터스는 하이브리드 차를 내놓지 못하여 토요타나 혼다에 뒤쳐져 버렸고, 뒤늦게 수소차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공룡기업이 시장을 오랫동안 독점할 때 어떻게 위기에 빠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너럴 모터는 미국 종업원 2만5천명을 해고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제너널 모터스에게 좋은 것이 꼭 미국에 좋은 것은 아니게 된 셈이다.


그런데 요사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한국에서도 나돌고 있다. “삼성에게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정부, 특히 금감위와 재경부가 삼성, 결국 이건희 감싸기에 앞장섰다. 지난 7월 5일의 국무회의에서는 재경부 주도로 금산법 제24조를 위반한 초과지분에 대해 소급입법이라는 이유로 매각명령을 내리지 않는 금산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지난 8월 4일 열린우리당과 정부의 당정협의에서 기존초과분까지 처분토록 하자는 열린우리당의 주장에 대해 한덕수 경제부총리와 재경부는 법 시행 내지 개정 이전의 초과지분에 대해서는 위험 소지 등을 이유로 처분명령은 물론이고 의결권 제한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금융계열사의 다른 계열사 지분보유는 고객 돈으로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뒷받침하는 것이 분명한데 정부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건희 감싸기가 분명하다. 여기에 대해 한나라당과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보수적 세력들은 정부의 주장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또한 지난 6월 28일 계열사에 대한 계열금융기관의 의결권을 15% 이내로 제한한 공정거래법 조항을 대상으로 삼성그룹 자회사들이 위헌 소송을 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건희와 그 아들 이재용의 경영권을 지켜주기 위한 것일 뿐이다. 재벌체제란 재벌총수가 조그마한 지분으로 다수의 계열사를 지배하고, 그 계열사들이 국민경제를 지배하는 구조이다. 문어발 확장이 재벌의 지배력을 극대화하는 수단이고 상호출자에 의한 의결권 행사는 지배권을 유지하는 지렛대인 것이다. 이에 대해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은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지난 법 개정 때 폭넓은 합의를 거친 것이라면서 합헌 판결을 자신한다고 한다. 그러나 보수세력들은 공정거래법의 의결권 제한조항이 겨냥하는 금융자본과 사업자본의 분리나 경제력 집중 완화는 세계화된 경제에서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삼성을 옹호한다. 이윤을 많이 남기기만 하면 어떤 기업지배구조이든 좋다는 것이다. 또한 삼성에 고용된 판검사 고위직 출신 인물들의 로비로 헌법재판소가 삼성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 도청 테이프에서 드러난 것처럼 삼성재벌 총수 이건희는 여야당 대선 후보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건넸다. 정부의 규제를 최대한 피해보겠다는 의도임이 분명하다. 견제받지 않는 경제권력이 어떻게 정치권력을 손아귀에 넣는가를 생생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부정한 방법으로 인지된 사실을 근거로 수사를 할 수는 없고 이학수부회장을 소환한 것은 참여연대에서 고발했기 때문일 뿐이라는 자세이다.


이건희에게 좋은 것은 삼성에 좋은 것인가. 아닐 수 있다. 또 삼성이라는 기업에 좋은 것이 이건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대학교수가 연구비를 타가지고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잘라먹은 것은 일시적이기는 하겠지만 자신에게 좋을지라도 대학원생에게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학교에도 좋지 않고 결국에는 자신에게도 좋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무리한 이건희 감싸기는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회장과 대우그룹의 김우중이 어떻게 그룹을 위기로 몰고 갔는지, 그리하여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줬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삼성에 좋은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인가? 삼성이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은 한국에 좋은 것일 수 있지만 무노조 경영은 삼성에는 좋지만 한국에는 좋지 않다. 삼성이 오래 지탱되려면 정부뿐만 아니라 삼성 스스로도 한국에 좋지 않은 것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금융산업과 산업자본의 분리는 보편적인 원칙이다. 미국의 경우 소수 독점자본가들의 시장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1929년 대공황의 쓰라린 경험을 한 후 금융업 내부의 융합과 금융업과 상공업간의 엄격한 분리를 규정했다. 1933년에 제정된 글래스 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은 은행업과 증권업을 구분하는 4개 조항을 담고 있다. 은행의 증권 관련 업무 수행 금지, 은행의 증권사와 관계회사화 금지, 증권회사의 예금수취 금지, 은행임직원의 증권사 겸직금지 등이다. 은행이 증권에 투자함으로써 안정성을 상실하고 투자자에 대해 이해상충행위를 할 위험성 때문에 은행업과 증권업간에 차단벽을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1956년에 제정된 금융지주회사법(Bank Holding Company Act)은 은행의 비은행사업의 영위 및 다른 주의 은행 매수 등을 금지하고, 은행업과 상공업 간의 분리 원칙(Separateness of commerce and banking)을 유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동안 삼성은 법을 어기는 것을 예사로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힘이 커지니까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법이나 법의 해석을 바꿔버리려고 한다. 정말 그 지배욕의 끝이 어디일지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정치연구소 새 세상의 창  2005.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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