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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에 가서 1

지난 목요일, 노들야학에 갔다.
요즘 연구실에서 '현장인문학 프로젝트' 를 하고 있어
목요일마다 격주로 계속 쫒아다니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노들야학이 보여줬던 전투성이 어디서 나오나도 궁금했고
최근 연구실 공부가 늘지 않는데 내가 공부로 뭘 해보겠다고 한다면
이곳만큼 좋을 곳이 없어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몇 번 노들을 다녀와서는, 그 이상이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 주에는 '청년 예수-꼬뮨적 삶'을 주제로 한 연구원이 강의를 했다.
다른 연구원들의 강의를 들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게다가 예수라니,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그런 인물이었기에 더 궁금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인문학강의 시리즈는 다른 곳의 강의보다 재미있다.
야학 분들은 현실정치적 맥락에서 이런 인문학적(신학적인 뉘앙스라기 보다) 주제들을
숭숭 구멍내고 질문들을 쏟아놓기 때문이다.
그 진지함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고.

처음 노들에 갔을 때는,
 대학 초년에 장애인분들이 이동권투쟁하면서 점거했던 국가인권위 건물 9층인가를 방문했던 기억이 났다.
낯설기만 했던 중증지체장애인분들의 외모와 목소리와
바닥에 청테이프로 표시해둔 휠체어 통행선이라든가 하는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
그 모든 걸 받아들여 이해하고 되도록 실수하지 말자, 하는 살짝 긴장된 태도로 방문했었던.
사람들이랑 몰려다니다가, 질문을 건네고 받는 중에도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조심하면서 소심한 방문을 마쳤다.
그리고는 1층으로 내려오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안에 중증장애인 한 분과 활동보조인분이 타고 계셨다.
내가 너무 경직되어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9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도 어색하고 해서
그 중증장애인분에게 말을 걸어본다는게, 마침 휠체어 뒤에 수십개의 색색이 빨대가 꽂혀있는 것을 봤다.
"빨대가 참 많네요. 색색이..."
분위기가 이상했다. 왜 그러지?
"이 빨대 다 쓰시는 거에요?"
"..."
옆에 계시던 활동보조인께서 장애인분을 대신해 대답해주셨다. 이걸로 식사를 하신다고.

뭔지 모르게 무척 뻘쭘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은 별 거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별 일일 수도 있고.
문제는 내가 그 후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행동하기 위해 조용히 입을 다물고
눈으로 현장을 마구 살피고 사람들에게 뒤에서 조용히 묻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게 나쁠 것까진 없지만, 이른바 '현장'이란 곳, 특히 장애라는 낯선 신체들을 만날 때 긴장도 하고 동시에 약간 두려움 같은 것도 따라다니는 걸 의식하게 되었다.

사실, '배려'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있다.
상대를 모르는데 어떻게 배려가 걍 된단 말인가.
차라리 실수를 하더라도 직면해서 대화하고 친해지고 그러면서 혼나고 고치고 하는 게 필수다.
어쨌거나 이번 노들에 갈 때,
나는 그간 내가 했던 숱한 실수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실수 안 할 수 없는 거니 있는 그대로 만나자.'라는 마음을 갖고 갔다.
이 역시 긴장과 두려움의 표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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