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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와 ‘죽은 자’

‘산 자’와 ‘죽은 자’

 

형은 공장안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그는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이른바 “죽은 자‘이다. 그의 아내는 정문에서 피켓을 ‘해고는 살인이다’는 피켓을 들고 서있다. 공장 점거파업을 중단하라며, 물밀 듯 밀려드는 ‘산 자’들에게 ‘어제까지만 해도, 나의 남편과 당신들을 동료이지 않았냐며’ 울부 짓는다.

 

그의 동생은 ‘산자’였다. 쌍용차 사측의 관제 데모에 참석하지 않으면, 결근 처리한다는 관리자의 협박에 ‘제발, 내가 어떻게 형과 형수에게 쇠파이프를 들수 있냐’며 항변한다.

 

그랬다. 형과 동생, 다정한 이웃이자 한솥밥을 먹었던 직장동료들끼리 서로에게 쇠파이프를 겨눴다. ‘함께 살자’와 ‘나를 위해 네가 죽어 달라’가 정막속의 공장을 휘감았다. 이렇게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는 휴전선보다도 골이 깊게 패였다. 동족상잔의 아픔만이 남았다.

 

인륜도 무너지고, 동료간의 의리도 이웃간의 다정함도 모두다 사라졌다. 어찌 이곳을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할수 있을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곶감 빼먹듯 알짜배기 기술을 다 빼돌린 중국 상하이 자동차는 다 먹고 튀어버렸다. 이른바 ‘먹튀’ 자본의 전형이다. 노조는 수년전부터 상하이 자본의 ‘기술유출’을 경고했다. 정부에 수십차레 건의 했다.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모르쇠’다. 정부는 한번도 책임지지 않았다. 쌍용자동차 채권단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국책은행이다. 정부는 모든 문제를 채권단이 결정할 문제라고 얼버무린다. 채권단이 곧 자기자신인데 채권단 탓을 한다.

 

노동자! 얼마나 처참한가. 제 밥그릇 지키기 위해, 동료의 밥그릇을 엎어버려야만 하는 그 심정. 얼마나 비굴했을까! 동료에게 쇠파이프를 들어야만 하는 그 심정. 동료 아내의 울부짓음을 뒤로하고, 공장안으로 개 끌려가듯 관제데모에 나서는 그 심정 얼마나 처절했을까! ‘함께 살자’는 구호에 ‘같이 죽자는 거냐, 너희가 희생해라’라고 맞장구 치는 자신의 주둥이가 얼마나 미웠을까!

 

엊그제 까지만 해도, 노동조합 깃발아래 단결했을 쌍용차 노동자들. 이제 그 노동자들은 온데 간데 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사람사는 세상’을 ‘사람없는 세상’으로 만든이가 과연 누구일까!

 

상하이 자동차 자본일까! 정부일까! 아니면 우리 노동자 내부의 나약함일까!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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