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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 입양시킨 발효조에
맥주를 담근다.
내일 밤.
목욕재개하고 가야지.
치성을 드리고선 담그자고 했다.
맥주에 대해서도 칵테일만큼이나 복잡한 생각이 든다.
하우스맥주를 담근다 해도, 맥주 원액은 수입을 해와야하고
아직 어떤 공정을 통해 그 원액이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것이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모든 먹는 것에 어떤 고리들이 있고 순환이 있는데 사실 그런 것들은 잘 보이지 않지 않나.
카스와 하이트를 먹는 동안에, 하이네켄과 삿포로와 호가든을 먹는 사이에
맥주는 신성한 빛 사이로 그 모든 고리들을 감추고 있다.
맥주 자체가 그렇다기 보다는 아다시피 소비재로서의 성격이 워낙에 그렇다.
글치만 맥주는 파퓰러하다.
그야말로, 더운 날에는 낮에도 밤에도 맥주가 편하다.
몸이 부른다고 해서 다 몸에 필요한 것이라는 논리는 어불성설이지만
(몸이 원하는 것과 입이 원하는 것을 혼동하기는 너무 쉽다)
맥주를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빈집에서 맥주를 담근다.
맥주를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하기에 곡물발효까지는 시도하지 못하지만
시작은 가장 쉽고 모두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그리고 카페에서 그 과정을 함께 한다.
카페도 계속해서 대기업에서 대량생산한 먹거리를 사와서 파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간 수백개의 맥주캔과 웰치스캔을 주문하고 팔고 찌그러뜨려 버리면서
장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단순히 몸이 피곤해서만은 아님을 다시 생각해본다.
입에도 몸에도 좋고 가격도 싼 음식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이다.
거기에 필요한 건 고리를 다시 만들어가는 것, 자본의 순환 바깥에 혹은 그 속에서 변종을 만드는 것 밖에는.
실험은 조심스럽고, 그래서 지연된 면도 없지 않지만
안 해보면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아직도 줄위를 걷는 것처럼 이런 저런 긴장이 느껴진다.
연구실 사람들에게도 입을 떼기는 했는데 내가 그 사이에서 소통의 고리들을 잘 만들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금전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는 적정선이 만들어지고
활동을 지속적으로 같이하게 된다면 그래도 일단
재밌는 그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단은 한 달간 금욜마다 만들거다.
빈집도 맥주 소비량이 카페만큼이나 많으니(이 대목에서 카페 사람들은 다 뒤로 넘어갔다. ㅎㅎ)
남는다고 걱정할 필요가 별로 없을 것도 같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면면을 볼 때 모자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거나
한 달 동안 카페와 빈집이 함께 맥주를 담근다.
부디 즐거운 실험이 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는 맥주가 탄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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